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인지... 비슷해 보이는 현상이 시차를 두고 관찰된다.
- 한 줌밖에 안되는 '넷'찌질이들의 배설 행위: 악플, 사이트 개설...
- 그걸 증폭시켜가면서 변냄새 나는 기사를 양산해대는 찌라시 언론들...
- 결론: 넷찌질이들과 찌질 언론들의 공생관계!!
그렇게 밀려드는 정보 쓰나미에서 그 정보 소비자들은 대부분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골라서 들을 뿐이다. 아니. 양산되는 정보는 대개 그렇게 소비될만한 내용들이다. 결국 이 죽음을 부르기 까지 하는 정보, 뉴스, 담론의 싸이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 감상을 기록해 두었던 영화 '킬 위드 미' (원제: Untraceable, 2008)가 생각난다. 익명성은... 대중심리, 군중심리는... 그렇게 무섭다. 인터넷 대중 파시즘...
김대중, 노무현을 뽑은 바로 그 대중이 이명박을 뽑았고 박정희를 그리워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은 아닐 텐데... 비교 연구가 있을 것도 같은데...
한국은 인구 수로 보면 결코 작은 나라는 아닌데 반도 (해방 이후 남한은 섬나라)이고 중국 중심 질서 속에서 나름 독자적 문화권을 유지해 온 탓인지 구성원들 사이에서 동질감, 공동체 의식이 유독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공동체 의식은 변형되긴 했지만 강력하게 살아 남았다. 아니 산업화가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공동체 의식을 또 한 번 변형시키고 있는 것 같다. 옛 시골마을에서 서로 숟가락 수까지 알던 그런 친밀한 관계가 넷 상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일방적이라는 점. 공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들은 - cerebrities - 한 번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면 거의 발가벗겨지다시피 까발겨진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장에서 그런 까발김을 걸러주는 장치들은 거의 없고 심지어 기성언론들은 짐짓 나무라는 척하면서 그 대열에 합류한다. 공공의 적 혹은 호기심의 대상을 앞에 두고 '호기심/관심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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