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7일 일요일

타인의 기대 (Die Erwartung der Anderen, Fremderwartung)

이러 저러하게 살고 싶다! 이런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나 그런 기대를 갖고 살지 않겠는가? 중고등학교 시절 인생상담 상황에서 자주 등장하던 '자아실현'이 문구는 대개 두 눈 부릅뜨고 애를 쓰면 대개 삶은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설령 그렇지 못해도 그건 네 탓이다! 이런 인상을 적어도 내겐 낢겼다. 열심히 자아를 '계발啓發'(not 개발開發^^) 하면 - 그게 어떤 것이건... - 뭔가가 이루일 것 같은 희망 혹은 환상을 품고 사는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 같은 '전근대인'의 눈엔 '완전' 환상적인 시츄에이션 아닌가?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삶이라!
허나 '자아실현' 같은 담론은, 좀 낡은 언어로 표현하자면 근대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다. 전적으로 개인에게 책임묻기! ('개인'個人이란 번역어는 물론이고 individuum 이란 단어도 중세에야 등장했고, 근대적 주체를 지칭하는 말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남탓을 하면 'loser' 취급을 받는... 그래서 남탓하기는 '빨갱이'나 '노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거나, 혹은 '술자리'에서나 허용된 주제가 되어 주류 담론에서 배제된다 (왜 있잖은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모든 게 xx 탓!").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남의 기대에 맞춰서 살아주거나,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상황이 많고, 아니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사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대개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알게 되니까 "자아의 기대" 같은 건 허구에 가까운 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식에서 형성되었건 '자아의 기대'에서 출발을 하자면,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 게 인지상적인데, 그 과정에서 타인의 기대와 충돌하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커뮤니케이션 상황이 복잡해지고, 내가 그 참여자들과 맺는 관계가 친밀할수록 그런 충돌이 가져오는 '데미지'는 클 수밖에 없다. 그 '데미지'를 줄이려면? 자아의 기대와 타인의 기대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자아의 기대를 바꿀 수도 있고, 타인의 기대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런 기대 조정법 익히는 과정을 '어른화'라고 불러도 좋겠다. 어른isierung]. 혹은 그냥 그대로 살기, 익숙해지길 기대하면서... 혹은 그런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팔자려니' 생각하며 그런 상황과 더불어 그럭저럭 살아가기 (독일어로 '둘러가기'... umgehen).
루만은 심지어 얼굴을 맞대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상황에서도 개별 인간, 즉 심리체계는 환경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심리체계를 사회에서 쫓아냈다기 보다는, 그를 통해서만 그 독자성, 개별성이 보호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을지... (negative anthropology). 정말 심리체계를 보호하려면, 그건 영원히 사회의 '환경'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 번씩 '사회' 속으로 '출장' 나올 때마다 기대를 조정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소우주라고도 얘기하는 그 심리체계들, 복잡한 기대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 심리체계들이 모여서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참 신기한 일이다 [이중 우연성 double contingency]. [부록: '일본인'들은 - 그런 대상이 있다치고 - 본론을 한 마디도 꺼내지 않으면서도 의사소통을 한다는데, 그런 쪽에선 아마 압도적인 차이로 Weltmeister일 것 ].

쉬운 얘길 참 열심히 돌려서 하셨다^^

댓글 2개:

  1. 어르니지어룽!^^ 이민 온 지 얼마 안되는 어학과정(?)의 어느 꼬마가 지 놀린 애를 엄마한테 이르는 말이, 엄마 얘가 나 ge놀리지어트했어! 했다던 얘기가 떠오르네요^^
    집사님, 보고 싶어요.현주씨도. 늦어지시는 걸 보면 아직도.. 혹시 무늬만 이타적 삶?ㅋㅋ 수선화 지기 전에 꼭 오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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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음.. 제가 아는 수선화는 꽤 오래 가던데요^^ 꽃 얘기를 하시니 '그 분'이려니 짐작해 봅니다만...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재회'하는 그날이 빨리 오도록 더 애를 쓸께요. 자꾸 뒤돌아봐선 안될 것 같아 마음껏 그리워하지도 못했는데, 모처럼 마음을 잠시 놓아 봅니다. 그 곳에 다녀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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