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가 연장 탓하는 법 아니라고 했지만 칭찬은 허용되는 일 아닌가?
Scrivener란 글쓰기 프로그램이 좋단 얘길 들었다. 한 번 쓰려고 시도해 봤는데 그 땐 그 유용성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시도해보았다. 왠걸.... 이건 신세계다. 내가 간절히 구했던 바로 그 기능들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이 없어서 제대로 못 썼다는 이야길 할 순 없겠지만, 앞으로 이 프로그램 덕을 단단히 볼 것 같다는 점은 분명히 밝혀둘 수 있다.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2014년 10월 8일 수요일
정확한 이야기인지, 표현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충분히 상상가능한 이야기...
"아우슈비츠 담벼락에 씐 표어는 ‘정직은 인생의 보물’, ‘웅변은 은, 침묵은 금’, ‘이 건물 안에서는 모자를 벗을 것’ 따위였다. 강제수용소 시스템의 최고책임자 하인리히 히믈러의 좌우명도 ’무엇을 하든지 예절 바르게’였다..."
큰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곧잘 소소한 일로 상대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 스스로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하고. 대한민국 곳곳에서 여전히 발 견되는 계몽주의적인, 도덕주의적인 표어들을 참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우슈비츠 담벼락에 씐 표어는 ‘정직은 인생의 보물’, ‘웅변은 은, 침묵은 금’, ‘이 건물 안에서는 모자를 벗을 것’ 따위였다. 강제수용소 시스템의 최고책임자 하인리히 히믈러의 좌우명도 ’무엇을 하든지 예절 바르게’였다..."
큰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곧잘 소소한 일로 상대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 스스로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하고. 대한민국 곳곳에서 여전히 발 견되는 계몽주의적인, 도덕주의적인 표어들을 참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윤리는 밀물, 썰물처럼 들어왔다가 나간다. 일단 그처럼 지속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 중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이야기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탈도덕적, 탈윤리적이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느니.... 각종 지켜야 할 도리를 나열하는 인간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도덕, 윤리는 매우 중요하고도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리는 그렇게 경고하는 역할 정도면 족하다. 쭉 지속되는 것은 기능적 분화다. 사회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윤리의 르네상스, 부흥, 윤리정치 같은 담론은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규범적 질서는 사회구조적 질서를 앞서지 못한다. 그저 뒤치닥거리 하는 정도...
2014년 10월 6일 월요일
구원은...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냐가 중요하다. 기독교의 표준 답변인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면... 도대체 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될 것이고.
"죄로부터의 구원" "인간은 죄인이다" 그런 전제는 사실 확 와닿지 않는다. 동아시아 전통이 기본적 삶의 태도를 상당히 규정하고 있고, 21세기라는 시대적 조건의 제한을 받기도 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구원을 추구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 경우 구원은 출발지점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불만족, 불안으로부터의 구원? 그렇게 볼 때 구원은 어쩌면 (잘 알진 못하지만 불교의) "해탈"과 비슷한 개념일 수도...
"우리가 구원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이 어딘가 부족한 게 있다는 걸 전제한다. 만약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런 삶의 형식들이 완전하고, 완전히 만족스럽다면 우리는 구원이니 뭐니 하면서 말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인간이 생산해내는 삶의 조건들이 구원의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 종교라는 구체적인 체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자기의 모든 행위를 이런 구원론적인 지평에서 확대해 나가기 마련이다.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조금 더 많이 벌고, 조금 더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을 갖고,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모든 노력은 자기를 구원하려는 인간의 일반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정용성, 신학공부, 78 -79)
누구나 궁극적으로는 자기구원을 추구한다. 종교인, 기독교인들도... 생태운동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구원이 아니라 타인구원, 세계구원을 추구한다고? 아니 그것 역시 자기구원의 한 형태일 따름이다. 다만 좀 더 이기적이고, 노골적인 자기구원과 구별될 뿐. 물론 그 차이는 결코 크지 않다.
"인간이 생산해내는 삶의 조건들이 구원의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 종교라는 구체적인 체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자기의 모든 행위를 이런 구원론적인 지평에서 확대해 나가기 마련이다.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조금 더 많이 벌고, 조금 더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을 갖고,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모든 노력은 자기를 구원하려는 인간의 일반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정용성, 신학공부, 78 -79)
누구나 궁극적으로는 자기구원을 추구한다. 종교인, 기독교인들도... 생태운동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구원이 아니라 타인구원, 세계구원을 추구한다고? 아니 그것 역시 자기구원의 한 형태일 따름이다. 다만 좀 더 이기적이고, 노골적인 자기구원과 구별될 뿐. 물론 그 차이는 결코 크지 않다.
"이정석, 유전공학적 구원론에 대한 신학적 논의"
"신학적으로 죄악의 문제는 원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범하는 자범죄도 사실은 원죄로 인한 죄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범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한 조상이 범한 타인의 죄를 아무 동의 없이 부과하고, 또 그 죄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죄(original sin)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인간의 내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13) 그리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원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의 두 측면, 즉 죄책과 오염에 대하여, 죄책감(guilt)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신에 대한 두려움과 억압상태에서 살던 종교적 시대를 탈피한 현대인은 신에 대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이유 없는 죄책감이나 강박관념은 심층심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인간성의 오염(corruption)은 해당 유전인자의 결함에서 유발된다고 판단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개인과 인류 전체의 그릇된 성격과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이나 성령의 치료라는 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정확하게 잘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기독교의 속죄론과 유전공학의 유전자 치유를 통한 죄성의 해결을 조화시키려는 타협적 노력도 있다. 로버트 브렁스는 기독교의 종말론적 새 인간과 유전공학적인 새 인간의 두 비전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서 인간의 유전공학적 노력을 통하여 기독교의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14) 로날드 콜-터너도 복음서가 강조한 질병의 치유가 약화된 현대에 있어서 신학과 유전공학은 공히 인간에게 결함이 있다는데 동의하며, 결함있는 유전인자를 치유함으로서 타락으로 인한 죄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구속적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신과 인간은 공동창조자로서 신의 창조사역에 참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15)"
Robert A. Brungs, "Biology and the Future: A Doctrinal Agenda", Theological Studies 50(1989): Ronald Cole-Turner, The New Genesis: Theology and the Genetic Revolution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3),
"진정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죄책은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류 공동체에게 모두 부과된 법적 형벌이기 때문에 유전자나 육체와 무관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죄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믿고 수용할 때 죄책과 정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로움과 영적 평화가 주어진다. 칼 라너에 의하면, “생명공학은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테크놀로지는 은혜의 수용이 모든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변경하지 말고 수용해야 할 은혜, 즉 우리 유전적 유산의 창조적 은혜를 방해한다.”40)
흥미로운 주제다.결론은 좀 안이하지만...
"신학적으로 죄악의 문제는 원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범하는 자범죄도 사실은 원죄로 인한 죄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범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한 조상이 범한 타인의 죄를 아무 동의 없이 부과하고, 또 그 죄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죄(original sin)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인간의 내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13) 그리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원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의 두 측면, 즉 죄책과 오염에 대하여, 죄책감(guilt)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신에 대한 두려움과 억압상태에서 살던 종교적 시대를 탈피한 현대인은 신에 대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이유 없는 죄책감이나 강박관념은 심층심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인간성의 오염(corruption)은 해당 유전인자의 결함에서 유발된다고 판단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개인과 인류 전체의 그릇된 성격과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이나 성령의 치료라는 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정확하게 잘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기독교의 속죄론과 유전공학의 유전자 치유를 통한 죄성의 해결을 조화시키려는 타협적 노력도 있다. 로버트 브렁스는 기독교의 종말론적 새 인간과 유전공학적인 새 인간의 두 비전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서 인간의 유전공학적 노력을 통하여 기독교의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14) 로날드 콜-터너도 복음서가 강조한 질병의 치유가 약화된 현대에 있어서 신학과 유전공학은 공히 인간에게 결함이 있다는데 동의하며, 결함있는 유전인자를 치유함으로서 타락으로 인한 죄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구속적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신과 인간은 공동창조자로서 신의 창조사역에 참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15)"
Robert A. Brungs, "Biology and the Future: A Doctrinal Agenda", Theological Studies 50(1989): Ronald Cole-Turner, The New Genesis: Theology and the Genetic Revolution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3),
"진정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죄책은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류 공동체에게 모두 부과된 법적 형벌이기 때문에 유전자나 육체와 무관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죄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믿고 수용할 때 죄책과 정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로움과 영적 평화가 주어진다. 칼 라너에 의하면, “생명공학은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테크놀로지는 은혜의 수용이 모든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변경하지 말고 수용해야 할 은혜, 즉 우리 유전적 유산의 창조적 은혜를 방해한다.”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