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반납하기 전에 인상적인 구절을 좀 남겨 놓으려고...
p.23: "우리의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 freedom of choice'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이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꾸 반복적으로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이유는 뭔가 심리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모여 앉으면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 선택의 자유는 인간 존재의 근거다. ... 요즘 유행하는 행동경제학의 '넛지 nudge' 같은 개념은 바로 이 선택의 자유에 관한 경영학적 변형이다. 방향만 은근슬쩍 제시하고 최종 결정은 스스로 내리도록 해야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p.32: "... 마르크스 <자본론> 어딘가에 있는 내용이다. 행동을 하기 전에 목표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 목적과 상상력, 이 두가지가 인간 행위의 본질이다. 목적을 떠올리고 그 목적을 향한 행위를 가능케 하는 그 힘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심리적 경험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심리학에서는 '모티베이션 motivation'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그러나 뫁티베이션은 아주 애매한 미국식 개념이다. .. '모티베이션' 혹은 '동기'로 번역되는 이 실행 동력의 한국식 조작적 정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설렘'이다. 가슴이 뛰고, 자구 생각나고, 목표가 이뤄지는 그 순간이 기대되는 그 느낌을 우리말로는 '설렘'이라고 한다. ... 설레는 일이 있어야 삶이 행복하고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해야 설레는 삶을 살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난 한 주간 내 일상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된다. 내가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일을 기억해내면 된다. 바로 그 일들이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이다. 그 설레는 일들을 끊임없이 계획하며 살면 된다. "
p.42: "세계 모든 문화권에는 '겸손하라!'는 도덕적 명령이 존재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겸손은 본질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덕목이기 때문에 그런 도덕적 명령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다. 누구나 자기 잘난 거 잘난 체하며, 폼 나고 싶어 한다."
p.45: "삶의 속도가 급변하여 생기는 문화병의 치료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걷기'다. 수백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걷는 속도'에 적응해 발달해왔다. 감당하기 어렵게 빠른 삶의 속도는 불과 지난 몇백 년 동안의 일일 뿐이다."
p.63: 새해의 결심이 좌절되는 이유는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옹골찬 계획을 이뤄내기 위한 방법론에 뭔가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까닭이다. 나 자신과 싸우려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언제가부터 '나 자신과이 투쟁'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마라톤... 산 정상... 성공한 사람...
불안해서 그렇다. ... 자신의 불안한 내면의 원인이 분명치 않으니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바깥의 적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래서 스스로를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그래야 문제의 내용은 물론 해결책도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착하거나 혹은 비겁한 이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미래는 원래 불안한 거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무한 지속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 1년 365일을 만든 것이다. 무한한 미래를 1년 단위로 끊어놓으면, 미래가 매년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365일이 지나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영원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는 인류가 시간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기 위해 지난 수만 년간 고안해낸 마법이다. ... 새해에는 즐거운 결심을 해야 한다. ... 제발 나를 괴롭히며 싸워 이기려고 달려들지 말자. 이미 충분이 많이 싸웠다. 나 자신은 절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설득해야 할 아주 착하고 여린 친구다."
p.75: "개념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문화적 약속이다. 혼돈스러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개념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일단 개념이 한번 성립하면, 그 개념은 역으로 또 다른 실재를 만들어낸다. 개념과 실재 사이에 성립하는 이와 같은 상호 규정을 '해석학적 순환 hermeneutischer Zirkel'이라고 한다."
p.86: "아이들이 발달 과정에서 내면화하는 도덕적 규범들의 초기 형태는 '사회적 참조 social referencing'라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낯선 상황 혹은 낯선 대상에 대한 아이들의 규범적 판단은 어머니의 정서적 반응을 참조해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난생처음 흑인을 본 아이는 어머니의 표정을 살핀다. 어머니가 당황해하거나 어색하면 아이의 반응도 똑같아진다. ... 흑인에 대한 문화적 편견은 이렇게 주변인들의 정서적 반응을 참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또한 이런 식으로 세대를 건너며 전달된다. 물론 왜곡과 편견의 해소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p.98: 하버마스가 이야기하는 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심리학적 근거는 '함께 보기 joint-attention'라는 상호작용이다. '마주 보기 eye-contact'와 더불어 '함께 보기'는 아동의 의사소통 발달의 핵심현상이다. ... '함께 보기'로부터 시작하는 상호간의 '관심 공유' '의도 공유'야말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심리학적 기초다.
p.103: "인간은 불안하다. 유한한 존재는 죄다 불안하다. 그 불안의 실체는 시간이다. 도무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 또한 그 본질상 시간에 대한 불안이다.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전, 인류는 자연을 두려워했다. 도무지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인간은 스스로의 의식을 바꾸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으로 바꿔 버리는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원근법이다. 도무지 통제 불가능한 대자연의 공간을 2 차원의 평면 위에 그려낼 수 있게 되자, 자연은 곧바로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소실점으로 회귀하는 객관적 척도를 발명한 것이다. 아울러 소실점을 기준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비율로 그려내는 자연의 미메시스는 인간 합리성의 토대가 된다. 이는 근대 과학의 기초가 되고, 인간은 드디어 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공간과는 달리 시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차원을 줄이는 지혜가 있었다. 4차원의 시간도 3차원 공간으로 줄이면 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시계다. ... 시계의 본질적 기능은 반복이다. 도무지 어디로 흐르는지 모르는 시간이 시계라는 3차원의 물건에 들어가자, 시간은 이제 반복되는 게 되었다. ... 오늘 잘못하면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것도 잘 안되면 내년에 또다시 시작하면 된다. ... 이런 식의 도덕적 해이를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발달 development'이다. ... 성장과 발달의 개념은 역사의식과 더불어 나타난 근대적 발명이다. ... 사회처럼 각 개인도 발달학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발달심리학이 탄생한다. 인간의 발달은 영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다."
p.105: "성인이 됨과 동시에 대부분 죽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했을까? 오늘날 '마흔 불혹'의 뜻은 바뀌었다. '아무도 유혹하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p.107: "우리의 '가족'이 그토록 갈등인 이유는 가족의 사회적 표상이 너무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p.139: "사람이 왜 그렇게 금방 싫증을 내는가에 관해 칙센트미하이는 '능력'과 '과제'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과제가 내 능력보다 어려우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걱정에 빠진다. 반대로 과제가 내 능력보다 못하며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고 무관심에 빠진다. 그러니까 내 능력과 과제는 지속적으로 서로 발전해야 끊임없이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이 발전의 동력은 약간씩 어긋나는 능력과 과제의 관계다. 내 능력보다 과제가 약가 더 높은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견딜 만한 불안이다. 이 경우 각성 상태가 유지되며 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 몰두하게 된다. ... 인터넷 게임... 그래서 공부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다. 자기 능력이 향상되며 과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p.157: 이어령 편 "'언제 외로우세요?' ... '디스커뮤니케이션 discommunication.' '미스커뮤니케이션 miscommunication'이 아니고 '디스커뮤니케이션'이다. 미스커뮤니케이션은 소통의 의지는 있으나 내용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다. 그러니 디스커뮤니케이션은 다르다. 소통의 의자 자체가 아예 없거나 화자의 의도가 애초부터 왜곡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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