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wall"(1979)를 토대로 만든 영화 "the wall"(1982)를 잠깐 봤다. 감독은Alan Parker.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어린이들이 일렬로 기계를 통과해선 똑같은 가면을 쓰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가공"되어 "생산"되는 모습.... 개인성의 말살... 이런 접근은 개성, 주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의 이면이다. the wall의 비판은 결국 "개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할 뿐이다. 과연 개인, 주체가 논의의 시작점이자 종점이어야 하는가?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인성과 품성이 다른데 어떻게 서양이 만들어놓은 인간관에 우리를 짜맞춰 넣으려 하는가. 바로 거기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양은 개인의 주체성과 독창성을 강조한 이성적인 존재를 인간의 전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관계의 그물망에 그물코와 같은 아름(개인)들의 역할과 어울림을 강조한 맥락적 존재를 인간의 표본으로 간주했다. 우리의 삶과 역사에 뿌리를 둔 인간에 대한 이론을 창의적으로 개발해낼 때 인문학의 위기에 놓인 이 지구촌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이기상 교수의 칼럼, "한국發인문학 이론의 태동을 기대하며" 중"
"서양은 개인의 주체성과 독창성을 강조한 이성적인 존재를 인간의 전형으로 생각했다.
아시아에서는 개인들의 역할과 어울림을 강조한 맥락적 존재를 인간의 표본으로 간주했다."
이런 동서양 구분법은 너무 낡아서 심히 지루하고 감동도 없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 결국 서양은 근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꾸 맥락과 관계를 강조한다. 아시아에서 대안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아시아의 많은 문제는 오히려 맥락과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서양의 과거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은... 이러다가 수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에 대한 이런 구분을 조직, 사회적 체계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사회적 체계들의 관계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탈맥락적인 독립적 체계들이란 것이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개인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반면에 동양, 대표적으로 아시아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있다. 개인, 주체성에 대한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 공동체주의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수렴할 것도 없이... 원래 큰 차이가 없었다고 봐야 할까? 그건 또 아닐 것이다. 결국 지향점, 강조점 차이 아닐까?
서구의 경우 근대화는 매우 독특하게 "개인"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조된 것이다.
2013년 4월 29일 월요일
...아래 포스팅에 이어쓰자면... 생각보다 일을 일찍 끝낸 아내가 카페로 찾아와서 "그 놈의 공부"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어젠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그리 순탄치 못한 생을 사셨고... 남편도 자식도 없어서... 썰렁했다. 찾아 온 친척들 이야기 속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억은 듣기 힘들었다. 심지어 로아의 재롱에 폭소가 터지기도... 고인은 배제된 장례식장 풍경... 아니. 어쩜 친척들은 그 신산스러운 삶을 굳이 또 한 번 되새기기 싫어서 애써 외면했을지도....
결국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내내 공부와 관련해선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월요일 아침. 봄비치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로아때문에 5시경에 일어났다. 차를 쓸 수 있어서 그 시간에 바로 출근할까하다가... 일찍가봐야 어짜피 어정쩡한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잠시간을 조정했다.
어제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야구 소식도 좀 보고 커피마시고.... 9시가 다 되었다. 이제 그놈의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올해도 벌써 3분의 1이 지났다는 것 아니겠어. 우습군... 우훗.
결국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내내 공부와 관련해선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월요일 아침. 봄비치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로아때문에 5시경에 일어났다. 차를 쓸 수 있어서 그 시간에 바로 출근할까하다가... 일찍가봐야 어짜피 어정쩡한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잠시간을 조정했다.
어제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야구 소식도 좀 보고 커피마시고.... 9시가 다 되었다. 이제 그놈의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올해도 벌써 3분의 1이 지났다는 것 아니겠어. 우습군... 우훗.
2013년 4월 27일 토요일
아내 회사 근처 카페다. 아내가 로아와 함께 회사에 있다. 직원들에게 로아도 선보일 겸.. 덕분에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한산하다. 카푸치노를 마셔서 커피 맛을 제대로 맛보지는 못했다. 해서 아메리카노를 다시 주문했다. 들고 나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카푸치노는 일회요 컵에 주었다. 해서 아메리카노는 머그컵에 달라고 별도로 이야기했다. 혼자 전세내서 이 공간을 누리니... 그 정도는 써 줘야 할 듯. 커피 가격도 강남치고는 착한 편... 쿠키도 하나 샀다. 음. 너무 달다. ㅠㅠ 좀 놀았으니 이제부턴 공부를 좀 해야 한다. 그놈의 공부를...
2013년 4월 26일 금요일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기능적 분화"가 우세하다는 것은 다른 분화에 어떤 의미인가? 다른 분화라 함은... 경제적 수준을 기준으로 삼은 계층간의 분화, 인종적 차이, 민족적 차이를 기준으로 삼은 인종적/ 국가적/지역적 분화, 혹은 개인적 친분, 인맥 등을 중심으로 관계있음/관계없음의 구분으로 유지되는 분화(특히, 전통적 분화). 이런 다른 분화의 중요성은 약화되는가? 혹은 기능적 분화와 갈등할 수밖에 없어서 겨우 명백을 유지하거나, 기능적 분화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서 존재하는가? 아님 공존가능한가? 심지어 상호 촉진하는 관계인가? 세상이 기능적 분화라는 원칙만 가지고 작동할 수 없기에 사회는 더 없이 복잡하다. 상호작용, 조직과 기능체계와의 관계도 중요하고, 사회 전체를 아울르는 다른 분화와 방식도 중요하다. 다른 분화 원칙은 기능적 분화를 이용해서 더 부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계층적 분화의 경우, 기능적 분화를 통해서 더 강화되기도 한다. 경제적 원칙만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대개 돈(자본)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이윤)을 얻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체계에도 직접적 악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가진 이들이 정치적 권력도 갖게된다거나, 교육이 자본주의적 인간만을 만들어낸다거나... 이는 체계통합의 위협이다. 또 무엇보다 사회통합이 문제가 된다.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겨나니까... 다른 방식의 분화와 기능적 분화는 공존 공생 상생하기 위해서 타협점을 마련한다. 그 사이에서 다양한 메커니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기능적 분화의 사회 분화 원칙을 전복하진 못한다. 그 원칙이 갖는 무자비함, 그리고 다른 분화원칙과 결합되어 발생하는 부작용을 제한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요즘 여덟 시 전에 사무실에 나온다. 8시 반경이면 등장하는 "동료"가 있기 때문에, 삼십분 경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커피콩을 갈고 물을 내려서 집에서 가져 온 빵과 함께 먹는다. 페이스북, 뉴스를 훑어보고 음악도 듣는다. 세상은 정지되어있고 나만 활동하도록 허락된 마법은 "동료"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깨진다. 현실이 마법의 순간을 몰아내는 것.
이런 저런 일들로 마음이 아주 편친 않다. 일, 관계... 아무래도 "관계"와 관련된 생각이 더 오래 남는다. 새벽기도회에 가서 마음을 좀 정리하고 싶었지만 피곤이라는 "생각"을 이기지 못했다. 다른 공간에서는 그런 묵상이 잘 되질 않는다.
억지로 John Scott의 "Through the bible through the year"를 읽어야겠다.
그리고 오늘을 진도를 좀 빼 봐야겠다. 마음 속 부담을 더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를 위해 무엇보다 인터넷 접속을 적어도 오전 동안엔 끊을 것이다. ㅎㅎ
그를 위해 무엇보다 인터넷 접속을 적어도 오전 동안엔 끊을 것이다. ㅎㅎ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푸코는 인간, 개인, 주체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후기구조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자율적 주체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듯. 윤리도 개인의 윤리를 중심으로... 구조적 윤리 강제로부터 "진정한" 개인의 윤리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듯...
하지만 구조의 윤리와 개인의 윤리를 다른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둘이 겹치는 지점이 있지만... 그러니까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궁극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개인의 윤리, 개인의 자율적 선악판단이 강조되면... 도대체 사회적 윤리는 어떻게 유지되지?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의 자율성, 개인의 윤리, 사회의 윤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면서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이론과 실천의 미학이다. 특정한 상태를 최선으로 상정하고 그쪽으로 밀고나가는 것은 도덕주의, 도덕원리주의, 그리고 파시즘에 오히려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