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30일 토요일

Beethoven - Piano sonata No. 32 in C minor, Opus 111, Movement 2 (1) (1822)



미국에 코엔 형제가 있다면 벨기에엔 다르덴 형제가 있다 (Jean-Pierre & Luc Dardenne, 사진). '아들' (Le Fils 2002)을 본 적이 있는데 매우 느린 영화라 '->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했다. 최근작 "로나의 침묵" (Le silence de Lorna 2008)은 그에 비해 훨씬 친절한 영화다. 화면 떨림도 덜하고, 내용도 좇아가기 쉽다. 시종일관 긴장감과 건조한 느낌이 지배적인 건 여전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탓도 큰 듯하다 (cf.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작품번호 111이 붙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다.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쓴 피아노 소나타이고 그의 피아노 작품 중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냥 편하게 듣기 좋다. 특히 앞 부분이... 빨라질수록 덜...

2009년 5월 28일 목요일

도덕경의 명제를 체화하고 계시는 MB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마을 직접 조문을 하겠다는 의도는 자신에 대한 테러(?)를 유도해 신공안정국을 정당화시키는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 양반은 "비지니스계"에 오래 몸담고 계셔서 그런지, 아님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실용주의'가 그런 거라서 그런지, 잘 잊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말과 언어의 본원적 한계를 지적하는 도덕경의 명제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에 대한 무한 신뢰를 가지고 계신 탓인지, 본인 말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느끼시지 않는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고 한 말이 그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귀결되었고, 그 죽음 이후에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어긋남이 없이 정중하게 모시라"고 했다는데 여전히 서울시청 앞 광장을 경찰차로 막고 현실, 그 말과 현실의 어긋남은 그런 방식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런 소릴 듣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탁드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압박의 끝이 결국 이러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은 부디 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리고 봉하마을 조문을 포기하시는 것이 좋겠다. 왠만하면 29일 영결식에도 참석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서울시청앞 광장에 있는 전경버스 먼저 치우고, 조문 대신 청와대에서 자중하고 있겠다고 밝히시면 국민들의 분노도 조금은 누그러들지 않을까 싶다.

약속하셨던 재산헌납을 하지 않으셔도 좋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하야도 저는 바라지 않는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지도 않겠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경제는 정부가 가만히만 있어도 왠만하면 살아나는 자기 복원력이 있다'고 하지 않나. 부디 가만히 계시라
."

ps) 새소식: 이 정부, 유족들의 부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려는 것까지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불교의례에 맞춰 제작된 대나무 만장(輓章)을 금지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2mb의 기억력은 몇 초인가? 아니 그는 '예우'라는 말을 독창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김어준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내가 지금 그 수준의 인간들이 주인 행세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뼛속 깊이 실감났다. 너무 후지다. 너무 후져 내가 이 시대에 속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빈 자리

고산씨의 민족주의

한국 최초 우주인이 될 뻔했던 고산씨가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상태'가 생각 이상 심각함을 오늘 어떤 기사에서 확인했다. 무슨 신문일까? (여기). 기사 중 일부를 아래에 옮겨 놓는다. 이 정도면 황우석, 심형래 못지 않은 중증이다. 젊은 사람이 참... 낙후된 분야에 대한 공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 대개 이런 민족주의/국가주의적 담론에 크게 의존하긴 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써먹었을 때 가장 안전한 수사 중 하나니까. 고산씨의 경우에도 그런 쪽일 수 있다. 실제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다기 보다는... 재미있는건 이런 발언이 그리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 당장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 같지 않는 분야에 대해선 민족주의/국가주의 담론이 그닥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막연히 한국인, 설움 운운하지 말고 경제적 유익을 구체적으로 강조하시라. 그런 노하우는 우리 우석 형님에게 가서 배우고 오길. 어쩌면 차라리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필요' 담론이 더 효과적일 지도 모르겠다.
p.s.) 한반도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명백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 얻는 효과가 적지 않다. 이 기사에서도 관찰되지만... 이 경우 '민족'과 '조국'은 내용상 한국(남한)에 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에도 굳이 더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러시아에서 1년 간 교육받으며 우주 개발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너무 가슴 아픈 경험을 많이 한 것이 나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최초 우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도 그 때의 '수양'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교관이 한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너희들(고산·이소연)이 우주센터에서 교육 받는 목적은 우주선 선장과 다른 우주인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고씨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우주선에 자리 하나 내주는 것처럼 들렸다"며 "'기술이 부족해 이런 취급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날 이후 그는 우주센터의 교육 과정을 정신 없이 학습하면서 우주인 출신 교관들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었다. 강한 그의 탐구욕이 결국 화를 자초했는지도 모른다. 수업시간 외에는 교관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도 수업 시간만 되면 날 선 질문을 하고 논쟁을 하는 게 일상이 됐던 것이다.

그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우리가 우주개발 선진국이 아니라서 지나치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자립적인 기술 없이는 영원히 후진국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나서 전략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지원한다면 과연 이런 설움을 받았겠느냐"고 했다.

그는 다시 우주인이 될 기회가 있다면 도전해볼 생각은 있지만 러시아나 미국 등 다른 나라 우주선을 타고 가는 우주인은 절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주선에서 우주인들과 함께 실험하고 교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허울좋은 우주인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가 우주발사체 발사에 성공하고 나아가 우주선 개발을 진행해 이 사업들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 우주선을 조종하는 우주선장이 돼 우주를 항해하고 싶다고 고씨는 말했다. (...) 돌이켜보면 지난해 4월 그를 대신해 이소연씨가 한국 첫 우주인이 되면서 회의를 느낄 법 했지만 고씨는 오히려 우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소유자가 됐다.
지난 2년 동안 그에게 최초 우주인이라는 수식어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애국심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에 갔다가 우주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돼 돌아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주인으로 선정돼 교육을 받으며 조국과 민족이라는 단어를 잊어본 적 없다는 것이다.

ps) 우리의 x선 찌라시, 제목다는 센스 하나는 알아줘야. "'비운의 우주인' 고산의 애국심.저도 분명한 '1등'입니다" 그것도 슬픈 소식 밑에 말이지...

David Hockney

오늘 자 'Die Welt' 문화 면에서 아주 눈에 띄는 그림을 발견했다 (아래 그림). David Hockney (1937 - )라는 영국 화가였는데 찾아보니 꽤 유명한 모양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영국의 화가이자 사진작가. 팝아트와 사진에서 유래한 사실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무대 디자인 작업도 하였으며 《호크니가 쓴 호크니》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꽤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것 같은데 내 눈에 쏙 들어오는 그림들은 대개 색깔과 대상이 분명한 것들... 그 중 두 그림만 올려 놓는다.

Garrowby Hill (1998) [152.4 x 193 cm]

Bigger Trees Near Warter (2008) [274,5 x 365,7 cm]

Garrowby hill은 요크셔 지방에서 가장 가파른 언덕으로 알려져 있나 보다. Warter도 그 어디쯤인 것 같고... 2008년작 그림 풍경은 내가 한 때 살았던 Lohmannshof 뒷쪽과 매우 흡사하기도 하다. 그래서 더 친근감을 느끼는지도... '감상'할 때는 두 그림 모두 대작임도 고려해야 한다 (아래 그림은 캔버스 9개를 붙여서 만든 것). 난 이렇게 색감이 분명한 - 어쩌면 그래서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Edward Hopper, Kasimir Malévitch, Edvard Munch, Emil Nolde, René Magritte, Max Beckmann 등등. 이들의 그림 중에서 특히 사물 윤곽이 분명히 드러나는 쪽을 좋아한다. 추상은 별로고... 그 밖에 너무 흔해 '빠져서' 나까지 좋아해 '주기' 힘들긴 하지만 고호 그림도 그런 쪽이긴 하다). 반면에 영화의 경우엔 메세지나 줄거리가 복합적이거나 인간의 다면성이 잘 드러나는 쪽을 좋아하는데,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 경향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이 있을까... 그림 심리학?

바울에 대한 책들

한국에서 출간되는 책 소식을 나름 챙겨 보는 편인데도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이런 책이 나왔단 말인가 하며... 바울에 대해서 뭘 좀 찾아보던 중 만난 한겨레 기사인데, 기사 등록 날짜가 2008년 2월로 되어있다. 좀 선정적으로 들리는 기사 제목은 "바울은 특권에 저항한 인간해방 투사". 일부 인용한다.

"기독교 세계의 실질적 정초자 사도 바울을 유물론적·급진적·혁명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최근 유럽 철학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기독교 보수주의의 규범을 만든 사람이라는 바울의 오래된 이미지를 뒤집어 인간해방을 위해 싸운 혁명 투사로 재탄생시킨 이론적 작업의 선두에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이 있다. 1998년 이 책이 출간된 뒤 바디우의 관심을 비판적으로 이어받은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남은 시간>(2000년)이 출간됐고, 다시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죽은 신을 위하여>(2003년)에서 바울을 새롭게 해석했다. ‘바울 3부작’이라고도 할 이 책 가운데 지젝의 저작이 지난해 우리말로 옮겨졌고, 이번에 바디우의 저작이 우리말로 나왔다." (강조는 내가...)

지젝이야 워낙 유명한 인물이지만, 아감벤도 근자에 한국 인문학 흐름을 좇아가다 보면 심심찮게 들었고, 바디우라는 이름도 낯설진 않다. 어쨌든 이 세 철학자가 모두 바울에 대한 책을 썼고, 그 출간 순서는 그러니까 내게 덜 익숙한 순이다. 이 세 책을 이렇게 묶어서 소개하는 게 고명섭 기자 관점인지 아님 그들끼리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지 나로선 판단할 길이 없다. 어쨌거나 서로 연결된다고 볼 근거가 있는 모양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 세 철학자는 바울을 매우 진보적이며 해방적인 인사로 보려고 하는 모양이다 (바울에 대한 상이한 평가를 소개하는 건 나중에 기회되면...). 기사가 소개하는 바디우의 견해를 인용해 보면...

"이 책에 드러난 바디우의 심중 생각은 2000년 전의 인물인 사도 바울을 현대의 투사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질서에 맞서 볼셰비키당을 이끌었던 혁명가 레닌의 상을 이 열성적 전도자에게서 찾아내는 것이다. 바울과 레닌이 연결된다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자본>을 쓴 마르크스와 연결된다. 이 책에서 바디우가 특히 주의 깊게 분석하는 것이 바울의 텍스트(편지들)인데, 그 텍스트들은 조직이 처한 구체적 상황에 개입하는 일종의 투사적 문건들이라는 점에서 레닌의 글들과 닮았다."

예수와 바울의 관계를 맑스와 레닌의 관계와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견해의 지적재산권이 지젝에게 있다고 소개하기도 하던데 그렇담 그게 아니라 바디우에게 돌려야 하는 건가?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stand by me (playing for change, 2009)



배경을 알고 나면 더 재미있게 '감상'할수 있는 '뮤비'. playing for change라는 프로젝트가 만들어 낸 작품인데 착상이 참신, 상큼하지만 편집과 음악성 또한 탁월하다. 이런 류의 프로젝트로는 아마 'We are the world'를 부른 'USA for Africa'(1985)가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이 노래와 비교해 보면 그 동안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잠시 읽어보았는데 그 자체로는 그리 놀랍지도, 특별한 기대감을 주진 않는다. 물론 그들의 노력, 열정, '착한' 마음씨엔 경의를 표하지만, 지금 나로선 그저 참여한 '길거리' 뮤지션들의 그 역량과 그들의 노래를 모아서 편집해 내는 그 능력을 감상하고 싶을 뿐... 이건 정말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youtube 버전은 프로젝트 홈피 www.playingforchange.com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화질, 음질이 떨어진다. 아, 그리고 그 곳에선 다른 음악도 올라와 있다. 익숙한 탓인지 내 귀엔 이 이 stand by me가 가장 듣기 좋다.

'성경신학'적 묵상과 '조직신학'적 묵상

묵상모임 게시판에 올린 글을 옮겨 놓는다. flower란 id를 쓰시는 분에게서 "무거워,,, 너무 무거워서 같이 들기도 힘들어영~"이란 반응을 이끌어 낸 무척이나 무거운 글이다. 그 글을 썼을 때 심리 상태를 반영한 탓일텐데, 참고로 지금은 훨씬 가벼워졌다. 다른 게 아닌 바로 묵상나눔의 결과로.

좀 더 정리해서 쓸까 하다가 그랬다간 좀처럼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붓, 아니 자판 가는대로 써 보려고 합니다. (...)

오늘은 지난 주 목사님과 '기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후 든 생각을 써 보려고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방식을 여러 가지 기준으로 구별해 볼 수 있을텐데, 그 중에 '성경신학'적 묵상과 '조직신학'적 묵상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신학적 묵상'이 성경 구절이나 성경 속 특정 사건에 대한 관심, 의문을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조직신학적 묵상'은 서 '기도' '선교' 처럼 좀 더 추상적인 관심에서 시작하는 것이지요. 사실 출발점만 다를 뿐 두 방식 모두 결국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구절에서 시작을 하더라도, 결국 기존 기독교 신앙 이해와 연결되어야 하고, 주제에서 출발을 하더라도 특정 구절 묵상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니까요.

저는 사회학 중에서도 거시사회이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라 기독교 신앙, 성경을 접근할 때도 비슷한 방식을 취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쓴 표현을 따르자면 '조직신학적 묵상'에 가깝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돌이켜 보면 중고등시절부터 이미 그런 경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사회학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올 마음먹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고, 니클라스 루만이나 김용옥 같은 학자에게 끌리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사회 현상 (즉, 커뮤니케이션, 소통)을 관찰하더라도 거시 역사적 혹은 문명사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식론적으로는 상대주의, 혹은 구성주의 지향이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경향을 띠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주장, 단순한 주장에 대한 부정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책에 씌여져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지나친 단순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거시적 사고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지만, 도식화하기 쉽습니다. 어쨌든 제가 성경을 읽을 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신학적 묵상'이든 '조직신학적 묵상'이든 '말씀 묵상'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 결과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제 경우 성경묵상을 방해하는 가장 큰 방해꾼은 - 어쩌면 '조직신학적' 관심 탓이기도 하겠지만 - 성경 텍스트를 떠나 컨텍스트로 쏠리는 관심입니다. 거시이론가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름을 남긴 대가들은 대개 매우 사소해 보이는 역사적 단서, 텍스트를 치밀하게 추적해 들어가면서 큰 진술을 만들어 냅니다. 대가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이들이 대개 '추상적이다', '근거가 빈약하다'라는 비판을 받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텍스트'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하고, 텍스트를 벗어나려는 유혹을 참을 필요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지금 논문을 쓰면서 겪는 어려움이 바로 그런 류입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엔 이런 내용이 나오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 역시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자기관찰 혹은 성찰의 내용이 나왔네요.

그리하야... 결론은... 글쎄요... 기도에 대한 제 관심은 한 마디로 '도대체 기도란 무엇인가'입니다. '도대체'가 붙는 까닭은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 본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그런 관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도'에 대해서 매우 다양한 진술이 있으니 설령 그 모든 구절을 모두 묵상한다고 하더라도 '기도의 본질은 이것이다'라고 쉽게 얘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윗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단계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얻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저는 출발점으로 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도에 대해서 언급된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창세기 20장,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허나 목사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기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기도'로 이해될 수 있는 표현이 그 전에도 여러 번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창세기 20장을 전후로 해서 '기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창세기에서 '기도'는 무엇인가? 역시 큰 질문입니다만.... 어쩌면 "아브라함에게 기도란 무엇이었을까?" 정도로 좁혀도 좋겠네요. 네, 그게 좋겠습니다.

묵상시간을 내는지의 여부는 바람직한 영적/심적 상태와 공부 리듬을 찾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아, 또 다른 지표가 있네요. 새벽기도.... 그 '기도'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지...

안병무 신학사상의 맥 II (2006)


이 책의 주제는 '안병무'이고, 그 중 홍근수 목사가 쓴 글 일부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옮겨 놓는다.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책을 열심히 읽던 과거가 있지만, 최근에 민중신학을 비롯한 현대 '인본주의적' 신학의 한계를 느낀 바가 있어서 그 구절이 새삼 더 눈에 들어왔나 보다.

"안병무가 향린교회에서 행한 마지막 설교에 보면 그는 그 예수를 일생 추구했으나 결국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직접 예수를 찾지 못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예수를 추구하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여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나는 없습니다. 일생동안 그런 경험은 없으나 지금 내가 깊이 고마워하는 것은 어쩌다가 내 일생의 중심 테마가 ‘예수 만’이라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사상적인 혼란이 왔을 때도 ‘나는 예수만을 찾으리라. 그만 붙잡고 가리라’ 하는 이것 하나가 내 일생의 재산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나를 서산 정상에 앉게 한 것이라고 저는 자부합니다....'(“산 위에서 만난 새로운 한 분”/1996.1.7 향린교회 강단에서 한 설교 중에서), .

여기서 결국 그는 예수를 만났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안병무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앞길이다. 그의 성서와 예수 이해의 결론은 명확하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갈 길을 밝혀주는 것이 된다
." (본문 중, 홍근수 목사 글에서)

탈신비화 혹은 탈주술화된 기독교 이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어서 영적인 차원, 예를 들어 '신체험'이 빠진 기독교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커지고 있지만 정말 그게 기독교의 참 모습일까에 대해선 의심이 간다. 안병무 선생이 '하느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 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더군다나 '예수를 만나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홍근수 목사의 해석은 또 무슨 말인가?

2009년 5월 16일 토요일

김현식, 한국사람 (1991)



김현식 6집(1991)에 실린 곡이다 [6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4집 (1988)에도 실려있다. 연주가 같은 걸 봐서 4집 곡을 6집에 다시 실은 듯]. 김현식 6집은 정말 지겹도록 많이 들었다. 아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진주에서 기초군사훈련 (6주)과 특기교육을 받고(아마 4주, 아니 6주였나?), 약 일주일 평택 '7항보'에서 머문 후 예천 16비 통신대대에 막 배치되었는데, 그 내무반 전축 위에서 그 무렵 메가히트를 치고 있던 이 앨범이 하루에도 몇 번씩 돌고 있었던 것. 음악을 즐길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내무반 분위기가 덜 삭막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제대 후에도 이 앨범에 실린 노래가 들리면 침상 위에서 각잡고 '군기든 척' 앉아 있던 신병 시절이 생각난다. 이 앨범 중에서 내가 '아끼는' 곡이 바로 하모니카 연주곡인 이 '한국사람' 이다. 하모니카는 고등학교 시절 잠시 배워보았는데 단음 밖에 내지 못하는 그 단조로움이 싫어서 오래 붙들고 있진 않았다. 그런데 그 하모니카에서 저런 깊은 소리가 나다니... 이곡은 Lee Oskar의 'My Road'란 곡을 김현식이 각색해서 부른 것이라는데 원곡을 들어봐도 이 정도 깊이나 감동이 없다. 동영상을 찾아보니 Daum에 올라와 있다. 그쪽 동영상은 어지간한 인내심 없이는 끝까지 보기 힘들던데, 과연 이건 어떨지... [p.s. 그 영상이 사라져서 유투브 것으로 연결시켜 둔다]

2009년 5월 14일 목요일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작가 박완서의 수필집 이름이다. 이 책을 읽어 본 기억은 없지만 어디에선가 본 그 제목은 쉽게 잊을 수 없다. 강렬한 공감을 불어일으키는 그런 제목 아닌가? 딱히 읽지도 않으면서 습관처럼 빌려 놓은 책들 연장하는 일을 잊어서 40유로에 가까운 연체료를 물어야 했을 때, 대화 혹은 상호작용 상황에서 상대의 공격적 혹은 나무라는 말에 반격할 타이밍을 놓쳐서 두고 두고 반격하지 못한 그 '짓'이 후회될 때, 자동으로 빠져 나가는 '잘 쓰지도 않는' 전화 사용료가 은행 잔고 미달로 덩치가 더 커져서 부가될 때, 지난 달에 이어 2연패인데 이번엔 불과 20센트가 모자라서 그랬음을 확인했을 때, 책상 위에 올려 둔 아끼던 - 비싸서가 아니라 유용하게 잘 쓰고 있어서 - 유리컵이 떨어져 깨질 때 등등. 이런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나지만, 때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그 상황 속에 있다는 인식이 더 큰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쓴 적이 있지만 고맙게도 난 이런 '작은 일'은 대단히 잘 '소화'하는 편이라 사실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내게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 아니긴 하다 ['내 탓이오' 기제, 혹는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면...'류 '합리화' 기제가 성공적으로 작동함]. 오히려 타인과 관련된 경우엔 작은 일에 제대로 분개하지 못하는 상황을 적지 않게 당하니까. 그러고 보면 얼핏 자명해 보이는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예를 들어, 작은 일은 어떤 종류의 일? 누구에게 분개하는가, 나에게, 타인에게?

2009년 5월 10일 일요일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 (이삼성 2008)

한림대 이삼성 교수가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2권을 한길사에서 냈나 보다. 인터넷 한겨레에 리뷰기사가 실렸다 (여기). 학술서적 서평이 제일 윗 기사로 올라 와 있는 것도 드문 일인데, 소개 기사를 읽어보니 그럴만 하다 싶다.한승동 '선임'기자가 썼는데, 일간지 기사에 실리는 서평으로서 이 정도면 훌륭하다. 특히 현재적, 시사적 맥락을 잘 짚은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책 내용을 살펴 보면...

"책은 19세기까지 2천년간의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 문제를 다룬 1권과 19세기를 탐구한 2권, 그리고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20~21세기를 다룰 3권(10월 출간 예정) 등 3권으로 기획됐고... 1권에선 “국내 학계와 지식계가 의도적으로 배척해온 민족 개념의 합리적, 이성적 복원”에 주안점을 뒀다. 뉴라이트 쪽은 민족주의와 정체성 의식단위로서의 민족을 혼동하는 등 무리한 논리 전개를 일삼고 있다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그는 우리와는 역사적 배경이 다른 서구와 일본 쪽의 근대 민족주의 담론을 수입해 지난 10여년간 민족 개념 해체작업을 벌여온 식민지근대화론도 비판하지만, 고종을 개명군주로 보는 근왕주의적 자력근대화론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2권에선 제국주의가 지배했던 19세기 동아시아 역사의 체계적인 시대 구분 작업을 시도했고, 그동안 ‘탈제국주의’ 세력의 선한 얼굴로 다가온 미국을 동아시아를 침탈한 제국주의 카르텔의 핵심 세력으로 재규정했다. 또 1840~1910년 시기를 ‘말기조선’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파악하고 세밀하게 시대를 구분해 시기별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작업도 벌였다. “이제까지 그런 시도는 없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19세기를 얘기하지만 체계적인 분석 없이 사건이나 사안별로만 얘기하는 게 답답하다.” 그래서 방대한 사례를 학습하고 정리한 책 3권 모두가 좀더 열린 전망을 얻기 위한 토론의 재료가 되기를 그는 바란다.
제3권은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를 문명사적으로 정당화하며 폐기해버린 파시즘 비판을 복원하고 일본 지배의 고통스런 내면과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살피면서 냉전질서로 환원할 수 없는 전후 질서를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개념으로 고찰할 예정이다
."

특히, 한겨레 서평이 주목하는 부분은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인데, 특히 이 책에서 '중국이 강성해지면 한반도에 위협이 된다'라는 널리 유포된 견해를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고찰이 담겨져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려나 조선이 외침을 많이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대한 외부침략은 대부분 ‘중국’이 아니라 중국을 위협하거나 중원을 해체한 이민족, 특히 한반도 북쪽 유목민(노마드) 또는 유목-농경민들이었다"는 것.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침입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중국으로 통칭될 수 없는, 오히려 중국을 위협하거나 멸망시킨 변방세력이었고, 그들이 중원을 위협했을 때의 중화체제는 약화됐거나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가 된 것도 1840년 아편전쟁으로 청의 중화체제가 무너진 뒤였다. 임진왜란도 중원의 약화와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명의 몰락에는 조선 지원전쟁이 한몫했다."

아래는 서평과 인터뷰 중 주요 부분을 오려 놓은 것. 사실 조선말에서 분단에 이르는 그 시기가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시기라서 이같은 연구가 특별히 눈에 띈다.

"중국위협론은 냉전 붕괴 뒤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려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을 비롯한 보수우파세력이 지어내고 일본과 한국 내 친미우파가 동조하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다. 지난 2천년 동안 중국이 한반도 침략을 주도했다는 ‘낭설’은 이런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잘못된 ‘기억의 정치’ 현상 때문이다. 이는 현대판 중화체제라 할 미국의 제국적 패권이 보장해준 기득권을 지켜준다. 미국 정책을 비판하기만 해도 ‘반미’로 몰고, ‘용미’로 정당화하지만 실은 무조건적 친미만 허용되는, 비판적 사유와 대안 탐구의 틈새조차 위험시하는 ‘한-미 동맹’의 이데올로기화, 즉 현대판 소중화의식에 찌든 기득권층은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세 변동을 무시하거나 거기에 대해 무지하다. 이래서는 중국이 새로 서고 북한이 바뀌고 러시아와 베트남, 인도가 다시 떠오르는, 명말청초와 개화기처럼 급속히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주변 정세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백년대계의 대전략을 세울 수 없다. 게다가 분단상황에서 분단체제의 창안자요 유지자인 미국판 중화질서에의 과잉의존은 더더욱 위험하다.

“요령부득의 ‘전략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미 동맹 강화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배경에도 ‘중국이 강해지면 한반도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미국 네오콘들이 자가발전한 관념을 그대로 수입해서 약간 가공해서 써먹고 있다. 그래서는 아시아적 전망이 제대로 들어설 여지가 없다. 학계도 다를 바 없다.”

그는 “특정국과의 동맹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판 중화질서에 올인해온 중독증세에서 벗어난 “균형외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배세력, 기득권층은 특권 유지와 생존을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외세를 끌어들이고 그들과 연합해서 더욱 지배체제를 강화하려 드는데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란다. 고종이나 명성황후(민비), 또는 개화파식 외세 끌어들이기가 그런 것인데, 이 교수는 그것은 균형과는 다른 ‘균세’라며 구분했다
.

한국일보 서평은 책의 다른 내용에 주목했다 (여기). 예를 들어...

또 1,000년 넘게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기본 골격이 된 '조공과 책봉(冊封)' 관계를 서양의 제국주의와 비교하면서, 이를 각국이 평화 속에서 비공식적 자율성을 유지한 '제3의 질서'로 규정한다.

"존 K 페어뱅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양 학자들은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를 독립국 간의 국제관계가 아니라 변형된 식민주의로 파악합니다. 위계질서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죠. 베스트팔렌 체제에 의한 주권적 평등 관계와 식민주의 착취 관계로 철저히 이분된 세계사를 통과해 온 서양의 시각으로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조공질서는 약소사회를 철저히 착취하는 식민주의와 달리, 내적 자율성이 보장되던 체제였습니다. 이를 제3의 질서체계로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 질서의 기본 골격을 중화제국과 북방세력 사이에 한반도가 낀 삼각 구도로 인식하는 고정관념도 깬다. '외세의 침탈과 그에 대한 민족항쟁'이라는 결정론적 도식은 전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중화제국 외부 세력에 대한 타자화를 긍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