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책 내용을 살펴 보면...
"책은 19세기까지 2천년간의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 문제를 다룬 1권과 19세기를 탐구한 2권, 그리고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20~21세기를 다룰 3권(10월 출간 예정) 등 3권으로 기획됐고... 1권에선 “국내 학계와 지식계가 의도적으로 배척해온 민족 개념의 합리적, 이성적 복원”에 주안점을 뒀다. 뉴라이트 쪽은 민족주의와 정체성 의식단위로서의 민족을 혼동하는 등 무리한 논리 전개를 일삼고 있다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그는 우리와는 역사적 배경이 다른 서구와 일본 쪽의 근대 민족주의 담론을 수입해 지난 10여년간 민족 개념 해체작업을 벌여온 식민지근대화론도 비판하지만, 고종을 개명군주로 보는 근왕주의적 자력근대화론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2권에선 제국주의가 지배했던 19세기 동아시아 역사의 체계적인 시대 구분 작업을 시도했고, 그동안 ‘탈제국주의’ 세력의 선한 얼굴로 다가온 미국을 동아시아를 침탈한 제국주의 카르텔의 핵심 세력으로 재규정했다. 또 1840~1910년 시기를 ‘말기조선’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파악하고 세밀하게 시대를 구분해 시기별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작업도 벌였다. “이제까지 그런 시도는 없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19세기를 얘기하지만 체계적인 분석 없이 사건이나 사안별로만 얘기하는 게 답답하다.” 그래서 방대한 사례를 학습하고 정리한 책 3권 모두가 좀더 열린 전망을 얻기 위한 토론의 재료가 되기를 그는 바란다.
제3권은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를 문명사적으로 정당화하며 폐기해버린 파시즘 비판을 복원하고 일본 지배의 고통스런 내면과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살피면서 냉전질서로 환원할 수 없는 전후 질서를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개념으로 고찰할 예정이다."
특히, 한겨레 서평이 주목하는 부분은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인데, 특히 이 책에서 '중국이 강성해지면 한반도에 위협이 된다'라는 널리 유포된 견해를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고찰이 담겨져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려나 조선이 외침을 많이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대한 외부침략은 대부분 ‘중국’이 아니라 중국을 위협하거나 중원을 해체한 이민족, 특히 한반도 북쪽 유목민(노마드) 또는 유목-농경민들이었다"는 것.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침입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중국으로 통칭될 수 없는, 오히려 중국을 위협하거나 멸망시킨 변방세력이었고, 그들이 중원을 위협했을 때의 중화체제는 약화됐거나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가 된 것도 1840년 아편전쟁으로 청의 중화체제가 무너진 뒤였다. 임진왜란도 중원의 약화와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명의 몰락에는 조선 지원전쟁이 한몫했다."
아래는 서평과 인터뷰 중 주요 부분을 오려 놓은 것. 사실 조선말에서 분단에 이르는 그 시기가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시기라서 이같은 연구가 특별히 눈에 띈다.
"중국위협론은 냉전 붕괴 뒤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려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을 비롯한 보수우파세력이 지어내고 일본과 한국 내 친미우파가 동조하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다. 지난 2천년 동안 중국이 한반도 침략을 주도했다는 ‘낭설’은 이런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잘못된 ‘기억의 정치’ 현상 때문이다. 이는 현대판 중화체제라 할 미국의 제국적 패권이 보장해준 기득권을 지켜준다. 미국 정책을 비판하기만 해도 ‘반미’로 몰고, ‘용미’로 정당화하지만 실은 무조건적 친미만 허용되는, 비판적 사유와 대안 탐구의 틈새조차 위험시하는 ‘한-미 동맹’의 이데올로기화, 즉 현대판 소중화의식에 찌든 기득권층은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세 변동을 무시하거나 거기에 대해 무지하다. 이래서는 중국이 새로 서고 북한이 바뀌고 러시아와 베트남, 인도가 다시 떠오르는, 명말청초와 개화기처럼 급속히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주변 정세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백년대계의 대전략을 세울 수 없다. 게다가 분단상황에서 분단체제의 창안자요 유지자인 미국판 중화질서에의 과잉의존은 더더욱 위험하다.
“요령부득의 ‘전략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미 동맹 강화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배경에도 ‘중국이 강해지면 한반도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미국 네오콘들이 자가발전한 관념을 그대로 수입해서 약간 가공해서 써먹고 있다. 그래서는 아시아적 전망이 제대로 들어설 여지가 없다. 학계도 다를 바 없다.”
그는 “특정국과의 동맹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판 중화질서에 올인해온 중독증세에서 벗어난 “균형외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배세력, 기득권층은 특권 유지와 생존을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외세를 끌어들이고 그들과 연합해서 더욱 지배체제를 강화하려 드는데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란다. 고종이나 명성황후(민비), 또는 개화파식 외세 끌어들이기가 그런 것인데, 이 교수는 그것은 균형과는 다른 ‘균세’라며 구분했다.
한국일보 서평은 책의 다른 내용에 주목했다 (여기). 예를 들어...
또 1,000년 넘게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기본 골격이 된 '조공과 책봉(冊封)' 관계를 서양의 제국주의와 비교하면서, 이를 각국이 평화 속에서 비공식적 자율성을 유지한 '제3의 질서'로 규정한다.
"존 K 페어뱅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양 학자들은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를 독립국 간의 국제관계가 아니라 변형된 식민주의로 파악합니다. 위계질서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죠. 베스트팔렌 체제에 의한 주권적 평등 관계와 식민주의 착취 관계로 철저히 이분된 세계사를 통과해 온 서양의 시각으로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조공질서는 약소사회를 철저히 착취하는 식민주의와 달리, 내적 자율성이 보장되던 체제였습니다. 이를 제3의 질서체계로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 질서의 기본 골격을 중화제국과 북방세력 사이에 한반도가 낀 삼각 구도로 인식하는 고정관념도 깬다. '외세의 침탈과 그에 대한 민족항쟁'이라는 결정론적 도식은 전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중화제국 외부 세력에 대한 타자화를 긍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견 (혹은 원로) 역사학자의 작업에 대한 소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답글삭제원 한겨레 기사중 이삼성 교수를 소개한 부분에서 다음의 구절이 이상하게 흥미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경기도 남양주 산골에 집을 짓고 1주일에 2~3차례 학교에 출근하는 일 빼고는 공부에 몰두해온 미국외교와 현대 국제정치 분야의 탁월한 연구자 이삼성 교수.:::
뭐랄까...살짝 아이러니하게 들리기도 하고 (:)), 마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주일에 2,3차례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구 35만의 한적한 (?) Bielefeld에 거주지를 정하고 한국의...와 (심지어) 행성간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몰두해온...씨...씨...ㅎㅎㅎ
학자란 이런것일까요?:)
흠. 난 장선생이 바로 그 구절을 흥미롭게 읽었다는 점이 흥미로운걸. 왜 본인 누리집 제목도 '혈거인'아닌가. 동굴 속에 살았다는 그 네안데르탈인에게 붙여졌던 그 이름. 어쩌면 '공간'의 의미에 대해서 예민하게 성찰하는 쪽이 아닐지... 여느 '평범한' 사회학자들의 공간 개념을 넘어서는 먼거리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혈거인'과, '남양주 산골' 집에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라는 커다란 주제를 붙잡고 있는 역사학자는 사실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 나는? 흠... 난 여러 이유로 하루에도 몇번씩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 플러그를 꽂고 빼기를 해야 하는 신세라, 오히려 '유목민' '노마드'에 가까운 모습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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