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참 오랜만에 듣고 또 써 보는 단어다.
주말부터 장마라더니 서울은 아직 영향권이 아닌지 조용하다. 오히려 밤엔 더 선선하기까지...
이맘 때 떠올리게 되는 노래가 있으니 바로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난 정태춘 초기 작 중에서는 '북한강에서'를 최고로 치고, 노래 방향을 바꾼 이후로 부른 노래 중에선 이 노래를 최고로 꼽는다. 예를 들어 1990년에 낸 '아, 대한민국'에 실린 몇몇 노래들은 가사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부담스러운데다가 음악적으로도 시원찮다. 너무 단순하다.
3 년 뒤에 낸 - 그 기간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큰데...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 이 음반은 음악적 성취도가 훨씬 높다. 그 음반의 여러 노래 중에서도 가사나 작곡 면에서 가장 세련된 곡이 바로 이 노래...
youtube에 올라 와 있지 않은 탓에 가사와 앨범 표지 사진으로 대신한다.
재미있는 건 이 노래를 2010년에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
아마 지난 두 정권에선 뭔가 어색했을 노랫말들이 요즘엔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
자칫 흘러간 노래로 기억될만한 이 노래가 다시 생기를 얻게 된 건 모두가 위대하신 '가카'의 탁월한 영도력 덕분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캄사, 캄사...
아닌 게 아니라 2009년 노무현 추모공연에서 배우 권해효가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참으로 세상은 생각, 기대보다 한참 더 더디게 바뀐다.
지금은 반동 혹은 퇴행기임엔 분명해서 우울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럴 필요 없다. 역사를 어디 그리 쉽게 되돌릴 수 있던가.
92년 장마, 종로에서 (정태춘, 1993)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 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 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에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 가는구나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 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빨간 신호등에 멈쳐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 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 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에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 가는구나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 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빨간 신호등에 멈쳐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p.s.) 2010년 장마를 난 잠실에서 보내고 있다. 종로엔 아직 가 볼 일도 없었고, '물대포'에 쓰러질 일은 더더욱 없고... 하지만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2010년에도 공감하며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는데, 그 까닭을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지는 않으련다. 설명이 길어지면 변명이 되고 사람마저 구질구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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