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7일 목요일

저자의 죽음, 인간의 죽음

"일찍이 스테판 말라르메는 시인이 언어를 소유해서 부리는 게 아니라 시인 자체를 언어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시인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인은 언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 자일 뿐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에서 텍스트에서 저자의 권위를 빼앗고 독자의 탄생을 선언한 바 있다. 그렇게 보면 시인이 시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완전한 시는 독자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말라르메가 언제적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르트라면 프랑스 구조주의 언저리에서 늘 언급되는 사람아닌가. 이런 진술이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다. '저자의 죽음' 얘길 읽으며 난 역시 그 구조주의 영향에서 씌여졌던 푸코의 '말과 사물' (1966) 말미의 '인간의 죽음 (혹은 사라짐)' 주장을 떠올린다. "man is an invention of recent date. And one perhaps nearing its end. If..., then one can certainly wager that man would be erased, like a face drawn in sand at the edge of the sea." (p.422). 물론 바르트가 얘기한 '저자의 죽음'의 논지가 '인간의 죽음 (혹은 사라짐)'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2008년 11월 18일 화요일

'총과 장미'의 '11월에 내리는 비'



.... Cause nothing lasts forever, and we both know hearts can change. And it's hard to hold a candle, in the cold November rain...

... So never mind the darkness. We still can find a way. Cause nothing lasts forever. Even cold November rain ...

Guns N' Roses - November Rain (1992)

2008년 11월 15일 토요일

한국 최초의 계급 정권: 2mb와 그 친구들

대학시절 맑시즘 정치이론의 핵심 테제인 계급투쟁, 노동자 계급 혁명을 얘기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얼마나 낯설어 보였는지... 그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러서 혁명 운운하는 소리는 후일담에서나 듣게 되었고, 그 많던 좌파들, 맑시스트들은 제도정치권으로, 시민운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허나 한국의 정당의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건 누구나가 쉽게 지적하는 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하질 않나, 진정한 좌파정당이라고 자부하는 민노당에는 '민족해방'(NL) 세력의 입지가 더 커졌다. 도대체 한국에서 좌파/우파, 진보/보수가 제대로 나뉘어본 적이 없다. 보수정부라고 얘기하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추, 김영삼 정권에서도 꽤 진보적이라고 할만한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었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된다. 의료보험도입, 과외금지, 고교평준화 같은 걸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보수/진보를 얘기하며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투덜거리게 된 건 사실 매우 행복한 고민이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독재/민주로 세상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재정권과 보수정권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때로는 독재정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대중의 눈치를 살피며 좀 더 평등지향적인 정책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은 신한국당 출신이지만 여전히 민주화 세력, 상대적으로 진보적 인사들을 많이 기용했고, 스스로 매우 대중추수적 입장을 지녔다. 그렇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선명한 보수정권, 계급 혹은 지지세력의 이익에 노골적으로 복무하는 정권은 2mb정권이 최초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재정권' 혹은 '3당야합' 같은 핸디캡 없이 출발했다는 점은 이 정권이 노골적으로 수도권, 건설족, 강부자등으로 대표되는 자신들의 지지핵심집단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참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인가.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가 종부세에 대해서 쓴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일부 인용한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큰 흐름에서 볼 때 우리 현대사는 끊임없는 발전과 진보의 역사였다. (...) 지난 10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보수적 정부가 집권해 왔지만, 진보의 도도한 흐름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한 진보적 개혁이 거의 모두 보수적 정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제도 등의 사회복지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전두환 정부 때였으며, 토지공개념이란 급진적 성격의 개혁안이 나온 것은 노태우 정부때였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는 굵직한 개혁이 이루어진 바 있다. 지금 이런 개혁안이 나왔다면 보수진영은 좌파의 책동을 막아야 한다고 난리를 쳐댔을 것임에 틀림없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좌파정책의 표상처럼 되어 있는 평준화교육을 도입한 사람이 바로 보수진영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평준화의 틀은 그 뒤를 이은 보수적 정부하에서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실정중 하나로 들먹여지는 대학입시 ‘삼불정책’의 기본골격도 실제로는 보수적 정부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유럽의 자기성찰: Can Europe produce an Obama?

한국에서는 흔히 '서구'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그 당사자들은 한묶음으로 묶이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서로를 구분하여 부르는 말이 신대륙과 구대륙. 이 구분은 주로 '신대륙' 사람들이 즐겨 쓰는 것 같다. '구대륙'사람들은 다시 대륙과 앵글로색슨으로 나누어 부르는 경우가 잣은 것 같다. 허나 이는 다시 '구대륙' 안에서도 대륙 사람들의 입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본토와 '바닷것'들을 구분하고, 그리고 그 '바닷것'의 영향권 아래서 만들어진 '미국' 도 그 편으로 편입시키고. 독일인들 오랫동안 타자를 '서구' 혹은 '선진국' 으로 불렀다. 독일 왼쪽에 있는 개명한 선진국들을 한편으로 부러워하고, 또 그들의 물질문명, 실증주의적 경향을 경멸하며... 이런 자아/타자구분법을 연구해도 재미있겠다. '오리엔탈리즘'이 대표적인 연구일텐데, 그 후 관련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온 것 같지 않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어제 본 신문 기사 하나를 소개하려다 그렇게 되었다. IHT 첫면, 헤드라인뉴스로 박힌 제목: "Can Europe produce an Obama?" 유럽과 미국의 관계, 그 역사는 참 복잡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현대 문명의 - 아름다운 그리고 추하기도한 - 꽃은 비록 유럽에서 싹트긴 했지만, 미국 땅에서 비로소 만개했다. 자본주의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20세기 초반 유럽 지성인들 중 미국 정치제도를 부러워한 사람들이 많았다 (토크빌, 맑스 베버가 대표적).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강력한 패권국가로 등장했지만, 동시에 국제 깡패짓을 많이 해서, 복지국가 체계를 정비해 가던 구대륙 사람들은 미국의 현실적 힘은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경박하게 날뛰는 미국 것들 은근히 무시하였다. 인종주의에 대해서도 그 뿌리는 유럽에 있지만 많은 유럽인들은 그동안 미국의 인종주의, 흑백갈등을 언급하며 그 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며 자신들의 상황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의 미국 무시는 이번 부시 정권 시기에 그 정점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다. 서유럽 국가들의 친미성향 정도를 조사해 본다면 상위권에서 내려 오지 않을 독일에서도 공공연하게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정치인들이 많았으니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이번 미대선에서 오바마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것도, 그리고 오바마 당선을 내 일인양 기뻐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터. 허나 공교롭게도 오바마가 당선되자 유럽인들은 자기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흑인을 미국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인들, 미국사회. 누구도 이렇게 쉽게 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IHT는 그런 '유럽'이 느끼는 당혹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국회의 경우 본토 출신 의원 중 흑인은 한 명이 있을 뿐이고, 영국에서는 하원 646명중 15명이 비백인. 8천2백만명 인구의 3%에 달하는 2백9십만이 터키계인 (독일 시민권자는 8십만명) 독일에서는 연방의원 613명 중 5명이 터키계라고 한다. 언제쯤 프랑스나 영국에서 흑인 대통령 혹은 수상이, 그리고 독일 같으면 터어키계 출신 수상이 뽑힐 수 있을까?
사실 수치로 보면 미국도 그리 나은 편은 아니다. 오바마는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이고, 이번에 새로 구성된 하원의원 중 흑인은 39명으로 약 9퍼센트라고. 미국인구 중 흑인이 13퍼센트라고 하니까...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그리고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대통령으로 흑인을 선택함으로서 미국인들은 그들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부시의 실정과 미국의 쇠락을 은근히 즐기던 이들에게 보기좋게 한 방 먹였다. 지난 수년 동안 부시와 미국 때리기를 즐기던 유럽인들은 이제 당분간 역사 앞에서 또 한 번 선수를 치고 앞서가는 미국을 부러워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IHT 기사 중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영국같은 의회제 아래에선 의외의 인물이 수장으로 뽑힐 기회가 훨씬 줄어든다는 것. "영국에선 오바마처럼 뛰어나게 연설을 잘 한다고 해서 주목을 받기는 힘듭니다. 의회에서 서열을 따라 커가야 하는 거지요" 영 노동부 장관의 말씀.]
이 시점에서 우리 '조국'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당선 이후,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자와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주장했다던 2MB와 청와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코미디와 비교를 불허하는 빼어난 수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코디미계, 개그계의 쾌거!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한국 코미디계는 앞으로 2MB가 접수한다.

ps) 지난 주말 독일 녹색당 전당대회에서 터키계 2세인 Cem Ozdemir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1994년 터키계 최초로 연방의회 의원이 되었고, 2004년 대단치 않은 스캔들로 유럽의회로 물러났었는데 이번에 국내정치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 "흑인최초..."를 달고 다녔던 오바마가 미대통령이 되었으니, 어쩌면 오즈데미르도 독일 수상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42살이라니 아주 불가능해보이지도 않고. Wer weiss...

2008년 11월 13일 목요일

'독립'의 의미론

'인문계' 쪽 출신들은 외우기에 능하는 전설 혹은 선입견이 전해져 온다. 하긴 인문계 시험에 외워서 치루는 과목의 비중이 높고, 인문계 출신들 성공의 지름길인 각종 '고시'의 당락도 대개 암기력에 좌우되는 것 같으니 아주 근거 희박한 주장도 아닐 터이다. 외우기를 잘 한다는 사태 그 자체는 판단중립의 영역일 것이나, 어디 그것을 판단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보자.
우선 한국 인문계열에서 요청되는 외우기 방식의 문제점은 그들이 외워야 하는 지식이 너무 편협하는 데에, 또 닥달 외운 지식이 더 종합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허나 정확한 지식에 기초하지 않은 채 후자만을 강조하다 보면 사변적인 말장난으로 귀결되기 쉽다는 점도 잊지말하야 한다. 인문사회과학의 엄밀성,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허나 역사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부터 함량미달이다. 예를 들어 다음에 인용할 史實.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일수호조약(1876)에서 청일전쟁(1894∼1895)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일관된 주장은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것이었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특수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조선 진출의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조선에서 '독립'의 주장은 '친일'과 그리 멀지 않은 것이었다. 독립문 현판을 '매국노' 이완용이 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독립'이라고 다 같은 '독립'이 아니었던 것. '독립'의 의미론. 이 멋진 주제를 누가 연구했을까?

인식의 전환

" '한국은 3면이 바다이고 70%가 산이어서 별로 뻗쳐나갈 데가 없는 데다, 석유 등 천연 자원도 별로 없기 때문에, 한국이 살 길은 '인재', 즉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활용해 수출을 많이 하는 길밖에 없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1968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한 이후 십여 년 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
삼면이 바다이고 70%가 산이란 것도 어떻게 잘 보면 고유의 소중한 천연자원이다. 이미 윤구병 선생이 <조그마한 내 꿈 하나> 및 <잡초는 없다>에서 지적한 바 있듯, 동, 서, 남쪽 바다에 온갖 해산물을 기르고 오염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만 한다면 '무한히' 해산물을 건져 올릴 수 있다. 또 70%의 풍부한 산에 온갖 좋은 나무를 심고 약초와 나물, 꽃을 심거나 길러 조심조심 활용하기만 해도 '엄청난' 산림자원과 먹을거리가 나온다. 삼면의 바다와 70%를 단점으로만 보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장점으로 만들려는 컨셉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
자원이 많은 나라는 제국주의 침탈로 오히려 시달림을 받는다는 '자원의 역설'까지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늘 타자의 장점을 부러워할 줄만 알았지 우리의 장점을 들여다볼 줄 몰랐다."


강수돌 교수의 얘기다. 흠. 흥미로운 얘기인데 좀 '소화'를 시킨 다음에라야 뭐라도 논평을 할 수 있겠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김교빈 선생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잠시 그것을 옮기면 우선 김교빈 선생은 인간이란 '3일을 굶으면 담장을 넘는' 그런 존재임을 설명했다. 물론 이 말 한마디 한 것은 아니고 물질 세계와 인간의 욕망에 대한 풀이가 이어졌다.

다음으로 덧붙인 것은, 그렇게 굶어 죽기 직전에 처한 인간에게 누군가 밥을 주면서, 정성껏 차리거나 그도 아니면 자기네들이 먹는 상에 숟가락 하나 더하여 같이 먹자고 하는 게 아니라, 먹다 남은 거 긁어 모아서 적선이라도 하듯이 내밀면 비록 사람이 3일을 굶었어도 '싫소, 나는 그거 먹지 않겠소' 하면서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을 택한다는 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억압적 현실이 비참한 상황을 강요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마땅히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그것이 진실로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실천 의식이라는 설명이었다
."

내가 여러 번 인용한 정윤수 블로그에 오늘 올라 온 얘기 중 일부다. 내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물질 (혹은 요즘식으론, 유전자) 환원론적 이해에 큰 매력을 못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고. 근대과학, 즉 실험과학 혹은 엄밀과학의 방법론으로 인생사, 세상사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 인문학, 사회이론의 존재감은 바로 그런 인식에서 주어지는 것 아닌가? 자연과학 흉내내서 얻은 것도 많지만, 이제 그 자연과학마저도 변하지 않는가 (cf. '통섭'논쟁). 인문학, 사회이론은 세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줘야할 시대적 사명까지 갖고 있는 것이다.

ps) 김교빈 교수가 호서대 '철학과' 교수였는데, 이 과의 이름이 '문화기획학과'로 바뀌었다고 한다. 코메디아닌가? 문화기획학교?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제부터인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소개되던데... 소리도 요란한 그 '문화의 과잉'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사회 '문화 빈곤'의 징표다. 2MB 일당이 각개 각층의 지원을 받아 활개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토양'말이다.

2008년 11월 12일 수요일

'더' 독해지기

기본적으로 여유있고 느슨하지만 나름 독하고 모진 면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뭐 그냥 저냥 만족한다. 내 얘기다. 허나 '자기만족'은 여러 면을 갖고 있다. 정신건강에 좋긴하지만, 동시에 현실안주, 현실정당화하기도 쉽다는 말씀. 그렇다고 내가 자기만족에만 도취되어서 사는 것만도 아니다. 며칠 전에 '악몽'에 대해서 쓰지 않았던가...
인생에서 '자기만족', '자존감'이 꼭 필요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시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아니, 기본적으로는 항상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허나,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선 곤란하고 스스로를 더 모질게 몰아붙여할 때도 있다. 현대사회의 비극은 이른 바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바로 그런 '때'가 쭈욱 이어진다는 데 있지만... 독일 체류 기간이 늘어날수록, 당연히, 추월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늘 그런 사례를 또 경험했다. 음... 혹자는 지금도 충분히 모질게 살고 있지 않느냐고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럴 근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아니다. 지금은 더 모질고, 독해져야 할 때다. '독한 사람'! 항상 긍정적인 뜻을 전달하려고 쓰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 같은 경우, 그 말은 순도 100% 칭찬이다.

ps) 초딩들 방학일기에나 어울릴 이런 '- 해야겠다'류 얘기를 - 몇 명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 남에게 읽으라고 내 놓기가 좀 '거시기'하지만, 그래도 떡하니 올려놓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나름 더 독해지기로 생각하고 결심한 바가 있지만 차마 그 내용까지 공개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그 방향은... 뭐겠는가, "논문에 집중하기"지. 특히 홀로 있는 시간에 논문 쓰는 일에 도움되지 않는 일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절제하기. 정신활동을 좀 단순하게 하고, 대신 운동 시간을 늘릴 것. 허나 블로그는 도움되는 정신활동으로 분류했으니 '염려'(?) 놓으시라. 무슨 근거로? 내 맘이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