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7일 화요일

그 사람, 도올...

도올 선생은 참 난해한 인물이다. '오버'/박식, 무례/겸손의 경계를 넘나 들어서 쉽게 미워할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서 가장 높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아마도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단순 명료하게 풀어내어 남녀노소를 웃고 울리게 만들고, 동서고금 철학사, 사상사를 21세기 한국인들의 일상과 연결시키는 능력일 것이다. 탁월한 '대중선동가'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부흥사 스타일 지식인이이다. 그 원형을 그가 그리도 강조하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적어도 일제시대나 군사독재시절의 '선각[구]자', 저항 지식인의 모습과는 꽤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스스로도 어릴 적 이런 저런 강연회에 열심히 다녔다고 하지 않았나. [그 탓인지 나름 최신 지식까지 섭렵하고 새로운 전달 방식을 도입하려 애를 쓰긴 하지만 좀 구식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너무 계몽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대중지성' 운운하는 21세기가 아닌가.] 아니면 실제로 그의 어릴 적 교회생활과 부흥회 참여 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의 강연 음성파일을 듣고 있노라면 청중들이 금방이라도 '아멘'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에 대한 비판은 대개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나온다. 대중이야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도올의 박식함[과 그의 학위]에 주눅들어 의심을 품기는 커녕 그저 감탄하기에 급급하다 (거기엔 나도 포함된다. 그가 다루는 분야, 인물 중에서 내가 더 잘 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쪽이 거의 없으니...). 또한 도올은 한국 '대중'의 기대를 기가 막히게 만족시켜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학력, 학위, 저술 목록, 박식 등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고선 학계, 정치권의 기득권층을 곧잘 싸잡아 비판한다. 또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주제인 민족적 자부심과 주체성에 대해서 도올 선생처럼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는 지식인을 보지 못했다 [타고난 선동가라는 내 판단은 이런 관찰에 기인한 것]. 도올 선생 강연에서 청중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자연스럽게 '줄기교' 교주인 닥터 황을 떠올렸다. 다만 황박사는 science에 '세계 최초'로 인정받는 - 적어도 그 당시엔 - 논문을 싣고서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도올 선생엔 바로 그런 게 부족하다. 뭐랄까, 자신의 권위을 확보부동하게 지켜 줄 그 '한 방'이 없는 것이다. 그가 낸 업적이란 것도 대부분 고급 교양서에 가깝지 않은가. 그것도 한국에서만 출간된... 그가 자신이 거쳐온 학교, '수집'해 온 외국 학위를 그토록 강조하는 건 어쩌면 그것 외에 딱히 보여 주거나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업적이 없다는 컴플렉스 탓이 아닐지. 물론 학계 실정에 어두운 이들은 그의 학위와 저서 목록만 보고서 절로 생기는 존경심을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불교 등 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그지만, 다른 한 편 도올 선생처럼 종교적 카리스마를 풍기는 지식인을 보지 못했다. 진화론에 대한 믿음으로 기독교 등 일신교를 비판하다 진화교 교주가된 도킨스와도 비슷한... 도올의 종교는 '儒學'이고 '한민족'이다. 학문적 의사소통을 포기하고 미디어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대중 지식인이다. 앞으로는 한국 바깥으로 '진출'하시겠다는 그에 대해 난 매우 비관적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의사소소통을 시작하실 텐가? 외국 학자들? 한국 언론이나 대중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지, 도대체 한국 바깥에서 누가 그가 그가 따온 학위에 놀라주며 그 갈라지는 목소리를 참고 들어줄까? 그것도 영어로? 아무리 한국에서 언론과 청중들의 열광적으로 반응한들, 도올 선생은 무대를 내려 오는 순간 늘 허전함을 느낄 것이다. 학계... 전문가의 인정... 그것을 얻지 못하는 한... 허나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져서 기존 학계와 도올은 그 어긋난 상황을 끝내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성취를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또 한국 지성계엔 그 같은 '엔터테이너'가 필요하다. 아니 학계에서도 그처럼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더 있어야 한다. 또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을 섭렵하고, 그것을 소화하고 번역해서 글 쓰는 학자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상은 오늘 중앙일보에 올라 온 그 양반 인터뷰를 읽고서 든 생각이다. 인터뷰 내용 일부를 옮겨 놓는다.

-‘아시아대륙학’은 어떤 시각을 제공합니까.
“이미 한나라 시대부터 아시아 대륙 끝까지 교류가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우리는 아시아 대륙을 편협하게 인식했습니다. 중동 지역이 이슬람화되면서 그 이전 이슬람과 무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묻혀져 있었습니다. 이슬람은 7세기에나 시작되는 문명입니다. 중동 지역도 아시아 대륙이라는 총체적 사상의 단위와 틀에서 봐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문명도 아시아 대륙에 속한 문명입니다. 예수 시대에 팔레스타인 문명은 헬레니즘을 배경으로 합니다. 헬레니즘은 인도 문명권과 구체적으로 소통된 상태였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동양인에게 어필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스토아 학파에 동양적 사유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유대교뿐만 아니라 이런 헬레니즘 문화의 틀 속에서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철학계는 그런 사유를 하지 못했습니다. 철학의 록스타라고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이 자기 멋대로 떠들고 있습니다만 아시아대륙학적 관점이 보다 탄탄한 관점입니다. 이제 서구 문명을 아시아 문명의 입장에서 규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까.
“공자는 호색(好色)하는 만큼 호덕(好德)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호색의 에너지를 호학의 에너지로 치환해야 합니다. 섹스 충동처럼 강렬한 것은 없지만 학문은 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모든 학문의 기초는 어학(philology)입니다. 어학은 진짜 미련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자라나는 세대에서 정신적으로 탁월한 지도자들이 각 분야에서 나오지 않으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불행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이 빈곤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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