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말씀이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하셨는데..."
난 처음 들어보는 표현인데... 음... 맞는 것 같다.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2008년 10월 30일 목요일
마광수 교수 근황을 듣고...
오랜만에 마광수 교수 소식을 들었다 (한겨레 기사). 전과2범, 20세기 한국에 태어난 게 죄라면 죄인... 한국, 한국인의 장점이 많지만 그 장점의 원천을 이루는 정서는 가족주의나 동질감 아닐까? 물론 어디 한국에서 뿐이랴. 동서고금 그런 정서는 모습을 바꿔가며 갈등, 전쟁, 살육을 일으키지 않았나,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 어쩌면 한국들이 배타적인 정도는 '귀여운' 수준 아닌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주노동자들 같은 당사자들이 들으면 기겁할 얘기겠지만, 인류사에서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특히 해방 이후에는 남북분단이라는 현실과 그것을 이용해 먹으려 들었던 위정자들에게 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없앨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현실, 또 서기 2008년에 '간통죄'가 존재하고 여전히 폐지하지 못하는 현실은 썩 잘 어울리는 현상이다 ('간통죄'가 얼마는 웃기는 짜장, 짬뽕인지에 대해선 여길 참고). 성에 대한 독특한 취향을 글로 표현한 것을두고 현직 문학전공 교수를 구속했던 과단성과 작곡가 윤이상씨에게 생전에 다시 고향땅 밟을 기회를 끝내 주지 않은 그런 일관성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마교수, 그래도 좀 더 꿋꿋하게 오래 사시길 기원한다.
인터뷰 중 반가운 구절을 발견했다. 얼마전 타계하신 작가 박경리와 '토지'에 대한...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토지'를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생각 한 켠에 늘 자리잡고 있던 불편함을 일거에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ㅎㅎ 쌩유, 광마선생.
“박경리씨는 살아있을 때부터 대가 취급을 했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난 <토지>도 잘 썼다고 생각 안해. 문장도 100% 일어 문장이야. 세 권 읽다 말았어. 애들한테 물어봐도 20권 다 읽은 경우 못봤어. 눈치보기야. 독자들도 <토지> 안 읽어놓고, 왕따 당할까봐 그 말을 못해. 통탄할 일이지.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후대가 하는 거야."
인터뷰 중 반가운 구절을 발견했다. 얼마전 타계하신 작가 박경리와 '토지'에 대한...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토지'를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생각 한 켠에 늘 자리잡고 있던 불편함을 일거에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ㅎㅎ 쌩유, 광마선생.
“박경리씨는 살아있을 때부터 대가 취급을 했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난 <토지>도 잘 썼다고 생각 안해. 문장도 100% 일어 문장이야. 세 권 읽다 말았어. 애들한테 물어봐도 20권 다 읽은 경우 못봤어. 눈치보기야. 독자들도 <토지> 안 읽어놓고, 왕따 당할까봐 그 말을 못해. 통탄할 일이지.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후대가 하는 거야."
2008년 10월 28일 화요일
다움
'답다'라는 우리말, 듣기에 좋다. 어른답다, 아이답다, 학생답다... 물론 '-답다'라는 표현은 위계질서상 위쪽에 있는 이들이 즐겨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옳은 질서를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 써먹는, im Grossen und Ganzen 여전히 효과적인 담론 자원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그 문장에서 '학생답다'는 표현이 가리키는 바는, 뭐, 뻔하지 않은가. 바른생활... '내가 언젠가 조카들에게 거의 '무아지경' 상태에서 내뱉었던 그런 표현... '엄마아빠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그런 권위적인 냄새를 풀풀 풍기는 용례를 제외한다면, '- 답다'는 말은 좋은 의도를 전달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이 표현이 부정적인 상황을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그럼 그렇지, 역시 너'다운' 짓이야. 어쨌거나... ).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상황, 상태가 있지 않은가? 너무 꾸미거나 세상이치에 밝으면 10대답지 못한 것 같고, 다시말 해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 20대 땐 패기를 갖고서 무모해 보이는 일에도 도전해 보는 모습이 보기 좋고... (아, 그런 모습, 정말 아름답다! 예를 들어, 자전거로 세계일주하는 청년들의 모습, 아름답고도 아름답도다... 그들에게 무한한 찬사를...!!!). 30대 후반, 40대에 이르면 푸근하고, 넉넉해 보이며, 적어도 어느 한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이고, 또 살아온 길에 대해 자신감도 은근히 내비치는...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적으로 기여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리고 요구되기도 한 그런 모습이고 덕목이다. 고민, 갈등, 방황, 자신감 없음, 무기력 등은 - 물론, 속으로야 누군들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마는 적어도 겉으로는 - 이 또래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허나 여전히 생산하는 자의 입장에 서지 못한 채 40대를 바라보는 '늙은 학생'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젋게 살아서 나이를 '안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먹어야 할 나이를 '못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젊게 산다는건 제 나이값 못하는 이들에 대한 립서비스이거나 자기위안은 아닌지... [물론 그 맘때 '일반인' (혹은, '정상인' ㅎㅎ) 또래들이 겪는 부정적인 증후군을 적게 겪는 것 같긴 하다. 그런 장점마저 없으면 얼마나 더 비참할꼬...] 어쩌랴... 스스로 선택한 길인걸. 허나 그래도 뭔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보자면... 어쩌면 '늙은 학생다운' 모습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리라.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내 나름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것까지 공개하진 않으련다.
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주말 단상
일요일 저녁, 어쩐 일인지 어탭터가 굉음을 내면서 전력을 계속 공급해준다. 오늘 오전, 컴이 한참 긴요한 시간에 충전해 가면서 썼다 켰다 반복하던 일을 생각하면, 이 굉음은 오히려 반가운 소리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이런 저런 계기로 잡게 된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관계는 정말 복잡하고 미묘하다. 현대의 의사소통의 경우, 그 상황을 위해서 위계적으로, 신분제적으로, 혹은 여러 가지 규범으로 정해진 행동지침이 많지 않다보니 대화의 규칙을 만들어가고 상황을 해석하고 자신의 해석이 맞는지 다음 대화 turn에서 확인해가고... 대단한 기술과 집중력,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것. 늘 코드를 맞춰나가야 한다. 그 과정은 맞춰지거나/맞춰지지 않거나, 이항코드로 선택될 수 있는게 아니라, 아나로그다. 0과 1 사이에 무수하게 많은 가능성이 있는 것. 그 관계가 아주 단순화되어 오해의 여지가 적은 경우는 대표적으로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좀 더 복잡하지만 그래도 단순한 경우는 표준화된 단순 노동을 하는 작업장 동료들 간의 관계. 부부나 '친한' 친구 같은 관계는 친밀도와 서로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서 오히려 오해의 폭이 적은 경우. 가장 힘든 경우가 어정쩡하게 친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화상황에서 도대체 眞意가 무엇인지, 왜 무슨 의도로 이 얘기를 꺼내는지, 아니면 침묵하는지 순간 순간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언젠가 썼듯이 그 경우 그 찰나의 타이밍이 중요해서 그것을 놓치면 벌써 상황종료, 새로운 상황 시작...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산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그러할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현대인들은, '정상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람들은 이런 폭넓은 해석과 선택의 도전을 외면하며 살 수 없다. 인간관계를 잘 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 상태를 얘기하는 것일까? 그 과정을 유연하게 잘 처리해서 이음새가 잘 눈에 뜨지 않는 경우. 모든 상황을 souveraen하게 통제해 나가는 경우 아닐까?
그건 그렇고... 나도 '문명병' 환자라면 환자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 애쓰는 편이지만... 단답형 지식은.... 그런 형태의 지식도 왜 쓸모가 없겠는가마는, 그게 필요한 시기나 분야는 매우 제한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너도 나도 목청높이어 답다는 기계 만드는 한국 교육의 퇴행성을 지적한지도 꽤 오래되었는지만 크게 바뀌진 않은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인터넷을 통해 초등 혹은 중고등 시험문제를 보면서, 참 아직도 저런 문제를 내고 그에 대한 정답을 요구하는구나, 안타까움을 넘어서 화가 날 때가 있다. 특히, 국어나 도덕, 윤리, 사회 그런 쪽 문제들... 쉽게 바뀌지 않는 걸 보면 그런 객관식, 단답식 지식을 습득하는 게 현대 사회의 성공적인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꽤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장점이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평가의 계량화, 한마디로 순위매기는 데 그보다 더 손쉬운 방식은 없다. 객관식, 단답식, 경쟁, 줄세우기, 계량화된 성적, 그 서열에 앞자리에 서기, 성공, 출세, 모두 의미의 연결망 속에서 가까운 곳에서 발견될 단어들이다. 심지어 겸손, 사랑, 섬김이 더 본질적이어야 할 교회에서도 큰 문제의식 없이 수용될 정도로....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를 열어주는 교회들, 남은 어떻게 되든 내 자식만큼은 평소 공부한 것 이상 좋은 점수 '따게' 해주고, 앞으로도 쭈욱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 '마인드'. 지난 수십년 간 한국은 물신주의 가치관, 성장, 성공에 대한 욕망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고, 이 땅 개신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산 기독교의 성공지향적 세계관, 가르침은 그런 사회적 기대와 기가 막힌 찰떡궁합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 결과 이젠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더라도 떨쳐버릴 수 없는 한국인 '심성'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는지... 경쟁을 만들어 내서 공부하기... 사람이 공부할 거리, 공부방식을 만들어내지만, 그런 방식이 또 사람과 사람들이 관계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시 한 번 co-evolution). 인간(의 노동)이 자신이 만들어 낸 대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 맑스 형님은 Entfremdung, 疏外라고 부르시지 않았던가. 참, 낯선 어쩌면 기괴하기까지 한 풍경이다. 교회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자연스럽기도 한 그런... 나도 그 풍경의 일부였다.
[덧붙임: 우연히 오늘, 화요일자 '뉴스앤조이' 기사 중에서 다음 기사를 발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북 이리노회가 이리노회 주일학교 제25주년을 맞아 '초등부 성경 골든벨'과 '성경 필사본 및 시화전'을 개최한다. " '성경골든벨'이라면 내게는 매우 친숙한 방식이다. 대단히 효과적이란 검증도 이미 끝났고. (ㅎㅎ) 하긴 고등부 시절 건축업을 하시던 부장 장로님께서 연말까지 성경일독하면 (내 기억이 맞다면) 만원씩 준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하셨는데, 그것보다야 훨씬 세련된 방식이다. 그 당시 상금이 집행되었던 건 분명한데 나도 그 '만원' 수령자였는지는 무슨 까닭인지 기억해 낼 수가 없다. '안' 혹은 '못'받았으니 기억을 '안' 혹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돈 욕심 때문에라도 성경 한 번 읽는 게 안 읽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총동원전도주일에 선물 받을 욕심으로 교회 문턱을 한 번 넘어서 보는 것도 비신자들에겐 복음을 들을 드문 기회일 수도 있다. 허나...모두... 좀 '거시기'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문화를 넘어설 수 있는 깊이를 갖춘 이들 아닌가? 영의 세계를 맛보았고, 진리를 과감하게 외칠 수 있는 이들 아닌가? ]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관계는 정말 복잡하고 미묘하다. 현대의 의사소통의 경우, 그 상황을 위해서 위계적으로, 신분제적으로, 혹은 여러 가지 규범으로 정해진 행동지침이 많지 않다보니 대화의 규칙을 만들어가고 상황을 해석하고 자신의 해석이 맞는지 다음 대화 turn에서 확인해가고... 대단한 기술과 집중력,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것. 늘 코드를 맞춰나가야 한다. 그 과정은 맞춰지거나/맞춰지지 않거나, 이항코드로 선택될 수 있는게 아니라, 아나로그다. 0과 1 사이에 무수하게 많은 가능성이 있는 것. 그 관계가 아주 단순화되어 오해의 여지가 적은 경우는 대표적으로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좀 더 복잡하지만 그래도 단순한 경우는 표준화된 단순 노동을 하는 작업장 동료들 간의 관계. 부부나 '친한' 친구 같은 관계는 친밀도와 서로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서 오히려 오해의 폭이 적은 경우. 가장 힘든 경우가 어정쩡하게 친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화상황에서 도대체 眞意가 무엇인지, 왜 무슨 의도로 이 얘기를 꺼내는지, 아니면 침묵하는지 순간 순간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언젠가 썼듯이 그 경우 그 찰나의 타이밍이 중요해서 그것을 놓치면 벌써 상황종료, 새로운 상황 시작...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산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그러할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현대인들은, '정상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람들은 이런 폭넓은 해석과 선택의 도전을 외면하며 살 수 없다. 인간관계를 잘 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 상태를 얘기하는 것일까? 그 과정을 유연하게 잘 처리해서 이음새가 잘 눈에 뜨지 않는 경우. 모든 상황을 souveraen하게 통제해 나가는 경우 아닐까?
그건 그렇고... 나도 '문명병' 환자라면 환자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 애쓰는 편이지만... 단답형 지식은.... 그런 형태의 지식도 왜 쓸모가 없겠는가마는, 그게 필요한 시기나 분야는 매우 제한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너도 나도 목청높이어 답다는 기계 만드는 한국 교육의 퇴행성을 지적한지도 꽤 오래되었는지만 크게 바뀌진 않은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인터넷을 통해 초등 혹은 중고등 시험문제를 보면서, 참 아직도 저런 문제를 내고 그에 대한 정답을 요구하는구나, 안타까움을 넘어서 화가 날 때가 있다. 특히, 국어나 도덕, 윤리, 사회 그런 쪽 문제들... 쉽게 바뀌지 않는 걸 보면 그런 객관식, 단답식 지식을 습득하는 게 현대 사회의 성공적인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꽤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장점이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평가의 계량화, 한마디로 순위매기는 데 그보다 더 손쉬운 방식은 없다. 객관식, 단답식, 경쟁, 줄세우기, 계량화된 성적, 그 서열에 앞자리에 서기, 성공, 출세, 모두 의미의 연결망 속에서 가까운 곳에서 발견될 단어들이다. 심지어 겸손, 사랑, 섬김이 더 본질적이어야 할 교회에서도 큰 문제의식 없이 수용될 정도로....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를 열어주는 교회들, 남은 어떻게 되든 내 자식만큼은 평소 공부한 것 이상 좋은 점수 '따게' 해주고, 앞으로도 쭈욱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 '마인드'. 지난 수십년 간 한국은 물신주의 가치관, 성장, 성공에 대한 욕망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고, 이 땅 개신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산 기독교의 성공지향적 세계관, 가르침은 그런 사회적 기대와 기가 막힌 찰떡궁합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 결과 이젠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더라도 떨쳐버릴 수 없는 한국인 '심성'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는지... 경쟁을 만들어 내서 공부하기... 사람이 공부할 거리, 공부방식을 만들어내지만, 그런 방식이 또 사람과 사람들이 관계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시 한 번 co-evolution). 인간(의 노동)이 자신이 만들어 낸 대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 맑스 형님은 Entfremdung, 疏外라고 부르시지 않았던가. 참, 낯선 어쩌면 기괴하기까지 한 풍경이다. 교회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자연스럽기도 한 그런... 나도 그 풍경의 일부였다.
[덧붙임: 우연히 오늘, 화요일자 '뉴스앤조이' 기사 중에서 다음 기사를 발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북 이리노회가 이리노회 주일학교 제25주년을 맞아 '초등부 성경 골든벨'과 '성경 필사본 및 시화전'을 개최한다.
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컴퓨터 혹은 인터넷 금단증
몇 주 전부터 골골하던 노트북 어탭터가 '드디어' 숨넘어가기 직전에 이르렀다. 켜지 않은 상태에서 배터리에 충전은 되나 컴퓨터에 전원을 넣는 순간 배터리로만 작동하는 것. 배터리만으로는 10분을 넘기기 힘드니 거의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당장 새어댑터 사려고 시내에 나섰으나, 왠걸,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다. 할 수 없이 ebay로 눈을 돌릴 수 밖에... 화요일 저녁에 비경매로 나온 매물을 구입해서 바로 입금했으나, ebay 물건구입에 대한 이전 경험이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에도, 토요일인 오늘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목요일에 보냈다는데... 덕분에 며칠 간 컴퓨터 없다시피한 집에 살고 있다. 급한 일은 학교 도서관에서 처리한다. 성능 좋은 컴퓨터들이 여기 저기 놓여있고, 지금처럼 한글 입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 사실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허나 어제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컴퓨터 없는 방에 들어서니 왜 그리 낯선지. 잠자기 전까지 인터넷 뒤적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습관이 되다시피해서, 도대체 이 밤에 뭘하지?,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 '설상가상' 텔레비전을 소유하지 않은지 벌써 오래 되었으니... 대체품도 마땅찮은 것. 결국 모처럼, 정말 모처럼 공부용이 아닌 교양용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과 컴퓨터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여가시간이라고 책을 읽어본 기억이 참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심지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켜고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 확인하며 아침 먹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돈 들여서 받아보고 있는 종이신문을 읽을 시간은 더 줄어들게 되었고... 또 영어 도튜멘타리를 틀어 놓고서 잠드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최근엔 리차드 도킨스 출연 다큐를 주로...). 화면을 덮어 놓은 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려고 집중하다보면 '쉽게' 잠에 빠져들곤 했다 [확실히 이런 방식으로 난 재미를 보고 있다. 난 꼭 뭔가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는데 너무 잘 들리는 내용이나 혹은 아애 안 들리는 음악 같은 것보다 집중해야 들리는 그런 내용, 영어나 독일어로 누군가 고른 음색으로 얘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편이다. 그래서 한 때는 루만의 강의를 듣기도 했는데 효과적이긴 했으나, 다시 듣고 싶진 않다 ㅎㅎ]. 활자, 책, 문법, 언어 등 문자문화가 직업에 해당하는 세계라 여가시간이 영상매체로 채워지는 게 자연스럽긴 하다. 그런 저런 핑계로 영화나 재미있는 도큐 같은 것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는데...
지난 주부터 점심 시간 일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오전에는 인터넷을 보지 않고, 그래서 아침먹을 때도 신문을 읽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어댑터까지 고장나서 한편 자발적으로 다른 한편 울며겨자먹기로 컴퓨터 특히 인터넷 사용을 줄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시각적 정보가 주는 그 즐거움, 재미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모든 감각기관을 동시다발적으로 적절하게 자극해 주는 그런... 언제부터인가 심지어 음악도 '보게' 되지 않았는가. 난 담백한 걸 좋아해서 컴퓨터도 최대한 슬림하고 소박한 상태로 나름 '최적화'해 놓고 있는데도 [한 가지, 프로그램은 가능한 최신 버전을 써야 만족하는 편이다. 그렇게 보면 뼈속 깊이 아날로그형 인간은 아닌 지도... 이런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끄적거리... 아니 틱틱거리고 있는 것도 하나의 반증이되겠지만... ],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컴퓨터나 인터넷, 영상매체의 '유혹'에 그동안 너무 많은 자리를 내 주었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반성하고 좀 더 문자적으로, 아날로그적으로, 그리고 흑백의 정신으로 살아볼 생각이다. 오전엔 인터넷없이, 자기 전 시간엔 아애 컴퓨터 없이 지내볼까 한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중독'의 특징은 당시에는 '중독'이라고 못 느낀다는 것, 또 알더라도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것.
지난 주부터 점심 시간 일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오전에는 인터넷을 보지 않고, 그래서 아침먹을 때도 신문을 읽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어댑터까지 고장나서 한편 자발적으로 다른 한편 울며겨자먹기로 컴퓨터 특히 인터넷 사용을 줄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시각적 정보가 주는 그 즐거움, 재미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모든 감각기관을 동시다발적으로 적절하게 자극해 주는 그런... 언제부터인가 심지어 음악도 '보게' 되지 않았는가. 난 담백한 걸 좋아해서 컴퓨터도 최대한 슬림하고 소박한 상태로 나름 '최적화'해 놓고 있는데도 [한 가지, 프로그램은 가능한 최신 버전을 써야 만족하는 편이다. 그렇게 보면 뼈속 깊이 아날로그형 인간은 아닌 지도... 이런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끄적거리... 아니 틱틱거리고 있는 것도 하나의 반증이되겠지만... ],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컴퓨터나 인터넷, 영상매체의 '유혹'에 그동안 너무 많은 자리를 내 주었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반성하고 좀 더 문자적으로, 아날로그적으로, 그리고 흑백의 정신으로 살아볼 생각이다. 오전엔 인터넷없이, 자기 전 시간엔 아애 컴퓨터 없이 지내볼까 한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중독'의 특징은 당시에는 '중독'이라고 못 느낀다는 것, 또 알더라도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것.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무신론의 宗敎化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내년 1월부터 영국 런던의 버스에서 ‘무신론 광고’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종교계의 ‘불신지옥’(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이란 위협에 대한 무신론자들의 ‘맞불 광고’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신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인생을 즐기세요”라는 버스 광고(사진)를 내기 위한 모금이 21일 시작돼, 하룻만에 4만7900파운드가 걷혔다고 22일 보도했다. 애초 목표인 5500파운드의 9배가 넘는 금액으로, 4주 동안 버스 30대에 광고하려던 계획 또한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코미디 작가 애리언 셰린은 “전국 규모로 확대할 수도 있고, 지하철 광고나 다른 문구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누구보다 리차드 도킨스가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기사 아래 쪽에 언급되어 있다.
"베스트셀러 <만들어진 신>의 저자로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도 “이런 광고를 실으면 사람들은 생각을 해보게 될 것이다. 종교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추가로 5500파운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도킨스 교수는 종교계의 시내버스 광고에 빗대, “종교는 면세 혜택 등을 통해 ‘공짜 탑승’하는 데 익숙하다”며 “‘모욕’당해선 안 된다는 특권과 어린이들을 세뇌시킬 권리를 주장”하는 종교계를 비난했다."
이쯤되면 무신론'교'라고 불러도 크게 어색하지 않으리라. 재미있는 현상이다. 무신론이야 인류역사에서 늘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요새 무신론은 또 하나의 종교가되는 것 같다. 종교의 해악을 지적하는 것이 하나의 신앙이되는... 종교가 뭐 별건가. 천당/극락을 가르쳐야 종교라는 '편견'을 버린다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신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인생을 즐기세요”라는 버스 광고(사진)를 내기 위한 모금이 21일 시작돼, 하룻만에 4만7900파운드가 걷혔다고 22일 보도했다. 애초 목표인 5500파운드의 9배가 넘는 금액으로, 4주 동안 버스 30대에 광고하려던 계획 또한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코미디 작가 애리언 셰린은 “전국 규모로 확대할 수도 있고, 지하철 광고나 다른 문구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누구보다 리차드 도킨스가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기사 아래 쪽에 언급되어 있다.
"베스트셀러 <만들어진 신>의 저자로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도 “이런 광고를 실으면 사람들은 생각을 해보게 될 것이다. 종교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추가로 5500파운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도킨스 교수는 종교계의 시내버스 광고에 빗대, “종교는 면세 혜택 등을 통해 ‘공짜 탑승’하는 데 익숙하다”며 “‘모욕’당해선 안 된다는 특권과 어린이들을 세뇌시킬 권리를 주장”하는 종교계를 비난했다."
이쯤되면 무신론'교'라고 불러도 크게 어색하지 않으리라. 재미있는 현상이다. 무신론이야 인류역사에서 늘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요새 무신론은 또 하나의 종교가되는 것 같다. 종교의 해악을 지적하는 것이 하나의 신앙이되는... 종교가 뭐 별건가. 천당/극락을 가르쳐야 종교라는 '편견'을 버린다면...
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다른 場, 다른 의사소통 기술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모습은 왜 어느 하늘 아래에서나 다 비슷할꼬... 순한 사람, 강한 사람, 순한것 같은데 알고보면 만만하지 않은 사람, 센 척 하지만 알고보면 따뜻한 사람, 항상 인상쓰고 다니는 사람,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사람, 왠지 같이 있기 불편한 사람. 재미있는 건 상대가 보이는 반응에 내가 기여한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점. 나와 상대의 합작이다. 어쨌든... 아마 단순한 일로 얽힌 관계에서 사람을 판단할 때는 개인적 경험에서 얻게된 판단력에 의존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누구나 경험상 사람을 구분하는 나름대로의 판단틀을 가지게 되고, 그런 판단기준은 살면서 검증받고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예측가능성은 높아진다. (관상, 점쟁이들은 특히 그런 '감'에 의존한 사람판단에 숙련된 이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이라면 과학이다. 그것도 경험과학 ^^). 하지만 이같은 판단기준에 따른 사람평가의 성공률이 높은 삶의 영역은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 같다. 우선, 처리해야 할 커뮤니케이션 상황의 복잡성이 낮을수록 이런 '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는 작업장이나 혹은 스포츠 활동이 일어나는 운동장 같은 경우, 그 '場'을 지배하는 법칙이 매우 단순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놀거나 천천히 움직이면, 다른 사람이 더 일하거나 더 뛰어야 한다던지, 뭐 그런... 혹은 상대에 대해서 알고 싶은 혹은 알 필요가 있는 정보가 매우 단순하다거나.... 운동을 잘 한다/ 못한다, 나이, 독일체류기간, 결혼 여부 등, 고려할 것이 많은 의사소통 상황에서는 금기시되던 질문들이 여기 저기에서 날라든다.
일이 복잡해지거나, 의사소통의 내용이 복잡할수록, 제대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더 많아진다. 언어적, 비언어적 여러 수단을 통해야 하고, 한 번 꼬이면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언제가 썼듯이 이런 복잡한 의사소통의 場에서 인간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고도로 숙련된 언어능력과 대화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기술을 익히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 혹은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선 결정적인 경우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구두 의사소통과 비교할 때 문자 의사소통은 해석의 가능성을 급격하게 줄여준다. 그나마 고마운 일 아닌가?
진중권 교수는 구두문화와와 문자문화의 구분 도식을 가지고 한국의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데, 지나치게 단순하고 그냥 수긍하기엔 좀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참 설득력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합리화와 문자문화의 발달은 거의 동의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서 문자를 쓰던 역사는 수천년을 헤아리지만, 아쉽게도 문자로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하던 이들의 비율은 20세기 중반을 지날 때까지 매우 제한적이었다. 최최의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자랑만할 일도 아니다. 그런 활자로 고작 수십부의 책을 찍었을 뿐이니. 문자적 합리성이 채 자리잡기도 전에 그놈의 인터넷이 한국의 커뮤니케이션에 지나치게 중요한 역할을 넘겨 받았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비록 문자를 매개로 하지만 그 행태는 전형적인 구두문화의 그것이다. 진중권씨가 그런 점을 반복해서 지적하는데 난 아직도 그 주장에 대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일이 복잡해지거나, 의사소통의 내용이 복잡할수록, 제대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더 많아진다. 언어적, 비언어적 여러 수단을 통해야 하고, 한 번 꼬이면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언제가 썼듯이 이런 복잡한 의사소통의 場에서 인간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고도로 숙련된 언어능력과 대화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기술을 익히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 혹은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선 결정적인 경우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구두 의사소통과 비교할 때 문자 의사소통은 해석의 가능성을 급격하게 줄여준다. 그나마 고마운 일 아닌가?
진중권 교수는 구두문화와와 문자문화의 구분 도식을 가지고 한국의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데, 지나치게 단순하고 그냥 수긍하기엔 좀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참 설득력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합리화와 문자문화의 발달은 거의 동의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서 문자를 쓰던 역사는 수천년을 헤아리지만, 아쉽게도 문자로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하던 이들의 비율은 20세기 중반을 지날 때까지 매우 제한적이었다. 최최의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자랑만할 일도 아니다. 그런 활자로 고작 수십부의 책을 찍었을 뿐이니. 문자적 합리성이 채 자리잡기도 전에 그놈의 인터넷이 한국의 커뮤니케이션에 지나치게 중요한 역할을 넘겨 받았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비록 문자를 매개로 하지만 그 행태는 전형적인 구두문화의 그것이다. 진중권씨가 그런 점을 반복해서 지적하는데 난 아직도 그 주장에 대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