도서관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우연히 엿듣게 된 대화 상황이다. 아마 취업을 위한 ‘스터디’ 모임에 한 남자가 새로 참여하게 되었나 보다. 3인(남 1, 2와 여)의 대화는 대략 이렇게 진행되었다.
여: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남1: 스물 아홉이요.
여: 와, 좋아라.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네…
남2: 저와는 동갑이시네요…
남1: (여자에게) 몇 살이세요?
여: 스물 여덟이에요.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귀국 후 낯선 상황이 적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게 바로 이런 "나이 따지는 청년 문화"다. 아주 엽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나이’가 확인되어야 비로소 대화가 진행되는 건 사실 오래된 "한국 문화"이긴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10대, 20대들까지 그 대열에 동참하다니...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선 30만 넘겨도 아주 '왕' 늙은이 취급을 받고, 어린 '아이돌' 좋아하는 소위 '로리타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10대 '아이돌'이 라디오 방송에서 나이 따지고... 그런 맥락에서 또 눈에 띄는 현상은 가족을 지칭하던 호칭의 보편화다. 아저씨, 아줌마가 그 원조격이었고, 젊은 여인을 '언니' 라고 부르는 것 까진 경험했었는데, 이젠 어지간하면 형, 누나, 오빠, 아버지, 어머니 관계를 맺는다. 특히, 나이드신 어르신들에겐 아버지, 어머니. 연예이들끼리도... 2시의 데이트 박명수에게 전화를 거는 젊은 남자들은 대뜸 '명수 형님'이다. 만약 이런 호칭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면, 영어의 경우 '(elder) brother'로 번역해서는 안된다. "hyung"인 거지. ['화이팅'이 'fighting'이 아니라 'whaiting/ hwaiting' 인 것처럼...]어찌보면 "근대화=개인화"라는 사회이론이 공유하는 전제를 깨부수는 (듯한) 이런 "전국민의 가족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실제 가족들을 가리키기 위한 새로운 호칭이 필요할 것도 같다.
호칭 의미론의 변화를 추척해서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을 내가 하진 않겠지만, 적어도이건 '기생적 현상' 혹은 '반작용'에 가까울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나이 서열이 불분명한 상태, 평등한 관계에선 어떻게 행동해할 줄 모르는 위기 상황? 합리적, 평등한, 혹은 추상화된 매체를 통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 ....
어찌되었건 10대, 20대 청년들이 '쫀쫀하게' 한 두 살 나이 따지는 모습에서 긍정적인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