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일 월요일

전화요금 이야기

언젠가 도서관 연체료 '대박' 맞은 일을 쓴 일이 있었는데, 이번엔 전화비 대박을 맞았다. 전체 액수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큰 건 아니지만,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나왔으니 '대박'이라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리라. 그동안 대개 전체 전화비에서 기본요금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 할 정도로 통신회사들 살림에 큰 도움 못 주는 고객이었는데, 어쩌다가... 더군다나 요샌 '유로'화의 무게가 무척이나 무거운 '시국'아인가. 화들짝 놀라 고지서를 확인해 보니 주범은 해외통화료였다. 왜 그 한국에 전화걸때마다 앞에 누르는 그 긴 번호 있잖은가. 워낙 제공자들이 많이 있고 요금체계가 자주 바뀌어서 난 수년 째 비교할 생각도 하지 않고 01070만 줄곧 사용하고 있었는데, 걔네들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 확인해 보니 아마 지난 달 부터 그 회사 정책이 바뀌었는지 기본요금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 한국 핸디에 전화를 걸 경우 가장 싼 번호가 분당 요금이 3,65 센트인데, 01070은 무려 75,35 센트를 받아 잡수신다. 그나마 통화시간이 길지 않아서 이 정도였지, 한 시간 정도 통화했더라면 그것만 50유로 가까이 나올 뻔했다. 어떤 통신회사는 그래서 통화시작시 기준요금을 알려주는 모양이다.
언젠가 친구와 관련 주제로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나는데, 독일은 요금체계가 꽤 복잡한 편이다. 알뜰한 독일사람들 정서에 맞고, 그래서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건지, 기차표를 하나 끊으려고 해도 고려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비록 내겐 해당사항이 없지만 핸드폰 요금, 인터넷 접속 서비스 요금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극장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난 아직도 헷갈리는 roge, paket 구분 등등. 대신 얘네들한텐 '할인권'이나 '포인트 모으는' 문화는 그리 발달되어 있지 않다. 내 경우payback 카드가 있고, 그러다 보니 Kaufhof 5% 세일 이런 할인권을 받기도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 한국에선 요금 체계 자체는 덜 복잡한 대신 각종 할인 메카니즘은 발달한 듯하다. 요금 계산할 때 주섬 주섬 지갑에서 꺼내는 것들이 많다. 외국에서 오래 있다 온 '어리버리한' 사람들이나 제가격 주고 영화를 볼 것이다. 이유가 있을까? 경제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좀 다른 것일까? 가격체계 자체가 복잡한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공부도 해야 한다. '주체'가 강조되는 것. 허나 할인권은 남이 내게 베풀어준 혜택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주체적 결정권'에 덜 민감하고, 혜택 받는 데 익숙한가? 그것도 아닐테데... 모르겠다.
어찌되었거나. 갈수록 손해보지 않으려면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 덕분에 알게 모르게 내게도 떨어지는 떡고물이 있겠지만 여하튼 늘 반갑지만은 않은 변화다. 예전엔 시내에 나가 가게 몇 군데만 돌아다녔으면 될 일을, 언젠가부터 ebay를 먼저 거치면서 독일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장사치들이 제안하는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몇 유로라도 싸게 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투입해야 하는, 양화되기 힘든 '노력' '시간'도 같이 고려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좀 오버하자면 현대 소비자들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 놓은 framing 혹은 '매트릭스' (cf. 영화 '매트릭스') 속에서 소비'되고' 있는 건 아닌지. 미로 속에 들어 있는 쥐처럼...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갖고서 스스로 뭔가를 찾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길이란 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그런...
자본주의의 반드시 그런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 경제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내 놓는 대책이란 걸 보면, 저기 저 앞이 절벽인게 보이는데도 당장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페달을 돌리고 있는 자전거 운전자가 연상된다.
대량소비, 풍요로움, 문화산업, 환경문제... 사실 이런 것 6,70년대 논의가 끝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데, 도대체 우리는 역사와 과거 논의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배울 생각이나 있는 것인가?
전화비 대박 맞아서 화김에 떠들다 너무 오버했다. 온 세상 사람을 싸잡아서... typisch kj! ㅎㅎ

ps) 내가 고려해야 할 전화요금 체계는 더 복잡했졌다. 공짜로 전화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게 된것. http://www.peterzahlt.de/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으나 그리 긴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다른 사람이 상기시켜 주었다. 그 홈페이지에서 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집전화로 얼마 동안 무료로 통화할 수 있다는... 그걸 가지고 좋아하는 건 어쩜 우리 속에서 던져주는 먹이 받아 먹으면서 만족해 하는 돼지나, 미로 속에서 내 갈 길은 내가 개척해 간다고 착각하는 쥐 같은 모양새는 아닌지...

댓글 2개:

  1. 삼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년 전화비가 15 Euro인 저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그러나 저도 얼마전에 디지털 유목민이 되는 통에 다달이 전화비와 견줄만한 액수를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Prepaid 이니 언제든 맘만 먹으면 (?) 그만둘 수 있기는 하다지만서도...
    Peterzahlt는 하나 아쉬운점이 있다면 상대방 핸디로 전화가 안된답니다. 스스로 확인해 본 결과 회원가입하시면 30분간 상대방의 집전화 혹은 회사전화로 중간에 강제로 10분마다 끊기는 일 없이 통화하실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게 아주 가아끔 연결이 신통치 않은 때가 있어...그때는...항상 5Euro짜리 국제전화카드를 사용한답니다.
    그리고보니 저는 왠지...Prepaid 인생이군요...ㅎㅎㅎ. 때로는 선불때리고 지불한 만큼 쓰는 것이 속편할 때도 있네요...하긴 저도 혹 있을지 모르는 전기료 및 더운물 값 Nachzahlung 때문에 가슴을 졸이곤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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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랜만이오, JGJ
    아닌 게 아니라 우리끼리라도 가끔씩 이렇게 흔적을 남겨야지, 이거 원 일기장 같아서 말이야ㅎㅎ
    prepaid 인생이라... readymade인생이 떠오르는데... 막상 그 의미는 서로 반대에 가까운 것 아니겠오? 기성품이야 자기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고, 기불인생은 그나마 내 선택의 폭이 좀 넓은 편이고...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겠지만. 가면 갈수록 매트릭스 생각이 드오. 체계이론도 사실 딱 그 얘기 아니겠오? 나 없어도 체계는 돌아간다. 한용운님이 복종 속에 자유가 있다는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잖소? 그건 꽤 높은 차원의 얘기겠지만, 매트릭스 수준으로 내려오면 그런 것 아니겠오. 바보상자 티비를 그냥 틀어서 보지 말고,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봐라, 정도. 체계가 돌아가는 방식에 복종해서 살고 그 안에서 찌질한 자유를 누려라... 그걸 벗어나 보려고 하면 얼마나 불편하겠소.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을 것이고... 정말 욕망을 줄이고 줄일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나 같은 '속물'에겐 가당치도 않은 얘기고... 뭐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아, 모처럼 '덧글'에 이런 식으로 반응해서 미안하오. 이런 글은 그냥 읽으면서 고치지 않고 sequenziell 하게 쓰는 편이라, 이해해 주리라 생각하며...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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