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경제계, 예술계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융합, 통섭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발표 형식으로...).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은 얘기 요지를 한 번 적어본다.
융합, 통섭 얘기를 많이 하는데 - 심지어 실체는 없어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심광현) - 그 개념의 족보와 근본을 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융합'은 미국, EU 등에서 기술정책 차원에서 'converging technologies'의 중요성을 언급하던 얘기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런 식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 같다. '수렴 기술' 혹은 '통합 기술' 정도 되는 개념이다. 융합 개념 사용의 또 다른 계기는 '디지털 컨버저스'다. 방송과 통신이 수렴, 통합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그것을 디지털 '융합'으로 이해한 것. 이 경우는 수렴 현상이 실제로 두 요소의 '융합'을 가져오기 때문에 '융합'이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통섭'(統攝)은 미국 생물학자 Edward Wilson의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역자 최재천 교수가 원효 사상에서 가져다 쓴 말이다 (큰 줄기를 잡다는 뜻). Wilson은 생물학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학문을 제창하는데, '통섭' 개념을 쓰는 사람들은 그저 '학문간의 소통' 정도로 이해하고 쓰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뜻이라면 이전부터 쓰던 '학제간 연구'와 다르지 않은데도 아마 새롭게 들려서 선호하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융합'과 만나면서 '통섭'은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융합' '통섭'은 원래 맥락과는 다르게 해석되면서 유행을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융합의 또 다른 차원이 있다. 학문/과학/기술/대학과 경제, 예술 등 사회와의 융합이다. 상아탑적 과학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적극저극으로 수용하는 학문 활동.
기술 수렴, 학제간 연구, 학문과 사회의 관계가 밀접해지는 것. 이 모두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80년대 이후 계속 관찰되던 현상이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 '융합' '통섭' 같은 새로운 '개념'을 중심으로 그런 논의가 새로운 것처럼 등장하고 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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