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여보게 친구
      살아있는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언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뺕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것 저것도 내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데는 티끌 하나도 못가지고 가는 법이라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치던 서산대사가 85세의나이로 운명하기 직전 읊은 시

얼마 전 한국 자살률 급증에 대한 사회학적인 설명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원래 크게 관심을 갖던 주제는 아니었는데 이 발표 덕분에 죽음, 자살, 노년 같은 주제에 대한 성찰, 담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종교인들에게 '죽음' 그리고 '죽음 그 이후'은 매우 민감한 주제다. 특정 종교 혹은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질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꺼내는 대표적 질문은 '오늘 저녁 당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닌가?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주류 기독교적 접근을 가지고 있다면 서산대사의 '고백'은 한가하기 그지 없게 들릴 것이다. 천국이 따로 없고, 극락이 따로 없다니...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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