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예술이라고 부르기 이전에도 동서고금 여러 방식의 예술 활동이 있었다. 예술 작품 생산 방식, 이유 등은 무척 다양했겠지만... (이문열의 '들소' 같은 소설은 선사시대 '창작' 상황이 어땠을지 상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그야말로 근대적 예술 이해이고 대갠 특정한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해석의 여지가 있기 힘들었다. 종교화의 경우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했고 - 기독교이건 불교이건- , 여러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 적어도 당대인들은 - 그게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어야 했다. 초상화, 기록화 같은 건 실물에 가까워야 했으니 그림그리는 이들은 장인, 기술자일 따름이었고, 그러니 화가로서 이름을 남길 수도 없었다. 그림 창작, 소비의 역사에서 몇 번 전환기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 하나로 르세상스 이후 '화가'의 등장을 들 수 있겠다. 창작과 소비의 과정이 훨신 더 복잡해지고, 갈등도 생기고... 또 다른 중요한 계기로 '대중'이 예술 향유자로 등장했음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예술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 둘 수 없던 서민들도 미술관을 통해서 예술 감상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최초 공공 미술관은 '바젤미술관'이라고 하고 1662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계기로 복제품의 등장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유명한 그림을 베끼거나 '화첩'을 만들어 유통하던 역사는 훨씬 길겠으나, 대중들에게 그림이 여러 형태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복제품의 등장, 향유는 인쇄, 출판과 그 이후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전달 매체의 발전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현대인들의 예술 감상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내 경험에 따르자면 워낙 유명해서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서 자주 접한 작품에서 감동을 얻기란 힘들다. 진본의 아우라(aura)? 유럽의 이런 저런 미술관을 찾아가 볼 기회가 적지 않았으나 그런 것 별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 (원본이 의미가 없는 시대. 복제품의 시대를 자신의 창작 컨셒으로 삼은 이들도 있지 않은가. 앤디 워홀 같은...). 물론 유화 같은 경우 원본에선 물감의 두께감, 질감을 확인할 수 있어서 평면적일 수 밖에 없는 복사본과 차이를 느낀다거나, 대작의 경우 그것을 축소해 놓을 때 그런 느낌을 갖기 힘들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겟지만...
여하튼 미술 뿐 아니라 이미지 홍수 아니 쓰나미 속에 휩쓸려 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 지나친 공급 때문에 오히려 예술, 특히 그림을 감상하거나 평가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헌데... 근대적 예술(감상)과 전근대적 예술(감상)에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을까? '아름다움'에 대한 본원적인 추구나 지향은 동서고금 있지 않았나? 그것 뿐인가 진리에 대한 추구도 있었고... 眞善美. 근대적 예술(혹은 학문)과 그 이전 접근의 차이는 그것을 지향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외부와 구분되는 경계를 갖는 하나의 체계가 된다는 것.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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