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토요일
2011년 6월 8일 수요일
" (..._ 경쟁구조는 반드시 경쟁의 격화와 가치의 획일화를 초래하게 되어있다. (...) 근본적으로 반문화적인 것이다. 아이유가 효린을 눌렀나, 아니면 효린이 아이유를 눌렀나 하는 식으로 둘 사이에 등수를 매기는 사고방식은 앞에서 말했듯이 폭력에 불과하다.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개성을 하나의 가치에 구겨 넣어 재단하는 폭력. 서열화 경쟁은 이렇게 시청자들이 폭력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고 이미 현실화되었다.
한국의 정치권, 교육전문가들이 이런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10년 이상 다양성 교육을 하겠다며 온갖 개혁이 진행됐지만 우리 교육현실이 여전히 '개판 5분전'이다. 지식사회를 맞이해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율적 교육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다양성과 경쟁이 서로 상극이란 것을 간과했다. 입시경쟁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심지어 고교입시 등 경쟁구조를 더 강화해가면서 다양성 개혁을 했기 때문에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경쟁구조의 파괴력은 그렇게 무섭다. (...)" (하재근)
한국의 정치권, 교육전문가들이 이런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10년 이상 다양성 교육을 하겠다며 온갖 개혁이 진행됐지만 우리 교육현실이 여전히 '개판 5분전'이다. 지식사회를 맞이해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율적 교육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다양성과 경쟁이 서로 상극이란 것을 간과했다. 입시경쟁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심지어 고교입시 등 경쟁구조를 더 강화해가면서 다양성 개혁을 했기 때문에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경쟁구조의 파괴력은 그렇게 무섭다. (...)" (하재근)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하지만 '경쟁구조'가 가져올 수 있는 유익을 강조하는 견해에도 동의하게 될 것이다. 강조점의 문제다. 워낙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한국 현실에서 대중 문화 영역에서까지 경쟁구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지긋지긋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음악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 시장중심적 경쟁구도 - 새로운 형태의 경쟁구도 - 관중심적 경쟁구도 - 를 도입해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다양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경쟁의 맥락, 경쟁의 다양성에 주목하지 않고 '경쟁은 무조건 나쁘다'는 결론만 되풀이 한다면 좀 답답한 일이다.
자본주의 기제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길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원천적으로 불평등 (양극화!) 심화 등 부정적 결과를 많이 낼 수밖에 없는 체계인 건 분명하지만, 그걸 단숨에 철폐할 수 있겠는가? 사회주의 국가가 보여주었던 계획적 경제체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없을테고 복지국가 정도가 대안이 될텐데... 그건 어짜피 자본주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거시 영역에서 자본주의 기제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자본주의', '자본'을 허수아비처럼 때려서 좀 얻어내는 게 있거나, 정신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런 전략은 좀 진부하다 (김기덕의 '반자본주의적' 영화제작 방식이 갖는 한계를 지적한 경향신문 논평 "[문화수첩] 열정만 먹고 살 수 없는 영화계 막내들도 있다" 참고).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본주의는 그런 식으로 통칭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자본축적, 불평등 심화 그런 차원이 아닌 아주 기초적 차원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화폐경제, 시장경제체계인데 그런 차원을 무시하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감독도 어쨌든 수익이 나면 나눠주겠다는 얘기인데 그것 역시 자본주의적 기제에 속하는 것이다. 철저한 반자본주의적 방식이라면 수익을 필요한 사람이 나눠갖도록 해야겠지. 감독이나 주연배우라고 더 많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
경쟁, 자본주의 = 경쟁자본주의. 여하튼 이기는 것 ,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 그런 경향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는 일은 더 많아져야 하겠지만, 세상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그걸 표현하고 비판하는 방식도 좀 더 복잡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단순화는 정치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긴 하지만... 어휴...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패스.
2011년 6월 7일 화요일
문제는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달려있다
"문제는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달려있다!" 영어로 "Framing matters!"를 풀어서 쓰면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을까? 여하튼...
귀국 이후 한국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질병, 의학 관련 프로그램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그 중 하나. 주로 '명의'를 소개하면서... 거기에다 음식, 체중조절 관련 전문가 의견이랍시고 의사들이 나와서 백과사전에 나옴직한 정보를 읖조리는 장면들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날 테고. 물론 독일에서도 그런 경향은 관찰된다. 과학사회학, 과학과 언론 등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는 세계적 추세다. 다른 과학 분야보다 의학이나 생명과학 분야 뉴스들이 주목을 더 쉽게 받는다.
최근 유명한 식당,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밝힌 다큐멘타리 '트루맛 쇼'가 작은 파장을 일으켰는데, 사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은 피디, 시청자의 시선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완전히 대놓고 조작하느냐 교묘하게 조작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 뉴스에 등장하는 인터뷰들을 보라. 대개 마이크를 갖다 대기 전에 이미 듣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이고, 그런 얘길 들을 때까지 인터뷰를 하거나 아님 원하는 발언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트루맛쇼를 보면서 분개하는 사람들은 좀 화를 가라앉히고 방송이라는 제도의 속성을 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요즘 매우 자주 보게 되는 의학 정보 제공이나 '명의' 탐사 프로그램에도 그런 의심의 시선을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정한 질병 치료에 탁월한 업적을 낸 명의들이 맛집처럼 드러 내놓고 가짜이기는 힘들다. 동료들이나 환자들, 시청자들에 의해서 검토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황우석 같은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경우는 그가 과학정책의 권력 핵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또 워낙 연구하는 집단 자체가 적은 기초 연구였기 때문에 그런 리뷰를 피할 수 있었다).
질병, 의학, 명의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 내는 세계는 좀 더 엄밀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대 과학, 의학은 음식의 영양이나 효과, 질병의 원인이나 치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조언을 따를 때 당신은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실증주의적 과학관이 전파되는 것이다.
그 반대 쪽에 있는 견해들은 - 생태주의, 환경주의, 통합주의(?)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 쉽게 듣기 힘들다. 때론 그런 견해들마저 '대체 의학' '새로운 건강 정보' 정도로 가공되어서 전달되니까.
[어디 영양학, 의학 뿐이랴. 심리학, 교육학, 뇌에 대한 연구 등도 마찬가지...]
인간은 자신의 몸과 환경 (세계, 생태계, 역사...)에 대해서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다. 내면과 환경을 보면서 성찰할 시간을 더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저 많은 굶주린 채널들, 각종 정보 전달 매체들은 지금도 방송거리, '콘텐츠'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추세를 좇아가보면 더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도 그러할진대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서 전달되는 정보들은 더 단순명료해야하고 분명해야 한다. 실증주의에 기초한 단순화된 지식, 정보, 콘텐츠들이 생각할 여지를 잠식해 들어온다.
(...)
2011년 6월 3일 금요일
스마트한 근성
신자유주의 (무엇에 쓰는 물건?) 비판에서 '경쟁'은 '악'의 근원처럼 묘사된다. 방송국들이 앞다투어 만들어내는 각종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도 그런 맥락에서 비판되고. 물론 이유도 모른 채 혹은 어쩔 수 없이 경쟁의 쓰나미 속에 빠져들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보니 인간다움을 놓치거나 때로는 목숨까지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경쟁이 지나쳐서 인간다움을 잃게 하거나 긍정적 가치를 포기한 채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강조하는 게 문제지 경쟁 그 자체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결코 만만한게 볼 게 아니다. 경쟁의 대표적인 경우인 프로스포츠를 보자. 관중, 팬, 시청자들은 응원하는 팀이 늘 이기기만을 바랄까? 어떻게 해서라도? 노우! 네버!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려고 연구하고 애쓰는 모습 보기를 원할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근성이 있지만 '스마트'한 선수들을 좋아한다. 승부욕은 좀 다른 맥락인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우린 (누구?) 비록 당장 경쟁 속에서 뒤쳐지 있지만 근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나 팀을 응원하게 되고 때론 감동을 받기까지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넥센과 한화가 그 경우일 것이다. 지금 승률이 가장 낮은 팀인 넥센의 김시진 감독은 어제 신승을 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목메는 모습을 모였다. 경기에서 이기려고 애쓰는 선수들이 안스러웠는지... 원래 호감을 가진 감독이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경쟁이란 게 원래 피곤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거다 (뭐 승부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 경쟁에서 앞서지 못하는 사람, 팀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경재 없는 인생은 가능할까? 한 가지 경쟁에서 이탈하면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설령... 모든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할까? 어쩌면 그런 경우 자기와의 싸움, 자기와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지... ('싸움'은 경쟁의 다른 표현인가? 그런 것 같다).
난 승부욕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쏴리~). 하지만 경쟁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 역시... 과감하게 도전하고 경쟁에 뛰어들어서 스마트한 근성을 가지고서 멋지게 헤쳐나가는 모습. 지거나 뒤쳐지더라도 주눅들지 않고, 좀 잘 나갈 때는 져줄 줄도 아는 그런... 스마트한 근성!
피에수) 경쟁에 참여조차 못하고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이들도 있다. 특별한 혜택을 베풀어 줄 수는 있지만 경쟁에 참여하기는 곤란하다며... 순서를 따지자면 경쟁에 참여하여 겨뤄볼 기회를 주는 게 먼저 아닌가 싶다.
2011년 6월 2일 목요일
눈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
=아니다. 우리는 두뇌가 재구성한 이미지를 볼 뿐이면서 현실을 본다고 믿는다. 두뇌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 갑자기 나오면 눈은 그 장면을 보지 못한다. 농구 선수가 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세보라는 주문을 받으면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다. 우리는 두뇌가 재구성한 이미지를 볼 뿐이면서 현실을 본다고 믿는다. 두뇌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 갑자기 나오면 눈은 그 장면을 보지 못한다. 농구 선수가 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세보라는 주문을 받으면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채지 못한다.
=> 이런 아이디어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영화가 "Source Code" (2011)
"춘천가는 기차"(김현철 1989)
이 곳에 배어있는 칙칙한 기운을 벗어내려고 모처럼 음악을 하나 올린다. 노래 자체는 '칙칙함'에 가깝지만 적어도 화면 - 정지화면! - 은 좀 상큼하지 않은가? 흠. 이 노래가 1989년에 나왔구나. 1990년에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 간 적이 있다. 재미있게도 누구와함께 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공교롭게도 그 해에에 춘천에 한 번 더 갔었다. 춘천과 관련된 기억은 그게 전부이지만 노노래 탓인지 감수성 풍부하던 청춘 시절 일이라서 그런지 좀 각별하다.
모든 기억은 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기억만 남는다. 아니 남아있는 기억은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 . 그렇지 못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 모쪼록 아름다운 기억을 가질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좀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이 노래와 쌍벽을 이루는 노래로 '눈물나는 날에는' (푸른하늘, 1989)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보다 칙칙함의 정도가 더 높아서 적어도 오늘은 듣지 않기로 한다. 아, 지역과 관련된 그 무렵 노래로 '제주도 푸른 밤'(최성원)을 빼 놓을 수 없다. 1989년 친구들과 제주도에 가서 그 노랠 불렀으니...
어쨌든 1989년에 이런 세련된 '사운드'와 '가사'를 들려줄 수 있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김현철이 요샌 무슨 홍보대사하며 계몽하는 노래 만든단 얘길 티비에서 들은 것 같은데 재능을 너무 일찍 써 버린 탓인가? 하지만... 행복하게 잘 사시나? 그러면 된 것 아닌가?
2시가 넘었다. 새벽... 잠자리에 들었으나 오질 않는다. 잠이... 이런 저런 일들과 생각들이 내 몸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잠에 들지 못할 때 그냥 일어나는 편이다. 어슬렁거다가 뻣뻣히 살아 있는 정신 틈을 비집고 잠님이 들어 오실 순간을 기다린다. 오늘은... 모처럼 라디오를 들어볼까? 이동진 님이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2시 아니었어? 하하.. 역시... 라디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다. 허나... 그냥 음악만 틀지... 지금은 왠 여성 기자와 꽤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대화 중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끄기로 한다. 정신사납다...
지난 주에 대학원생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대략 근대(성), 탈근대(성), 문화, 한류... 그 언저리에서 꽤 쉽고 재미있게 얘기했다고 생각했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질문도 꽤 있었고. 하지만 오늘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 학생은 너무 어려웠고 그래서 자기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으며.. 원래 그 수업을 맡은 선생님과는 정반대였다는 등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 누구인지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는 없지만 십여명 학생들 중에서 세 명만 얘길 했으니 그 나머지 중 한 명일 것이다. 특강 이후 만족스러운 느낌을 가졌던 건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얘길 거의 다 전달했기 때문이고, 적어도 질문을 한 세 명은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얘기를 정확하게 이해했고 꽤 흥미롭게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자기 만족 때문에 삼인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Gut zu wissen...
다시 라디오를 켜 본다. 흠. 아직도 그 기자... 다시 끈다.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고만 고만하지만 그래도 좀 더 이타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이 희생하고,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좀 더' 이기적인 사람들은 '좀 더 이타적인' 사람들에게 왜 그러느냐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질책한다. '좀 더' 이기적인 사람들은 덜 후회한다. 자기 중심적으로 삶을 꾸려가기 때문에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문제는 그런 만족은 대개 '좀 더' 이타적인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