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핑계로 붓 아니 자판 가는 대로 뭔가 써서 남겨 보고 싶다. 루만이 (사회적) 행위나 개인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신한 - 얌전하게 표현하자면 - 아이디어다. 사회체계와 심리체계의 관계를 구조적 연동 (혹은 Interpenetration)으로 본 것 또한 설득력 있는 설정이다 (이는 이미 파슨즈가 도입한 개념이지만. 참, 오늘 장선생에게서 재미있는 비유를 하나 들었다. 아마 S.Fuchs가 미국의 사회학도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냈을. 파슨즈와 루만이 다른 것은 상징적상호작용론과 민속방법론이 다른 것과 비교할만한다는). 심리체계 없이 커뮤니케이션(사회체계)가 불가능한 것처럼, 심리체계 역시 사회체계 없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심리체계를 사회의 환경에 위치시킨 사회학자 루만이 심리체계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허나 그것에 불만이 체계이론연구자들이 있어 사회학적 체계이론적 심리체계 연구도 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P.Fuchs 2003, 2005 의 작업이 있다. 다른 학자도 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심리체계가 어느 정도로 사회체계의 직접적 영향 아래에 있는지 우리는 매일 경험한다. 심지어 직접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의 심리체계는 타인 [Alter]를 상정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익숙하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인가? 대표적으로 '기도'를 꼽을 수 있다. 개인적 기도는 분명 심리체계의 작동이다. 하지만 대상을 상정하는 것이다. 인격적인 신. 고대 이스라엘 민족, 특히 그 지도자들은 야훼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지만, 도그마(교의)가 만들어지고 그런 신과의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대신하게 되면서 유대교, 기독교 전통에서 신과 직접 의사소통했다고 주장하는 일은 예외적인 일에 속하게 되었다. 기도는 포이어바흐식 유물론자들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철저히 심리체계, 내 정신세계의 활동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름대로 Alter인 신이 전달하는 정보를 이해하는 것이니까 신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인격신이 전달하려는 정보가 무엇이냐가 관건인데, 내 생각에 바로 그것 때문에 교회에서 가르침/배움이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정보가 아닌가? 인간을 투영한 것 아닌가? 라는 질문에는 바로 창발적 질서(Emergenz)를 답으로 들려주고 싶다. 우리 심리체계가 그리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출발이야 어떻게 되었건, 우리는 종교적인 가르침/배움의 과정을 거치고 종교적인 활동을 지속하면서 내가 전해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서의 세계로 인도되어 가는 것이다. 나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변화한다. 진화한다. 이런 현상을 공진화라고 한다 (Coevolution). 심리체계와 사회체계는 바로 공진화라는 관계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내 심리체계를 관찰하면서 얼마나 사회체계 (특히,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는지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 진화는 중립적 개념이지만, 내 심리체계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는다. 환경의 Irritationen 을 '좋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심리체계가 좀 더 안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세우고 있어야 거기에 맞는 자극을 선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도록 '구조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구조가 언제나 변화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시간에 쫓기고, 여러가지 이유로 내가 참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제한된 시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려면 더 단단한 구조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시간 참... 빨리 간다.


Fuchs, Peter (2003), Der Eigen-Sinn des Bewußtseins. Die Person, die Psyche, die Signatur. Bielefeld:Transcript.
Fuchs, Peter (2005), Die Psyche. Studien zur Innenwelt der Außenwelt der Innenwelt. Velbrü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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