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8일 일요일

오늘'도' 기아 타이거즈는 졌다. 삼성전 3연전 싹슬이 패. 다행하게도 중간중간 점수 등을 확인했을 뿐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은 투자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도 없었다. 네트워크 연결 상황 때문에... 이런 날 꼭 기아타이거즈팀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가 본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같이 혹평이고 독설이다. 심지어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써놓은 사람들도 있다. 감독 탓도 적지않은 것 같지만 결국은 팀의 문제다.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그걸 바꾸지 쉽지 않다. 팬들은 문제의 근원을 다 아는 것 같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성적 나쁜아이에게 왜 성적이 나쁘냐고 묻는 식이다. 개인의 성적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하물며 팀이랴... 김성근 감독의 선수들의 최고치 이상을 뽈을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그게 팀이고 팀의 힘이다.
통풍성관절염 쪽 전문 병원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검사를 위해 관절액을 뽑는 과정에서 심지어 흰 요구르트같은 요산결정을 뽑아내는 시술(?)을 받기도... 여하튼 시술과 더 '세게 처방해준' 약 때문인지 상태가 급격하게 좋아졌다. 일주일 정도 약으로 염증을 다스린 후 아마 본격적으로 요산 수치 관리에 들어갈 것 같다.

모처럼 아내도 시간을 낼 수 있어서 늦은 오후 팔당호수 쪽으로 드라이브 겸 저녁 먹으러 나섰다. 그동안 한국에서 찾아 다닌 음식적 중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호수가 보이는 전경, 깔끔한 서비스와 인테리어, 음식의 질도 가격대비 괜찮고. 어쩌면 앞으로 자주 찾게될 것 같다. 집에서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고...

'정치문화'를 생각하는데... 문화란 개념이 원래 그렇기도 하지만... 아마 누구나 공감하긴 할텐데... 막상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냥 필요한대로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는 개념이 되어버린듯. 그 개념 없이 설명할 수 있을까? 지역 간 국가 간 정치문화의 차이를 루만의 이론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 이번 주 여러 번 겪고 있는 민망한 상황. 약국을 여러 번 갔는데 그때마다 약봉지에 내 나이가 선명하게 찍혀져 나온다. 허걱....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는... 도무지 현실이어서는 안될 그런 나이인 것이다. 슬프고 민망하고 화도 나고... 뭐. 다 그런 것일테지. 아니... 그럴까? 다 그럴까?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아닐까? ㅠㅠ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모처럼 움직일만해서 저녁 시간에 내가 즐겨찾는(^^) 카페에 나왔다. 당연히 인터넷 빵빵... 그래서... 당연히... 딴...짓... 게다가 무슨 계모임하는지 아줌마들 10여명이 몰려와서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아줌마다움을 감추질 못하는... 그대들에게 어울리는 카페가 아닌데... ㅠㅠ

드문드문이지만... 야구를 보고야 말았다. 지는 경기를... 그것도 삼성에... 인터넷안되는 카페를 발굴해야 할까보다.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얼마나 많은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는가? 과거와 현재의 관계는 인과적인가? 역사는 누적적으로 발전하는가? 긴 시간의 역사를 일관되게 설명하려는 건 "유혹"에 가깝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고.... 의미부여... 반드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 같은.... 역사는 절대적 존재, 역사의 신, 절대 정신 같은 초월적 존재, 개념의 자기 실현 과정일까? 목적, 의미를 갖는? 그렇게 믿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든다. 왜?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 아닌가?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상관없다. 10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따위의 태도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어떤 목표를 갖고 일관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니. 그러니 결과를 놓고서라도 이전의 역사를 다시 쓰는 그런 시도들을 누구나 한다. 결과론... 야구 경기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결과에 비추어 그럴듯한 것을 꺼낸다.
한국사회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굳이 그런 질문을 해야 하나?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지식이 지금 사는 모습을 설명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현재를 아는 것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예측하는데 역시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 모델"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것을 보라. 역사를 일관되게 설명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과거-현재-미래... 그렇게 긴밀하지 않다. 그저 결과론적으로 일관성을 그려내고, 그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편의적으로 선택할 뿐이다. 물론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 당연히 -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없을 수도 없다. 대원칙을 얘기하는 것일 뿐.
정치사는 물론 과학사의 발전도 그럴 것이다. "인과성", "일관성", "설명"... 참 매력적이지만 허상인 것 같다. 쉬운 선택이기도 하고... "고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불만이다.

나도 어지간히 인과성, 일관성을 추구했나 보다. 계량적, 통계적 접근이 아니었을 뿐...

누적적, 인과적, 총체적 역사관을 벗어나는 쪽이 바슐라르, 푸코 등인가? 루만의 경우는 약간 애매하다. 스스로는 이 쪽에 끼고 싶겠지만 - 비개연성Unwahrscheinlichkeit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가 - 사회 분화의 삼단계설 테제 등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력하다. "기능적 분화"처럼 어떤 원칙에 따른 역사 변화를 기술하는 계보에 있다보니 그렇기도 하고. 

그렇다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은 사실 공허하다. 왜? 어떤 구체적인 답변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쟁 자체를 피해가는, 사실은 아주 비겁한 질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싶은 그런 질문이 있는가?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페친 홍성수 님의 이야기:

"제가 15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 십수년은 더 연구할 주제를 (그리고 실제로 그동안 썼던 모든 저작물에 깔려있는 문제의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세상에서, 특히 한국에서 법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가?"입니다. 법의 기능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법의 '자기 몫'을 잘 찾아야 법이 자기 역할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거고요. 한국사회에서는 법이 과도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것이 제 잠정적인 결론이기도 합니다."

흠. 멋질걸... 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1. 오늘도 조금전까지 인터넷프리한 시간을 가졌다. 밤엔 생각보다 일찍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는데 아직 야구가 덜 끝난 것 아닌가. 다행히 영상을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허무하게 진 경기, 최종결과만 확인했어야 하는데... 기분이 좀 상했다. 당분간 인터넷프리한 삶을 최대한 즐기리라 마음먹는다.

2. 밤새 괴롭더니 아침엔 엄지발가락 쪽 통증이 더 심해졌다. 한 발로 다녀야 할 정도로... 다른 병원에 가서 스테로이드계 항염제를 처방받았다. 조금 나아진 것 같긴 한데... 글쎄 내일 돼 봐야 알 듯. 당장 통증이 사라지더라도 앞으로 관리할 일이 문제다. 약을 계속 먹어야 하나. 그러다 재발하면... ㅠㅠ
그런데 의사들이 잘 모르는 눈치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통증의학과를 가야 하나? 큰 병원?

3. 약기운 탓에 오후에 한 시간 정도 잤다. 오늘도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될 듯.

현대 한국의 모습, 특성을 조선조의 역사적 경험으로 연결시켜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접근이 방식참 매력있긴하다. 하지만... 역사란 것이 워낙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특히 그 거리가 멀수록 원하는 것들만 임의적으로 발굴되어 현재 설명을 위해서 동원될 여지가 크다. 예를 들어 유교/유학은 동아시의 정체(?)뿐 급속한 경제성장을 설명하는데 동시에 사용된다. 차라리  개화기 이후의 경험에서 찾아낸 특징에서 연속성을 찾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기본적으로 칸트로 대표되는 유럽 사상과 불교사상을 비교하여 불교사상의 우위성을 논증했다. 즉 그는 진정한 자아, 개인적 도덕성 등 개체에만 치중하는 칸트 사상에 비해, 득도(得道)를 통한 개인의 궁극적 자유(, 해탈)와 일체 중생의 불성(佛性), 구제를 상즉상리(相卽相璃)의 논리로 조화시키는 불교사상이 월등히 우수하다고 논파하고, 불교의 개체자유론을 무시해 버린 량치차오를 비판하였다.  (박노자, 우승열패의 신화)

아닌게 아니라 불교도 매우 개인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네. 근대? 근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