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의 노래를 듣는다. 그는 음을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 같다. 야구에서도 비슷한 얘길 듣는다. 김성근 감독이 자주 얘기하는 "일구일무(一球二無)" 다음 공은 없으니 공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노래와 야구는 좀 다르긴 하다. 노래는 짧은 시간 집중하면 되니까 음 하나 하나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야구하면서 정말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을 힘을 다하면 그런 선수, 그런 팀은 단 한 시즌도 제대로 버틸 수 없다. 야구 같은 경기에서는 강약 조절을 잘해야 한다. 일구이무는... 근본 마음가짐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정말... 목숨을 걸고 뭔가를 해야 하나? 매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아야 하나? 그래야 성공한 인생인가? 그래야 값어치 있는 삶을 산건가? 목적의식... 어쩌면 그것 역시 지극히 근대적인 발상아닌가? 그것에 도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까?
2013년 3월 1일 금요일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어떤 - 때로는 소소해 보이는 - 주제를 꾸준히 붙들고 결과물을 내는 젊은 연구자들은 정말 존경스럽고 또 부럽다. 협동조합 및 농촌 문제, 토지 문제, '사회이론', 여성과 생명과학... 물론 끊임없이 연구 결과를 내 놓아야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물론 나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진득하게 붙들고 있는 주제도 없을 뿐더러 - 도대체 당신의 연구 주제는 무엇입니까라로 물었을 때 시원스러운 대답으로 질문자를 만족시킨 기억이 없으니까 - , 결과물을 제대로 내 놓지도 못하고 있잖은가.
음. 요즘 내 '멘탈'이 부쩍 '거시기'한 모양이다. 키보드만 잡으면 이런 넋두리가 절로...
음. 요즘 내 '멘탈'이 부쩍 '거시기'한 모양이다. 키보드만 잡으면 이런 넋두리가 절로...
어영부영 오전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아에게 맞지 않는 분유 취소하고 다른 분유 주문하고, 페이스북에 댓글 달고... 특별한 날인데 전혀 특별하지 않게, 너무도 밋밋하게 보내고 있다. 지금 내 애매한 신분 때문에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불편한 일들이 있다. 어제, 오늘 특히... 빨리 이 곳을 떠나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다. '좋은' 자극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마음만 그렇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하다. 오늘 읽은 존 스토트 목사님의 글의 배경은 마태 8:34.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누가복 9:23엔 daily가 덧붙여져 있다고....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감히 예수를 따른다고 얘기할 수 있으려면 '십자가'를 져야한다. 무난한, 편안한 '십자가'란 불가능하다. 세속적 관점에서 볼 때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는 예수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기타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착각해서는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난하게 잘 지낸다면 그는 예수를 온전히 따르는 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 내가 그렇다. 내가... 그러니 나는 불평할 수도 없다. 절실하게, 간절하게 살 지 않으면서 이 정도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매일 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차원의 얘기고...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일주일 이상 내 발목을 잡던 '원고'를 끝냈다. 물론 요청이 들어오면 수정해야 한다. 지난 번엔 이 수정작업 역시 꽤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이번 원고는 잘하면 학술지용 논문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만한 내용이긴한데... 내 '본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라서... 아마 더 이상 손대지는 않을 것 같다. 여하튼 모처럼 부담없이 '본업'을 마주할 수 있어서 기분은 좀 가볍다. 하지만 집안 일을 생각하면... 마냥 가벼울 수만은 없다. 아내는 다음 주면 다시 직장에 나가야 하고...
오늘 아침 날씨는 거의 봄이었다. 아니 며칠 있으면 삼월이니 이미 초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또 한 달을, 또 한 계절을 보낸다.
2013년 2월 21일 목요일
"The point is that we are not in
a phase of 'posthistoire' but, on the contrary, in a phase of turbulent evolution
without predictable outcome. In classical perspectives, one could compare the
'degree of modemization'-say, of Japan and China-and explain their differences
by different structural preconditions and semantic traditions. But when we want to
observe the evolution of society there is no other choice than to focus on the social
system of the world society."
(Luhmann 1997: Globalization or World Society p.76)
(Luhmann 1997: Globalization or World Society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