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읽은 김우창 교수 글에서 구체적 내용은 다 빠져 나가고 인상만이 남아 있다. 전형적인 근대주의자, 하버마스 류 도덕 선생 같다는... 주장이 너무 무르고 싱거워서 화끈한 것 좋아하는 한국 풍토에서 그런 입장이 크게 주목받긴 힘들 것 같다는... 대략 그 정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런 한계 때문에 그 분 인터뷰는 한겨레보다는 조선일보에서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긴 하다. 우연히 발견한 좀 묵은 인터뷰 (여기).
그 중에서 오늘 경험한 일과 관련해서 좀 남겨 두고 싶은 구절.
“사실성이 부족한 것이다. 상투화가 너무 심하다. 신춘문예 심사 때, 심사위원들이 원고를 들춰보는 사진을 연출한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심사위원들은 이미 원고를 다 검토하고 왔어야 한다. 그 자리에 와서야 원고를 들여다볼 리 있는가. 기사가 상투적이 되면, 사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을 방해한다. 예를 들면, 한국을 처음 찾은 서양인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서양인이 한국 문화에 푹 빠졌다고 쓰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그래... 그런 상투성... 언론 뿐 아니라 여기 저기에서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선 자주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언론의 상투성 사례는 무척 많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 배달되는 스포츠 신문이 셋인데, 연재만화를 챙겨보지 않은 이상 내용만으로 그 세 신문을 구별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다음 미디어, 네이버 뉴스, 야후 뉴스도 내용은 대동소이하고.... 일간지 쪽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적어도 여긴 두 집단으로 나뉘긴 한다. 한쪽에 한겨례, 경향이 있고 다른 쪽에 그 나머지들이 있고...
기자들의 상상력, 창의력 빈곤, 결핍을 원인으로 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들 언론 '고시'를 치루고 들어간 수재들, 선택된 엘리트들 아닌가. 아 물론 커뮤니케이션에서 상투화, 관례화, 제도화, habitus building, routinize... 등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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