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0일 화요일

페친 이승환 님 - 그렇다. ㅍㅍㅅㅅ의 그... - 이야기.

"페이스북이 개인의 편향성을 강화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구글이 더 심각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더 큰 문제는 마케팅적 측면에서 이를 버리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그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공감한다. 페이스북으로 보는 세상은 내가 보고싶은대로 내가 내 친구들과 더불어 만들어 낸 세상이다. 착시효과가 이만저만하지 않다. 달리 "친구들"이겠는가. 편향성이 강화될 수밖에... 애를 써서라도 다양한 견해를 접해야 한다. 교육도 중요하고, 오프라인 친구들, 동료들도 중요하다.
똑똑한 사람들의 특징: 요약을 잘 한다. 어떤 책이나 논문의 핵심 주장을 잘 끄집어 낸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책이나 논문을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을 다 파악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그건 착각이다. 비록 그 똑똑한 사람처럼 간명하게 요약하긴 힘들더라도 꾸역꾸역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훈련해야겠지. 요약하는... 핵심을 짚어내는 훈련을...

2014년 6월 9일 월요일

변화를 강조할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을 강조할 것인가?
변화, 특히 긍정적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희망을 갖게 할 것인가?
아니면 변하지 않는 부정적 관성, 관행을 이야기하면서 채찍을 가할 것인가?
이 둘이 모두 필요하겠지? 이 둘이 모두 현실이겠지? 어디 변하기만 하던가? 어디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하던가?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선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 결정을 내려야 비로소 판단을 할 수 있다.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자신의 볼이 먹히는지 시험할 수 있다. 볼만 던지다간 승부도 못해보고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안타, 혹은 홈런을 맞더라도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할 때다. 그리고 안타나 홈런을 맞았다고 다시 볼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아직 경기를 내 준 것은 아니잖은가. 아니 한 경기를 내줬다고 시즌을 날린 것은 아니잖은가. 아니 설령 시즌을 날렸다고 다음 시즌이 없는 것은 아니잖은가?
물론 안타 홈런을 자주 맞는대도 고집스럽게 한 가운데로만 꽂아넣는 것 역시 미련한 짓이다. 그럴 땐 변화를 시도해야겠지.

쉽게 변하지 않는 문화를 강조하자. 변하는 징후들이 나타난다고 조바심을 내지 말자.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 누가 변화가 불가능한다고 했던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 아니던가. 변화가 그렇게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진지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변화의 기운이 보인다"라는 제목의 '물뚝심송'의 블로그 글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를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판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역시 색깔론이 위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지겹도록 행해진 종북몰이, 빨갱이 타령, 색깔 칠하기 등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략들은 거의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이거 이제는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다.

지역구도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 박정희 이래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지역구도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거판이 “현실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공허한 공약은 무시되기 시작했고, 비록 규모는 작아도 깨알 같은 공약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지킬 수 있는, 그러나 열심히 해야만 지킬 수 있으며 실제로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공약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유권자들이 그런 공약을 찾기 시작했다.농약급식으로 대표되는 사실 무근의 네거티브 공세들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내려가며 잔잔히 퍼져나가는 박원순 캠프의 조용한 호소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박원순 후보의 재선은 당선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선거 문화를 바꾸고 캠프 전략의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 우리 사회의 선거 문화는 그렇게 조용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를 여기에서 찾고 싶다."

이 글이 오늘 페북에서 자주 거론되는 걸로 봐서 이처럼 지방선거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당장 그렇지 않더라도 자꾸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현실이 되는게 인간사가 작동하는 원리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발언만은 아니다. 그런가? 그럴까? 변화가 쉽지 않다고 볼 근거도 적지 않다. 여당과 청와대가 국정기조를 바꿀까? 정말 뭔가 느꼈을까? 노우. 네버. 그 무리들은 선거 결과에 매우 안도하고 있잖은가?  한겨레는 여권이 약속한 쇄신의 가늠자을 세 가지를 제시했다. (1) 세월호 국정조사 (2) 김기춘 등 인적쇄신 (3) KBS 길사장 후임. 청와대는 오늘 홍보수석에 YTN 출신 꼬붕을 앉혔다고 한다. 변화? 쇄신? 이미 물건너 갔다. 야당이 바뀔 것 같지도 않고... 교육에 대한 인식에 획기적 변화가 있었나? 그것이 교육감 선거에 반영되었나? 진보교육감 덕에 앞으로 바뀔까? 글쎄... 김대중, 노무현 당선, 촛불시위, 나꼼수, 안철수... 등등 등등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러저러한 현상으로 예단하는 경우들을 워낙 많이 봐와서 일단 의심을 해봐야 한다. 물론 이러저러한 소동에도 제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랑비에 젖는다고 조금씩 변해왔는지도 모른다. 인간사는 모순되는 경향이 공존하는게 자연스러우니까 변하려는 욕망, 변화를 거보하는 관성이 함께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떤 속성, 어떤 경향을 강조하느냐의 문제일 것. 물뚝심송님의 해석대로 지역감정, 색깔론의 약발이 덜 먹히는 건 분명한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 세력들의 인적 구성이나 문화, 주장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인적쇄신? 청와대? 정당? 변화는 그렇게도 느리다.


2014년 6월 8일 일요일

사실 facts은 무엇인가? 가능한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저 전제아닐까? 실제적 구속적이 있다는 점에서 "Anything goes"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은 아니지만... 모든 사실은 관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관찰은 시공간적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불변의 사실'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모든 관찰은 임시적이다. 임시적이라고 관찰 사이에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더 그럴듯하게 관찰을 묘사해야 한다. 더 그럴듯하게...

진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진리가 가능한가? 그저 잠정적인 진리만 있을 뿐인가? 절대적 진리라는 표현은 근대 이후로는 우습게 되어 버렸다. 진리가 절대적이라면 그것은 논쟁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인, 특정 집단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진리가 있을 따름이다.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그런 진리는 없다. 불가능하다. 물론 근대 이전의 절대적 진리 역시 강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인정되었겠지만... 하지만 실제로 그랬을까? 유럽의 중세... 정말 우리가 그리는 것처럼 그렇게 단일한 세계관이 철두철미하게 세상을 지배했을까?

성경은 과연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성경의 진술은 현대인들이 얘기하는 그런 '진리'와 관련이 있는가? 시공간을 초월한 그런 객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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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6일 금요일

자기 교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시끄럽고 또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시끄럽지 않고 일사분란하면, 그네씨가 얘기하는대로 국론이 분열되지 않는다면? 국모 혹은 공주님이 하라는대로 일사분란하게 국민이 움직이면? 국가개조가 그녀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면? 그렇게 굴러가는 사회의 대표주자가 북한아닌가? 싸우면서 닮은 것인지... 그렇게 종북 딱지를 붙여대더니 이제 스스로 그 무리에 포함시키려나 보다.
아직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희미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달을 향해(?) 탐사용 로켓(?)을 쏠 때 경로를 계속해서 교정해야 한다는... 오차들이 있으니까... 목적지가 분명한 경우에 그러한대.... 심지어 예측불가능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오죽할까. 큰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경로를 계속해서 고쳐야 한다. 비판이 없으면 관성대로 가기 십상이다. 그러다 목표를 놓치겠지. 비판과 의견 충돌, 그리고 타협점을 찾는 것. 모든 게 필요하다.
"세계 최고 작가 17명의 글 잘 쓰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이야기들이다.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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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문서의 초안은 끔찍하다. 글쓰는 데에는 죽치고 앉아서 쓰는 수 밖에 없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총 39번 새로썼다. 

"요컨대 국가보안법의 정신은 주민들에게 인접해 있는 '최악의 상황'(지옥과 같은 사회주의)를 들이대면서 "'차악(次惡)의 현실'(사상, 표현의 자유의 통제)을 감내하라" 혹은 "차악을 '선'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차악의 현실'이 소수의 저항자들에게는 '최악'보다 더욱 심한 상황(테러와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김동춘, 200, 근대의 그늘. 30쪽)

차악을 용인하라는 윽박지름은 물론 소수의 실제적 '저항자들'에게만 위협이 아니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정당화되고, 암묵적으로 그런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그 소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