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많은 일 중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대부분 가치있는 일, 보람있는 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어떤 일이 더 가치있는 일이며 더 재미있는 일인가? 다행스럽게도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 자신이 선택한 일 혹은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다른 일이나 분야에 비해서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다른 일이나 분야는 결국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일이나 분야에 종속되는 것처럼 이해하고 그렇게 얘기한다. 그 얘긴 결국 다른 일, 분야 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그런 일, 분야는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근대의 특성이다. '자본주의' 같은 표현들은 이미 시장경제의 우세성을 얘기하는 대표적 표현이고, 그런 예들은 무수히 많다. 과학기술사회, 정보화사회, 바이오테크 시대, SNS 혁명, 인터넷 혁명, 공감의 시대, 위험사회, 평가사회, 지식사회 등등.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이라도 다녀 온 분들은 우리의 과소비 행태에 분개한다. 장애아를 둔 부모님은 정부 정책과 사회 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환자자를 가족으로 둔 이들은 환우운동에 나서기도 하고. 장애인도 마찬가지. 평생 그런 일에 몰두한다. 시민운동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서울시장에 당선되기도 한다. 통일운동, 노동운동은 또 어떤가. 황우석는 그처럼 망가지고서도 여전히 복제에 몰두하는 집념을 보이기도 한다. 뭔가에 꽂힌 사람들은 그렇다. 세상을 '필'이 꽂힌 그 지점을 중심으로 보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해야지. 물론 부정적 결과를 가져 올 일들에 필이 꽂힌 이들은 감사의 대상에서 제외해야겠지만. 아니 시야를 넓혀보면 그들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악이 있어야 선이 의미를 갖게 되니까. 가롯유다도 필요하지 않은가. 여하튼... 그렇게 필이 꽂힌 이들이 각자 그들의 자리에서 일을 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세상은 어울려 돌아가는 거다. 배고픈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그 우물 파는 일을 못마땅해 하던 사람들도 우물을 파 놓으면 한 바가지 얻어먹을 수도 있는 일이고. 다만 다른 곳에서 다른 우물을 파는 사람들을 이해못하겠다는 시선으로 쳐자보지만 않으면 된다.
자, 그럼 그대는 어디에서 어떤 우물을 팔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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