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여보게 친구
살아있는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언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뺕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것 저것도 내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데는 티끌 하나도 못가지고 가는 법이라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치던 서산대사가 85세의나이로 운명하기 직전 읊은 시
얼마 전 한국 자살률 급증에 대한 사회학적인 설명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원래 크게 관심을 갖던 주제는 아니었는데 이 발표 덕분에 죽음, 자살, 노년 같은 주제에 대한 성찰, 담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종교인들에게 '죽음' 그리고 '죽음 그 이후'은 매우 민감한 주제다. 특정 종교 혹은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질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꺼내는 대표적 질문은 '오늘 저녁 당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닌가?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주류 기독교적 접근을 가지고 있다면 서산대사의 '고백'은 한가하기 그지 없게 들릴 것이다. 천국이 따로 없고, 극락이 따로 없다니...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주제다.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가벼움'에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가벼움을 한 번 따져봐야 할 거싱다. 우선 가벼움은 무거움이 지배적인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안된 전략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고안된... 이 때 가벼움은 풍자, 조롱으로 연결될 수 있다. 김어준이나 딴지, 나꼼수의 가벼움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든 가벼움이 그런 종류는 아닐 것이다. 태생적 가벼움, 원초적 가벼움도 충분히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벼움은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대개 무해한 것이라 무시하게 된다. 그 밖에 습관적 가벼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말꼬리잡거나 따지는 그런 류의... 이건 좀 악성에 가깝다. 불쾌함을 남기는 그런 가벼움이다.
같은 구조로 '무거움'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배고픈 사람이 우물을 파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많은 일 중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대부분 가치있는 일, 보람있는 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어떤 일이 더 가치있는 일이며 더 재미있는 일인가? 다행스럽게도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 자신이 선택한 일 혹은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다른 일이나 분야에 비해서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다른 일이나 분야는 결국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일이나 분야에 종속되는 것처럼 이해하고 그렇게 얘기한다. 그 얘긴 결국 다른 일, 분야 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그런 일, 분야는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근대의 특성이다. '자본주의' 같은 표현들은 이미 시장경제의 우세성을 얘기하는 대표적 표현이고, 그런 예들은 무수히 많다. 과학기술사회, 정보화사회, 바이오테크 시대, SNS 혁명, 인터넷 혁명, 공감의 시대, 위험사회, 평가사회, 지식사회 등등.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이라도 다녀 온 분들은 우리의 과소비 행태에 분개한다. 장애아를 둔 부모님은 정부 정책과 사회 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환자자를 가족으로 둔 이들은 환우운동에 나서기도 하고. 장애인도 마찬가지. 평생 그런 일에 몰두한다. 시민운동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서울시장에 당선되기도 한다. 통일운동, 노동운동은 또 어떤가. 황우석는 그처럼 망가지고서도 여전히 복제에 몰두하는 집념을 보이기도 한다. 뭔가에 꽂힌 사람들은 그렇다. 세상을 '필'이 꽂힌 그 지점을 중심으로 보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해야지. 물론 부정적 결과를 가져 올 일들에 필이 꽂힌 이들은 감사의 대상에서 제외해야겠지만. 아니 시야를 넓혀보면 그들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악이 있어야 선이 의미를 갖게 되니까. 가롯유다도 필요하지 않은가. 여하튼... 그렇게 필이 꽂힌 이들이 각자 그들의 자리에서 일을 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세상은 어울려 돌아가는 거다. 배고픈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그 우물 파는 일을 못마땅해 하던 사람들도 우물을 파 놓으면 한 바가지 얻어먹을 수도 있는 일이고. 다만 다른 곳에서 다른 우물을 파는 사람들을 이해못하겠다는 시선으로 쳐자보지만 않으면 된다.
자, 그럼 그대는 어디에서 어떤 우물을 팔 참인가?
자, 그럼 그대는 어디에서 어떤 우물을 팔 참인가?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어제 어떤 학술모임에 참여했다 '공간'의 의미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공동체' 얘기였다.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복지, 보건 등 여러 서비스들이 대개 분산되어 있는데, 결합,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근대성의 특징은 분산, 분화다. 일과 여가가 분리되고,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고, 삶과 죽음이 분리되고, 기능체계들이 서로 분화하고... 그런 저런 분화는 공간적 분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근대적 공간 재배치의 대표적 방향이 도시화다. 주거로는 아파트. 등등. 그런 분화, 분리가 그 이전 문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물질적 풍요로움, 개성의 발현 등등. 하지만 근대의 가을을 맞으면서 근대화의 풍요로움 뒷편의 그림자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대부분 그 문제들을 해결 방식은 여전히 근대적이다. 즉, 개별적이고 분리되어 있다. 예컨대, 문제 혹은 현상 하나에 대책 하나 같은 방식...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에만 몰두하는 조직, 의료서비스만 제공하는 조직, 특수교육만 시키는 조직 등의 분화. 혹은 저출산 대책, 자살률 증가에 대한 대책, 장애 인식 개선, 양성평등 인식 개선 등등 같은 특정 현상에 대한 대책들) 그런 분화된 서비스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다. 그런 분리, 인간의 소외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구조가 도시다. 특히 대도시... 물론 대도시 자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뭉친 것은 아니다. 대도시의 장점이 많이 있다. 익명성, 자유로운 공기 등등. 다시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서,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해서,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쉽지 않다. 근대의 장점을 버리지 않으면서, 근대의 문제를 해결, 극복하려는 시도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도시 내 공동체, 재택근무 등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근대성의 특징은 분산, 분화다. 일과 여가가 분리되고,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고, 삶과 죽음이 분리되고, 기능체계들이 서로 분화하고... 그런 저런 분화는 공간적 분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근대적 공간 재배치의 대표적 방향이 도시화다. 주거로는 아파트. 등등. 그런 분화, 분리가 그 이전 문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물질적 풍요로움, 개성의 발현 등등. 하지만 근대의 가을을 맞으면서 근대화의 풍요로움 뒷편의 그림자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대부분 그 문제들을 해결 방식은 여전히 근대적이다. 즉, 개별적이고 분리되어 있다. 예컨대, 문제 혹은 현상 하나에 대책 하나 같은 방식...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에만 몰두하는 조직, 의료서비스만 제공하는 조직, 특수교육만 시키는 조직 등의 분화. 혹은 저출산 대책, 자살률 증가에 대한 대책, 장애 인식 개선, 양성평등 인식 개선 등등 같은 특정 현상에 대한 대책들) 그런 분화된 서비스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다. 그런 분리, 인간의 소외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구조가 도시다. 특히 대도시... 물론 대도시 자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뭉친 것은 아니다. 대도시의 장점이 많이 있다. 익명성, 자유로운 공기 등등. 다시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서,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해서,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쉽지 않다. 근대의 장점을 버리지 않으면서, 근대의 문제를 해결, 극복하려는 시도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도시 내 공동체, 재택근무 등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고...
2011년 11월 1일 화요일
premodern - modern - postmodern
'근대' '근대성'에 대해서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워낙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We have never been modern"이란 얘기도 있으니까... 그래도 난 위의 저 매우 도식적인 저 도식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저런 도식에 기초해서 한국의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특히, 서양의 장점, 단점과 비교할 때) 우리는 그 현상의 발생 원인을 한국 사회가 덜 근대적이기 때문이라거나 아니면 탈근대적이기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전근대성과 탈근대성의 만남!
그렇게 본다면 전근대적인 현상으로 볼 것인간 아니면 탈근대적인 현상으로 볼 것인가 이 두 입장 중에서 어떤 것을 취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부정적으로 비치는 사건들은 대개 전근대성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근대화에 박차를 더 가하면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고... 탈근대성으로 설명하면 사정은 정반대가 된다. 한국의 상황은 이제 선진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물론 탈근대성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찰적 근대화' 논의 참고). 체계이론에도 그런 견해들이 있다. 분화의 결과라는...
'근대' '근대성'에 대해서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워낙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We have never been modern"이란 얘기도 있으니까... 그래도 난 위의 저 매우 도식적인 저 도식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저런 도식에 기초해서 한국의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특히, 서양의 장점, 단점과 비교할 때) 우리는 그 현상의 발생 원인을 한국 사회가 덜 근대적이기 때문이라거나 아니면 탈근대적이기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전근대성과 탈근대성의 만남!
그렇게 본다면 전근대적인 현상으로 볼 것인간 아니면 탈근대적인 현상으로 볼 것인가 이 두 입장 중에서 어떤 것을 취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부정적으로 비치는 사건들은 대개 전근대성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근대화에 박차를 더 가하면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고... 탈근대성으로 설명하면 사정은 정반대가 된다. 한국의 상황은 이제 선진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물론 탈근대성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찰적 근대화' 논의 참고). 체계이론에도 그런 견해들이 있다. 분화의 결과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