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 거버넌스 변화를 추적해 보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정부 내 관련 부서 간의 경쟁, 중복투자 등이었다. 연구, 기술개발 및 이용에 관련된 정부 부서는 의외로 많다. 과기부, 교육부, 정보통신부, 산자부는 물론이고 농림부, 해양수산부까지...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 생긴 변화는 논외로 하자. 잘 모르니까...) 어느 경우이건 경쟁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긴 하다. 문제는 연구 개발에 대한 제한된 예산을 서로 따가거나 업무영역을 늘여서 덩치를 키우려는 경쟁이 되다보니 중복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중복 투자가 반드시 나쁜 것 많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투자가 대개 인기 있는 분야에 집중되어서, 연구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빈익빈 부익부 혹은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이다. 뭐가 좀 된다 싶으면 경쟁이 심해지는 것. 어디 과학기술정책 뿐이겠는가. 그리고 그게 어디 한국 뿐이겠는가. 하지만 한국이 좀 심하긴 한 것 같다. 좀 잘 된다 싶으면 따라하기. 쏠림현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지방자치체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지자체들은 고만고만한 사업들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영화제도 그렇고, 각종 테마 파크... 청계천으로 2mb가 '떠서' 심지어 최고권력자에 이르자 그것 흉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걸 '벤치마킹'이라고 하던가... (영어로 benchmarking인데. 어원은 이렇다. "The term benchmarking was first used by cobblers to measure ones feet for shoes. They would place the foot on a "bench" and mark to make the pattern for the shoes." 그리고 실제 사용되는 의미는... "Benchmarking is the process of comparing the cost, cycle time, productivity, or quality of a specific process or method to another that is widely considered to be an industry standard or best practice."[출처: Wikipedia]. 흠... 그러니까 좀 잘 나가는 모델과 내 것을 비교해 보는 거구만. 허나 한국 문헌에서 '벤치마킹한다'는 거의 '잘 나가는 모델을 따라한다' 정도로 쓰이는 것 같던데... Anyway...) 아무리 좋아 보여도 똑같이 따라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개성도 취향도 없고 성찰력도 떨어진다는 걸 공공연하게 공고하는 것 아닌가. 지역이나 부서 상황, 지향하는 바가 모두 다를 텐데 그냥 껍데기만 가져다가 비슷비슷한 프로그램, 정책, 행사를 만들어 내는 건 정말이지 크나 큰 자원, 노력 낭비다. 개인 차원에서도 다르지 않다. 전국민이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웃고, 국민여동생, 국민배우를 얘기하고, 4천만 중 천만이 한 영화를 보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개성, 취향 없음의 극치다.
ps) 짧은 글에 여러 현상이 중첩되어 있는데, 그 이유인즉슨... 오늘 낮에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해운대' 관객 수가 천만에 이를 것 같다는 얘길 나눈 데다, 미술 감상에 대해서 청탁받은 글을 써야 하고, 또 '한국 과학 거버넌스'가 논문 주제인 상황 등이 겹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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