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사에서 확인한 경찰청 박현중 경감의 이런 발언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국제기준 = 선진국기준!! 뭐 여러 분야, 특히 정책 쪽에선 늘 그래왔으니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너무 화끈하게 표현해서 좀 당황스럽다고 해야 하나.... '우측보행', '좌회전 신호등'에 이은 경찰들의 선진국, 국제기준 타령 제 삼탄인 셈이다. 챙피한 줄 모르는, 왜 챙피해야 하는 줄도 모르는 것 같은 저 화끈한 발언에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 (...) 현준영 분당 서울대병원(안과) 교수는 “신호등을 형태로 구분하도록 만들어 주면 색각이상자들도 무리없이 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지 신호인 빨간색은 삼각형, 멈춤 신호인 노란색은 사각형, 직진은 원형, 좌회전은 화살표 모양으로 바꾸면 색각이상자들이 쉽게 가려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경찰청은 이런 제안에 난색을 나타냈다. 경찰청 교통운영계 박현준 경감은 “우리만 국제기준과 다른 신호등 모양을 도입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며 “선진국이 도입한다면 우리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7월 10일 일요일
2011년 7월 6일 수요일
공존의 이유, 2011
너무 솔직해지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
상처가 많은 우리들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그런 애기들만 나누기로 합시다
가벼운 얘기를 꺼내기 힘들다면
그 때 헤어집시다
너무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도록 합시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하니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렇게 대세를 거스르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앞에 서글픈 그 날이 올지라도
늘 해왔던대로
가벼운 눈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
상처가 많은 우리들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그런 애기들만 나누기로 합시다
가벼운 얘기를 꺼내기 힘들다면
그 때 헤어집시다
너무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도록 합시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하니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렇게 대세를 거스르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앞에 서글픈 그 날이 올지라도
늘 해왔던대로
가벼운 눈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조병화 '공존의 이유'를 현재 내 심리상태를 관찰하며 비틀어 보다 2011.7.6.]
2011년 7월 4일 월요일
"흥미롭게도 임재범 신드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중은 '나는 가수다'를 서바이벌이라는 냉혹한 게임의 법칙에 맡겨두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쟁의 조건에서 처절하게 자신을 불사르는 고통의 스펙터클을 보고 싶어 한다. 이 스펙터클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윤리에 대한 대리물이라고 하겠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현실에서 강제되고 있는 경쟁구도를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로 이해한다. 이 세계에서 이들은 자기 자신의 과잉을 드러낼 수가 없다. 이 과잉에 대한 억압이 곧 결핍을 낳는다.
결핍은 없는 것이라기보다 너무 많아서 강제로 억눌러놓은 것이다. 임재범이라는 과잉의 존재는 대중에게 ‘돌아온 탕아’라는 종교적 형상의 파토스를 각인시킨다. 이 파토스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대중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탈권위적 카리스마이다. 카리스마는 카리스마이되 가르치거나 명령하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대중 앞에 반보 앞서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한 것이다. 임재범에 대한 동일시는 이 때문에 일어난다. ‘고고한 천상’에 노닐던 예술가가 생활인으로 전락하는 전도된 영웅서사에 한국 사회는 쉽게 감동을 받는다.
김종서를 비롯해서 김태원에 이르기까지 이런 영웅서사를 만들어온 이들은 익히 존재했다. 과거에 청춘스타였던 노주현이나 한진희 같은 배우들이 코믹연기를 펼치면서 ‘망가지는 모습’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비주의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반감이 상존한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이지아-서태지 소송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택광 블로그에서)
"고통의 스펙터클..." "임재범 = 돌아온 탕아" (가르치거나 명령하지 않고 대중 앞에 반보 앞서 있는) "탈권위적 카리스마"... 모두 설득력있는 설명인 것 같다. 세 가지로 구분해 보자.
(1) 일단 성공했거나 전문가여야 한다. 전문가적 카리스마... (사회적 지위)
(2) 그 사람은 극적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 (필요하면 각색해서라도... 고통, 극복...),
(3) 그 사람은 대중에게 친근해야 한다. 너무 전문가인 척하면 안된다.
대중시대에 주목받고 대중적으로 성공하려면 이 세가지를 갖춰야 한다. '나가수' 바깥에도 널려 있다. 성공한 정치인들은 대개 이런 요소를 갖추고 있고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3)을 갖추지 못했고, - 그 때문에 - (2)를 더 극적으로 만들지 못했던 대표적 정치인이 이회창씨다. 그 밖에 황우석씨를 들 수 있고... 또 이건 굳이 한국 상황에만 해당하진 않는다. 오바마는 또 어떤가...
대중, 대중문화, 대중적 영웅이 막 만들어지던 시절에 - 히틀러? - 영웅은 너무 대중적이어선 안되었다. 신비주의... 없으면 오히려 만들어야 했다. 대중의 기대, 대중문화의 성격이 바뀐 것. 그저 수동적으로 소비만 하기엔 오히려 신비적 영웅이 낫다. 적극적 소비의 시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네트워크 지식사회에선 신비주의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예: 인터넷의 신상털기). 괜히 아닌 척 했다가 창피당하기 십상. 전문가가 전문가적임을 주장할 비장의 카드가 줄어든다. 조금만 노력하면 대개 갖출 수 있다. 접근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열려있다. (하다못해 - 접속수가 적을 순 있겠지만 - 유투브를 통해서 공개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 발 앞서가는... "탈권위적 카리스마"! 적절한 표현이다.
결핍은 없는 것이라기보다 너무 많아서 강제로 억눌러놓은 것이다. 임재범이라는 과잉의 존재는 대중에게 ‘돌아온 탕아’라는 종교적 형상의 파토스를 각인시킨다. 이 파토스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대중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탈권위적 카리스마이다. 카리스마는 카리스마이되 가르치거나 명령하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대중 앞에 반보 앞서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한 것이다. 임재범에 대한 동일시는 이 때문에 일어난다. ‘고고한 천상’에 노닐던 예술가가 생활인으로 전락하는 전도된 영웅서사에 한국 사회는 쉽게 감동을 받는다.
김종서를 비롯해서 김태원에 이르기까지 이런 영웅서사를 만들어온 이들은 익히 존재했다. 과거에 청춘스타였던 노주현이나 한진희 같은 배우들이 코믹연기를 펼치면서 ‘망가지는 모습’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비주의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반감이 상존한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이지아-서태지 소송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택광 블로그에서)
"고통의 스펙터클..." "임재범 = 돌아온 탕아" (가르치거나 명령하지 않고 대중 앞에 반보 앞서 있는) "탈권위적 카리스마"... 모두 설득력있는 설명인 것 같다. 세 가지로 구분해 보자.
(1) 일단 성공했거나 전문가여야 한다. 전문가적 카리스마... (사회적 지위)
(2) 그 사람은 극적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 (필요하면 각색해서라도... 고통, 극복...),
(3) 그 사람은 대중에게 친근해야 한다. 너무 전문가인 척하면 안된다.
대중시대에 주목받고 대중적으로 성공하려면 이 세가지를 갖춰야 한다. '나가수' 바깥에도 널려 있다. 성공한 정치인들은 대개 이런 요소를 갖추고 있고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3)을 갖추지 못했고, - 그 때문에 - (2)를 더 극적으로 만들지 못했던 대표적 정치인이 이회창씨다. 그 밖에 황우석씨를 들 수 있고... 또 이건 굳이 한국 상황에만 해당하진 않는다. 오바마는 또 어떤가...
대중, 대중문화, 대중적 영웅이 막 만들어지던 시절에 - 히틀러? - 영웅은 너무 대중적이어선 안되었다. 신비주의... 없으면 오히려 만들어야 했다. 대중의 기대, 대중문화의 성격이 바뀐 것. 그저 수동적으로 소비만 하기엔 오히려 신비적 영웅이 낫다. 적극적 소비의 시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네트워크 지식사회에선 신비주의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예: 인터넷의 신상털기). 괜히 아닌 척 했다가 창피당하기 십상. 전문가가 전문가적임을 주장할 비장의 카드가 줄어든다. 조금만 노력하면 대개 갖출 수 있다. 접근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열려있다. (하다못해 - 접속수가 적을 순 있겠지만 - 유투브를 통해서 공개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 발 앞서가는... "탈권위적 카리스마"! 적절한 표현이다.
2011년 7월 2일 토요일
"이론은 근육이다. 보기에 좋은 근육도 있겠지만, 마땅히 근육이라면 힘을 쓰기에 좋아야 한다. (...) 근육을 사용해야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이론이 있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현실의 중력에 대항해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다른 것이야말로 '새로운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기 위한 힘, 이것이 바로 근육의 쓸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론은 익숙한 것들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는 관점을 뜻하기도 한다. (...)
(...) 이론은 문제를 해설하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론은 낡은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유의 목험이다. (...)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의 고전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 이론적인 관점에서 그 문제의식들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만한 계기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 철학적 문제의식들에서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나아간 문제를 던지는 것이 이론의 역할이다. (...)
(...) 인문좌파는 기존의 정치지형도에서 합의한 우파와 좌파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주체이다.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가 바로 인문좌파다." (이택광,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중에서)
그런 좌파라면 나도 기꺼이 인문좌파하련다.
(...) 이론은 문제를 해설하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론은 낡은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유의 목험이다. (...)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의 고전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 이론적인 관점에서 그 문제의식들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만한 계기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 철학적 문제의식들에서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나아간 문제를 던지는 것이 이론의 역할이다. (...)
(...) 인문좌파는 기존의 정치지형도에서 합의한 우파와 좌파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주체이다.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가 바로 인문좌파다." (이택광,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중에서)
그런 좌파라면 나도 기꺼이 인문좌파하련다.
최근에 확인한 독일대학에서 보낸 '엽기적' 혹은 '소름끼치는' 공지 메일 하나. "성탄절 기간 학교 폐쇄 안내"! !
내가 '엽기적'이라고 느낀 세 가지 이유:
(1) 바깥 온도가 30도에 육박하는 이 시절에 어찌되었던 성탄절 얘길 들으니 어쨌든 조금이라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2) 만성적 시간 압박 시달림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탄절, 2011/2012... 이런 얘기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철렁...
(3) 6개월 이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리면서 준비하라는 독일인들의 저 '문명인'다운 ' 준비성! 숨이 턱 막히지 않는가... 모든 게 속전속결, 바로바로 서비스가 일상화된 '야만국'에 살다보니 더 그렇게 느끼게되는 듯
2011년 7월 1일 금요일
"경쟁은 몸치인 당신을 춤추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춤추는 당신은 원래의 당신이 아닐 것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이 사회에선 그러지 않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 뿐."
'나가수'에서 드러난 '경쟁'의 속성을 다룬 딴지일보 한 기사의 말미다. 한국인이 이런 저런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 모를 사람 없을 것이다. 그게 유독 한국에사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겠지만... 다만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낙오자에 대한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선 알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여하튼 '경쟁'의 지나침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나가수'에서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는 심정 이해할 수 있다. 인용한 윗 문장도 그런 맥락에서 썼을 것이고.
난 경쟁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것도 무시하지 말자는 쪽이다.
'기자'는 원래 춤이라면 질겁을 하던 사람이 경쟁 때문에 챙피함을 무릎쓰고 춤을 추는 경우를 가상의 예로 들었는데, 썩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추기 싫은 춤을 '억지로' 췄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김연우가 그런 예가 아닌가 싶다. 한 번 꼴지를 한 이후 평소 창법에 변화를 줬다고 하고 그래서 다음 번엔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김연우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엔 대단한 변화를 준 것 같지도 않았지만, 여하튼 내 눈엔 목청을 자랑하려고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추기 싫은 춤을 추는...
경쟁구도에서 발생하는 변화에 대한 강박을 긍정적으로 풀어 낸 '좋은' 사례도 많이 있다. 이소라가 그랬고, 김범수가 그랬다. 특히 김범수는 기다렸다는듯이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해보고 싶던 공연을 펼쳤다고 했다. 그 이후주어지는 무대는 그래서 덤으로 생각한다고... 김범수는 슬픈 발라드를 잘 부르는 가수로 이미지가 굳어졌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변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무대에서 오히려 그 틀을 깰 수 있었던 것이다.
경쟁이라면 치를 떠는 그대여... 경쟁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어떤 형태의 경쟁도 사라지면 우린 과연 더 행복할까? 아니, 성적을 매기거나 줄을 세우며 평가하는 그런 외부에서 강제하는 경쟁만 문제인가? 인간은 그 내부에서 서로 다른 자아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기도 하다. 외부로 느러나는 노골적 경쟁은 그런 자아간의 경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가수'에서 드러난 '경쟁'의 속성을 다룬 딴지일보 한 기사의 말미다. 한국인이 이런 저런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 모를 사람 없을 것이다. 그게 유독 한국에사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겠지만... 다만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낙오자에 대한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선 알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여하튼 '경쟁'의 지나침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나가수'에서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는 심정 이해할 수 있다. 인용한 윗 문장도 그런 맥락에서 썼을 것이고.
난 경쟁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것도 무시하지 말자는 쪽이다.
'기자'는 원래 춤이라면 질겁을 하던 사람이 경쟁 때문에 챙피함을 무릎쓰고 춤을 추는 경우를 가상의 예로 들었는데, 썩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추기 싫은 춤을 '억지로' 췄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김연우가 그런 예가 아닌가 싶다. 한 번 꼴지를 한 이후 평소 창법에 변화를 줬다고 하고 그래서 다음 번엔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김연우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엔 대단한 변화를 준 것 같지도 않았지만, 여하튼 내 눈엔 목청을 자랑하려고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추기 싫은 춤을 추는...
경쟁구도에서 발생하는 변화에 대한 강박을 긍정적으로 풀어 낸 '좋은' 사례도 많이 있다. 이소라가 그랬고, 김범수가 그랬다. 특히 김범수는 기다렸다는듯이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해보고 싶던 공연을 펼쳤다고 했다. 그 이후주어지는 무대는 그래서 덤으로 생각한다고... 김범수는 슬픈 발라드를 잘 부르는 가수로 이미지가 굳어졌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변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무대에서 오히려 그 틀을 깰 수 있었던 것이다.
경쟁이라면 치를 떠는 그대여... 경쟁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어떤 형태의 경쟁도 사라지면 우린 과연 더 행복할까? 아니, 성적을 매기거나 줄을 세우며 평가하는 그런 외부에서 강제하는 경쟁만 문제인가? 인간은 그 내부에서 서로 다른 자아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기도 하다. 외부로 느러나는 노골적 경쟁은 그런 자아간의 경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나름 유명한 역사학자인 모양이다. Time 인터뷰에 등장하는 걸 보니... David McCullogh. 흠. 데이비드 맥컬로프? 잠시 구글해 보니 한국어로는 그밖에도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는듯. 매컬러, 맥클라우, 머컬러 등등. 여하튼 그 양반 대답 하나가 인상에 남아서 기록해 두려고 한다.
질문: We often can't understand how people in the past could have owned slaves or not educated girls. What do you think people will wonder about us?
질문: We often can't understand how people in the past could have owned slaves or not educated girls. What do you think people will wonder about us?
맥컬로프: How we could have spent so much time watching TV.
그렇지...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긴 하지. 때론 시청하는 시간보다 리모콘을 들고 채널 돌리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하지만...
순간 난 해당되지 않는다고 좋아했다. TV 앞에 앉아 있는 절대적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각이 이내 '인터넷'에 미쳤다. 인터넷 들쑤시고 다니는 데 소비한 그 많은 시간들... 끔찍하다. 잠 자는 시간 외엔 늘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 있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그런 얘길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 블로그에서 언젠가 "게으름을 찬양"한다는 러셀의 발언에 동의한다는...
TV나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널려 있는 정보 속을 정처없이 떠돌게 한다는 것 (필요한 목적을 위해 선택적으로 이 매체를 이용하는 드문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러다 좀 흥미로운 곳을 바견하면 잠시 머물고... 그러다 만나는 정보가 소 뒷걸음으로 쥐잡듯이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드문 경우고. 그러니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은 공허한 심신, 뿌리내리기 힘든 심신이 그런 상황에 있다는 현실을 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질적으로 다른 상태로 이끄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시간만큼 이전 상태를 연기할 뿐이다. 잠시 잊을 뿐이다. 그건 러셀이나 정광진이 찬양하는 '게으름'이 아니다 (라고 했지만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굳이 표현하자면... "주체의 의지"라고 할까. 그저 게으름에 맡겨 버리는게 아니라, 의지적으로 게으르겠다고 하는 것... 흐음. 분명하지 않다...).
여하튼... 역사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 겸손할 수 있고, 더 지혜로울 수 있다. 다른 '과목'(인생의 여러... ) 게을리 하는 건 용서할 수 있어도 '역사'에 무식한 것, 역사 공부 하지 않는 건 용서할 수 없다. 그 누구보다 내게 먼저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