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성과 다양성, 갈등과 질서, 자유와 평등... 이렇게 묶어 놓으니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가치나 상태 외에 실제 존재하는 모든 현상엔 다면성이 내재되더 있다. 대개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느냐의 문제다. 게슈탈트심리학! 우리는 두 면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시점을 바꿔가면서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불안정성, 불확실성은 인간 사회의 역사를 얘기할 때 지나쳐버릴 수 없는 측면이다.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제약, 유한성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한 불안감, 공포를 떨칠래야 떨쳐버릴 수 없다는 점이 불안정성, 불확실성의 더 본원적 이유일 수도 있겠다 ('천국행 티켓'은 중세 유럽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사고하는 존재 -호모 사피엔스 - 가 존재하는 그것에 대한 수요, 공급은 없어질 수가 없다).
불확실성, 불안정성, 복잡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인류 역사의 단계를 그 처리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 근세사에서는 새로운 처리방식의 등장을 구분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바로 근대의 등장이다. 중세의 질서는 크게 중심부와 주변부로 구분되며, 그것들 사이엔 위계적인 방식으로 질서가 유지되었다면, 근대엔 중심이 없이 동등한 차원의 다양한 단위들로 나뉘고 (탈중심적) 그것들을 위계적으로 조정하던 메카니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니 불확실성, 불안정성, 복잡성의 정도를 강하게 느끼게 되는 건 당연지사.
이런 상태에서도 질서는 유지된다. 쭈욱... 하지만 그런 질서는 불안정하기 그지 없다. 동적 질서, 동적 균형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 계속 움직여야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팽이같은 운명이라고나 할까. 그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카타스트로피! 국가 (당?)가 생산을 통제하던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을 볼 것! 하지만 이 균형을 잡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 역사에서 승리했다고 자화자찬하던 모델 (후쿠야마),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 역시 몇 년 전 거의 무너질 뻔 하기도 했다.
이런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그 어떤 영웅이라도 세상을 단 칼에 구원할 수는 없다. 울타리 세우고 그 속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살지 않는 이상 - 그런 경우에도 이웃에서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 - 이 불안정성과 어울리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정답은 없다. 다른 나라 쫓아가면서 우리도 좀 잘 살아보자며 허리띠 조으던 시절에 그나마 지향해야 할바가 분명해 보였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도 않다. 다양성, 불안정성 속에서 균형 잡기. 대단한 통찰력과 지혜와 심지어 예술적 감수성까지 필요한 작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