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0일 월요일

―굳이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 필요가 있나. 죽을 때가 오면 죽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내 삶도 그렇게 바뀌었다. 죽음을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진다." 


 ―죽음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건가? 


 "죽음은 혼자 떠나는 것이다. 모든 걸 남겨두고 간다. 우리 삶은 갖고 가지 못하는 것들에 너무 집착한다. 마지막을 생각하면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훨씬 현명해진다. 중세 수도원 수사들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서로 인사했다. 자신의 마지막과 소통한 것이다."

오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중 일부다. 대구의료원의 호스피스 병동을 책임지는 의사 김여환(47)씨와의...

지난 해 어떤 계기가 있어서 '자살'과 '죽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쓰려던 자살에 대한 논문을 완성하진 못했지 그 공부 자체는 매우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천선영 교수가 이미 해 놔서 새삼스럽게 그 분야로 뛰어 들 엄두를 내진 못하겠지만, 생명윤리의 사회학과 관련해서 충분히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윤리의 '생명'이 그야말로 모호한 개념이라서 '생명윤리'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학자들도 있는 것 같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생명윤리'가 요즘 유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명윤리엔 심지어 죽음의 윤리도 포함하고 있다. 생명윤리와 비슷한 이중적 대접을 받고 있는 개념이 생명과학, 생명공학이다. 모호하지만 그 모호함 때문에 사랑받는...

생명과학 논의에선 실제로 '생명'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드러난다. 노련한 과학자들은 그것을 잘 이용하기도 하고... "'생명' 앞에서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좀 진부하다. (어제 목사님 설교도 그런 내용이었다. 군대 귀신 씌인 청년을 살리기 위해서 수 천명의 돼지가 죽는 사건... 청년의 생명이 귀하다! 뭐 그런...) 물론... 그런 명백한 생명의 위기 상황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배제의 증가 경향 때문에... 하지만 생명의 위기는 덜 절박한 방식으로도 여기 저기에서 관찰된다. 그래서 이젠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할 경우들이 늘고 있다. 선택의 가능성들,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앎이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얘기는 더 이상 '금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모를 권리' (Recht auf Nicht-wissen-wollen) 같은 개념이 등장했을까...

이젠 더 많은 지식은 행복으로 이르는 지름길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아니 쓰나미 속에서 생존하려면 지식과 정보 다이어트가 필수부가결하다. 하지만... 나 혼자서... 다이어트한다고 될 일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서...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 등을 거부하더라도... 혹시 유전적 질병을 가지고서 태어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따질 경우 그런 검사를 받지 않은 점이 고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려면 알 수 있는데 모른다는 건... 애초에 모르는 것과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많은 지식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 줄거라는 소박한 믿음을 유지하기란... 더 힘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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