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5일 화요일

이태리 부인의 사랑: 너무 친절하거나, 아니면 촌스럽거나 [아이 엠 러브 I am love (2009, Luca Guadagnino)]


거의 1년 만인가? 모처럼 영화 볼 기회를 얻었다 (이 표현에 유의하시길!ㅋ). 취향이 다른 탓에 몇몇 영화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I am love'로 합의를 보다. 이동진 씨의 극찬에다 좋은 평들이 많이 있어서 내심 기대를 하게 되었다. 상영하는 곳도 많이 없어서 광화문에까지 진출해야 했지만, 마침(!) 꽤 많은 눈이 내려서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서 나쁘진 않았다. 소감은 한 마디로 '실망'. 흠... 취향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이동진 씨가 그 정도로 찬사를 날릴 작품은 정녕코 아니었다. 느낌, 분위기,'급'도 딱 '하녀' 정도 되는 작품. 너무 도식적이랄까, 주제의식이 너무 선명하달까?
이태리 명문 기업가 가문으로 시집 온 러시아 여인. 각종 파티, 모임을 세련되게 치뤄내며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던 이 여인. 아들 친구인 요리사의 요리를 통해서 억눌렸던 자아를 발산하고 그로 인한 죽음, 갈등.. 그더가 갑자기 '엔딩'. 한편에 속물 같은 인물들, 다른 한편엔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는 인물.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주인공'. 너무 신파적이지 않은가? (제대로 읽거나 보진 않았지만) 하인과 사랑에 빠지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변강쇠'류에 등장하는 '마님 이야기'를 좀 고급스럽게 포장한 정도라고 얘기해도 좋을듯. 오랜 전통을 지닌 직물기업을 금융회사로 바꾸는 그런 설정도 너무 직설적이고, 그 와중에 등장하는 그 인도계 미국인 (미국 인디언이 아닌... 이 대화 장면에서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다)의 발언은 - 세계화 운운하는... - 무슨 우파 신문 사설 제목을 읽는 것 같았으니... '마님'과 요리사가 야외에서 원초적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햇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고, 그 '사랑' 장면과 교차되며 화면을 덮는 각종 풀과 곤충들은 또 얼마나 푸르던지... '하인'역 요리사는 시커먼 구렛나루를 하고 있고, 그 요리사는 우리 '마님'의 긴 머리를 햇볕 아래에서 시원하게 잘라낸다. 이런 직설적 메시지 투성이다. 물론 '이태리 장인' 솜씨가 어느 정도는 발휘가 되어서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는 아니었으나, 설정 자체는 무지막지하게 촌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부인' 씨리즈를 연상시키는 설정. 그리하여 난 이 영화 한국어 제목을 '이태리 부인의 사랑'이라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그처럼 밝고 푸른 산 속의 풍광은 밀라노의 우충충함과 어찌나 노골적으로 대조가 되던지.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연되었다고 한다. 그 일로 한국을 방문했던 감독 인터뷰를 보니 '임권택' 감독을 존경하다던데 역시 그 영향인지 우리의 이태리 '마님', 밀라노 주요 관광명소에 꼭 들러주는 센스를 발휘하시고, 그 요리사가 산다는 밀라노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의 풍광을 그냥 대놓고 자랑하더만 (이태리 관광공사 협찬을 받았나..ㅋㅋ). 복합적이고, 층이 겹겹이 쌓인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이런 도식적인 설정에다 노골적 주제 표출 방식은 매우 촌스럽게 보였다. 심지어 제목이 'I am love'다. 감독이 지나치게 친절한 편이거나, 아님 대놓고 촌스럽기도 작정했거나...
틸다 스윈튼 (Tilda Swinton)의 연기는 '물론' 기본 이상은 되지만, 시종일관 우울하고 진지해서 오히려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평면적이다. 주제가 무거울 때 가볍게 풀어내거나 적어도 그런 장치들이 몇 군데 있어야 할텐데... 그런 면에선 별로 친절하지 않은 영화!
이동진 씨는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무조건' 이 배우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썼던데, 글쎄 지명도와 51세라는 나이를 무릎쓰고 과감한 노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감투상' 정도를 줄 순 있겠지만 '여우주연상'이라... 물론 '작품상' 보다는 '여우주연상'에 더 가까운 영화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ps 1) 흥미로운 설정은 음식이 억눌려 있던 사랑, 욕망을 깨우는 '각성제' 혹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는 '매체'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식사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얼마나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지....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가 여럿 있다. '카모메 식당', '음식남녀',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등. 하지만 사랑의 매체, 본능을 깨우는 음식... 이런 설정은 글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오히려 '혀'라는 소설 '얘기'가 생각났다 (표절 논란이 있었던...). 먹는 혀, 사랑하는 혀...등등. '혀'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던...

ps 2) 국내에선 평이 칭찬 일색인 것 같은데 영어 리뷰를 찾아보니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시각도 있어서 반가웠다. 이 영화가 평론가들에게 매력적일 법하긴 하다. 일반 관객들이라면 쉽게 알아채지 못할 장치들이 있어서 간만에 전문가다운 식견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영화니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영화감상평 '시장'이 한 쪽으로만 치우쳤다는 점. 찬양 일색... 원래 한 쪽으로만 쏠리면 중심을 잡으려는 반발력이 발동하는 법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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