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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보니 화가의 자화상이다. 손에 들고 있는 도구들을 보라... 노골적이다. 그 화가는 그런데 인상이 참 강하다. 게다가 드러나 보이는 팔뚝도 굵다.
그런데 배경과 화가를 동시에 보면 왠지 어색하다. 어울리지 않는다. 저런 풍경이 보이는 곳에 화가가 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인물화의 풍경치곤 매우 현란하다. 풍경화와 자화상이 합쳐진 듯하다. 구도를 보면 모나리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내용적으로...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부)조화가 보인다. 중절모와 팔레트가 '신식' 분위기라면 두루마기와 뒷배경은 전형적인 '구식'이다. 또 강한 남성미 풍기는 얼굴과 붓을 들고 있는 '시츄에이션'이 어울리지 않는다. 5일장에 나섰다 얼떨결에 화가용 소품을 들고 사진을 찍은 시골 청년 풍모 아닌가. 물론 주저함이라곤 모를 것 같은 듯한 단호한 표정이 그런 어색함을 덮어 주긴 하지만... 그러고보니 인물의 선을 굵고 진하게 표현한 것은 '약간' 프라다 칼로의 어떤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무리봐도 전체구도는 '모나리자'에서 빌려온 것 같다.
이름이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어울린다. 이쾌대. 호방하다. 이 그림은 1948, 1949 그 무렵에 그려졌다니 해방 후 미군정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쏟아져 들어온 서구의 문물에 저항하려는 화가의 결기의 표현이리라. 좌파 미술인 단체에서 활동하는 등 당대 현실에 깊숙이 개입했다가 한국전쟁후 월북했고,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한국근대미술사에서 소외되었다 1988년에서야 해금되었다고 한다. 남한에 남겨 둔 그의 아내가 그림을 보관하고 있어서 해금 후에 이런 그림이 볼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하고... 언제 그렸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래 그림은 훨씬 더 '화가' 자화상 같다. 좀 더 우울해 보이고... '숱검댕이' 눈썹은 여전하지만... 옷도 역시 여전히 한복이네...
이 화가의 '존재'에 대해선... 덕수궁에서 열리는 전시회, "근대를 묻다 -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를 알리는 기사에서 알게 되었다.

p.s.) 지난 10월 열린 '대구의 근대미술'전에서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실물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그림은 실물로 봐야 제 맛이다. 실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질량감, 터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극장의 큰 화면에서 볼 때 감흥이 다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