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8일 화요일

5. 황우석 사태에서 '생명윤리'

한국에서 1990년 중반 이후 생명윤리 의미론은 매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된 것이었다. 하지만 생명윤리 담론의 확대는 그 자체로서 황우석 사태의 촉발, 해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연구원의 난자 사용, 기증자의 동의를 '제대로' 얻지 않은 채 이용된 난자 사용이라는 생명윤리, 연구윤리 위반이 황우석 사태를 촉발시켰고, 이것에 대해서 황우석 스스로도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연구원이 이타적인 동기에서 기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각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그리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얻지 못했다. 왜 서구적 윤리기준을 우리가 꼭 따라야 하느냐라는 주장은 주로 황우석 지지자들 그룹에서 제기되었다. 과학자, 전문가로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는 없었다. 소위 그 정도의 생명윤리 원칙 ('informed consent')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은 것. 이전에도 황우석은 인간 개체 복제 금지 만큼은 불가하다는 입장에 있음을 여러 번 강조한다.자신의 연구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은 지키려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명윤리의 해석 유연성' 혹은 다양성 주장은 황우석 사태에서 전혀 힘을 얻지 못한다. 비록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서는 현상이 일시 있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데이타조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재현기회를 줘라'라는 주장은 '논문 데이타 조작이 확인된 이상, Keine Chance'라는 과학체계의 윤리적 기준에 근본적 도전이 되지 못했다. 엄청나게 큰 혼란과 패닉을 가져올 것으로 보였던 황우석 사태가 어떻게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흐지부지해진 것은 설명을 요하는 사태다. 학자들은 그 동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지만 말이다. 황우석 사태의 신속한 해결은 세계적으로 작동하는 과학, 그 과학의 자기 성찰, 자기보호를 위한 윤리 의미론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남한이라는 지리적 경계, 혹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독자가 작동의 중요한 준거인 한국 정치, 한국 언론의 경우 유권자 혹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의미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과학에 대한 성찰이론으로서 번역되지 않는한 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배아에 대한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윤리 틀 내에서도 이론이 있다.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생명윤리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동의' 혹은 '데이타 조작' 등은 매우 강한 윤리 기준이다.
두 논쟁을 종합하면, 생명윤리는 유연하면서도 그 핵심은 가지고 있다. 입법논쟁에서는 생명윤리의 틀을 가져 왔지만,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기준은 기존 한국 생명공학정책의 연속성 속에서 세워졌다. 하지만 민감한 이슈를 제외하고선 법의 나머지 조항은 대개 서구적 생명윤리의 기준들로 채워졌다. 황우석 논쟁의 경우에서는 그러한 생명윤리에서 덜 논쟁적인 기준, 그리고 거기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생명윤리법이 첨예한 갈등상황이 해소되는 데 기여를 한 셈이다. 이 사례는 결국 세계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기능적 분화에 걸맞는 의미론적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의미론의 세계화, 문화의 세계화는 의미론의 분화를 가져온다. 황우석 그룹에 속하던 생명윤리학자의 작업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중국의 경우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민족주의적인 혹은 사회주의적인 생명윤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비서구 국가들의 연구 역량이 강화될수록 세계적 차원의 생명윤리 논쟁은 더 복잡해지고, 합의를 이뤄내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비자발적 난자 기능이나 데이타 조작이 용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이 독립적 체계로 남는 한. 체계윤리의 단단한 핵심(hard core)라고나 할까.

생명윤리 의미론의 성공, 그 두 얼굴

좀 지겹지만 다시 의미론... 이번엔 구름 위 비행을 하다, 고도를 좀 낮춰본다. 1997 - 2003년 사이에 한국에서 있었던 생의학 규제 논쟁 쪽으로. 그 논쟁은 '생명윤리'라는 글로벌 의미론이 한국에서 널리 '애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biopolitics)의 시절이 있기나 했냐는듯이 '생명윤리'라는 개념은 여러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놀랍게도 그 신개념에 대한 저항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할 때 생명윤리가 의사소통에서 해석틀로서 자리잡는 속도 역시 이례적으로 빠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biopolitics)라는 표현을 한국에서 그 전까지 생명공학, 생의학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전혀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나는 '생명윤리'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입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개념을 쓰지 않았지만, 결국 내용상 생명윤리 논쟁이지 않았느냐고 논박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언어, 담론, 의미론의 현실 구성력에 대해서 내가 갖는 이론적 전제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수용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생명윤리'가 사용되는 구체적 맥락, 상황을 분석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생명윤리란 개념을 가져다 쓰긴 하지만 그것에 부여되는 의미는 언론보도, 국회논쟁, 생명윤리자문위원회 회의 등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다. 새로운 의미론으로서 생명윤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제1원인은 바로 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생명윤리' 개념의 유연성, 모호성이다. '생명윤리'는 바로 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서로 연결시켜,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윤리'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이 완전히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1997 - 2003년 논쟁에서 의미론으로서 생명윤리의 성공은 그것이 '생명공학', '생명과학 연구'의 대척점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슈 프레이밍). 그것에 대해서는 최소규제를 기대하는 집단의 핵심세력과 규제를 확대하려는 집단의 핵심세력 모두 동의하는 것이었다. 생명윤리가 생명공학의 대척점으로 이해됨으로써 이슈프레이밍 됨으로써, 특정한 방식의 생명윤리 이해는 배제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대표적으로 배제되었던 것이 종교 세력, 일부 극단적 생태주의자들이 지지했던 절대적 생명가치 보호 담론, 혹은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 등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한국 논쟁의 독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생명윤리의 안착 이면에는 매우 특정한 방식의 생명윤리이해의 관철이 있었던 것이다.

풍경



유채꽃 바다 위의 섬들... 묵은 사진이지만... for...

2008년 7월 7일 월요일

판단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 7:12),
매우 추상적인 표현이라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바로 그 이유때문에 이런 가르침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과연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며 살아가는가? 그게 문제다. 이것을 나름 철저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너무 계산적이라거나 오히려 이기적인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만큼 남에게 기대하기, 혹은 "안 주고, 안 받기"로 해석될 수도 있으니, 그런 건 누가 봐도 계산적인 것 사실이다. 어떤 다른 경우가 있을까? 대접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매우 이타적인 삶은 사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어떤 방식으로든 무언가를 기대하는 경우. 이 정도도 귀엽게 봐 줄 수 있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타인에 대해 자기가 기대하는 바와 자신의 타인에 대한 언행 사이의 차이가 크게 날 때다.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비판 혹은 충고에 분해하면서, 막상 타인의 삶에 대해 너무나 친절하게 훈수를 두는 경우를 볼 때마다 놀란다. 이런 경우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망이 큰 탓이겠지만, 대개 뭔가를 가지려는 욕망이 강하게 작동하는 대개 그건 오히려 내 손을 벗어나지 않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가르침은: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 7: 3)

Selbstreflektion

문자적 의사소통 매체의 발달 혹은 변화에 따라 글의 형식, 내용의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중세, 근대?) 서신교환은 매우 공식적인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였다. 그 전통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주변적이다. 반면에 인터넷 기반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모든 의사소통 영역에서 그 중요성을 얻어갈 것이다. 과학의 경우 황우석 사건 때 Bric에서 이루어졌던 커뮤니케이션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한다면, 요즘 인터넷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저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시간이란 요인이 훨씬 더 중요한 자연과학 연구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먼저 발표되고 인쇄판은 도서관 보관용의 의미로 축소되고 있다. 개별 연구자들은 대개 pdf파일로 저장한다. 물론 인문, 사회과학의 경우 종이버전에 대한 선호는 한참 더 지속되리라 예측할 수 있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사회학도로서 문서, 책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장선생이 선구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종이가 지니는 장점을 전자문서가 얼만큼 효과적으로 흡수하느냐인 것 같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어쩌면 기존의 방식으로 쉽게 구분하기 힘들지 않을까? 새로운 장르? 일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남에게 읽힐 작정을 하고 쓰는 것도 아닌... 어떤 의미에서 privat/öffentlich의 구분이 이 경우 희미해지는 것 아닌가...
솔직히 고백하면 점심먹고 오후근무를 시작하러 도서관에 들어오긴 했는데 야 도무지 몸과 마음이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 잠시 도서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참이다. 허나 여전히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월요일이라서 더 그런가...

2008년 7월 3일 목요일

正義가 강 같이 흐르는 나라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 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될 것이다." (마태 7: 25, 33)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며칠 전부터 시청 앞에서 시국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정의 구현이라... 거기서 정의는 무엇일까? '하느(나)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것' 그것일까?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수천년 세월을 보내면서 살아남은 성서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사제단의 정의와 역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명박 장로 혹은 조용기 목사 등의 '義' 사이의 거리가 무척 넓은 건 오히려 자연스럽다. 개신교에서는 대개 '정의' 보다는 '의'를 선호하며 보통 신과 개인의 관계로 해석한다. '정의'라는 단어는 '사회적 의'를 위해 남겨둔 것 같다. 公義라는 단어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 성경에서 정의, 공의는 사실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특히,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발언에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 5:2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자잘한 것에 목매지 말고, 좀 큰 스케일로 살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 정의, 공의...

2008년 7월 2일 수요일

이어지는 촛불 시위에 대한 관찰, 해석

촛불 시위,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논의가 아주 재미있다. 한 편에 어찌되었건 정당정치, 특히 양당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최장집 교수가 있고, 그를 최 교수를 서구 민주주의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보수적 제도민주주의학파의 일원으로로 보며 촛불시위를 창조적 대안으로 이해하려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오늘 오마이 뉴스 기사에서는 '지행네트워크'의 이명원, 오창은 씨가 소개되었다 ('오마이' 성공비결은 시민기자에 있는 것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전임기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기사작성법 정도는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인터뷰까지 한 걸 봐서 전임기자가 쓴 것 같은데,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져 온 글, 인터뷰, 자기 견해 등이 난삽하게 짜집기 되어 있다. 이런 것도 제도화된 기사작성의 틀을 깨보려는 창조적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내 지론이기도 하지만 이런 얘기는 이제 전문가들이 주도해야 한다. 이명원, 오창은 모두 국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혹 그들이 속해있는 지행네트워크가 민주주의, 사회운동 같은 주제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단체라면 달리 생각할 볼 일이고, 다른 사실 정치학, 사회운동 전문가들 중에서 경청할만한 일관된 견해나 창조적 해석을 내놓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을 고려하면, 오마이를 통해서라도 이런 얘길 듣게 되는 걸 고마워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이 부족, and/or, '서구' 모델에 경도된 탓인지 나도 최장집 교수 견해에 동의하는 편인데, 아침부터 더 따지고 들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아서,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기회되면 가까이에 있는 사회(운동)전문가들의 견해도 들을 수 있게 되길...

최장집:

최장집 전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와 정책결정에 결정적 제약을 가했다"고 촛불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운동만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불충분하다"고 일갈했다.
"하나의 정책이슈를 운동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 쇠고기 수입협상문제가 끝나면, 민영화, 교육 등 이슈가 출현할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와 운동간의 충돌로 일관하게 된다."
최 전 교수는 "무엇보다도 현대민주주의는 대의제민주주의라는 점이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며 "시민들의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이익과 요구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 결사체들을 통해 최대한 광범하게 정책과정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지론인 '정당정치의 복원-활성화'를 강조했다
최 교수가 언급한 '운동의 5가지 한계'란 ①대안을 형성하거나 여러 대안들을 조정해 결정하기 어렵고, ②각 이슈들의 중요성을 위계적으로 배열해 일상적으로 정책을 추구하기 어렵고, ③다른 이슈들이 등장할 때마다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고, ④강열한 열정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고, ⑤시민사회 내부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등이다.

이명원:

결국 '양당체제의 복원'이라는 대의제의 '신화화'에 끈길기게 구속되어 있다. 이들의 민주주의론은 내 판단에 이제는 '낡은 보수주의'다. 그들은 광장에서 이론을 구성하지 않고, 이론에서 광장을 유추하고 있다.
이런 텍스트 자유주의가 한국정치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냉소주의와 허무주의 이외에 과연 대안이 있는가. 여의도 국회와 무관하게 아름다운 촛불을 그 낡아빠진 '이론'의 안경을 벗고 볼 수는 없는 걸까. 정치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말보다는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것.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오창은:
"촛불시위는 경험의 반복이면서도 운동의 형식 등에서 새로운 변화들이 있다. 운동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의 시위나 집회와 다르다. 무거운 이슈임에도 거리에서 소통하는 방식은 밝고 즐겁다. 촛불에는 구호로서가 아니라 행위로서 낙천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대상을 질타하는 방식과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오 연구위원은 "촛불을 정치적 저항이라기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로 봐야 한다"며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겠다는 데서 벗어나 생명의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사안을 두고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것을 포용해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강박이다. 그런 강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 강박은 애시당초 '촛불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됐다. 의미, 수습, 성과 등에 너무 조급해하면 안 된다. 그런 강박이 촛불을 수그러들게 하고 자발적 진화에 걸림돌이 된다. 자연발생했기 때문에 갈 때까지 가는 것이다. 질적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의 일이다."
"정당질서와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로는 '비상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군주제 시절에도 시민의 동의는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요구되었다. 국가는 시민의 동의없이 운영될 수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적 질서 속에서 시민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정책이 강압적으로 추진되었고, 시민의 저항에도 무심할 뿐이니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동의의 원칙'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의민주주의의 복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최 교수의 태도는 '교과서적 강박'일 뿐이다."
오 연구위원은 "더 큰 문제는 최 교수의 시각이 현 상황을 오로지 정치영역만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며 "광범위한 영역에서 생명의 정치, 일상의 정치, 광장의 문화정치가 싹트고 있는데도 이러한 가능성을 제도정치라는 온실 속으로만 옮기려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은 "(촛불의 진로를) 제도의 민주주의로 수렴하려는 것은 (촛불의) 미래를 가두는 것"이라며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사회는 서구사회가 가지 않는 길을 만드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서구의 민주주의가 우리의 모델일 수는 없다. 한국의 길은 전혀 다른 길일 수 있다. 그걸 두려워하지 말자. 시민의 직접행동과 주체의 판단에 따라 정치적 상황이 바뀌고, 한 공동체의 진로가 바뀌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촛불시위는) 한국 사람들이 가진 역량과 우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해온 서구의 근대적 정치질서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대의제 민주주의론'에 천착해온 최 전 교수를 겨냥한 것이다. 그가 서구의 민주주의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는 "최 전 교수가 제도권적인 냄새를 풍긴다"는 지적까지 내놓았다.
"최 전 교수가 대의정치를 강조했던 80-90년대와 2000년대의 맥락은 다르다. 2000년대 들어서 시민의 직접 의사표현이 강해졌다. 대의제에 대한 실망이 쌓이면서 직접 얘기해야겠다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의제의 오작동 상태가 아니라 대의제의 비상상태다. 권력을 위임받는 쪽에서 주권자의 요구와 무관하게 행동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권력은 주권자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2008년 7월 1일 화요일

사람이었네


지난 겨울에 우연히 알게 된 노래. 가수는 루시드 폴, 조윤석의 1인 밴드인데, 지금 스위스 로잔대학에서 유학 중이라고... 전공이 화학이라나... '사람이었네'라는 제목이 좀 심상치 않다 생각하긴 했는데 최근에야 가사를 알아 볼 마음을 먹게되었다. 듣기만 할 때는 무슨 암호 같던 소리들에 의미가 부여되고 보니... 약간의 놀라움... 이런 가사였다니... 대견하네... ATTAC 주제가로 써도 되겠다. 더 직설적인 노래들도 많겠지만 (소위 '민가'류), 가요가 이 정도면 됐다, 아니 훌륭하다. 하지만 이 노래가 좋아서 루시드 폴의 다른 노래들을 좀 찾아서 들어 봤는데 별로다. 가사도 너무 가볍고 음악도 밋밋하다.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이 버전은 윤도현 러브레터에서 불렀던 장면인데 '홍대 앞' 출신이라면 live에 약할리 없건만 왠일인지 여러 곳에서 음이 불안정하다. 카메라 앞이라 긴장했나^^

어느 문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페트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러를 버는
난 푸른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어느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난 사람이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