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루만, 체계간의 관계, 개입...

루만은 한 체계가 다른 체계의 작동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런 개입으로 인한 변화 가능성을 별로 높게 보지 않고, 또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체계외부의 영향이란 환경에서 찔러 보는 정도일 뿐이고 (irritieren), 체계의 경계를 유지시키는 작동은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이론적으로 명쾌하다. 과학의 경우 정치, 경제 등 외부 체계들이 각종 정책이나 자금지원 등을 통해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주제 선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지속은 결국 과학 내적 코드, 즉 진술의 참/거짓이란 코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이를 Willke 같은 학자는 정치체계의 다른 체계에 대한 (대표적으로 경제) 조정과 개입 가능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컨텍스트조정' (Kontextsteuerung) 같은 개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루만도 옳고, 빌케도 옳고, 케인즈주의자들도 옳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이들의 유사과학적 진술을 배제하고, 실제 정치와 다른 체계의 관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은 대개 개입의 현실을 인정한다. 몇 년 전부터 배회하던 미국발 세계경제위기가 여러 학자들이 경고했던 것처럼 제2의 Black Friday 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건 각국 정부들이 '적절히'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개입이냐 방임이냐"가 아니라,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 일 것이다. 그런 결정은 대개 정치, 행정에서 내려지고 학자들은 그 결정 전후에서 이러쿵 저러쿵할 뿐이다.
경제 못지 않게 체계의 자율성과 개입의 갈등이 문제가 되는 영역이 과학이다. 과학의 자율성, 연구와 학문의 자유는 절대적일 수 없다. 특히, 20세기 이후 과학이 가져 오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물론 이 같은 과학의 힘 증대는 과학 스스로 해낸 게 아니다. 국가, 자본이 없었다면?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이젠 과학을 좀 그냥 내 버려두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다 (U. Beck). 그런 대안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정 영역에 대한 사회적 (과학의 사회적 환경의) 개입은 불가피한 것 같다. 역시 문제는 어느 정도, 어떻게...
이 같은 근대화의 상태는 근대성에 대한 이상적, 규범적 담론이 설 자리를 크게 좁혔고, 마찬가지로 '다양한 근대성들' 같은 낭만적 주장 역시 그 설득력을 잃고 있다. 세계사회의 내적 수렴이 대세인 것 같고, 국가간 지역간 차이는 단일한 근대성의 변이 정도로 이해되는 게 옳을 것 같다.
문제가 복잡해지고, 내 놓을 대안도 변변치 않으니, 그저 우리 시대는 복잡하고, 다양하고.. .등을 얘기하는 사회이론은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게 바로 우리 시대, 우리의 현실인데도...
사회이론, 거시 사회이론의 분화가 사회학의 대세인 것처럼 얘기하나, 내가 보기엔 '큰' 사회이론들은 대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런 현상은 세계사회, 세계화라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