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엔 동의를 하지만 그것을 교육과 학습의 차이로 표현한 것은 좀 억지스럽게 들린다. 여하튼... 전체적으로 동의하고 또 공감하는 이야기.
"교육은 주어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면 된다. 시키는 대로 수업에 들어가고, 과제를 수행하고, 발표를 하고, 시험을 풀고, 평가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학습은 자기 스스로 ‘자신이 무엇이 궁금한지’, 그리고 그 궁금증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시행착오를 통해 조정해가며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파악하는 걸 의미한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교육이 수동적이라면, 학습은 능동적이다.
(...) 나는 공부가 재미있다. 나의 가장 좋은 취미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만일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귀에 박히게 듣고, ‘성적’이 내가 지식을 습득하는 목적의 전부였다면, 공부가 즐겁진 않았을 것이고, 고문에 가까웠을 것이다.
(...)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경이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건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이와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 살아있으나 죽은 것이라는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김정운 선생이 그렇게 강조하는 인간은 감탄할 줄 알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야기...
2014년 4월 3일 목요일
2014년 4월 2일 수요일
self-reference를 '자기지시'로 번역할 이유를 잘 설명한 글을 만났다. "괴델, 에셔, 바흐" 번역 문제를 다루는 글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박여성 번역자는 『괴델, 에셔, 바흐』의 수학적/과학적/철학적 난해함에 압도당한 나머지 대부분의 용어들을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생경한 한자말투로 옮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례로 “self-reference”를 “재귀 준거”라는 지극히 현학적이면서도 그 핵심을 빗나가는 번역어로 부적절하게 옮겼더군요. 그러나 『괴델, 에셔, 바흐』의 문맥에서 “self-reference”는 (조금 무리는 있지만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끔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자기 지시” 이외의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에 관한 정확한 번역어의 설정과 그 개념적 설명은 언제 한번 기회가 나면 상세하게 다뤄보고 싶군요.
"그러나 박여성 번역자는 『괴델, 에셔, 바흐』의 수학적/과학적/철학적 난해함에 압도당한 나머지 대부분의 용어들을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생경한 한자말투로 옮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례로 “self-reference”를 “재귀 준거”라는 지극히 현학적이면서도 그 핵심을 빗나가는 번역어로 부적절하게 옮겼더군요. 그러나 『괴델, 에셔, 바흐』의 문맥에서 “self-reference”는 (조금 무리는 있지만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끔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자기 지시” 이외의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에 관한 정확한 번역어의 설정과 그 개념적 설명은 언제 한번 기회가 나면 상세하게 다뤄보고 싶군요.
페북중독임에 분명하다. 상태가 심각해지지 않길 바랄 뿐... 하지만... 어제도 썼듯이... 페북에서 배우는 게 많다. 정말 많다. 고급 정보, 지적 자극, 성찰 등을 얻을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니 중독되지 않기가 힘든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도 있다. 내 글을 공유함으로서... 심지어 그 성찰이 얼마나 타당한지 검증받을 수도 있다. 댓글을 통해서... 트위터의 경우엔 다른 장점이 있겠지만 내겐 페북만큼 매력적이진 않다. Long live facebook!
그건 그렇고... 오늘도 페북에서 선호하는 글에 대한 내 취향을 확인했다. 믿기힘들 정도의 박식함을 자랑하는 글은 별로다. 그 정보가 아무리 그럴듯하고, 문장까지 신뢰감을 줄지라도...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듣는게 훨씬 더 유익한다. 때로는 그 정보 자체는 내게 불필요한 매우 특화된 전문지식일지라도 그 전문지식에서 일상적인 의미를 끌어내는 방식이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담백한 글이 좋다. 지나치게 꾸미지 않고서... 그리고 여유가 있는 글이 좋다. 도저히 끼어들 틈을 보이지 않는 교조적인 글은 전하는 정보가 고급일지라도 쳐다보기도 싫다. (...)
그건 그렇고... 오늘도 페북에서 선호하는 글에 대한 내 취향을 확인했다. 믿기힘들 정도의 박식함을 자랑하는 글은 별로다. 그 정보가 아무리 그럴듯하고, 문장까지 신뢰감을 줄지라도...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듣는게 훨씬 더 유익한다. 때로는 그 정보 자체는 내게 불필요한 매우 특화된 전문지식일지라도 그 전문지식에서 일상적인 의미를 끌어내는 방식이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담백한 글이 좋다. 지나치게 꾸미지 않고서... 그리고 여유가 있는 글이 좋다. 도저히 끼어들 틈을 보이지 않는 교조적인 글은 전하는 정보가 고급일지라도 쳐다보기도 싫다. (...)
Baecker의 논문 "Zur Kontingenzkultur der Weltgesellschaft"은 근대 세계사회는 다양성, 이해불가능성, 차이, 우연성 등을 전제로 삼으면서 발전했고, 그런 전제가 있어야 통합가능하다.... 뭐 그런 내용인 것 같은데... Kontingenz, Ungewissheit, Unverständlichkeit... 그건 근대사회의 한 면일 뿐이다. 그 반대의 성향인 확실성, 정확성 등에 대한 지향 역시 근대의 특징이니까 (합리화).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의 문제지. 베버는 드물게 양면을 정확하게 지적한 경우고... 니체는 전자를.... 최근에 알게된 과학교 광신자 페친은 후자에 해당하고. 배커가 이런 점을 모를리 없지만 이 논문에선 전자를 강조한 것 같다. 제대로 읽어볼 여유가 없어서 일단 오늘 느낀 소감만 적어둔다.
2014년 4월 1일 화요일
또 페북이 계기가 되어 찾아 본 남의 생각들. 이해와 오해에 대하여...
쿤데라를 언급하면서 페친 우희종 님이 남긴 이야기.
"조금 돌려 말한다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다. 오늘 같이 따스한 양광이 비추는 아름다운 봄날, 충만한 순간에 이 상황을 이해하려는 자는 인생 헛사는 것이지. 세상을 넘 알려고 하기보다는 느끼면서 살 때, 삶은 생생하게 자신의 것이 된다. 우리는 이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폭력을 행사하는지... 행복은 오해에 있다."
아래는 쿤데라 이해 오해 등으로 검색해서 만난 어떤 블로그 이야기...
["배신당한 유언들"(밀란 쿤데라 전집 12)]. 이 책에서 쿤데라는 뇌가 아찔해질 정도로 다양한 이해와 오해, 믿음과 배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쿤데라의 이런 분석이 어쩌면 가장 큰 오해와 배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의 처음이 『농담』인 것 또한 농담 내지는 충고. 농담은 쿤데라의 세계에서 가장 키워드 중 하나일 뿐더러 작가가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농담은 이해시키거나 학습할 순 없으니까. 쿤데라의 모든 말은 진지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장난기 어린 유머에 대해서도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
오해가 이해보다 반드시 더 나은 것인가. 오해와 이해를 판별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에브리맨』이었던가. 여튼 필립 로스의 책 중 이런 글귀가 나오지. 분명한 것은 어쨌든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잘못 아는 게 삶이다. 잘못 알고, 잘못 알고, 잘못 알고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 다시 생각하고는 또 잘못 안다. 그게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방법이다. 우리는 틀렸다. 우리는 틀렸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도 생각이 난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해는 오해를 이해시키며 오해는 이해를 오해하고 믿음은 배신을 낳거나 배신은 믿음으로 탄생한다. 이상한 일이지.
쿤데라를 언급하면서 페친 우희종 님이 남긴 이야기.
"조금 돌려 말한다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다. 오늘 같이 따스한 양광이 비추는 아름다운 봄날, 충만한 순간에 이 상황을 이해하려는 자는 인생 헛사는 것이지. 세상을 넘 알려고 하기보다는 느끼면서 살 때, 삶은 생생하게 자신의 것이 된다. 우리는 이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폭력을 행사하는지... 행복은 오해에 있다."
아래는 쿤데라 이해 오해 등으로 검색해서 만난 어떤 블로그 이야기...
["배신당한 유언들"(밀란 쿤데라 전집 12)]. 이 책에서 쿤데라는 뇌가 아찔해질 정도로 다양한 이해와 오해, 믿음과 배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쿤데라의 이런 분석이 어쩌면 가장 큰 오해와 배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의 처음이 『농담』인 것 또한 농담 내지는 충고. 농담은 쿤데라의 세계에서 가장 키워드 중 하나일 뿐더러 작가가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농담은 이해시키거나 학습할 순 없으니까. 쿤데라의 모든 말은 진지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장난기 어린 유머에 대해서도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
오해가 이해보다 반드시 더 나은 것인가. 오해와 이해를 판별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에브리맨』이었던가. 여튼 필립 로스의 책 중 이런 글귀가 나오지. 분명한 것은 어쨌든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잘못 아는 게 삶이다. 잘못 알고, 잘못 알고, 잘못 알고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 다시 생각하고는 또 잘못 안다. 그게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방법이다. 우리는 틀렸다. 우리는 틀렸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도 생각이 난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해는 오해를 이해시키며 오해는 이해를 오해하고 믿음은 배신을 낳거나 배신은 믿음으로 탄생한다. 이상한 일이지.
페친 중 신학자들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그 양반들이 이야기들 중에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민규 님의 이야기.
"하나님은 우리를 소용돌이 안에 집어넣으시는 분이시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정말 때론 "하나님이 바로 내 원수다"라고 고백할 만큼 하나님을 드라마틱하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 결국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게 하시고 그때서야 모든 일을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넘치게 이루어 주신다. 지나보면 안다. 이럴려고 그려셨구나! 모든 순간, 모든 일들이, 한점 오차없이 내 영혼의 성장통, 지금을 위한 복이었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어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막상 모든 것이 더 잘 이루어져 있기에 하나님만 온전히 찬양할 수 밖에 없다!
댓글 중엔 이런 글도...
"당신이 광야의 한가운데 있을 때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하나님께 그 경험을 통해 주신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마음을 열라. 그리고 배울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은 당신을 망치려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훌륭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당신을 재정비하고 계신 것이다."
스티브 파라 /삶의 마지막까지 쓰임 받는 하나님 사람
이 글의 메시지가 전환점,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용돌이 안에 집어넣으시는 분이시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정말 때론 "하나님이 바로 내 원수다"라고 고백할 만큼 하나님을 드라마틱하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 결국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게 하시고 그때서야 모든 일을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넘치게 이루어 주신다. 지나보면 안다. 이럴려고 그려셨구나! 모든 순간, 모든 일들이, 한점 오차없이 내 영혼의 성장통, 지금을 위한 복이었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어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막상 모든 것이 더 잘 이루어져 있기에 하나님만 온전히 찬양할 수 밖에 없다!
댓글 중엔 이런 글도...
"당신이 광야의 한가운데 있을 때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하나님께 그 경험을 통해 주신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마음을 열라. 그리고 배울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은 당신을 망치려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훌륭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당신을 재정비하고 계신 것이다."
스티브 파라 /삶의 마지막까지 쓰임 받는 하나님 사람
이 글의 메시지가 전환점,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작가인 강영호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 "이미지 정치의 힘 (대통령 이명박, 오바마에 대한 이미지 비교 분석)". 한국 대통령 사진. 참으로 촌스럽고도 촌스럽다. 이런 건 참 뭐랄까 몸에 배인 습관 같은 거라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언론 사진의 질... 한국 언론을 보면서 불만족스러웠던 점 중 하나다. 반대로 독일 언론을 보면서 찬탄을 했던, 그리고 지금도 뉴욕타임즈나 슈피겔 같은 매체의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부러운 점 중 하나다. 아. 명박씨 저 사진은... 박정희 사진보다 질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 모델이 시원찮다는 점이 결정적 문제이긴 하겠지만... 여하튼 우리나라...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