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이해의 방식을 두 가지 이념형(Idealtyp)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규범적 사회학, 학문적 사회학. 대개 사회학자들은 그 중간쯤 어디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규범적 사회학 전통은 우선 프랑스쪽에서 강하게 만들어졌다. 사회학의 창시자 콩트, 뒤르케임등은 사회에 대한 엄밀과학, 실증과학을 주창하면서 (이런 전통이 미국식 경험주의 사회학의 토대가 된다) 동시에 사회의 도덕적 기초를 찾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독일에선 르네 쾨니히가 대표적으로 그런 입장을 취했다. 맑스주의 사회학, 비판이론은 다른 전통에서 규범적 사회학을 지향한다. 학문을 위한 사회학의 전통은 독일버전, 미국버전이 있는 것 같다. 막스 베버, 짐멜 등은 경험적, 실증주의적 사회학을 거부하면서도 사회의 본질, 변동 등을 설명하려는 독특한 사회이론 전통을 세운다. 현대사회학에서 이런 전통은 파슨즈, 루만을 통해서 거시이론으로 꽃을 피우고, 미시이론적으로는 상징적 상호작용론, 민속방법론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실증주의 사회학 전통은 미국의 경험적, 통계적 사회학으로 이어지면서 주류 사회학으로 자리 잡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루만과 통계학적 사회학은 반규범주의라는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규범적 사회학, 학문적 사회학, 그 둘 모두 필요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평생 한 우물을 판 학자들도 있고, 규범/학문적을 넘나드는 학자들도 있고, 학문에서 규범 혹은 규범에서 학문으로 건너가기도 하는 등, 학자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학은 우선적으로 학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개 중 하나를 포기하라면 나는 규범을 포기할 것이다. 사회를 개혁시키기 위해서는 굳이 사회학이라는 우회로를 택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효과적인 방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으로서 사회학이 살아남고, 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학문성을 높이는 일이다.

Papalekas, Johannes Chr (1974), Von der Soziologie als Krisenwissenschaft zur Krise der Soziologie, in: Staat 13 (2): 153-167
Merz-Benz, Peter-Ulrich/ Wagner, Gerhard (Hg.) (2001), Soziologie und Anti-Soziologie. Ein Diskurs und seine Rekonstruktion. Konstanz: UVK
[그 밖에 '사회학의 위기'에 대해서 꽤 많은 수의 논문을 모아서 가지고 있다. 언제 계기가 생기면 제대로 읽고 정리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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