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6일 토요일
Across The Universe (Rufus Wainwright)
오늘 '무한도전'을 재미있게 봤다. 녹화분량 걱정 탓인지 '오버'하는 모습이 가끔씩 걸리긴 했지만, 역시 '무도' '김태호'라는 얘길 할 수 있을... 'across universe'가 배경음악 중 하나로 들렸는데 낯선 목소리였다. 인터넷의 힘은 대단해서 마우스 몇 번 누르지 않고서 찾아낼 수 있었다. 원곡의 분위기를 모던한 방식으로 잘 살렸다 (2010년에 듣기에 원곡은 사실 좀 촌스럽거든). 가수는 낯설지만 이 영상은 이 음악이 OST였던 영화 'I am Sam'(2001)이다. 영화는 매우 재미있게 봤었는데 이런 음악이 깔렸던가, 새삼스럽다. Dakota Fanning의 야무진 모습도 기억에 남지만 Sean Penn의 연기력에 한 번 더 놀란 영화... ('Forrest Gump'[1994]의 더스틴 호프만 연기와 비교할 만한...).
ps) '텔레파시' 2편도 대부분 볼 수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속편 재미있기 어렵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음. 함께 보던 이들에게 '무도'를 과도하게 '찬양'한 내가 머쓱해질 정도로...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호감, 친구, 소셜 네트워트...
"깊이 있는 사적인 교류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많은 만남이 인터넷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글로 쓰면 인간성을 위장하기 쉽다. (…) 호감의 신호가 전해지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직접 시선을 마주해야 한다. 개인적인 만남이 드물수록 우리의 자존심도 확신을 얻기 어렵다. (…) … 에서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95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친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에 비해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율은 88퍼센트이다. 친구가 가족을 앞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친구들은 서로 확실하게 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 사이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 프랑크 나우만, 호감의 법칙. (그책, 2009) [원제, Frank Naumann, Die Kunst der Sympathie, 2007]
소셜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분명히 오프라인의 경우에 비해서 친절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편이다. 친절하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선 뭔가 모를 조급증, 불안함 같은 게 느껴진다. 그 친절함을 통해서 주고 받으려는 호감, 그리고 보장받으려는 자존감의 근거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일 거다. 나우만씨 '말씀'처럼 얼굴을 맞대고 직접 시선을 교환할 때 비로소 그 호감의 '질'이 드러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난 트위터, 페이스북 따위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 프랑크 나우만, 호감의 법칙. (그책, 2009) [원제, Frank Naumann, Die Kunst der Sympathie, 2007]
소셜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분명히 오프라인의 경우에 비해서 친절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편이다. 친절하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선 뭔가 모를 조급증, 불안함 같은 게 느껴진다. 그 친절함을 통해서 주고 받으려는 호감, 그리고 보장받으려는 자존감의 근거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일 거다. 나우만씨 '말씀'처럼 얼굴을 맞대고 직접 시선을 교환할 때 비로소 그 호감의 '질'이 드러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난 트위터, 페이스북 따위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예능인-지식인
'예능'은 매우 독특한 카테고리다. 텔레비전 방송국 부서로 '예능국'은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부서로는 '드라마국', '보도(제작)국', '편성국', '시사교양국' 등). 하지만 그 예능국은 드라마, 뉴스를 제외한 다른 방송 프로그램, 특히 개그, 코미디, 가요 등 각종 '쇼'에 대한 것이었다. '예능'이 하나의 독립된 방송 장르처럼 사용된 역사는 - 내가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 그리 길지 않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주말 버라이어티쇼'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했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아마 시초가 아닐까? '버라이어티', 그러니까 여러 장르가 섞였다는... 언제부터인지 드라마도, 개그도 아니면서 여러 분야 출신 연예인들이 나와서 '토크'를 하거나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방송거리'을 만들어 내는 - constructed reality - 그런 프로그램에 '예능'이란 표현을 붙이게 되었다. 현재 한국 텔레비전 방송은 '드라마'와 '예능'이 양분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학계에서도 학제간 연구, 학문간 융합, 통섭을 강조하거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혼성모방' 어쩌고 하더니 텔레비젼에서도 장르 간 혼성이 대세인 모양이다. 사실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드는 건 '입심'이다. 유머, 재치의 향연장인데 정말이지 그곳에서 살아 남는 사람들의 '예능 본능' 혹은 내공에 놀랄 때가 있다 (거기에다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자막, CG등을 덧붙이는 '작가', PD들의 내공 또한 대단하다. 특히,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의... 작가, PD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오는 것도 자주 관찰된다). 한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남자건 여자건 많은 말 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였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어쨌든 입담 좋은 사람들은 '고향' 장르에서는 시원찮아도 예능에서 탁월함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출신 분야에서 시원찮다는 것 자체가 입담 소재가 된다. 그래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가 '컨츄리 꼬꼬'의 멤버 탁재훈, 신정환 (연예인들의 '어두운' 과거도 소재거리다. 연예인 부부들끼리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그런 풍토를 두고 너무 '험악해졌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연예인들이 사적, 공적 영역을 넘나드는 것, 그건 시대흐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른 바 지식인들 중에서도 '예능'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미 나름 그건 계보가 있다. 왜 TV에 단골로 출연하던 박사님들, 교수님들 있잖은가. 조경철 박사 (천문학), 김정흠 교수 (물리학), 조문부 (새 박사), 하재봉 (영화, 연예?)... 허나 그들은 그들의 전문분야를 끝까지 안고 간다는 점에서 '예능인'이라고 얘기하기 힘들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쪽에 가장 가까이 간 인물로 '진중권' '김용옥'씨 정도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아무리 그 진,김 선생이라고 하더라도 - 예를 들어 - '라디오스타'에 한 자리 차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식인들은 그 지식인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예능'에 끼워주진 않는다 (왕년 씨름선수였던 김만기 교수가 보이기는 하고 교수임이 대화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나 씨름선수로서 정체성이 더 강한 경우다).
여하튼... 진중권씨가 어떤 강연에서 자신을 대중의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갖춘 지식인으로 스스로를 평가해서, 그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다 여기에 이르렀다. 진 선생이 얘기한 내용을 그래돌 옮기면...
나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나는 본래 의미의 지식인보다는 일종의 아이돌로 소비된다. 대중문화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들어왔다. 옛날 지식인처럼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는 사람’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귀염둥이’다(웃음). 자기 대신 게임을 해서 그를 위해 싸우는 ‘캐릭터’가 된 거다. 내가 ‘진화한 먹물’인 셈이다. 독백형·지사형·선지자형의 전통 먹물은 씨도 안 먹히고, 지금 대중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을 보면 철저하게 대화 구조로 풀어낸다. 저도 별명이 '횽아'다. 대중이 "중권 횽아를 괴롭히지 마라" 해버린다(웃음).
그 밖에 이 기사에서 하고 있는 얘기는 그럴듯하다. '그럴듯하다'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붕붕 뜨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의외로 쉽다. 그리고 덜 위험하다. 대개 현재 발언이 미래에 평가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현재적 의미가 높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자극을 주는, 혹은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그런 내용이 있는 더러 있다.
ps) 진선생의 얘긴 화려하기 그지 없다. 그에 대한 기사, 발언을 읽거나, 접해 들은 뒤에 종종 찜찜함 기분을 갖곤 하는데, 불쑥 불쑥 던지는 큰 얘기들 사이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에 특히 그런 것 같다. 그런 논리적 일관성 부족을 현란한 언사로 덮는 건 아닌지...
학계에서도 학제간 연구, 학문간 융합, 통섭을 강조하거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혼성모방' 어쩌고 하더니 텔레비젼에서도 장르 간 혼성이 대세인 모양이다. 사실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드는 건 '입심'이다. 유머, 재치의 향연장인데 정말이지 그곳에서 살아 남는 사람들의 '예능 본능' 혹은 내공에 놀랄 때가 있다 (거기에다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자막, CG등을 덧붙이는 '작가', PD들의 내공 또한 대단하다. 특히,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의... 작가, PD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오는 것도 자주 관찰된다). 한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남자건 여자건 많은 말 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였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어쨌든 입담 좋은 사람들은 '고향' 장르에서는 시원찮아도 예능에서 탁월함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출신 분야에서 시원찮다는 것 자체가 입담 소재가 된다. 그래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가 '컨츄리 꼬꼬'의 멤버 탁재훈, 신정환 (연예인들의 '어두운' 과거도 소재거리다. 연예인 부부들끼리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그런 풍토를 두고 너무 '험악해졌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연예인들이 사적, 공적 영역을 넘나드는 것, 그건 시대흐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른 바 지식인들 중에서도 '예능'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미 나름 그건 계보가 있다. 왜 TV에 단골로 출연하던 박사님들, 교수님들 있잖은가. 조경철 박사 (천문학), 김정흠 교수 (물리학), 조문부 (새 박사), 하재봉 (영화, 연예?)... 허나 그들은 그들의 전문분야를 끝까지 안고 간다는 점에서 '예능인'이라고 얘기하기 힘들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쪽에 가장 가까이 간 인물로 '진중권' '김용옥'씨 정도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아무리 그 진,김 선생이라고 하더라도 - 예를 들어 - '라디오스타'에 한 자리 차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식인들은 그 지식인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예능'에 끼워주진 않는다 (왕년 씨름선수였던 김만기 교수가 보이기는 하고 교수임이 대화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나 씨름선수로서 정체성이 더 강한 경우다).여하튼... 진중권씨가 어떤 강연에서 자신을 대중의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갖춘 지식인으로 스스로를 평가해서, 그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다 여기에 이르렀다. 진 선생이 얘기한 내용을 그래돌 옮기면...
나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나는 본래 의미의 지식인보다는 일종의 아이돌로 소비된다. 대중문화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들어왔다. 옛날 지식인처럼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는 사람’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귀염둥이’다(웃음). 자기 대신 게임을 해서 그를 위해 싸우는 ‘캐릭터’가 된 거다. 내가 ‘진화한 먹물’인 셈이다. 독백형·지사형·선지자형의 전통 먹물은 씨도 안 먹히고, 지금 대중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을 보면 철저하게 대화 구조로 풀어낸다. 저도 별명이 '횽아'다. 대중이 "중권 횽아를 괴롭히지 마라" 해버린다(웃음).
그 밖에 이 기사에서 하고 있는 얘기는 그럴듯하다. '그럴듯하다'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붕붕 뜨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의외로 쉽다. 그리고 덜 위험하다. 대개 현재 발언이 미래에 평가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현재적 의미가 높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자극을 주는, 혹은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그런 내용이 있는 더러 있다.
ps) 진선생의 얘긴 화려하기 그지 없다. 그에 대한 기사, 발언을 읽거나, 접해 들은 뒤에 종종 찜찜함 기분을 갖곤 하는데, 불쑥 불쑥 던지는 큰 얘기들 사이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에 특히 그런 것 같다. 그런 논리적 일관성 부족을 현란한 언사로 덮는 건 아닌지...
2009년 10월 6일 화요일
短見
인터넷과 TV가 오랫 동안 공존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종이신문 역시 인터넷의 위력에 휘청거리고는 있지만 쉽사리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신문에 났는데...'라고만 해도 발언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시대에 비하면 '종이'신문의 위상 추락은 극적이까지 하지만...). 어쨌든... 종이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신문이 아니었더라면 보지 않았을 기사까지도 접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인터넷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듣고, 알고 싶은 지가 분명한 세대에게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자기 관심 이외 영역을 접할 기회가 좁아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주위에 '조선일보' ('디지탈 조선' 혹은 '조선닷컴'이 아니라) 밖에 없는 탓에 꼼꼼하게 보게 된다. 그러다가 오늘 접한 기사... 특파원 칼럼인데 제목이 '유럽좌파' (인터넷으론 여기에서).
앞 부분을 인용한다.
"'20 대 7'.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우파 정권과 좌파 정권 비율이다. 최근 독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SPD)이 전대미문의 참패를 당하자, 유럽 언론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좌파의 몰락'이 다시 핫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4일 총선에서 그리스는 사회당으로 다시 시계추가 움직였지만 유럽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좌파 후퇴' 쪽이다.
독일 사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2차 대전 이후 최저의 득표율(23%)을 기록하며, 무려 76석의 의석을 잃었다. 개표 이후 '표심'에 대한 분석결과는 사민당 지도부뿐 아니라 유럽 정치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지지층인 청년, 블루칼라, 구(舊)동독지역 유권자들이 철저히 사민당을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양반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가... (이 게시물 제목은 短見이라고 좀 완곡하게 붙였지만 사실 이건 無識에 가깝다). SPD가 참패한 거야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게 독일 좌파의 몰락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오버'에 '무식'이 겹친 꼴이다.
한겨레 기사를 인용한다.
"오스카어 라퐁텐 의장이 이끄는 좌파당은 이번 총선에서 11.9%를 득표해 76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2005년 총선 당시 8.7%(53석)에 견주면 괄목할 성장이다. 2002년 총선에서 득표율 5%에도 못 미쳤던 좌파당은 이날 “우리가 장벽을 뛰어넘고 두자릿수 득표를 기록해 정당으로서 위상을 확립했다”고 환호했다. 좌파당은 기반인 동독 지역뿐 아니라 사민당의 ‘변절’에 실망한 전통 좌파 지지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겨레 기사는 SPD를 '중도좌파'으로 지칭하며 '좌파당'과 구분하면서 '무식'을 온천하에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자칭 '대한민국 일등신문', 부끄럽지 않은가? 적어도 아래처럼 얘기하는 연합뉴스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럽 정치 지형에서 우파의 득세와 좌파의 쇠퇴가 가속화하고 있다. (...) '사민당의 몰락=사민주의의 몰락'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사민주의 정당들이 '현대적 사민주의'라는 구호아래 섣부르게 중도로 나갔다가 정체성 위기로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일 뿐 사민주의의 이념은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ps) 진보신당 유럽당원협의회에 실린 독일총선 '관전' 지침 (여기)도 참조.
주위에 '조선일보' ('디지탈 조선' 혹은 '조선닷컴'이 아니라) 밖에 없는 탓에 꼼꼼하게 보게 된다. 그러다가 오늘 접한 기사... 특파원 칼럼인데 제목이 '유럽좌파' (인터넷으론 여기에서).
앞 부분을 인용한다.
"'20 대 7'.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우파 정권과 좌파 정권 비율이다. 최근 독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SPD)이 전대미문의 참패를 당하자, 유럽 언론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좌파의 몰락'이 다시 핫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4일 총선에서 그리스는 사회당으로 다시 시계추가 움직였지만 유럽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좌파 후퇴' 쪽이다.
독일 사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2차 대전 이후 최저의 득표율(23%)을 기록하며, 무려 76석의 의석을 잃었다. 개표 이후 '표심'에 대한 분석결과는 사민당 지도부뿐 아니라 유럽 정치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지지층인 청년, 블루칼라, 구(舊)동독지역 유권자들이 철저히 사민당을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양반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가... (이 게시물 제목은 短見이라고 좀 완곡하게 붙였지만 사실 이건 無識에 가깝다). SPD가 참패한 거야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게 독일 좌파의 몰락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오버'에 '무식'이 겹친 꼴이다.
한겨레 기사를 인용한다.
"오스카어 라퐁텐 의장이 이끄는 좌파당은 이번 총선에서 11.9%를 득표해 76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2005년 총선 당시 8.7%(53석)에 견주면 괄목할 성장이다. 2002년 총선에서 득표율 5%에도 못 미쳤던 좌파당은 이날 “우리가 장벽을 뛰어넘고 두자릿수 득표를 기록해 정당으로서 위상을 확립했다”고 환호했다. 좌파당은 기반인 동독 지역뿐 아니라 사민당의 ‘변절’에 실망한 전통 좌파 지지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겨레 기사는 SPD를 '중도좌파'으로 지칭하며 '좌파당'과 구분하면서 '무식'을 온천하에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자칭 '대한민국 일등신문', 부끄럽지 않은가? 적어도 아래처럼 얘기하는 연합뉴스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럽 정치 지형에서 우파의 득세와 좌파의 쇠퇴가 가속화하고 있다. (...) '사민당의 몰락=사민주의의 몰락'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사민주의 정당들이 '현대적 사민주의'라는 구호아래 섣부르게 중도로 나갔다가 정체성 위기로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일 뿐 사민주의의 이념은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ps) 진보신당 유럽당원협의회에 실린 독일총선 '관전' 지침 (여기)도 참조.
뉴스: 인터넷과 텔레비전
모처럼 (^^) 9뉴스를 TV로 보면서 든 생각. 오랫 동안 인터넷을 통해 한국 소식을 접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TV 뉴스가 너무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선 30여분 동안에 전달되는 정보량이 터무니 없이 적다. 인터넷에선 우선 흥미로울만한 뉴스만 골라보게 되고 열었는데 기대만큼 흥미롭지 않다면 '클릭'해서 다음 뉴스로 넘어갈 수 있지만 TV 앞에선 정말이지 그 '상자' 앞에서 '바보'처럼 꼼짝없이 앉아서 방송사가 마련해 놓은 뉴스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하는데, 지루한 장면에선 '->' 버튼을 이용해서 빨리 넘겨버리고 싶다는 충동 말이다. 인터넷이 대신할 수 없는 TV 고유 기능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일지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듯.
2008년 5월 22일 목요일
oh my 언론 때리기 (1)
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해 준 글이 있어서 올려 둔다. 제목은 "종잡을 수 없는 박지성 관련 보도" . 블로그에 쓴 글인데 (김영민), 조선일보 대문에 올려져 있었다. 읽다가 키득거리며 웃었던 한 대목만 인용한다:" '결승 간다!' '일낸다!' '필승다짐!' 뭐 이런 식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추측기사를 날린 뒤 우리팀이 패하면 바로 그 다음날 '졸전!' '총체적 부실!' '한국축구 내일이 없다.' 어쩌고 하며 곧바로 안색을 바꿔 김구라 처럼 막말을 퍼부어버리는 것이 우리나라 몇몇 스포츠신문, 뉴스들의 전형적인 보도태도였다.
한국민들이 현지 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하다 못해 거의 벼룩신문 수준의 현지 신문까지 메이져 급으로 둔갑시켜 가며 그들이 내뱉은 온갖 자질구레하고 쓸데없는 코멘트 하나 하나 까지 모조리 확대재생산 해서 바람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강조는 인용자. '김구라'를 연상할 수 없어서 그 부분은 웃기지 않았음.)
2008년 5월 20일 화요일
재난과 정치 그리고 언론
오늘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중국을 보며 글라스노스트를 떠올리다"(Watching China and remembering glasnost) (음, 글라스노스트!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단어. 대학입학 전후로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라는 개혁, 개방이라는 뜻의 낯선 러시아 단어가 연일 신문지면에 등장했었다).
Internet판에선 제목을 약간 달리했다. "소련을 보던 눈으로 중국 바라보기" (Watching China with an eye on Soviet Union). (인쇄판 제목이 더 직설적인 것 같은데, 그게 제목을 바꾼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용이 아주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최근 버마와 중국에서 스콜, 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각각 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흥미로운 점은 두 국가의 대처 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것. 버마의 경우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구호활동가들의 입국을 불허하고 있고, 사상자수나 기타 재해 관련 소식을 외부에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 반면에 중국정부는 적극적, 개방적 태도를 보여 여러 언론 관찰자들을 놀라게 했다. P. Taubman이라는 기자는 이같은 중국의 모습에서 1980년대 말 소련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1986년 체로노빌사건이라는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발생한 후 소련 당국은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사고발생 후 만하루를 넘기고, 사고지로부터 1,300km 떨어진 스웨덴에서 위험 수치를 넘어서는 방사능이 확인되었음이 알려진 수 시간 후에야 공식 발표를 했었으니까. 이건 현재 버마 군사정부의 대처방식과 유사하다. 체로노빌 사고에 충격받은 고르바쵸프는 이후 정부, 당에 대한 개혁, 개방의 속도를 높인다. 1987년에는 스탈린 시절,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점령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영화, 서적이 출판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88년에 아르메니아에서 십만여명이 숨지는 지진이 일어났다. 이 때 소련 정부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여행제한 조치를 풀어서 서방 기자들은 정부 허가없이도 아르메이아 수도인 Yerevan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외국에서 보내는 물, 식량, 의약품 등을 실은 원조 물조를 실은 비행기도 환영받았다. 이건 현재 중국 대처방식과 비슷하다. 막상 80년대말 동구의 개혁물결이 일렁일 때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그 확산을 차단하려 했고, 언론 통제, 티벳 독립시위 진압 등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그동안 중국 정부의 정책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재해, 재난과 관련해서도 "1976년 탕산 대지진 때 중국은 사태를 축소하고 국제사회의 구호 제의를 묵살하다가 결국 24만명이라는 생명을 잃었고, 2003년에는 사스(SARS) 발병 때도 피해 규모를 축소, 은폐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여기에서 인용)던 전력이 있다. 그러니 이번 지진 발생 후 중국 정부가 취한 신속하고, 개방적인 조치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이 기자가 체르노빌에 혼난 후 아르메니아 지진 때 보여준 변화된 소련의 모습 떠 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재난의 질적 차이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만약 지금 중국에서 지진이 아닌 핵발전소 사고가 나거나 사스가 재발생했었더라도 비슷한 대처방식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어떻게 전개될까? 기자가 진단(혹은 희망)한 것처럼 중국에서도 개방의 속도가 빨라지고, 권위적 정부 해체 수순을 밟게 될까 (slippery slope)? 흐음. 그건 중국과 소련의 차이를 놓치는 데서 나온 단견은 아닐까? (기자가 지적한대로) 여러 민족 혹은 국가의 연합체였던 소련에서는 개방이 곧 민족주의의 발흥 그리고 이어서 연방의 해체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과 다르게 한민족 중심국가이고, 티벳 같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양적으로 소연방을 이루던 민족들과 비교할 수 없다. 최근 성화봉송, 지진 등에 대한 중국민들의 반응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민족주의의 강화는 오히려 중국의 내적 결속력을 더 강하게 해 주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악재가 잇따른다고 했는데, 이번 지진은 중국 정부에겐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 같다. 티벳사태 등으로 악화된 국제여론을 잠재울 수 있고, 또 국민의 단결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중국이라는 나라, 그 국가주의, 민족주의, 어떻게 전개될지 앞으로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웬바오 총리가 지난 발생 두 시간 만에 현장을 방문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고, 일부 성급한 관찰자들은 실제로 정치문화 변화까지 연결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데 지켜봐야겠다. 재난이 정치 구조의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견인해낼 수 있다는 것, 강한테제이기 한데 그런 사례는 찾아보ㅈ면 적지 않을 것이다. 재난에도 미동치 않는 미얀마 같은 사례와 비교하면 나름 의미있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IHT 기사도 결론이 미덥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나름 신선한 시각을 담고 있다. 독일 일간지, IHT 등을 보면 이런 기사들이 널려 있다 (아, 오해마시라. 반드시 이들의 시각자체를 공유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또 아무리 깊어봐야 신문아닌가. 한국 신문들과 비교할 때 그렇단 얘기다. 반면에 독일 티비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티비를 보던 시절 기억에 따르면 Arte나 3Sat 채널 정도가 탐나긴 했지만...). SZ를 구독하던 시절 스포츠면까지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스포츠 전문 기자들의 '인문학적 내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신문들이 가야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한국 언론들은 또 미쇠고기 수입 문제 처럼 큰 사건이 있으면 올인은 하되 (오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중계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식). 또 예를 들어 박지성 챔프 결승전을 앞두고 있으면 '아시아 최초', '박지성의 위대함'을 스토커 수준으로 달라붙어서 비슷한 기사를 반복해서 만들어 낸다 (편집증, 끈질김, 집착). 대단한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관련 정보, 견해는 인터넷만 '취재'해도 쉽게 얻어 낼 수 있고 (외국 싸이트를 '취재'하다 번역을 틀리게 해 망신을 당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혹은 연합신문 기사를 받아다 살짝 고치던지...), 일어난 사건을 분석할 해석틀도 이미 가지고 있으니, 굳이 애써서 공부하고 취재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각종 프레임: 애국주의, 반노무현, 친미 반북 등). 그러니 오죽하며 신정아사건이 터졌을 때 다른 이슈를 감추려는 (잊었다, 뭐였는지는) 조중동의 음모라는 얘기가 돌았을까. 방송국의 그 피디저널리즘이 신문의 부족함을 일부 메꿔주는 것 같긴 하다. 돈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인가? 또 인터넷 언론의 경우 대부분 쓰레기 같은 기사들로 채워져 있긴지만, 특정한 이슈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리는 경우 드물게 좋은 기사를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프레시안에서). 조중동, 그렇게 욕을 얻어 먹고도 안 바뀌고, 또 살아남는 걸 보면 신기하기조차하다. 이렇게 (내가 인터넷으로 관찰할 수 있는) 한국 언론의 지체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진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은 정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정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퇴행적인 진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devolution). 음. 그러고 보니 한국 언론은 느리지만 경향상 좋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 굳이 언론의 지체현상이랄 것도 없다. 한국의 현상태인 것이다. 특정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그런... 어쩌면 역사적...
Internet판에선 제목을 약간 달리했다. "소련을 보던 눈으로 중국 바라보기" (Watching China with an eye on Soviet Union). (인쇄판 제목이 더 직설적인 것 같은데, 그게 제목을 바꾼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용이 아주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최근 버마와 중국에서 스콜, 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각각 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흥미로운 점은 두 국가의 대처 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것. 버마의 경우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구호활동가들의 입국을 불허하고 있고, 사상자수나 기타 재해 관련 소식을 외부에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 반면에 중국정부는 적극적, 개방적 태도를 보여 여러 언론 관찰자들을 놀라게 했다. P. Taubman이라는 기자는 이같은 중국의 모습에서 1980년대 말 소련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1986년 체로노빌사건이라는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발생한 후 소련 당국은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사고발생 후 만하루를 넘기고, 사고지로부터 1,300km 떨어진 스웨덴에서 위험 수치를 넘어서는 방사능이 확인되었음이 알려진 수 시간 후에야 공식 발표를 했었으니까. 이건 현재 버마 군사정부의 대처방식과 유사하다. 체로노빌 사고에 충격받은 고르바쵸프는 이후 정부, 당에 대한 개혁, 개방의 속도를 높인다. 1987년에는 스탈린 시절,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점령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영화, 서적이 출판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88년에 아르메니아에서 십만여명이 숨지는 지진이 일어났다. 이 때 소련 정부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여행제한 조치를 풀어서 서방 기자들은 정부 허가없이도 아르메이아 수도인 Yerevan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외국에서 보내는 물, 식량, 의약품 등을 실은 원조 물조를 실은 비행기도 환영받았다. 이건 현재 중국 대처방식과 비슷하다. 막상 80년대말 동구의 개혁물결이 일렁일 때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그 확산을 차단하려 했고, 언론 통제, 티벳 독립시위 진압 등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그동안 중국 정부의 정책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재해, 재난과 관련해서도 "1976년 탕산 대지진 때 중국은 사태를 축소하고 국제사회의 구호 제의를 묵살하다가 결국 24만명이라는 생명을 잃었고, 2003년에는 사스(SARS) 발병 때도 피해 규모를 축소, 은폐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여기에서 인용)던 전력이 있다. 그러니 이번 지진 발생 후 중국 정부가 취한 신속하고, 개방적인 조치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이 기자가 체르노빌에 혼난 후 아르메니아 지진 때 보여준 변화된 소련의 모습 떠 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재난의 질적 차이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만약 지금 중국에서 지진이 아닌 핵발전소 사고가 나거나 사스가 재발생했었더라도 비슷한 대처방식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이제 어떻게 전개될까? 기자가 진단(혹은 희망)한 것처럼 중국에서도 개방의 속도가 빨라지고, 권위적 정부 해체 수순을 밟게 될까 (slippery slope)? 흐음. 그건 중국과 소련의 차이를 놓치는 데서 나온 단견은 아닐까? (기자가 지적한대로) 여러 민족 혹은 국가의 연합체였던 소련에서는 개방이 곧 민족주의의 발흥 그리고 이어서 연방의 해체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과 다르게 한민족 중심국가이고, 티벳 같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양적으로 소연방을 이루던 민족들과 비교할 수 없다. 최근 성화봉송, 지진 등에 대한 중국민들의 반응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민족주의의 강화는 오히려 중국의 내적 결속력을 더 강하게 해 주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악재가 잇따른다고 했는데, 이번 지진은 중국 정부에겐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 같다. 티벳사태 등으로 악화된 국제여론을 잠재울 수 있고, 또 국민의 단결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중국이라는 나라, 그 국가주의, 민족주의, 어떻게 전개될지 앞으로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웬바오 총리가 지난 발생 두 시간 만에 현장을 방문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고, 일부 성급한 관찰자들은 실제로 정치문화 변화까지 연결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데 지켜봐야겠다. 재난이 정치 구조의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견인해낼 수 있다는 것, 강한테제이기 한데 그런 사례는 찾아보ㅈ면 적지 않을 것이다. 재난에도 미동치 않는 미얀마 같은 사례와 비교하면 나름 의미있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IHT 기사도 결론이 미덥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나름 신선한 시각을 담고 있다. 독일 일간지, IHT 등을 보면 이런 기사들이 널려 있다 (아, 오해마시라. 반드시 이들의 시각자체를 공유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또 아무리 깊어봐야 신문아닌가. 한국 신문들과 비교할 때 그렇단 얘기다. 반면에 독일 티비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티비를 보던 시절 기억에 따르면 Arte나 3Sat 채널 정도가 탐나긴 했지만...). SZ를 구독하던 시절 스포츠면까지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스포츠 전문 기자들의 '인문학적 내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신문들이 가야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한국 언론들은 또 미쇠고기 수입 문제 처럼 큰 사건이 있으면 올인은 하되 (오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중계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식). 또 예를 들어 박지성 챔프 결승전을 앞두고 있으면 '아시아 최초', '박지성의 위대함'을 스토커 수준으로 달라붙어서 비슷한 기사를 반복해서 만들어 낸다 (편집증, 끈질김, 집착). 대단한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관련 정보, 견해는 인터넷만 '취재'해도 쉽게 얻어 낼 수 있고 (외국 싸이트를 '취재'하다 번역을 틀리게 해 망신을 당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혹은 연합신문 기사를 받아다 살짝 고치던지...), 일어난 사건을 분석할 해석틀도 이미 가지고 있으니, 굳이 애써서 공부하고 취재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각종 프레임: 애국주의, 반노무현, 친미 반북 등). 그러니 오죽하며 신정아사건이 터졌을 때 다른 이슈를 감추려는 (잊었다, 뭐였는지는) 조중동의 음모라는 얘기가 돌았을까. 방송국의 그 피디저널리즘이 신문의 부족함을 일부 메꿔주는 것 같긴 하다. 돈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인가? 또 인터넷 언론의 경우 대부분 쓰레기 같은 기사들로 채워져 있긴지만, 특정한 이슈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리는 경우 드물게 좋은 기사를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프레시안에서). 조중동, 그렇게 욕을 얻어 먹고도 안 바뀌고, 또 살아남는 걸 보면 신기하기조차하다. 이렇게 (내가 인터넷으로 관찰할 수 있는) 한국 언론의 지체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진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은 정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정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퇴행적인 진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devolution). 음. 그러고 보니 한국 언론은 느리지만 경향상 좋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 굳이 언론의 지체현상이랄 것도 없다. 한국의 현상태인 것이다. 특정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그런... 어쩌면 역사적...
2008년 5월 19일 월요일
애국주의, 그 의미론적 혹은 구조적 변화
오늘 인터넷으로 접한 한국 기사들 중에서 일부 내용을 옮겨 놓는다.
"맨유, 오늘 모스크바 입성…아시아선수 최초 유럽챔스리그 결승전 출격 가능성"
"2007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에 이어 '추격자'로 3년 연속 칸 영화제에 참석하는 쾌거를 이룬 하정우는 5박6일의 일정을 마치고 오는 21일 귀국한다"
특히 하정우에 대한 기사는 정말이지 '안습'이다 (기사작성: 뉴스엔 홍정원 기자, newsen은 방송연예전문신문인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찌질'의 정도가 좀 심하다.). 칸 영화제 3년 연속 참석하는 쾌거라... 이런 멘트가 생각난다. '조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들 (혹은 태극 용사들) .... 이제 ... 쾌거를 이루고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그런 프레이밍의 원형은 스포츠 경기 결과에 대한 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순위가 분명히 매겨지는 스포츠 경기, 특히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 등에서 1등을 하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제패로 표현된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정당성 결핍, 국민 통합 등) 스포츠민족주의 형성에 애쓴 이후로 만들어진 해석틀은 그 이후 다른 맥락에서 변주된다. 우선 국제기능올림픽이나 세계수학올림피아드 등 스포츠 외 다른 국제적 경쟁의 결과에 대한 해석, 보도에서 발견된다. 또 세계적인 성취인지 불분명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세계적인 결과라고 우기는 것이다. 황우석 연구에 대한 프레이밍이 대표적이다. Science지에 논문싣기는 과학계의 올림픽 (혹은 월드컵이) 되었고, 두 번이나 논문을 실은 황우석은 올림픽 2연패를 한 것이다. 박지성의 활약도 이제 세계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진다. 세계최고 수준인 영국 프리미어리가의 일등 팀에서 뛰니까 그 팀의 우승으로 박지성은 이미 금메달을 딴 셈이다 (경기출전회수가 모자라 팀이 리그에서 1등을 해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던 기사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챔피언스컵 결승전까지... 챔피언스컵은 유럽프로팀간의 경기이지만 유럽리그 수준이 가장 높으니 명실상부한 세계최강팀을 가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아시아 선수 최초'! '한국인 최초'는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에게 쉽게 자리를 내 준다 (당연하다. 뉴스가치가 더 있으니까). 한 가지 질문! 여기에서 '아시아'란? 음... 그렇게 딴지 걸었을 때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정도로, 우리 (우리는 또 누구? ㅎㅎ)는 이런 프레이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동양 최초', '동양인 최초', 이런 표현이 사라졌다는 것. 동양과 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굳이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서양/동양' 이분법으로 처리되지 않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같은 세계가 우리 인식의 범위에 들어 온 결과일까?] 챔피언스리그가 명실상부 세계 최고 프로팀을 가리는 경기이고, 박지성이 아시아인 최초로 그 결승전에 참여하는 것이 뉴스거리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준결승 이후 그 얘길 반복해서 들어야 하니 괴로울 따름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차이를 만들어내는 정보가 아니다. 물론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정보이긴 하다. 한국기자들 참 끈질기고, 공부안한다는 그런 정보 말이다 (앗차차. 사실 그것도 이미 알려져 있긴 마찬가지 ㅎㅎ). 한국 언론, 아니 다시 정확히 표현하자, 인터넷을 통해서 관찰한 한국 언론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 (한국 언론계에 몸 담고 계시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 그러니, 별로 열받으실 필요없다. 읽을 리도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하정우. 칸영화제에 3회 연속 참석하는 신기록 혹은 대기록을 세운 모양이다 [아시아 운운하는 게 없는 걸 봐서 한국신기록일 가능성이 크다.] 왜 '한국인 최초...' 같은 이틀을 붙이지 않고, 소심하게 '쾌거'라고만 표현했을까. 신기록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던 탓일까? ㅎㅎ 칸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하나라고들 한다 (이런 '세계 .. 대' 운운은 주로 '후진국'에서 자는 등장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 해석틀의 원천은 일부 잘 나가는 나라의 서구중심주의자, 혹 민족주의자들이 지들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영화제에 3회 연속 '참석'(sic! not 수상!)이라니. 대기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naming, framing (혹은 titling?)은 그런 기록이 많아질수록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주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후진국으로 느끼고, 그런 기록이 드물어야 '세계최초' '아시아 최초'라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사건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잘 나가는 나라가 되었으니 아시아 최초, 동양최초라는 표현은 벌써 퇴조기에 있는 해석틀이 되었고 (그래서 그런 탓인지 박지성의 아시아 최초는 반갑기까지 ㅎㅎ), 세계최초도, 글쎄, 왠지 진부하단 느낌이 든다. 이런 변화는 루만의 이론에 따르면 전형적인 구조와 의미론의 공진화 현상이다. 세계 차원에서 평가하기라는 의미부여작용과 세계 차원에서 평가받는 성취이루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어주고 당기면서 함께가는것. 구조적 차원에서 한국의 위상에 비쳐볼 때 칸 영화제 3회 연속 참석을 두고 쾌거 운운하는 건 의미론적 지체현상일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런 프레이밍도 역시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의미론적 변이(variation)가 덜 활발해질 것이다.
"맨유, 오늘 모스크바 입성…아시아선수 최초 유럽챔스리그 결승전 출격 가능성"
"2007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에 이어 '추격자'로 3년 연속 칸 영화제에 참석하는 쾌거를 이룬 하정우는 5박6일의 일정을 마치고 오는 21일 귀국한다"
특히 하정우에 대한 기사는 정말이지 '안습'이다 (기사작성: 뉴스엔 홍정원 기자, newsen은 방송연예전문신문인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찌질'의 정도가 좀 심하다.). 칸 영화제 3년 연속 참석하는 쾌거라... 이런 멘트가 생각난다. '조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들 (혹은 태극 용사들) .... 이제 ... 쾌거를 이루고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그런 프레이밍의 원형은 스포츠 경기 결과에 대한 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순위가 분명히 매겨지는 스포츠 경기, 특히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 등에서 1등을 하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제패로 표현된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정당성 결핍, 국민 통합 등) 스포츠민족주의 형성에 애쓴 이후로 만들어진 해석틀은 그 이후 다른 맥락에서 변주된다. 우선 국제기능올림픽이나 세계수학올림피아드 등 스포츠 외 다른 국제적 경쟁의 결과에 대한 해석, 보도에서 발견된다. 또 세계적인 성취인지 불분명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세계적인 결과라고 우기는 것이다. 황우석 연구에 대한 프레이밍이 대표적이다. Science지에 논문싣기는 과학계의 올림픽 (혹은 월드컵이) 되었고, 두 번이나 논문을 실은 황우석은 올림픽 2연패를 한 것이다. 박지성의 활약도 이제 세계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진다. 세계최고 수준인 영국 프리미어리가의 일등 팀에서 뛰니까 그 팀의 우승으로 박지성은 이미 금메달을 딴 셈이다 (경기출전회수가 모자라 팀이 리그에서 1등을 해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던 기사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챔피언스컵 결승전까지... 챔피언스컵은 유럽프로팀간의 경기이지만 유럽리그 수준이 가장 높으니 명실상부한 세계최강팀을 가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아시아 선수 최초'! '한국인 최초'는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에게 쉽게 자리를 내 준다 (당연하다. 뉴스가치가 더 있으니까). 한 가지 질문! 여기에서 '아시아'란? 음... 그렇게 딴지 걸었을 때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정도로, 우리 (우리는 또 누구? ㅎㅎ)는 이런 프레이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동양 최초', '동양인 최초', 이런 표현이 사라졌다는 것. 동양과 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굳이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서양/동양' 이분법으로 처리되지 않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같은 세계가 우리 인식의 범위에 들어 온 결과일까?] 챔피언스리그가 명실상부 세계 최고 프로팀을 가리는 경기이고, 박지성이 아시아인 최초로 그 결승전에 참여하는 것이 뉴스거리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준결승 이후 그 얘길 반복해서 들어야 하니 괴로울 따름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차이를 만들어내는 정보가 아니다. 물론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정보이긴 하다. 한국기자들 참 끈질기고, 공부안한다는 그런 정보 말이다 (앗차차. 사실 그것도 이미 알려져 있긴 마찬가지 ㅎㅎ). 한국 언론, 아니 다시 정확히 표현하자, 인터넷을 통해서 관찰한 한국 언론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 (한국 언론계에 몸 담고 계시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 그러니, 별로 열받으실 필요없다. 읽을 리도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하정우. 칸영화제에 3회 연속 참석하는 신기록 혹은 대기록을 세운 모양이다 [아시아 운운하는 게 없는 걸 봐서 한국신기록일 가능성이 크다.] 왜 '한국인 최초...' 같은 이틀을 붙이지 않고, 소심하게 '쾌거'라고만 표현했을까. 신기록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던 탓일까? ㅎㅎ 칸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하나라고들 한다 (이런 '세계 .. 대' 운운은 주로 '후진국'에서 자는 등장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 해석틀의 원천은 일부 잘 나가는 나라의 서구중심주의자, 혹 민족주의자들이 지들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영화제에 3회 연속 '참석'(sic! not 수상!)이라니. 대기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naming, framing (혹은 titling?)은 그런 기록이 많아질수록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주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후진국으로 느끼고, 그런 기록이 드물어야 '세계최초' '아시아 최초'라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사건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잘 나가는 나라가 되었으니 아시아 최초, 동양최초라는 표현은 벌써 퇴조기에 있는 해석틀이 되었고 (그래서 그런 탓인지 박지성의 아시아 최초는 반갑기까지 ㅎㅎ), 세계최초도, 글쎄, 왠지 진부하단 느낌이 든다. 이런 변화는 루만의 이론에 따르면 전형적인 구조와 의미론의 공진화 현상이다. 세계 차원에서 평가하기라는 의미부여작용과 세계 차원에서 평가받는 성취이루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어주고 당기면서 함께가는것. 구조적 차원에서 한국의 위상에 비쳐볼 때 칸 영화제 3회 연속 참석을 두고 쾌거 운운하는 건 의미론적 지체현상일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런 프레이밍도 역시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의미론적 변이(variation)가 덜 활발해질 것이다.
2008년 5월 14일 수요일
과학, 정치
미쇠고기 수입 논쟁이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3개 교수 단체는 1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환경재단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을 즉각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프레시안 기사 참고). 이 기자 회견문에는 경제학, 정치학, 의학 등 각 분야 교수와 연구자를 포함해 총 1008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는데... 음. 교수 단체가 어떻게든 움직이는 건 시의적절한 것 같은데 전략적으로는 좋은 방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광우병처럼 서로 다른 지식주장이 정치이슈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교수 정도 되는 전문가들이, 그것도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며 개입할 때 가장 영향력 있는 방식은 현재 관련분야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과학지식을 건조하게 알려주는 것 아닐까. 언론이나 기타 논쟁의 당사자들은 마음먹으면 언제나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 전문가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의 발언에는 특별한 힘이 실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성명서를 발표한 주체인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는 너무도 정치색 짙은 조직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프레시안도 이렇게 연결시키고 있다: "지난 3월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하는 2500여 명의 교수들이 이름을 걸고 나선 데 이어 다시 한 번 교수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 전문지식이 아닌 교수단체의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가 부각되는 것이다. 이 조직들은 또 늘 정부의 결정에 반대할 때나 언론에 등장하지 않은가. '경제학, 정치학'이 포함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국제 협약 통상문제 전문가들로 표현되지는 않는 그냥 경제학, 정치학...).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나 같은 학교 수의대 우희종 교수가 그나마 해당 분야 전문가로 등장하지만 좀 약하지 않은가? 더구나 의학자, 수의학자라고 해서 광우병에 대한 전문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어렵지 않은가. 나름 광우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판이니...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외국 전문가들의 발언, 의견을 따와서 전하는 언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광우병 연구자 네트워크가 세계적으로 분명히 있을 텐데. 광우병을 연구하는 관련 학자들이 정말 어떤 견해를 더 지지하는지 '탐사'하지 않고, 그저 늘 그렇듯이 서로 상반되는 주장만 구색맞춰서 보도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반대하는 이들도 어째서 그런 일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단호하게 얘기할 정도로 내가 언론보도를 모두 섭렵한 것은 아닌긴 하다. 하지만 여러 티비 토론 프로그램의 경우 인터넷 신문들 보도보다 그리 사정이 나은 것 같지 않고, 혹 피디수첩 정도가 관련 학계의 견해를 심도있게 보도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경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과학과 정치를 분리할 필요가 있겠다. 과학적 논증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글쓴이 일단 사라짐. fade out...)
(다시 등장). 이렇게 써 놓고 또 다른 기사를 보면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지금 미쇠고기수입 '사태'는 "광우병 괴담"운운하며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에 대해 논쟁하던 단계를 지나 '재협상' 국면으로 넘어간 듯하다. 이미 '충분히' 알려진 과학지식, 반대여론 등을 등에 업고 재협상을 촉구하는 측과 협상은 기본적으로 불가하고 광우병 발생시 GATT 조항에 의거 수입중단할 수 있다는 정부 측 입장이 대립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과학정치' 진행에 일정한 패턴이 있는 건 아닐까? 황우석 사태 때도 초기에는 논문의 진위 여부가 핵심 논쟁거리였지만, 논문의 조작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이후에 지지자들은 쉽게 다른 이슈로 (예를 들어 원천기술) 논쟁의 방향을 틀 수 있었으니까. 그럼 결론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 정치는 정치요 과학은 과학? 과학정치도 결국은 정치?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3개 교수 단체는 1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환경재단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을 즉각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프레시안 기사 참고). 이 기자 회견문에는 경제학, 정치학, 의학 등 각 분야 교수와 연구자를 포함해 총 1008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는데... 음. 교수 단체가 어떻게든 움직이는 건 시의적절한 것 같은데 전략적으로는 좋은 방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광우병처럼 서로 다른 지식주장이 정치이슈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교수 정도 되는 전문가들이, 그것도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며 개입할 때 가장 영향력 있는 방식은 현재 관련분야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과학지식을 건조하게 알려주는 것 아닐까. 언론이나 기타 논쟁의 당사자들은 마음먹으면 언제나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 전문가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의 발언에는 특별한 힘이 실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성명서를 발표한 주체인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는 너무도 정치색 짙은 조직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프레시안도 이렇게 연결시키고 있다: "지난 3월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하는 2500여 명의 교수들이 이름을 걸고 나선 데 이어 다시 한 번 교수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 전문지식이 아닌 교수단체의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가 부각되는 것이다. 이 조직들은 또 늘 정부의 결정에 반대할 때나 언론에 등장하지 않은가. '경제학, 정치학'이 포함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국제 협약 통상문제 전문가들로 표현되지는 않는 그냥 경제학, 정치학...).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나 같은 학교 수의대 우희종 교수가 그나마 해당 분야 전문가로 등장하지만 좀 약하지 않은가? 더구나 의학자, 수의학자라고 해서 광우병에 대한 전문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어렵지 않은가. 나름 광우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판이니...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외국 전문가들의 발언, 의견을 따와서 전하는 언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광우병 연구자 네트워크가 세계적으로 분명히 있을 텐데. 광우병을 연구하는 관련 학자들이 정말 어떤 견해를 더 지지하는지 '탐사'하지 않고, 그저 늘 그렇듯이 서로 상반되는 주장만 구색맞춰서 보도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반대하는 이들도 어째서 그런 일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단호하게 얘기할 정도로 내가 언론보도를 모두 섭렵한 것은 아닌긴 하다. 하지만 여러 티비 토론 프로그램의 경우 인터넷 신문들 보도보다 그리 사정이 나은 것 같지 않고, 혹 피디수첩 정도가 관련 학계의 견해를 심도있게 보도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경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과학과 정치를 분리할 필요가 있겠다. 과학적 논증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글쓴이 일단 사라짐. fade out...)(다시 등장). 이렇게 써 놓고 또 다른 기사를 보면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지금 미쇠고기수입 '사태'는 "광우병 괴담"운운하며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에 대해 논쟁하던 단계를 지나 '재협상' 국면으로 넘어간 듯하다. 이미 '충분히' 알려진 과학지식, 반대여론 등을 등에 업고 재협상을 촉구하는 측과 협상은 기본적으로 불가하고 광우병 발생시 GATT 조항에 의거 수입중단할 수 있다는 정부 측 입장이 대립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과학정치' 진행에 일정한 패턴이 있는 건 아닐까? 황우석 사태 때도 초기에는 논문의 진위 여부가 핵심 논쟁거리였지만, 논문의 조작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이후에 지지자들은 쉽게 다른 이슈로 (예를 들어 원천기술) 논쟁의 방향을 틀 수 있었으니까. 그럼 결론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 정치는 정치요 과학은 과학? 과학정치도 결국은 정치?
2008년 5월 9일 금요일
광우병 논쟁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인간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논란의 시발점이 된 논문을 냈던 한림대 김용선 교수는 9일 '유전자가 질병 발병의 중요한 한 요인이지만 유전자 하나 만으로 인간광우병에 잘 걸린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단다.
"핀란드로 출국했던 김 교수는 이날 오후 1시 10분쯤 KE906편으로 귀국, 최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논란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사실 이런 언급은 8일 KIST 신희섭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아니다. 그는 '김 교수의 논문은 인간광우병인 변형 크로이츠펠트야곱병(vCJD)이 아니라 아직 감염경로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산발형 크로이츠펠트야곱병(sCJD)에 대한 것'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이런 신교수의 언급도 애매하긴 하다. vCJD와 sCJD가 단지 감염경로만 다른지 아니면 발생기전이 다른지를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선 교수는 유전자와 광우병 발생 관계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번복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요인이 광우병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만 놓고 보면 '미쇠고기 수입업자'들이 그리 좋아할 발언도 아니다. 언론은 워낙 지들 맘대로 과학 진술을 보도하니까 (무식하니까 쉽게 왜곡한다), 언론보도를 가지고 과학적 논쟁을 재구성할 생각을 포기하긴 해야 한다. 김용선 교수는 9일 '전세계적으로 광우병 발생 환자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아직 발병 기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대응이다.
과학적 사실은 흔히 대중들에게 사실로 알려지나 - 언론은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 조금만 다그치면 대개 불확실한, 잠정적 지식으로 '후퇴'한다. 언론 혹은 '정치적' 목적에 써 먹으려는 이들은 논쟁적인 주제일수록 쉽게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과학'사실'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러면서 언론이 누구를 광우병 전문가로 만들어 가는지도 지켜 볼 일이이다.
또 대한의사협회(의협)도 9일 광우병에 대한 학술적 견해를 내놓았다고 한다. 연합신문 보도를 보니 나름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는데, '좋은 얘기'는 다 해 놨다. 그러면 누구나 필요한 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다. 연합은 기사제목을 "의협 '광우병ㆍCJD 등 프리온 질환 감시시스템 구축'"로 뽑았다.
건조한 편. 다른 신문들은 더 논쟁적인 이슈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전하면 대문에선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의협 '광우병 소 먹는다고 인간광우병 걸리는 것 아니다' (기사의 제목은 연합 그대로). 한겨레나 많은 언론싸이트는 같은 기사를 전재(轉載)하면서 [의협 "한국인 ‘사람광우병’ 취약 결론 낼 수 없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언론이 실제를 전달하면서 왜곡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언론 없이 우리는 실제에 접근할 수 없다. 언론을 통해서 실제가 비로소 실제가 되는것(cf. N. Luhmann 1996, Die Ralität der Massenmedien).
"핀란드로 출국했던 김 교수는 이날 오후 1시 10분쯤 KE906편으로 귀국, 최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논란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사실 이런 언급은 8일 KIST 신희섭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아니다. 그는 '김 교수의 논문은 인간광우병인 변형 크로이츠펠트야곱병(vCJD)이 아니라 아직 감염경로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산발형 크로이츠펠트야곱병(sCJD)에 대한 것'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이런 신교수의 언급도 애매하긴 하다. vCJD와 sCJD가 단지 감염경로만 다른지 아니면 발생기전이 다른지를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선 교수는 유전자와 광우병 발생 관계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번복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요인이 광우병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만 놓고 보면 '미쇠고기 수입업자'들이 그리 좋아할 발언도 아니다. 언론은 워낙 지들 맘대로 과학 진술을 보도하니까 (무식하니까 쉽게 왜곡한다), 언론보도를 가지고 과학적 논쟁을 재구성할 생각을 포기하긴 해야 한다. 김용선 교수는 9일 '전세계적으로 광우병 발생 환자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아직 발병 기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대응이다.
과학적 사실은 흔히 대중들에게 사실로 알려지나 - 언론은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 조금만 다그치면 대개 불확실한, 잠정적 지식으로 '후퇴'한다. 언론 혹은 '정치적' 목적에 써 먹으려는 이들은 논쟁적인 주제일수록 쉽게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과학'사실'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러면서 언론이 누구를 광우병 전문가로 만들어 가는지도 지켜 볼 일이이다.또 대한의사협회(의협)도 9일 광우병에 대한 학술적 견해를 내놓았다고 한다. 연합신문 보도를 보니 나름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는데, '좋은 얘기'는 다 해 놨다. 그러면 누구나 필요한 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다. 연합은 기사제목을 "의협 '광우병ㆍCJD 등 프리온 질환 감시시스템 구축'"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