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0일 목요일

4.9. 총선을 지켜보며

18대 국회 구성을 위한 선거가 어제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일로 선거율이 역대 최저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46%란다. 이건 한 마디로 민주주의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지금 당장은 선거결과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느라 바쁘겠지만, 앞으로 이 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한국 정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이다가, 선거만 끝나면 다시 그들의 정치, 그들끼리의 싸움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 일단 뽑힌 이상 "선거율 최저" 이거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 사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한, 아무리 신당창당, 복당, 이합집산 등을 통해 정치권이 재편된들 그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 발전과 상관없는 그들만의 게임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될 것 같다. 나의 경우 슬픈 예감이 틀린 적이 별로 없다.
선거 결과과 놓고 보면 우선 최악의 결과는 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 의석이 200석에 육박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153석으로 과반을 겨우 넘겼으니 말이다 (전체 의석수 299). 물론 세계정당사에 꼽힐 코미디로 남을 '친박연대'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이들이나, 무소속 당선자들이 대겨 한나라당으로 복당할 것임에 분명하니까, 지금보다 더 몸집이 큰 공룡정당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81석을 얻은 것 나름 선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골고루 의석을 얻은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서울 내 총 48개 선거구 가운데 한나라당 후보들이 40곳을 석권했고 민주당이 7석 밖에 얻지 못했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나머지 하나는 문국현씨에게 돌아감). 강남에서 시작된 서울의 보수화가 서울 전역에 확대된 것일까. 노무현 정권때 지방분권화, 수도이전에 대한 반사작용인지 서울 이기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생겨나는 건 아닌가. 지난 대선 때 분명히 드러난 '서울 지역주의' 경향이 분명해 지고 있음을 이번 총선이 확인해주고 있다. 경상도/전라도 등 지역주의가 옅어져 가고, 민주화나 정권 심판과 같은 큰 이슈도 없고, 또 서울에서 태어난 세대들이 많아지면서, 확실히 서울 민심이 예전과 다르다. 어쩌면 서울 전체가 하나의 기득집단화되는 건 아닌지. 뉴타운과 특목고 공약 '약발'이 먹혔다는 분석이 있다.
안타까운 일은 민노당의 약세, 진보정당의 증발로 표현되는 진보세력의 후퇴다 . 그나마 민노당은 최소한의 의석은 확보했으나 (5석), 진보신당의 두 스타, 노회찬, 심상정이 떨어진 것은 못내 아쉽다. 그 정도 인물은 당선되야 하는 것 아닌가? 정당지지율도 2.94%에 머물러 0.06% 차이로 비례대표도 확보하지 못하다니, 참 운도 없다. 노회찬이 대표적 '어륀지족' 홍정욱에게 떨어진 것, 그것도 이른 바 서민층이 이 산다는 노원구에서. 참, 씁씁할 일이다. 어제 잠시 인터뷰 하는 것 보니 한국말도 아주 매끄럽지 않더만. 이제 국회의원도 미국에서 수입해다 쓰게 되는 모양이니, 한국정치도 이제야 세계화의 물결에 몸소 동참하게 되는것 같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가장 고무적인 일은 문국현이 이재오를 이긴 것 (강기갑이 이방호를 누른 것은 그보다는 덜 짜릿하다). 이재오는 이명박의 오른팔 아닌던가. 문국현씨가 지역구 의제가 아닌 한반도대운하 반대를 선거 핵심 이슈로 내건 건 아주 잘 한 일이었다. 정치는 프레이밍이다. 자기 중심으로 이슈를 프레이밍해서 끌고 가는 사람이 이긴다 (이명박씨 서울 시장선거에서 청계천 복원 공약한 일이 대표적). 프레이밍을 바꾸지 못하는 상대방은 그 프레이밍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지역 연고가 없는 문국현씨가 지역일꾼이 되겠다고 할 수도 없었겠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경고는 해야한다는 여론을 잘 읽은 것. 문국현씨는 대통령감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은 할 수 있어야 그나마 한국에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허나 생각할수록 노회찬, 심상정 낙선은 아쉬운 일이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확실히 지역색이 옅어지긴 했다. 민주화 이후 여러 정권을 경험하면서 그만큼 진보한 것이겠지만, 보수 진영이 한나라당으로 똘똘 뭉치지 않고 분화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선진자유당의 충청당이 되었지만, 계속 유지된다면 내 생각에 전라도에서도 먹힐 수 있을 것 같다. 어짜피 넓은 의미의 진보 세력이 100석도 되지 않으니 (민주 83, 민노 5, 창조 3) 앞으로 한국정치의 방향은 보수세력이 어떻게 재편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박근혜계가 그나마 이명박과 각을 세우게 있는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설쳐댈 수 없게 된 것이다. 여의도정치를 무시하던 이명박씨는, 내가 간절하게 충고하건대, 좀 겸허하게 정치에 대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두려운 상사 유형이 무식하고 혹은 능력없고 열심히 하는 형이라고 하지 않던가. 현장에 가서 열심히 독려해서 건설 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정치와 국정을 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에 이명박씨는 평생 정치, 국정과 건설을 구분하지 못할 것 같다. 내 슬픈 예감은 틀린 일이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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