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5일 금요일

21세기에 믿는 기독교

내용은 다르겠지만 세계의 여러 종교는 세상사, 인생사를 설명하거나 의미를 부여해주는 하나의 지식틀이다. 오랫 동안 가장 중요하고 권위있는 지식으로 그 위세를 떨치다가 소위 근대 이후 차츰 차츰 그 지위를 다른 지식체계에 내어 주고 있다. 과학이라는 지식 말이다. 기독교에 한정해 본다면 전지저능한 하나님 때문에 인간은 신의 뜻, 더 정확하게는 신의 뜻으로 표현되는 교회와 성직자의 해석을 좇아서 사는 수동적 존재였지만,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때문에 지구와 인간의 유일성 혹은 특별성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런 기독교적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는 이런 지식틀에 근본적인 도전은 바로 근대과학인데, 대표적으로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의 주장을 들 수 있겠다. 코페르니쿠스 이후로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다윈 이후로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차이는 의심 받기 시작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인간 사고의 공간적 영역을 확대했다면, 다윈은 시간적 영역을 확대했다. 중세 기독교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정도로... [신약성서가 씌여지던 시기로 돌아가면, 더 '안습'이다. 바울은 스페인을 땅끝으로 생각했었다니까.]

다음 사진은 탐사선 보이저 1호가 1990년 6월 명왕성 근처을 지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이다. 사진의 별칭은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이 사진에 영감을 받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고... 이 시점에 보이저호는 지구로부터 거리는 40억 마일, 약 64억 km 에 있었다고 하는데, 무척 멀다는 느낌만 줄 뿐 실제 내 수리능력으로 계산되지 않는 그런 거리다. 이런 내력을 알고서 저 사진을 보면 정말이지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가히 QT용이라고 할만한 그런 사진이다.





















"보이저 2호는 1977년 8월 20일, 1호는 9월 5일 지구를 떠나 무려 30년 동안 우주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보이저 1호는 인류가 만든 물체 중 우주 밖으로 가장 멀리 나아갔다. 태양으로부터 155억 km 거리를 날아간 것. 태양으로부터 약 125억 km 떨어진 지점에 보이저 2호가 있다." (2007년 8월 얘기인 것 같으니 지금은 훨씬 더 멀리 있겠다). 두 우주선은 하루에 160만 km를 이동한다고 하고, 지구로부터의 명령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지만, 보이저 1호에 도달하려면 14시간이 걸리고 보이저 2호의 경우 12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그렇게 빠를까 싶긴 한대...
이런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일까? 중세 시대 혹은 그 이전 사람들은 하나님 혹은 각종 신이 구름 위 어드메나 바다 깊숙한 곳에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공간 개념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나와바리'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뿐이고, 비록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세상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걸 알고서 자란 우리들에겐 그리 큰 심리적 손상을 주지도 않는다. 리차드 도킨스처럼 과학으로 신앙을 미몽에서 깰 수 있다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최근 취침용으로 도킨스가 이야기를 이끄는 도큐를 '즐겨' 보고 있는데, 이 양반은 '과학교', 그 중에서도 '진화론교' 신자라 불러도 좋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서 종교적 주장을 강변하는 일부 '무식한' 창조론자들에 대해선 나도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종교, 특히 유신교의 유산과 의의를 그리 싸그리 무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한 마디로 인류가 사고하는한 21세기, 아니 그 어느 때에라도 종교, 유신교에 대한 수요는 있다는 것. 물론 계속 살아님을 종교는 매우 유연해야 한다. 새로 얻게 된 지식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창조론자들, 창조과학자들이 지금 주장하는 바는 머지 않아 중세 기독교처럼 시대착오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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