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1일 화요일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모처럼 다시 달리다. 지난 번처럼 약 16km. 헌데 시간을 단축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좀 더 걸렸다. 마지막 약 3km 정도는 발이 어찌나 무거운지 한 발 한 발 옮기기가 힘들었고... 그래도 후유증은 좀 덜 한 것 같다. 아마 오늘은 지하철역의 계단을 지난번처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진 않아도 될 듯. 그리고 한 가지 더 좋은 소식은... 드디어 수영장이 다시 열렸다는 것. 공사때문에 한 달 이상 닫는 통에 내 운동 스케쥴에 큰 차질이 빚어졌었는데... 이제 달리지 않는 날은 수영을 할 것이고 그럼 달리기에도 가속도가 붙을 거라 생각한다.
그밖에 이런저런 자질구레 한 일들이 한동안 날 괴롭혔는데 이제 다 떨쳐냈고 - 적어도 - 당분간은 좀 자유롭게 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래도... 오늘만큼은 좀 일찍 가련다. 온 몸이...ㅠㅠ
그밖에 이런저런 자질구레 한 일들이 한동안 날 괴롭혔는데 이제 다 떨쳐냈고 - 적어도 - 당분간은 좀 자유롭게 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래도... 오늘만큼은 좀 일찍 가련다. 온 몸이...ㅠㅠ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약 1시간 40분에 걸쳐서 약 16km를 뛰다. 2월에 참가할 마라톤 대회 준비겸, 달리는 거리를 늘려 나가고 있다. 지난 번 약 14km를 뛰고 난 후엔 별 이상이 없었는데, 오늘은 한 쪽 무릎이 약간 아프다. 이번 대회 목표는 하프마라톤 코스 2시간 내 완주하는 것.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준비해 나간다면 가능한 시간이다. 마라톤 스승이기도 한 선배는 잘 뛴다고 연신 칭찬이다. 글쎄... 기록으로만 보면 그런 얘기 들을 정도는 아닌건 분명한데, 제대로 뛴 건 몇 번되지도 않은 달리기 이력을 생각하면...
조금만 더 있다 퇴근해야지. 지금 선배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올드' 팝이다. 80년대 노래니... Foreigner의 I Want To Know What Love Is
조금만 더 있다 퇴근해야지. 지금 선배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올드' 팝이다. 80년대 노래니... Foreigner의 I Want To Know What Love Is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2012년 1월 9일 월요일
"Friendship is one of the greatest gifts a human being can receive. (...) It is a bond stronger than sexual union can create; deeper than a shared fate can solidify, and it can be even more intimate than the bonds of marriage or community." (H. Nouwen)
오늘 아침 이 구절을 읽고서 우정과 사랑이 구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물론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었고, 또 구분되거나 구분되지 않거나 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 주제에 대해 쓴 매우 흥미로운 글을 찾았다 (출처). 이송희일이라는 독립영화계에서는 꽤 유명한 감독이 쓴 글인 것 같다. 잠시 찾아보니 전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고 알려주네. 감독의 비주류 성적 지향성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가 감독을 참여했던 영화 9편이 있(다고하)는데 그 중 유일하게 '탈주' (2009)를 (대략이지만) 봤다. 강한 인상을 남기진 않았다. 여하튼 이 얘기를 페북에 올릴까 하다가, 아주 어린 페북 '친구들'이 있다는 떠 올리고선 여길 선택했다.
요지는... 性化된 사랑 이해, 강제적인 이성애 사회, '성욕'을 기준으로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는 경향에 반대, 우정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정도 되겠다. 물론... 사랑과 우정을 말끔하게 정의하거나 구분하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나우엔 선생은 내가 본인 얘기를 이런 주제로 연결시켰다는 데 대해서 분개할 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만 가져 오면..
"<수상록>을 집필한 16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몽떼뉴. 그와 그의 친구 라 보에시와의 깊은 우정 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상적 모델로써 누누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로 단단히 뭉쳐 있고, 너무나 열렬한 애정으로 각자의 오장육부까지 서로 드러내놓고, 똑같은 애정으로 서로 살펴주고……." 라 보에시에 대한 돈독한 애정을 자신의 <수상록> 지면을 빌려 허심탄회 펼쳐 보이는 우리의 몽떼뉴. 그러나 세간에서 들려올지도 모르는 이상야릇한 괴담들을 지레 입막음하기 위해 그는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자신들의 우정관계는 그리스식 동성애와는 하등 상관이 없거니와, 더 나아가 그러한 '방종한 사랑'은 실컷 욕을 얻어 먹어도 싸다는 것이 바로 몽떼뉴가 내세운 방어책이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그리스식 동성애와 자신의 지고지순한 우정을 가름하는 기준은 '성욕'이었다. (...) 동성애 관계까지도 측정했던 몽떼뉴의 잣대는 우리에게 우정의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다. 진정한 우정 = 타인에 대한 극진한 사랑에서 '성욕'을 뺀 나머지. 상대방이 친구이냐 연인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바로 '성욕'의 여부인 셈이다."
"필립 아리에스와 같은 현대의 명망있는 역사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과거에 비해 우정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성애자의 등장을 이 우정의 쇠퇴와 결부짓는다. 사람들이 과거에 타인들과 나누었던 그 결속력있던 친밀 관계가 무너지고 성적인 관계만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살아있는 전설 이반 일리치는 중세 시대에 친구들이 서로 교환했던 서신 내용을 호모들의 구애로 왜곡 해석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며 '우정의 사회'를 복원시켜야 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핵심적인 것들을 빠뜨리고 있다. 우정의 쇠퇴는 사회 구조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공장과 가정, 자본주의 출현 이래 획일적으로 분리된 이 두 개의 축 사이에 우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낮에는 밥값을 벌기 위해 일하러 가야 하고 밤에는 노곤한 육체를 쉬기 위해 처자식이 있는 있는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단조롭기 짝이 없는 생활 속에서 과연 우정이 꽃피워질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돈과 결혼을 두 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 획일적 사회에서 친구의 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퓨필라는커녕, '집과 직장 사이에는 카스 맥주가 있다'라는 지하철 광고판 따위나 지겹게 들여다 봐야 하는 처지일 뿐이다.
강제적인 이성애 사회는 분명 우정에 적대적인 시스템이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이 사회 시스템은 친구와 한담을 나누거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몇 공간을 제외하고 가정 외에 정서적 친밀감을 쏟을 수 있는 장소를 할애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 한 걸음 더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스포츠 동우회나 알량한 반상회 따위의 모임들을 조직할 따름이다.
동성애자의 등장을 우정의 쇠퇴와 연관짓는 것은 너무도 섣부른 판단이다. 19세기부터 등장한 동성애 공동체는 이성애 사회에서 잃어버린 우정을 구걸하기 위해, 혹은 성적 관계만을 우선시하여 모인 집합체가 아니다. 끝에 가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도리어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우정의 형태를 제시해주고 있다."
"사랑과 우정은 다르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결혼-가족 제도가 공고화되는 15세기부터 결혼의 순수성을 보증받기 위해 복잡다양한 사귐의 표현인 '우정'보다 남녀 합일의 '사랑'을 우위에 둔 영향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둘의 감정이 마치 칼로 날카롭게 베어지듯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동성애자들 역시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성애자와는 단지 성적 대상이 다를 뿐이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그대를 정열적으로 소유하고 싶다'. 이 정열적 소유에 성적 관계가 포함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에게 사랑의 대상은 오로지 단수單數이어야 하지 복수複數이어선 안 된다. 그만큼 사랑의 개념은 성화性化되어 있다."
오늘 아침 이 구절을 읽고서 우정과 사랑이 구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물론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었고, 또 구분되거나 구분되지 않거나 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 주제에 대해 쓴 매우 흥미로운 글을 찾았다 (출처). 이송희일이라는 독립영화계에서는 꽤 유명한 감독이 쓴 글인 것 같다. 잠시 찾아보니 전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고 알려주네. 감독의 비주류 성적 지향성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가 감독을 참여했던 영화 9편이 있(다고하)는데 그 중 유일하게 '탈주' (2009)를 (대략이지만) 봤다. 강한 인상을 남기진 않았다. 여하튼 이 얘기를 페북에 올릴까 하다가, 아주 어린 페북 '친구들'이 있다는 떠 올리고선 여길 선택했다.
요지는... 性化된 사랑 이해, 강제적인 이성애 사회, '성욕'을 기준으로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는 경향에 반대, 우정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정도 되겠다. 물론... 사랑과 우정을 말끔하게 정의하거나 구분하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나우엔 선생은 내가 본인 얘기를 이런 주제로 연결시켰다는 데 대해서 분개할 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만 가져 오면..
"<수상록>을 집필한 16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몽떼뉴. 그와 그의 친구 라 보에시와의 깊은 우정 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상적 모델로써 누누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로 단단히 뭉쳐 있고, 너무나 열렬한 애정으로 각자의 오장육부까지 서로 드러내놓고, 똑같은 애정으로 서로 살펴주고……." 라 보에시에 대한 돈독한 애정을 자신의 <수상록> 지면을 빌려 허심탄회 펼쳐 보이는 우리의 몽떼뉴. 그러나 세간에서 들려올지도 모르는 이상야릇한 괴담들을 지레 입막음하기 위해 그는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자신들의 우정관계는 그리스식 동성애와는 하등 상관이 없거니와, 더 나아가 그러한 '방종한 사랑'은 실컷 욕을 얻어 먹어도 싸다는 것이 바로 몽떼뉴가 내세운 방어책이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그리스식 동성애와 자신의 지고지순한 우정을 가름하는 기준은 '성욕'이었다. (...) 동성애 관계까지도 측정했던 몽떼뉴의 잣대는 우리에게 우정의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다. 진정한 우정 = 타인에 대한 극진한 사랑에서 '성욕'을 뺀 나머지. 상대방이 친구이냐 연인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바로 '성욕'의 여부인 셈이다."
"필립 아리에스와 같은 현대의 명망있는 역사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과거에 비해 우정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성애자의 등장을 이 우정의 쇠퇴와 결부짓는다. 사람들이 과거에 타인들과 나누었던 그 결속력있던 친밀 관계가 무너지고 성적인 관계만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살아있는 전설 이반 일리치는 중세 시대에 친구들이 서로 교환했던 서신 내용을 호모들의 구애로 왜곡 해석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며 '우정의 사회'를 복원시켜야 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핵심적인 것들을 빠뜨리고 있다. 우정의 쇠퇴는 사회 구조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공장과 가정, 자본주의 출현 이래 획일적으로 분리된 이 두 개의 축 사이에 우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낮에는 밥값을 벌기 위해 일하러 가야 하고 밤에는 노곤한 육체를 쉬기 위해 처자식이 있는 있는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단조롭기 짝이 없는 생활 속에서 과연 우정이 꽃피워질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돈과 결혼을 두 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 획일적 사회에서 친구의 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퓨필라는커녕, '집과 직장 사이에는 카스 맥주가 있다'라는 지하철 광고판 따위나 지겹게 들여다 봐야 하는 처지일 뿐이다.
강제적인 이성애 사회는 분명 우정에 적대적인 시스템이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이 사회 시스템은 친구와 한담을 나누거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몇 공간을 제외하고 가정 외에 정서적 친밀감을 쏟을 수 있는 장소를 할애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 한 걸음 더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스포츠 동우회나 알량한 반상회 따위의 모임들을 조직할 따름이다.
동성애자의 등장을 우정의 쇠퇴와 연관짓는 것은 너무도 섣부른 판단이다. 19세기부터 등장한 동성애 공동체는 이성애 사회에서 잃어버린 우정을 구걸하기 위해, 혹은 성적 관계만을 우선시하여 모인 집합체가 아니다. 끝에 가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도리어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우정의 형태를 제시해주고 있다."
"사랑과 우정은 다르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결혼-가족 제도가 공고화되는 15세기부터 결혼의 순수성을 보증받기 위해 복잡다양한 사귐의 표현인 '우정'보다 남녀 합일의 '사랑'을 우위에 둔 영향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둘의 감정이 마치 칼로 날카롭게 베어지듯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동성애자들 역시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성애자와는 단지 성적 대상이 다를 뿐이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그대를 정열적으로 소유하고 싶다'. 이 정열적 소유에 성적 관계가 포함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에게 사랑의 대상은 오로지 단수單數이어야 하지 복수複數이어선 안 된다. 그만큼 사랑의 개념은 성화性化되어 있다."
2012년 1월 7일 토요일
오늘 일기
토요일, 모처럼 종일 집에서 머물고 있다. 몇 개월 전부터 토요일이면 치과에 가는 날이 많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고... 도서관에 갈까 하다가 자리가 좁은 것도 걸렸지만 특히 오늘처럼 추운 날은 과도한 난방때문에 건조할 게 분명해서... 모처럼 청소를 하고, 가습기도 틀어 놓고, 클래식 방송도 들으며 '자살' 얘기를 쓰고 있다.
사람이 일만 하며 살 수 있나... 하여 조금 전엔 오래 전에 '확보'해 둔 '북촌방향'을 봤다. 처음에 좀 지루한 듯 했으나, 왠걸... 보고 나니 깊은 울림이... 홍상수 감독은 역시 천재다. 그 양반과 동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건 축복이다, 축복...
다행히 '일'에도 진전이 있다. 자살 얘기를 풀 때 늘 걸리는 게 '자살률' 통계이다.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보려 했으나, 그러다보니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얘기에 한계가 있고 나마저도 '자살률'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 초점을 과감하게 옮기기로... 자살과 사회통합이라는 전통적 주제를 재해석하기로 함. '통합'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소개하면서...
자, 저녁시간까지 한 번 해 보자구.
토요일, 모처럼 종일 집에서 머물고 있다. 몇 개월 전부터 토요일이면 치과에 가는 날이 많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고... 도서관에 갈까 하다가 자리가 좁은 것도 걸렸지만 특히 오늘처럼 추운 날은 과도한 난방때문에 건조할 게 분명해서... 모처럼 청소를 하고, 가습기도 틀어 놓고, 클래식 방송도 들으며 '자살' 얘기를 쓰고 있다.
사람이 일만 하며 살 수 있나... 하여 조금 전엔 오래 전에 '확보'해 둔 '북촌방향'을 봤다. 처음에 좀 지루한 듯 했으나, 왠걸... 보고 나니 깊은 울림이... 홍상수 감독은 역시 천재다. 그 양반과 동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건 축복이다, 축복...
다행히 '일'에도 진전이 있다. 자살 얘기를 풀 때 늘 걸리는 게 '자살률' 통계이다.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보려 했으나, 그러다보니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얘기에 한계가 있고 나마저도 '자살률'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 초점을 과감하게 옮기기로... 자살과 사회통합이라는 전통적 주제를 재해석하기로 함. '통합'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소개하면서...
자, 저녁시간까지 한 번 해 보자구.
2012년 1월 5일 목요일
2012년 1월 3일 화요일
2012년을 맞이해서 블로그 디자인을 좀 바꿔보려 했으나 그 어떤 변화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이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금 있는 사무실이 다 좋은데 - 요즘 에너지 절약 때문에 호들갑이라 실내 온도가 낮은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 조용한 가운데 한 사람이 통화를 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신경이 쏠리는 점이 옥의 티다. 방금도 그런 경우였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심리적인 내 공간을 만들어 본다. 선택된 곡은 바흐의 첼로 조곡(Suites). 언제부턴가 복잡하고 웅장한 교향곡보다 이런 솔로 곡이 훨씬 좋다. 음. 조금 전에 통화가 끝났다. 벗어도 되려나... 아니. 그냥 음악 들으며 쓴다. 그새 커피도 한 잔 타 왔다. 원두커피가 다 떨어져서 다방 커피로다가...
연말 연시를 보내며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마음이 아주 편하진 않다. 마음이 그런 탓인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오늘도 그럴 일들이 몇 가지 있었고...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빨리 끝내야 하고, 논문을 제 궤도 위로 다시 올려 놓아야 하고, 지도교수에게 연락을 취해 보아야 하고...
한동안 운동을 쉬었더니 몸이 좀 망가졌다. 오늘부터 다시 훈련에 들어간다. 달리기로... 2월 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했다. 이번엔 하프! 그 대회를 준비해야 하고, 다음 주부터는 수영도 함께 할 생각.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건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렸다. 유물론자들이 들으면 피식 웃을 소리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영적인 문제에 가깝다.
첼로 소리가 깊고 씩씩하다. 거침이 없다. 그래. 두 눈 부릎뜨고, 씩씩하게 제 갈 길을 달려가는 거다.
한 동안 페이스북에 열중했는데 당분간은 이 곳을 좀 더 가꿔 볼 생각이다. 그 곳만의 장점도 없진 않으나 무엇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낙거리는 탓에 산만하다. 산만함으로 따지자면 트위터는 한 술 더 뜨는데 그곳은 그냥 정보를 얻는 창구 정도로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있는 사무실이 다 좋은데 - 요즘 에너지 절약 때문에 호들갑이라 실내 온도가 낮은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 조용한 가운데 한 사람이 통화를 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신경이 쏠리는 점이 옥의 티다. 방금도 그런 경우였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심리적인 내 공간을 만들어 본다. 선택된 곡은 바흐의 첼로 조곡(Suites). 언제부턴가 복잡하고 웅장한 교향곡보다 이런 솔로 곡이 훨씬 좋다. 음. 조금 전에 통화가 끝났다. 벗어도 되려나... 아니. 그냥 음악 들으며 쓴다. 그새 커피도 한 잔 타 왔다. 원두커피가 다 떨어져서 다방 커피로다가...
연말 연시를 보내며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마음이 아주 편하진 않다. 마음이 그런 탓인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오늘도 그럴 일들이 몇 가지 있었고...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빨리 끝내야 하고, 논문을 제 궤도 위로 다시 올려 놓아야 하고, 지도교수에게 연락을 취해 보아야 하고...
한동안 운동을 쉬었더니 몸이 좀 망가졌다. 오늘부터 다시 훈련에 들어간다. 달리기로... 2월 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했다. 이번엔 하프! 그 대회를 준비해야 하고, 다음 주부터는 수영도 함께 할 생각.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건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렸다. 유물론자들이 들으면 피식 웃을 소리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영적인 문제에 가깝다.
첼로 소리가 깊고 씩씩하다. 거침이 없다. 그래. 두 눈 부릎뜨고, 씩씩하게 제 갈 길을 달려가는 거다.
한 동안 페이스북에 열중했는데 당분간은 이 곳을 좀 더 가꿔 볼 생각이다. 그 곳만의 장점도 없진 않으나 무엇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낙거리는 탓에 산만하다. 산만함으로 따지자면 트위터는 한 술 더 뜨는데 그곳은 그냥 정보를 얻는 창구 정도로 생각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