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아래 얘기는 지당한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할 생각을 해보면 생각처럼 그리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적 균형'이란 얘기는 매우 상대적, 구성주의적 발언이다. 균형을 잡아 줄 중심의 존재을 상정하지 않는 거니까. 한 마디로 그 때 그 때 다르다. '나는 가수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나는 가수다'에서 재도전 허용이 비난받았던 까닭을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찾을 것인가?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그렇다. 하지만 한국 시청자들, 네티즌들 - 그게 누구건 간에... - 이 언제부터 그렇게 '원칙'을 깐깐하게 지킬 것을 요구했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이런 선택상황이 무수하게 많을 텐데 우리는 실제로 매번 다른 방식으로 원칙을 적용한다. 동일한 시청자, 네티즌은 유권자이기도 할텐데 그들이 원칙을 깨는 정도가 아니라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인데도 표를 줘서 당선시키기도 하지 않은가. 세상에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란 없다. '나는 가수다' 사태에 대해서 우리는 왜 그 프로그램에 대해서 유독 '원칙'을 강조했는 지를 물어야 할지 일반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저 아래 글에선 나도 그랬던 것 같지만).
'절대적인 원칙이란 없다'는 발언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살인 금지' 어떤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 자명해 보이는 이런 원칙도 일탈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식에 의해서 깨지고 있다. 대표저긴 방식으로 전쟁, 사형, 정당방위...

내겐 어떤 '원칙'이든 '원칙적으로(ㅋ) 상대적'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할 특별한 필요가 있다. 귀국 이후 접하게 되는 여러 낯선 상황에 대해서 그동안 짜증, 분노를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따져보니 그 밑바닥엔 내 판단기준이 더 우월하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기준의 우월함을 믿고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한국 상황이나 타인이 전제로 하고 있는 원칙을 우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 같다. 사실 그게 더 사회학적 접근이기도 하다.

탈중심 사회에서 균형잡기: 동적 균형

통일성과 다양성, 갈등과 질서, 자유와 평등... 이렇게 묶어 놓으니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가치나 상태 외에 실제 존재하는 모든 현상엔 다면성이 내재되더 있다. 대개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느냐의 문제다. 게슈탈트심리학! 우리는 두 면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시점을 바꿔가면서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불안정성, 불확실성은 인간 사회의 역사를 얘기할 때 지나쳐버릴 수 없는 측면이다.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제약, 유한성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한 불안감, 공포를 떨칠래야 떨쳐버릴 수 없다는 점이 불안정성, 불확실성의 더 본원적 이유일 수도 있겠다 ('천국행 티켓'은 중세 유럽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사고하는 존재 -호모 사피엔스 - 가 존재하는 그것에 대한 수요, 공급은 없어질 수가 없다).
불확실성, 불안정성, 복잡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인류 역사의 단계를 그 처리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 근세사에서는 새로운 처리방식의 등장을 구분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바로 근대의 등장이다. 중세의 질서는 크게 중심부와 주변부로 구분되며, 그것들 사이엔 위계적인 방식으로 질서가 유지되었다면, 근대엔 중심이 없이 동등한 차원의 다양한 단위들로 나뉘고 (탈중심적) 그것들을 위계적으로 조정하던 메카니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니 불확실성, 불안정성, 복잡성의 정도를 강하게 느끼게 되는 건 당연지사.
이런 상태에서도 질서는 유지된다. 쭈욱... 하지만 그런 질서는 불안정하기 그지 없다. 동적 질서, 동적 균형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 계속 움직여야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팽이같은 운명이라고나 할까. 그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카타스트로피! 국가 (당?)가 생산을 통제하던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을 볼 것! 하지만 이 균형을 잡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 역사에서 승리했다고 자화자찬하던 모델 (후쿠야마),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 역시 몇 년 전 거의 무너질 뻔 하기도 했다.
이런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그 어떤 영웅이라도 세상을 단 칼에 구원할 수는 없다. 울타리 세우고 그 속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살지 않는 이상 - 그런 경우에도 이웃에서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 - 이 불안정성과 어울리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정답은 없다. 다른 나라 쫓아가면서 우리도 좀 잘 살아보자며 허리띠 조으던 시절에 그나마 지향해야 할바가 분명해 보였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도 않다. 다양성, 불안정성 속에서 균형 잡기. 대단한 통찰력과 지혜와 심지어 예술적 감수성까지 필요한 작업이 되었다.

back to basics!

내 지론(持論)이다. 복잡할수록 단순하라! 근본으로 돌아가라! 어제 방영된 '나는 가수다'는 그런 점에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된 이들이 비로소 대오각성했다는 점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어야 했다. 사람들은 '서바이벌'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음악'을 보고 싶었다. '서바이벌'이란 장치 때문에 원래 잘 하는 프로들이 더 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연출자는 음악을 이용해서 '서바이벌 예능'을 하고 싶었다. 지난 회에서 재도전 기회를 주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게 본질이라고 얘기하던데 차라리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어젠 서바이벌이란 장치와 재도전 후폭풍이라는 부담감이 제공하는 긴장감 속에서 가수들이 끌어 낸 최대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사치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 '가위질' 자제하고 음악에 충실하니까 되잖아요, 김피디 형님. 전엔 왜 그러셨어....
텔레비전의 '근본'은 '바보상자'라는 믿음 때문에 요즘 보기 드문 구형을 가지고 있는데, 어젠 좀 아쉬웠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재도전 사건'은 매우 유익한 사회적 학습 기회였고 앞으로 가요계와 방송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정함, 정의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확인했고, 고만고만한 '땐스가수'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던 영토가 확 줄어드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대신 진지하게 음악하는 이들의 열정과 실력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를... 결국 진심, 열정은 통한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김병만의 달인 연기나 남격, 1박 2일, 무한도전 같은 날 것에 가깝게 보여주는 예능이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연예인 캐스팅 프로그램 인기 역시... ).

그리고... 난 어제 김범수 일등을 쉽게 예상하지 못했는데, 모두 못난 티비 탓이다. 흑흑. 하지만 잘난 티비였더라도 한계가 있었을 것. 그래서 어제 결과는 현장 투표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음악의 본질은 역시 공연에 있다는 사실! 디지털 기술로 성형하듯이 만들어 내는 음악이 아닌 날 것 그대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도 재미있게 들었었는데, 김범수 씨, 인생의 전환점이 되겠다. 새삼 확인하지만, 티비의 영향력 정말 대단하다. 아니, 그런 방송의 방향을 좌지우지 하는 '대중'의 힘 역시 대단하다. 아니 실체가 불분명하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면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을 죽였다가 살리기도 하는 현대 사회의 발현 방식이 대단하다. 그런 점에서 무섭기까지 하다. 매트릭스...

2011년 3월 27일 일요일

신뢰

한국을 '신뢰'라는 사회자본이 부족한 사회라고 얘기한다. 신뢰를 정의하기 나름 아닐까? 어떤 형태로든 신뢰를 가지진 않고선 우린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테니. 누구, 무엇을 더 신뢰하느냐, 덜 신뢰하느냐, 거기에서 지역과 개인에 따른 차이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정부(government)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로! 최근 정책, 행정에 대한 학술적 담론에선 상식처럼 수용되고 있는 공식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지만 요즘처럼 불확실성, 우연성이 많은 시대에서 정부 역량은 곧잘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고 이는 곧 불신으로 이어진다. 지금 일본이 그런 상황일 것이다. (신)거버넌스 상황에서 책임과 결정을 분산하면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겠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보단 나은 방식인 것 같다. 복잡한 사태에 대해선 복잡함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불확실성, 복잡성, 다면성과 친해지는 수밖에. 그걸 견디지 못하면... 독재하거나 울타리를 치고서 혼자서 자급자족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규칙, 규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한 규칙이 없을 순 없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여러 규칙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일 것. 어떤 사회에 크고 작은 갈등이 많다면 그건 규범이 많아서가 아니라 규범이 너무 많고 그것들 사이에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현대사회에선 규범의 다양성과 갈등을 피할 길이 없다.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분노와 영성

'착하다'는 단어는 분명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 최근엔 더욱 더... '착한 가격' 같은 표현을 떠올려 보시라- 시종일관 착하기만한 경우라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시종일관 따뜻하고, 착한 영화... 으- 얼마나 지루할까.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착하기만 한 사람? 그 경우는 대개 착하다는 게 순진, 순박하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 그다지 긍정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면서 동시에 착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바람직한 성품으로 봐야 할 것이다. 착한 영화가 재미가 없는 건 인생의 깊은 차원을 건드리지 못하면서 한 두마디로 표현될 수 있는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 아니던가. 그런 깊이와 착함을 동시에 갖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착함의 다른 편엔 어떤 상태가 있을까? 화냄, 분노가 아닐까? 착하게만 살기 힘들기에 때로는 분노를 감추면서, 가끔씩은 그렇게 쌓아 놓은 분노를 표출하면서 살게 된다. 화를 너무 억누르면 화병이 된다고도 하면서 지나치지 않는다면 화를 내는 게 필요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화를 내는 일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자리잡는 것 같다. 습관성 화냄, 욱하기! 영성을 가꾸는 일에 가장 큰 적이 바로 이것들인 것 같다. 깊은 영성을 지닌 상태는 순진무구와 거리가 멀다. 순진무구, 착함, 분노, 화냄... 이런 감정들을 너머 선 차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영성을 추구한다면서 가끔씩 분노의 상태로 내려와 보는 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일이라 이해할 수는 있으나 피해야 할 모양이다. 화를 쌓아두는 것도, 또 가끔씩 표출하는 것도 모두 습관이 되니까. '거룩한 분노'라는 좀 어색한 표현을 쓰면서 명백히 잘못된 행동, 대상에 대해서 분출하는 분노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기도 하지만 습관이 되는 '분노'에는 그런 유형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 습관(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뭐 눈엔 뭐만 보인다', '프레이밍', '하비투스'(habitus) 등이다. 분노를 부르는 행동에 대해서 바로 내뱉는 말이나 글에선 좋은 기운, 착한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옳지 않은 권력에 대한 비판에서도... 그 대안을 굳이 표현하자면 영성에 기초한 비판, 착한 비판, 독기를 뺀 비판 정도가 되겠다. 그런 비판만이 모두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3월 25일 금요일

독일에선 이방인이라고 바라 보는 시선에서 피할 수 없었지만, 겉모습으론 이방인일 수 없는 한국에선 독일에서 키워서 가져 간 생각과 습관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을 자주 겪는다. 재채기, 그것도 손도 대지 않으면서 최대치 음량으로 내는 재채기에 관대하면서 코 푸는 소리엔 매우 예민한 한국 상황. 물론 독일 도서관에서 쩌렁쩌렁 울리며 눈알이 튀어 나올 정도로 강력하게 코를 풀 때 나는 소리엔 결국 적응할 수 없었고, 재채기를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럼 뭔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인가? 언제까지?
"李대통령 '천안함 진실왜곡 잘못 고백 없어 슬퍼'"

흠. 나도 슬프다.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던가? 그걸 그렇게 믿으시다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닐가. 아니 그런 연민도 과분할 지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짜 맞추었던 설명을 '진실'이라고 믿고, 열을 내는 '오른편'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뭐 그런 여론에 의지해서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다. 어짜피 '정치'아닌가. '진실'이란 단어의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게 안타까울 뿐...
정치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무엇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누구나 대부분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어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게 바로 그 얘기이고, 좀 '유식한' 말로는 '프레이밍'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진실이니 과학이니 열을 내면서 싸워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길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하버마스 형님껜 죄송한 일이지만...
이번 '나가수' 사건을 보면서 느끼신 바가 좀 있는 지 모르겠다. '공정사회'란 화두를 꺼내 놓길 잘했다고 쾌재를 부르실까?

2011년 3월 22일 화요일

'나는 선배다' (ㅋㅋ)


'나는 가수다' 지난 회 방송 내용에 대한 뒷담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송프로그램에 관해서라면 무관심보다는 욕먹는 게 백번 낫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관계자들 입장에서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다. 피해 혹은 손해를 입은 쪽은 연예인 참여자들일 것이다. 더 멋진 가수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린 김건모, 감정 표현에 지나치게 솔직한 이소라, 그동안 키워 온 '바른' 이미지와는 다르게 규칙을 깨는 일에 총대를 멘 김제동. 뭐 그냥 좀 너그럽게 봐 주자, 왜 유독 이 프로그램에만 그렇게 깐깐한가 류의 발언도 적지 않지만 비판적 목소리가 대세인 것 같다. 때론 냉정하게 들리는 '땡' 소리를 내는 1박2일 진행과 비교할만한 일이다. 별로 정직할 것 같은 인물이나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정직, 규칙 깨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개 관대하다. 대통령이 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정직, 대쪽 이미지가 절대적이었던 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가수 탈락이 핵심이고 그것 가지고 포로그램 홍보를 해 왔는데 그 규칙을 깨니 배신감을 주게 된 것이다. 내가 자주 강조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원칙을 분명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별로 공정하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이 꺼내선 그렇긴 하지만 '공정사회'는 앞으로 한국 사회의 방향성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지켜져야 마땅할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신뢰사회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대단한 원칙이나 신뢰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들에 대한...
PS) 결국 이 '사건'은 극적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김영희 피디가 짤렸고, 김건모도 나오기로 했고, 김제동 펑펑 울었다는 얘기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한 번 비난의 대상이 되고... 변덕심한 대중이고 네티즌이지만 이번 사건을 그저 네티진들의 과민반응이나 군중심리 정도로 평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규칙 지키기, 공정성을 어느 만큼 갈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봐야 할 것이다. 끝까지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가 꾸준히 그것도 많이 팔리고 있는 '사건'과 더불어서...

2011년 3월 13일 일요일


봄맞이 작업 중 하나로 노트북 바탕화면을 바꿔보려고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 봐았다. 한참을 뒤적거리며 애쓴 끝에 아쉬우나마 쓸만한 사진 하나를 겨우 겨우 건졌다. 짜증이 나서 몇 번 포기했다가 다시 시도한 끝에 ㅠ ㅠ 바탕화면은 대개 계절마다 바꾸는데 예전에 몇 달씩 깔아 뒀던 그림들은 신선한 맛이 없어서 다시 쓰지 않게 된다. 몇 번 내가 찍은 사진을 쓰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쓸만한 사진 찍은지 아주 오래되어서...
내가 어떤 그림, 사진을 좋아하는지 새삼 관찰할 수 있었다.
(1) 우선 흑백을 선호한다. 워낙 바깥 세상이 울긋불긋하고, 컴퓨터 프로그램, 인터넷 공간도 울긋불긋하기 때문에 배경이라도 최대한 담백해야 한다. 색에도 내가 상상해서 채워 넣을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2) 실제로 그림 사이 빈 공간이 많아야 한다. 너무 꽉 차 있으면 답답해서 견디질 못한다.
(3) 인공적인 무늬냐 그래픽은 사양. 이미 여기 저기 그런 것들로 넘쳐 나기 때문.
(4) 이건 오늘 새삼 느낀 바인데... 직선으로 이루어진 모양, 풍경은 싫다. 한 때 도시풍경을 즐겨 깔아 두기도 했는데 오늘은 건물들의 직선이 유난히 부담스러웠다. 인공물들은 대개 직선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다 보니 하늘이 보이는 흑백을 된 멀리 보이는 자연 경치를 주로 찾게 되었는데....
그렇게해서 찾아 낸 풍경이다. 잠시 감상...


오늘 가요 방송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느낀 건데... 연주하는 인간이 느껴지지 않는 음악, 컴퓨터로 만들고 다듬어낸 듯한 소리를 들어 주기가 힘들다. 아마 직선이 눈에 거슬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반응 아닐까? 원래 아날로그 체질이긴 했지만 그런 경향이 좀 더 심해지는 듯...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가 하나 더 는 건 아닌지...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삼월이다. 아니 삼월도 벌써 절반이 다 돼 간다. 한동안 다시 춥더니 오늘은 제법 따뜻하다.
일본에서는 지진과 해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마음이 참 아팠다. 인도네시아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을 때 보다 더... 더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인지...
날씨에 마음을 주고,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큰 난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오늘도 내 시간은 대부분 늘 하던 일들로 채워진다.
일상에서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영성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요즘 내 생활은 영성에서 먼 셈이다. 멀어도 한참...
헨리 나우웬 책을 읽을 때 잡은 바가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손가락 사이로 다 새나갔다. 내일은 그가 쓴 다른 책을 한 번 구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