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1일 수요일

욕망 - 문명

"동물의 자연상태는 오히려 욕망이 절제되어 있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 아니라 문화적 경쟁의 산물이다"
- 도올 -

2MB 정권의 역사적 사명

지금까지 모든 정권은 나름대로 시대적, 역사적 소명을 잘 감당했다. '우리' 2MB정권은? 도대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작심한, 천박, 철면피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들에게도 역사적 사명이 있을까?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의 자화상 보여주기' 정도?

- 권 교수와 나눈 대화 중에서

아, 생각해보니 예전에 2MB에 고마운 마음을 적어서 남기기까지 했다. 아마 역사의 발전에 대해서 가졌던 너무도 '나이브'한 내 낙관적 견해를 다시 돌아보게 해 준 데 대해서 감사했던듯...

蛇足

"흔히 '뱀에게는 다리가 없다' 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인간은 비늘이 없다' 고 말하지 않는다."

- 출처 미상 -

2009년 2월 9일 월요일

사진: 의외성 (3)




흑백사진은 단지 흑백이라는 이유만으로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그것만으로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하는 효과가 큰 탓이다. 윗 사진은 오늘 이른 아침 집 앞 풍경...

2009년 2월 2일 월요일

緊張感 - 必要惡

언제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가? (긴장감과 스트레스, '거의' 동의어 아닌가?). 어떤 일이 일상의 영역, 다른 표현으로 내 (일상적) 예측의 범위 (나와바리)를 넘어서서 일어났을 때... 일상이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긴장감은 익숙하지 않은 일, 특히 내 통제권을 넘어서는 일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을 인식시키기 위한, 그리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심적 기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리학적 설명 방식도 있을 테지만... 그건 원인이라기 보단 현상기술에 가까울테니까). 긴장감은 양면성 혹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과해도 또 너무 없어도 좋지 않은... 일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좁으면 늘 긴장감, 스트레서 속에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렇다고 실제로 통제할 수도 없으면서 위기의식도 느끼지 않는 천하태평형도 凡人의 눈엔 문제인으로 보이는 것. 凡人들은 대개 일상의 영역 안에서 잘 살다가 가끔씩 위기의식을 느낀다. 외국에서 살면 우선 관청이나 행정적인 일이 생기면 긴장감을 느낀다. 체류연장 허가... 혹은 기숙사 연장, 기숙사 관리인의 트집, 학교에서 처리해야 할 행정적인 일들, 지도교수와의 만남... 그리곤 또 인간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이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나는 일이 생길 때. 그런 긴장감은 어떻게 해소될까? 한편으로 원인 자체가 없어지면 해결된다. 단순한 일일수록... 좀 복잡한 일들은 어떨까?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내 인식의 영역 밖으로 밀려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는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프레이밍, 혹은 재구성시키는 것.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부정적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 스스로를 문책하기, "그래, 내가 원래 그렇지 뭐...", 혹은 상대방 문책하기 "걔는 원래 그런 얘야". 그 반대로 원래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데서 안정감을 느끼는 심성을 가졌다면, 예기치 않은 사건에서도 밝은 발견하려 애쓰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기. 혹은 사건에 대한 해석을 '유리한' 쪽으로 바꾸기. 내 본업이 아닌 곳에서 일어난 일의 경우, '여긴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겐 주변적인 일일 뿐이야...'. 하지만 많은 경우엔 원인 자체를 해결해야 비로소 긴장감도 사라진다. 또 이런 긴장감이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다. 긴장감/스트레스는 위기 상황을 알리는 구실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여러 번 울궈먹는) 도서관 연체료 대박 글에서 쓴 것처럼 난 이미 일어난 일, 특히, 내가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은, 때론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 심리적으로 - 잘 처리하는 편이다. 원인, 결과가 단순할 수록 사건 처리 속도는 빨리진다. 원인, 결과에 대한 진단이 불명확할수록, 긴장감은 오래 지속된다.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러도록 애를 써야 한다. 중요한 사람(^^)에게 보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빨리 보내야만 한다. 그걸 처리하지 못해 지난 며칠간 긴장감에 눌려 있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은 '집중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아, 그 놈의 집중력... 큰 변화 없는 생활을 오래할수록 (다시 말해, 평소에 긴장할 일이 적을 수록) 긴장해야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있지 않은가. 必要惡. 긴장감은 정말이지 필요악이다.

사전 찾기 놀이

"Philosophy 이전에 philology가 있다." 도올 선생이 이런 논지로 얘길 했는데, 내 생각과 꼭 같아 기억해 두고 있다. 언어에 대한 이해는 철학 혹은 어떤 학문을 하든지 그것에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만과 도올을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데, 그들은 늘 언어, 표현, 단어, 개념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서 출발한다. 어쨌거나 어원이나 언어에 '나름' 민감한 내 '아비투스'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때도 사전 찾기를 놀이처럼 즐겼으니까. 요새 내 놀이기구가 된 사전은 Oxford Advanced Leaner's Dictionay 디지탈 버전이다. 모르는 단어 찾을 때 펼쳐보지만 그 옆에 자세하게 나와있는 '어원' 설명을 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전 속을 찾아 다닐 때까 많다. 사실은 방금 찾은 단어에 대한 어원 설명이 놀라와서 적으려다 앞설명이 길어진 것인데...
그 단어는 다름 아닌 'enough'! 중학교용 단어이지만... 부사로 쓰이는 enoughly 같은 표현이 꼭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니 'enough'만으로 enough하다 (하지만 google해보니 enoughly 용례가 꽤 있다. 문법적으로 틀린 것인지...). 하려던 얘기는 사실 enough 어원에 대한 것이다. "Old English genōg, of Germanic origin; related to Dutch genoeg and German genug." 독일어 genug -> 영어 enough.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런 게 사전 찾기가 놀이가 가끔씩 선사해 주는 보너스다.

전화요금 이야기

언젠가 도서관 연체료 '대박' 맞은 일을 쓴 일이 있었는데, 이번엔 전화비 대박을 맞았다. 전체 액수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큰 건 아니지만,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나왔으니 '대박'이라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리라. 그동안 대개 전체 전화비에서 기본요금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 할 정도로 통신회사들 살림에 큰 도움 못 주는 고객이었는데, 어쩌다가... 더군다나 요샌 '유로'화의 무게가 무척이나 무거운 '시국'아인가. 화들짝 놀라 고지서를 확인해 보니 주범은 해외통화료였다. 왜 그 한국에 전화걸때마다 앞에 누르는 그 긴 번호 있잖은가. 워낙 제공자들이 많이 있고 요금체계가 자주 바뀌어서 난 수년 째 비교할 생각도 하지 않고 01070만 줄곧 사용하고 있었는데, 걔네들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 확인해 보니 아마 지난 달 부터 그 회사 정책이 바뀌었는지 기본요금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 한국 핸디에 전화를 걸 경우 가장 싼 번호가 분당 요금이 3,65 센트인데, 01070은 무려 75,35 센트를 받아 잡수신다. 그나마 통화시간이 길지 않아서 이 정도였지, 한 시간 정도 통화했더라면 그것만 50유로 가까이 나올 뻔했다. 어떤 통신회사는 그래서 통화시작시 기준요금을 알려주는 모양이다.
언젠가 친구와 관련 주제로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나는데, 독일은 요금체계가 꽤 복잡한 편이다. 알뜰한 독일사람들 정서에 맞고, 그래서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건지, 기차표를 하나 끊으려고 해도 고려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비록 내겐 해당사항이 없지만 핸드폰 요금, 인터넷 접속 서비스 요금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극장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난 아직도 헷갈리는 roge, paket 구분 등등. 대신 얘네들한텐 '할인권'이나 '포인트 모으는' 문화는 그리 발달되어 있지 않다. 내 경우payback 카드가 있고, 그러다 보니 Kaufhof 5% 세일 이런 할인권을 받기도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 한국에선 요금 체계 자체는 덜 복잡한 대신 각종 할인 메카니즘은 발달한 듯하다. 요금 계산할 때 주섬 주섬 지갑에서 꺼내는 것들이 많다. 외국에서 오래 있다 온 '어리버리한' 사람들이나 제가격 주고 영화를 볼 것이다. 이유가 있을까? 경제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좀 다른 것일까? 가격체계 자체가 복잡한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공부도 해야 한다. '주체'가 강조되는 것. 허나 할인권은 남이 내게 베풀어준 혜택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주체적 결정권'에 덜 민감하고, 혜택 받는 데 익숙한가? 그것도 아닐테데... 모르겠다.
어찌되었거나. 갈수록 손해보지 않으려면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 덕분에 알게 모르게 내게도 떨어지는 떡고물이 있겠지만 여하튼 늘 반갑지만은 않은 변화다. 예전엔 시내에 나가 가게 몇 군데만 돌아다녔으면 될 일을, 언젠가부터 ebay를 먼저 거치면서 독일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장사치들이 제안하는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몇 유로라도 싸게 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투입해야 하는, 양화되기 힘든 '노력' '시간'도 같이 고려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좀 오버하자면 현대 소비자들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 놓은 framing 혹은 '매트릭스' (cf. 영화 '매트릭스') 속에서 소비'되고' 있는 건 아닌지. 미로 속에 들어 있는 쥐처럼...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갖고서 스스로 뭔가를 찾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길이란 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그런...
자본주의의 반드시 그런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 경제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내 놓는 대책이란 걸 보면, 저기 저 앞이 절벽인게 보이는데도 당장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페달을 돌리고 있는 자전거 운전자가 연상된다.
대량소비, 풍요로움, 문화산업, 환경문제... 사실 이런 것 6,70년대 논의가 끝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데, 도대체 우리는 역사와 과거 논의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배울 생각이나 있는 것인가?
전화비 대박 맞아서 화김에 떠들다 너무 오버했다. 온 세상 사람을 싸잡아서... typisch kj! ㅎㅎ

ps) 내가 고려해야 할 전화요금 체계는 더 복잡했졌다. 공짜로 전화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게 된것. http://www.peterzahlt.de/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으나 그리 긴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다른 사람이 상기시켜 주었다. 그 홈페이지에서 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집전화로 얼마 동안 무료로 통화할 수 있다는... 그걸 가지고 좋아하는 건 어쩜 우리 속에서 던져주는 먹이 받아 먹으면서 만족해 하는 돼지나, 미로 속에서 내 갈 길은 내가 개척해 간다고 착각하는 쥐 같은 모양새는 아닌지...

2009년 2월 1일 일요일

사진: 의외성 (2)

자, 우선 사진 두 점을 감상해 보자 (출처는 여기)
김규식 Kim Gyoo Sik, “370gal. Fuel Tank”, 2007, Archival inkjet print


NOH Suntag, “좋은 살인 reallyGood, murder”, 2008, Lambda print

2008년 12월 6일 ~ 2009년 2월 15일까지 아트선재센터 열리는 '39(2)'라는 전시회에 나온 작품 중 일부다.

"전시제목인 “39조 2항”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명기한 헌법 제 2장 중에서 제 39조의 2항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조문에서 인용하였다. 헌법은 39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기하였고, 2항의 조문은 군복무에 대한 헌법상의 보상규정으로 원용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헌법에 명시된 한 줄의 문장으로 개인의 불이익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담겨있다. 5 명의 참여작가들도 한국의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지를 그들의 작업 안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러니와 수수께끼를 담아내고 있다. 이 전시가 한국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하나로 군사문화와 전쟁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39조 2항”을 전시의 제목으로 인용하였다."

윗 사진은 나도 어릴 때 만들곤 하던 '조립 모델'의 일부를 크게 찍어 논 것이다 (사진 제목을 보니 전투기 연료통이다.) (아, 그리고 크다는 건 실제로 전시회로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 ). '사진'. (독일말로) harmlos해보이는 것들도 저렇게 과장해서 크게 보여주면 낯설게 느껴진다. 숨어있던 다른 의미가 쑥 올라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미군부대 개방행사에 놀러온 아이와 최대한 친절하고 다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두 병사가 찍은 기념 사진인(것 같은)데 (나도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제1비행단 개방 행사에 참여), 이상하게 기괴스럽게 느껴지지 않은가? 어둑한 배경 때문일까? 저 아이에게 지금 자기가 앉아 있는 저 조종사 자리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살상무기인 '전투기', 그 조정석은 때로는 아이들도 앉아 볼 수 있는 그런 친근한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게 사진의 힘이라면 힘이겠다. 낯설게 하기. 그래서 평소에 감춰전 있던 의미를 드러내기.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