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압니다. 나는 배부르든 배고프든, 풍족하든 궁핍하든, 모든 형편에 처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빌 4:11 - 13, 우리말 성경)
易地思之, 즉,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기'는 나이를 먹을 수록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그런 예는 무수히 많다. 선배, 후배 관계에서... 나는 때로는 선배가 되고, 때로는 후배 위치에 있게 된다. 아들이자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조카이자 삼촌이기도 하고..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내 상대방, 즉 (역시) 선배 혹은 후배가 느낄 심리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건 확실하다. 허나 '역지사지'를 좀 멋지게 하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다른 처지를 고려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위치에 따라 삶의 원칙마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후배로서는 선배에게 복종하고, 선배로서는 후배들에게 권위적인... 이런 방식은 군대, 회사, 동문회 같은 조직생활에서 잘 먹히고, '사회생활 잘하겠다'고 칭찬받는 스타일이다. 허나 앞으로도 계속 칭찬받는 스타일일지 두고 볼 일이다. 내 생각엔 세상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원칙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해 질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뭔가를 이룬 인물들은 대개 '원칙주의자들'이었다.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원칙이 어떤 원칙이냐는 것인데... 때로는 주변적인 것까지 원칙이랍시고 지키려 '똥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본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못 갖춘 사람들. 易地思之하는 법을 못 배운 사람들이다 깊지 않은... (그런 경우 막상 결정적인 위가가 닥치거나 하면 또 그 원칙을 잘 내 던진다). 그와는 다르게 뭔가를 성찰하고, 다양한 시각을 고려하는 것 같은데, 막상 '알맹이'가 안보이는 경우도 있다. '본질적인 것'을 아직 못 잡은 경우. 그러니 일관성이 부족하여 말을 잘 바꾸지만 막상 스스로는 그렇다는 걸 잘 못 느낀다. 그리하야, 결론은... 여러 상황, 사회적 위치에 처해보고, 역사적 안목과 사람들 마음, 세상 이치 헤아리를 법을 익혀서, 즉 易地思之하여, 비본질적인 것에는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하고, 때로는 카멜레온 짓도 하되,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말 것! (사후에 유독 커보이고 그 빈자리가 커 보이는 두 전직 대통령. 그들이 살아온 길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s) 易地思之: 이 표현은 《孟子》"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 이란 말에서 유래하지만,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쓰지 않는 made in Korea 성어라고 한다.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좋은 얘기, 벗뜨....
오래 전에 친구에게서 들었고 그 이후로 내가 애용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된 얘기인데... 세상 길이 온통 거칠다고 투덜대는 제자에게 선생님이 내리시는 말씀인즉슨... '가죽신을 신어라. 그러면 네 가는 모든 길이 부드러울테니...' 화엄경에 나온다는 "一切唯心造"를 떠올리게 하는 얘기이고, 대학 시절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유물 변증법 입문서의 관점에서 보면 타파해야할 전형적인 '유심론'적 시각일텐데... 나이가 들수록 이런 관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어쨌든... 이런 계몽적인 얘기의 뒷면은 곧 사람 마음 고쳐 먹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성찰일 게다.
벗뜨... 세상은 저대로 내버려 두고 늘상 내 마음만 고쳐먹어야 하나? 그렇담 도대체 어디까지 고집을 해야하고, 어떤 점을 지켜야 하나? 이렇게 딴지를 걸어보면 드러나듯이 서두에 꺼낸 얘긴 듣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인생의 한 측면에 대한 얘기일 뿐이다. 그냥 그 정도로 조절해서 들으면 된다. 속담, 좌우명, 어른들의 가르침은 대개 그런 식이다.
벗뜨... 세상은 저대로 내버려 두고 늘상 내 마음만 고쳐먹어야 하나? 그렇담 도대체 어디까지 고집을 해야하고, 어떤 점을 지켜야 하나? 이렇게 딴지를 걸어보면 드러나듯이 서두에 꺼낸 얘긴 듣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인생의 한 측면에 대한 얘기일 뿐이다. 그냥 그 정도로 조절해서 들으면 된다. 속담, 좌우명, 어른들의 가르침은 대개 그런 식이다.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사랑...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일 4:12)
이웃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전제 조건이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이 없다면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 그 반대로... 그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교회 안에서만 발견될까?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하나님, 하나님 사랑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웃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전제 조건이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이 없다면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 그 반대로... 그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교회 안에서만 발견될까?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하나님, 하나님 사랑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중국 통일의 원인: 뜻글자
프레시안에 연재되는 소준섭의 '正名論'에서 발견한 내용이다. 중국이 '넓은 땅', '다양한 민족'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한자라는 것. '뜻글자'이기 때문 어떻게 발음과 상관없이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다는... 물론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일 수는 없겠지만... 의사사통, 매체 등을 중시하는 '체계이론'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설득력있는 설명이라 하겠다. 문자, 의사소통 매체를 지배했기 때문에 중국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뜻글자임'이 21세기적 의사소통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이해되니 역사를 내다보기란 참 힘든 일이다.
"중국이 이렇듯 유럽처럼 분열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문자(文字)이다.
중국은 한자(漢字)라는 상형(象形)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족들이 분산 거주하면서 발음상 상이함이 나타날 경우에도 뜻을 알 수 있는 상형 문자의 존재에 의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지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한자라는 중국의 상형문자는 발음상의 차이를 초월하여 동일한 함의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한자는 서로 상이한 언어를 가진 종족 간 교류와 결합의 유대(紐帶)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특히 중앙 왕조는 통일된 문자에 의하여 각 지역과의 안정된 정보 체계를 가질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정치, 군사, 경제적인 결합이 보장되었다. 그리하여 비록 지리적으로 광활하고 교통은 불편했지만, 중국은 한자라는 문자에 토대하여 국토 통일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 이렇듯 유럽처럼 분열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문자(文字)이다.
중국은 한자(漢字)라는 상형(象形)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족들이 분산 거주하면서 발음상 상이함이 나타날 경우에도 뜻을 알 수 있는 상형 문자의 존재에 의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지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한자라는 중국의 상형문자는 발음상의 차이를 초월하여 동일한 함의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한자는 서로 상이한 언어를 가진 종족 간 교류와 결합의 유대(紐帶)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특히 중앙 왕조는 통일된 문자에 의하여 각 지역과의 안정된 정보 체계를 가질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정치, 군사, 경제적인 결합이 보장되었다. 그리하여 비록 지리적으로 광활하고 교통은 불편했지만, 중국은 한자라는 문자에 토대하여 국토 통일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무작정 따라하기 혹은 취향 없음
한국 과학기술 거버넌스 변화를 추적해 보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정부 내 관련 부서 간의 경쟁, 중복투자 등이었다. 연구, 기술개발 및 이용에 관련된 정부 부서는 의외로 많다. 과기부, 교육부, 정보통신부, 산자부는 물론이고 농림부, 해양수산부까지...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 생긴 변화는 논외로 하자. 잘 모르니까...) 어느 경우이건 경쟁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긴 하다. 문제는 연구 개발에 대한 제한된 예산을 서로 따가거나 업무영역을 늘여서 덩치를 키우려는 경쟁이 되다보니 중복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중복 투자가 반드시 나쁜 것 많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투자가 대개 인기 있는 분야에 집중되어서, 연구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빈익빈 부익부 혹은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이다. 뭐가 좀 된다 싶으면 경쟁이 심해지는 것. 어디 과학기술정책 뿐이겠는가. 그리고 그게 어디 한국 뿐이겠는가. 하지만 한국이 좀 심하긴 한 것 같다. 좀 잘 된다 싶으면 따라하기. 쏠림현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지방자치체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지자체들은 고만고만한 사업들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영화제도 그렇고, 각종 테마 파크... 청계천으로 2mb가 '떠서' 심지어 최고권력자에 이르자 그것 흉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걸 '벤치마킹'이라고 하던가... (영어로 benchmarking인데. 어원은 이렇다. "The term benchmarking was first used by cobblers to measure ones feet for shoes. They would place the foot on a "bench" and mark to make the pattern for the shoes." 그리고 실제 사용되는 의미는... "Benchmarking is the process of comparing the cost, cycle time, productivity, or quality of a specific process or method to another that is widely considered to be an industry standard or best practice."[출처: Wikipedia]. 흠... 그러니까 좀 잘 나가는 모델과 내 것을 비교해 보는 거구만. 허나 한국 문헌에서 '벤치마킹한다'는 거의 '잘 나가는 모델을 따라한다' 정도로 쓰이는 것 같던데... Anyway...) 아무리 좋아 보여도 똑같이 따라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개성도 취향도 없고 성찰력도 떨어진다는 걸 공공연하게 공고하는 것 아닌가. 지역이나 부서 상황, 지향하는 바가 모두 다를 텐데 그냥 껍데기만 가져다가 비슷비슷한 프로그램, 정책, 행사를 만들어 내는 건 정말이지 크나 큰 자원, 노력 낭비다. 개인 차원에서도 다르지 않다. 전국민이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웃고, 국민여동생, 국민배우를 얘기하고, 4천만 중 천만이 한 영화를 보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개성, 취향 없음의 극치다.
ps) 짧은 글에 여러 현상이 중첩되어 있는데, 그 이유인즉슨... 오늘 낮에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해운대' 관객 수가 천만에 이를 것 같다는 얘길 나눈 데다, 미술 감상에 대해서 청탁받은 글을 써야 하고, 또 '한국 과학 거버넌스'가 논문 주제인 상황 등이 겹친 탓이다.
ps) 짧은 글에 여러 현상이 중첩되어 있는데, 그 이유인즉슨... 오늘 낮에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해운대' 관객 수가 천만에 이를 것 같다는 얘길 나눈 데다, 미술 감상에 대해서 청탁받은 글을 써야 하고, 또 '한국 과학 거버넌스'가 논문 주제인 상황 등이 겹친 탓이다.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공공'의 힘
최근 음대 입학시험에 합격했었는데 석연찮은 이유로 그 입학이 취소되었다는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편지를 받고서 무녀졌을 마음을 생각하면... 다른 경우지만... 최근 경험한 모스크바 입국 심사는 무척 까다롭고 오래 걸렸는데, 인도에서 온 친구의 경우 여권 사진과 현재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심사장에서 두 시간 이상 '억류'되어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다르길래 그럴까 확인해 본 결과... 사진 속 콧수염을 기른 모습이 거의 삼촌뻘은 되어 보여서 러시아 '당국'을 이해하는 쪽으로 '여론'이 '급'바뀌긴 했지만... 사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처럼 '공공의 힘'을 각인시켜주는 기사들 투성이다. 최근에 북한 '당국'에게서 풀려난 미국 국적을 지닌 두 기자도 그렇고... 여하튼 이런 이른 바 '공적 기관'들이 '사적인 인간'들에게 가할 수 있는 힘은 참으로 크다. 나같은 소시민들 대부분은은 대개 그런 '힘'을 느낄 일이 없기만을 바라면서 조심조심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경우를 만나게 된다. 외국인의 경우 대표적으로 체류허가를 받거나 연장할 때!
오늘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보험회사(AOK)와 대학원 (IGSS). 전자는 어떤 내용인지 예측할만 해서 그 편지를 보는 즉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도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후자의 경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 줄 리 없는 기구아닌가.
'무정부주의'라고도 번역되는 'Anarchism'은 사실 '자율주의'로 번역해야 한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국가' 등 인간을 강제하는 모든 힘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율'로 유지되는 그런 사회... 신분제적 억압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자본의 힘, 국가기구의 강제에 포박된 당대인들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지 않은가... (자본주의, 법에 의지한 공권력 사용 등은 그 이전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나름 진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허나 새로운 질서는 또 다른 모순을 만들어 낸다. 근대의 그늘...). 학자들은 복잡한 현대사회는 '공적 권력'의 개입 혹은 존재 없이는 유지되기 힘들다고 해석한다. 루만의 "Legitimation durch Verfahren"같은 경우 대표적으로 그런 차가운 진단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ahuman한 '체계'의 입장에서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그런 공적 기구의 힘에 영향받는 human의 입장에서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사회학도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공적 기관의 힘을 느끼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오늘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보험회사(AOK)와 대학원 (IGSS). 전자는 어떤 내용인지 예측할만 해서 그 편지를 보는 즉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도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후자의 경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 줄 리 없는 기구아닌가.
'무정부주의'라고도 번역되는 'Anarchism'은 사실 '자율주의'로 번역해야 한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국가' 등 인간을 강제하는 모든 힘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율'로 유지되는 그런 사회... 신분제적 억압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자본의 힘, 국가기구의 강제에 포박된 당대인들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지 않은가... (자본주의, 법에 의지한 공권력 사용 등은 그 이전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나름 진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허나 새로운 질서는 또 다른 모순을 만들어 낸다. 근대의 그늘...). 학자들은 복잡한 현대사회는 '공적 권력'의 개입 혹은 존재 없이는 유지되기 힘들다고 해석한다. 루만의 "Legitimation durch Verfahren"같은 경우 대표적으로 그런 차가운 진단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ahuman한 '체계'의 입장에서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그런 공적 기구의 힘에 영향받는 human의 입장에서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사회학도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공적 기관의 힘을 느끼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예술 감상'의 사회학
예술을 예술이라고 부르기 이전에도 동서고금 여러 방식의 예술 활동이 있었다. 예술 작품 생산 방식, 이유 등은 무척 다양했겠지만... (이문열의 '들소' 같은 소설은 선사시대 '창작' 상황이 어땠을지 상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그야말로 근대적 예술 이해이고 대갠 특정한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해석의 여지가 있기 힘들었다. 종교화의 경우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했고 - 기독교이건 불교이건- , 여러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 적어도 당대인들은 - 그게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어야 했다. 초상화, 기록화 같은 건 실물에 가까워야 했으니 그림그리는 이들은 장인, 기술자일 따름이었고, 그러니 화가로서 이름을 남길 수도 없었다. 그림 창작, 소비의 역사에서 몇 번 전환기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 하나로 르세상스 이후 '화가'의 등장을 들 수 있겠다. 창작과 소비의 과정이 훨신 더 복잡해지고, 갈등도 생기고... 또 다른 중요한 계기로 '대중'이 예술 향유자로 등장했음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예술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 둘 수 없던 서민들도 미술관을 통해서 예술 감상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최초 공공 미술관은 '바젤미술관'이라고 하고 1662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계기로 복제품의 등장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유명한 그림을 베끼거나 '화첩'을 만들어 유통하던 역사는 훨씬 길겠으나, 대중들에게 그림이 여러 형태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복제품의 등장, 향유는 인쇄, 출판과 그 이후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전달 매체의 발전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현대인들의 예술 감상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내 경험에 따르자면 워낙 유명해서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서 자주 접한 작품에서 감동을 얻기란 힘들다. 진본의 아우라(aura)? 유럽의 이런 저런 미술관을 찾아가 볼 기회가 적지 않았으나 그런 것 별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 (원본이 의미가 없는 시대. 복제품의 시대를 자신의 창작 컨셒으로 삼은 이들도 있지 않은가. 앤디 워홀 같은...). 물론 유화 같은 경우 원본에선 물감의 두께감, 질감을 확인할 수 있어서 평면적일 수 밖에 없는 복사본과 차이를 느낀다거나, 대작의 경우 그것을 축소해 놓을 때 그런 느낌을 갖기 힘들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겟지만...
여하튼 미술 뿐 아니라 이미지 홍수 아니 쓰나미 속에 휩쓸려 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 지나친 공급 때문에 오히려 예술, 특히 그림을 감상하거나 평가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헌데... 근대적 예술(감상)과 전근대적 예술(감상)에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을까? '아름다움'에 대한 본원적인 추구나 지향은 동서고금 있지 않았나? 그것 뿐인가 진리에 대한 추구도 있었고... 眞善美. 근대적 예술(혹은 학문)과 그 이전 접근의 차이는 그것을 지향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외부와 구분되는 경계를 갖는 하나의 체계가 된다는 것.
(to be continued)
여하튼 미술 뿐 아니라 이미지 홍수 아니 쓰나미 속에 휩쓸려 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 지나친 공급 때문에 오히려 예술, 특히 그림을 감상하거나 평가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헌데... 근대적 예술(감상)과 전근대적 예술(감상)에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을까? '아름다움'에 대한 본원적인 추구나 지향은 동서고금 있지 않았나? 그것 뿐인가 진리에 대한 추구도 있었고... 眞善美. 근대적 예술(혹은 학문)과 그 이전 접근의 차이는 그것을 지향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외부와 구분되는 경계를 갖는 하나의 체계가 된다는 것.
(to be continued)
구름...





요즘 왜 구름에 자주 시선을 뺏길까? 모스크바에서도... 변화에 대한 갈급함? 그런 심리적 요인을 배제한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아무리 멋진 건물도 두세번 보게 되면 처음 볼 때의 그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림의 경우에도 '읽을 거리'가 별로 없고 '색감'이나 반짝 아이디어로만 승부를 거는 경우엔 금새 싫증이 나는 것처럼. 구름은 그런 '식은' 건물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좋은 장치다. 나는 사진만이 전해줄 수 있는 중요한 효과를 '의외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맥락일 것이다. 구름과 건축물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 의외적인 느낌. co-product...
(제일 마지막 사진이 내 노트북 바탕화면으로 '간택'되었다. 한참 동안 썼던 '뉴욕 야경'을 몰아내면서... 뉴욕에서 모스크바라... 너무 과격한 '턴'아닌가?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그 기숙사에 묵었던 '모스크바 국립대학')
2009년 8월 2일 일요일
'同病相憐' 혹은 '위로 안되는 위로'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한 건지, 아니면 아시아 출신이라는 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인지... 오늘 대만 출신 친구와 만나 '신세한탄' 비슷한 걸 하면서 든 생각이다. 좀 닮은 구석이 있다 싶었는데 나이도 비슷해서 더 편해진 친구인데, 사실 그것 말고 살아 온 여정은 많이 다르다. 집안에 형제가 많았는데 큰 형이 학비 비싼 사립대를 다니는 통에 본인은 국립인데다 취직도 보장되는 교육대학에 진학했고, 아직까지도 적을 두고 있는 휴직 중인 초등학교 교사다. 제대로 된 직장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와 '사뭇' 비교되지 않는가. 공부, 학문에 대한 열의, 장래에 대한 고민 등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를 했고 내친 김에 독일에 유학까지 오게 된 것. 대학 때 '과커플'이었던 아내와 사내 아이를 하나 두고 있기도 하고... 조금 더 '현실'을 직시하길 원하는 아내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자기 방식으로 '현실'을 좀 더 알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으로 밀어부친 독일행, 허나 여전히 뒷탈이 있다고 한다. 그런 그 친구의 대만 대학 은사께서는 또 쎄라비' (C'est la vie, 인생이란 그런 것, So ist das Leben)란 말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혹시 부인에게서 '인생타령'한다고 타박받진 않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런 얘길 들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자면 '위로 아닌 위로'... 어쨌든 그 친구와 5년 후 만날 거리를 하나 만들었다. Asian Society for[of?] Systems Theory 결성! 뭐 그 때까지 S.S.를 붙들고 있을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