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30일 목요일

한국의 개념사 연구


'경향닷컴'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유길준, 박영효 등 개화파들은 개인이나 경제 등 근대 서구 개념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했으나 국내와 국제 정세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사진은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건너간 유길준(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개념사[독일어로 Begriffsgeschichte]는 - 내가 알기론 - made in Bielefeld다. 더 정확하겐 made by Koselleck in Bielefeld. 독일의 개념사 연구가 한국에도 소개가 되었고 나름 한국의 개념사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었는데, 나름 연구 성과가 쌓이고 있나 보다. 최근 '경향닷컴'에 올라온 서평을 보니... 나는 한림대 중심인 개념사 연구를 알고 있었는데, 서울대 하영선 쪽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연구를 해 오고 있었나 보다. 아마도 독일 개념사 연구 전통에 닿아있지는 않을 듯. 어찌되었건 반가운 일이다. 내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니까. 아, '개념사'와는 조금 다른, 사회학적 버전인데... '한국의 근대성(현대성)을 지식사회학적으로 탐구하기'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기사의 일부를 옮겨 놓는다.

서구에선 수십년 전부터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져온 개념사가 국내에 자리잡기 시작한 지는 10년 안팎. 지난해 9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념사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학계에선 특히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전파연구’ 모임과 ‘한국개념사총서’ 작업 등을 진행 중인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김용구)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개념들의 충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최근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담은 책 출간과 학술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창비)는 1995년 시작된 ‘전파연구’ 모임이 15년 동안 한국 사회과학 개념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문명·권력·부국강병·세력균형·평화·국민·민주주의·경제·개인 등 근대 서구의 개념들이 19세기 한국에 전파된 후 변형·수용된 과정을 밝히는 동시에 개념들을 둘러싼 치열한 담론싸움을 역사적으로 탐구했다. (...)

한림과학원이 지난해부터 내놓고 있는 ‘한국개념사총서’ 시리즈 세 번째 <헌법>(소화)도 최근 출간됐다. 김효전 동아대 교수가 19세기 중엽 ‘만국공법’과 함께 전래된 ‘헌법’ 개념이 종래의 개념과 만나 충돌·침투·갈등·저항을 거치며 선망·수용·모방·편입으로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실증적으로 추적했다. (...)


끝으로... 이 기사는 "동·서양의 ‘개념’ 소통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얼핏 보아 무리 없어보이지만 어딘가 석연찮아 보여 좀 생각해 보니... 개념사 혹은 지식사회학의 접근은 어짜피 '동서양의 소통'의 가능/ 불가능 같은 것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공허한, 그러니까 속이 빈 질문이다. 개념은 시공간을 달리하면 달리 이해된다는 것, 그건 바로 개념사 연구의 출발점 아닌가. 예를 들어 individual이 동아시아에서 '개인'으로 번역되는 순간, 더 이상 예전의 그 'individual'일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심지어 굳이 번역을 못해서 individual 이라고 쓴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터. 기자의 개념사 연구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 아니라면, 기자가 소개한 연구서들 탓일 수도 있다. 혹 이 책들이 "서구에 뿌리를 둔 개념이 한국에 '전파'되면서 어떻게 '원뜻'과 '달리' 이해되었는지,'유지'될 수는 없었는지" 류의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걸까? 그럴 때에라야 제목이 얘기하는 '동서양 소통'의 의미가 살아나는데... 여하튼 책을 읽지 않고서 '서평'을 '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2009년 4월 26일 일요일

old and wise (The Alan Parsons Project, 1982)


이 노래는 유하 감독의 영화 '비열한 거리' (2006)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각양각종 '깡패 영화'들이 나왔지만 '비열한 거리'는 그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아마 그 영화에서 조인성를 처음 본 것 같은데, 썩 괜찮았다. 허나 최근작 '쌍화점'(2008)은 감독으로서 유하와 연기자로서 조인성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에게서 기대할 게 과연 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쨌든 괜찮았던 영화 '비열한 거리' 끝무렵에 늙은 깡패 천호진이 룸살롱에서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이 old and wise. 고맙게도 영화는 곱게 늙은 조폭이 산전수전을 겪고나서 마침내 현명함(wise)을 얻는 그런 '착한' 내용이 아니다. 끝까지 비열함을 유지해 준 턱에 노래는 더 역설적으로 들리고, 그런 긴장이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 것이다.
이 노랜 원래 The Alan Parsons Project가 1982년에 발표한 앨범 Eye in the Sky 수록곡이다. 1982년 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지 않은가. 클래식과 팝 연주가 이처럼 조화를 이루는 곡을 많이 듣지 못했다 (Queen의 bohemian rhapsody도 그 많치 않은 사례 중 하나이고).이 앨범에 수록된 곡은 모두 Alan Parsons와 Eric Woolfson가 만들었고 노래는 여러 사람이 나눠 불렀는데 이 Old and Wise의 경우 Colin Blunstone가 불렀다. 유투브에는 이 곡 여러 버전이 올라와 있는데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골랐다. 1995년에 어디에선가 열린 World Liberty Concert의 실황장면이라는데 가수는 Mick Mullins. 원곡과 목소리가 비슷해서 나로서는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 끝부분 candy dulfer의 색스폰 연주도 기가 막히다.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하면...

when I'm old and wise
Bitter words mean little to m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And someday in the midst of time

내가 늙고 조금 더 현명해져 세상을 깨닫게 되면
아팠던 말들도 더 이상 큰 의미가 없고
가을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갈 거예요.
시간까지도 희미해진 언젠가에...

이 노래가 좋아서 The Alan Parsons Project의 다른 노래를 좀 찾아 본 적이 있었는데 익숙한 곡들이 꽤 있었다. 허나 Ammonia Avenue (1984)정도가 들을만할 뿐 다른 곡들은 대개 너무 '80년대 팝'스럽고 특히나 전자음을 많이 써서 촌스럽게 들리기까지 한다.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언론이 걸러서 알려주는 소식들을 읽자니 참 뒤숭숭하다. 우선 언론 탓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사회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언론은 나름의 기준을 좇아서 사건을 뉴스로 가공해 내는데 일상적인 일, 정상적인 일은 대개 탈락한다. 없던 갈등, 위기도 만들어 내야하는 게 언론의 사명 아닌가.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당/야당의 구분이 정치를 정치로 만드는 코드로 자리잡으면서 '위기'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에도 유익한 의미론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경우에도 지배 관료 집단 들 내부 분화가 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500여년을 존속한 조선왕조의 장수 비결일 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때는 다른 의미론이 중요했을 것이다 (1차 문헌을 통해서 확인해 보지 않은 짐작). 오히려 '위기'의 반대가 아니었을까? 국태민안... 어쩌면 같은 얘기일 지도 모르겠다. 위기 없는 안정은 빈 개념아닌가...] 현대 정치와 언론이 기본적으로 친'위기'적 성향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걸 감안하지만, 요즘, 그러니까 MB집권 이후 위기 담론은 어째 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금융위기에 대해서 위기임/위기 아님을 자유롭게 오가던 정부 인사들의 발언도 그렇고, 촛불시위, 용산사태, 최근 여러 리스트들, 노통 먼지 털기도 그렇고. 그 혼란의 핵심을 관통하는 개념은 '원칙의 부재'다. 공적으로 힘/무력/폭력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정부 기구들, 그들의 '공권력'은 실제로 행사되지 않을 때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권력이 발휘될 지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 내가 '한결같은...' 이라고 얘기하는 그 경우도 바로 '원칙'에 대한 것이다. '경기 규칙'! 전직대통령에 대해서 먼지 하나라도 잡아내려고 털어대던 그 공권력이 '장자연 리스트'에 관련된 인사들, 혹은 현대통령 주위 인사들이 얽힌 사건에 대해서 - 그리고 그 이전의 많은 권력형 범죄들에 대해서 - 면죄부를 준다. 어디 하루 이틀 경험헌 일들도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지난 10년간 더 자유주의적 정권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mb 이후로 얘네들이 하는 짓거리는 정말 눈뜨고 못 봐 줄 지경이다. 한자어를 쓰자면 걔네들의 眼下無人을 目不忍見하겠다. '뻔뻔한' 정권. 더 마음이 아픈 일은 그들이 배짱을 튕기며 그토록 '뻔뻔'할 수 있는 데는 구조적 원인이 있고 그게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응징'이 되질 않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갖는 본질적인 어려움이다.
이상, "'장자연 문건’ 큰소리 친 경찰 ‘빈손’ 수사 끝"이란 기사를 읽고서 든 생각이다. 뭐가 두려워서인지 다음은 이 기사에 대해서 댓글을 쓰지 못하게 해 놨다 ("댓글운영원칙에 따라 의견을 닫고 서비스합니다.") 참 가관이다 가관...
참,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당선과 함께 미네르바 무죄 판결은 - 비록 1심에 불과해서 바뀔 여지는 남아있지만 - 그나마 가뭄 중 단비 같이 반가운 소식이다. 어쩌면 이런 사건들을 변화의 싹으로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여했던 촛불시위도 당장은 의미있는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저들'은 안심하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재점화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생명

묵상모임 블로그에 남긴 글을 옮겨 놓는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어느새 바뀐 바깥 풍경이 잠시 화제가 되었답니다. 나무 잎들이 내는 초록색이 어찌나 짙던지요. '생명'이 '생명'일 수 있는 본질적 근거를 '변화'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고, 변화는 또 '시간'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는 시간, 변화, 생명을 때로는 노화/죽음으로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재생/부활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담이 '생명'에 대해서 느꼈을 바를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죽을래야 죽을 수 없었던 에덴동산 시절과 추방 이후 죽을 운명을 갖게 된 이후를 말입니다. 천양지차였겠지요. 죽음이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 '의미'를 얻게 될 텐데요. 그렇게 보면 에덴동산에서 '생명'이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네요. 또 거기에 있었다는 '생명나무'는 무엇이었을까요? 영원히 죽지 않고,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그런 나무였을까요? 어쩌면 그 '생명나무'가 에덴동산 생명 이해의 실마리가 될 것 같군요

지난 번에 나눈 것처럼 에덴동산의 모습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천국에서 '생명'은 또 무엇일까요? 죽음이 없는 그 곳에서의 '생명'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생명'도 마찬가지이고요.

'영생'이라는 '아이디어'가 성경에 일관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만 [이건 또 부활사상과 연결되어 있겠죠?] 여하튼 '생명'이라는 주제는 또 재미있는 묵상거리가 되겠네요. 이런... 글이 길어지면서 너무 무거워져 버렸어요. 다음을 기약하고 이 정도에서 얼른 빠져 나가렵니다.

2009년 4월 16일 목요일

한결같은 사람 (2)

한결같다는 건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쓸 수 있는 표현이다. '한길을 간다'라는 얘기하는 바로 그런 의미로... 뜻을 세우기까진 넓고 깊게 고민하지만, 한 번 뜻을 세웠으면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한 길을 한결같이 걸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한길을 가긴 하지만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위해서 '외곬수' 같은 표현이 따로 있다. 그 경계는? 물론 매우 불분명하다. 그러니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남'의 인정을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면 - 아애 없기를 요구할 수는 없고... - 차라리 한길 갈 마음조차 품지 말 일이다. 오늘 IHT에 실린 2009년 Pritzker Prize 수상자에 대한 기사를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리쯔커상'이라고 불러야 하나?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데, 올 해 수상자는 스위스 건축가 Peter Zumthor라고 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스타 건축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가 했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는데... "You can do your work, you do your thing, and it gets recognized" 네 길을 쭉 가라, 그러다보면 인정받을 수도 있는 거고... 뭐 그렇게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그 양반은 설계할 때 제일 먼저 어떤 '재료'를 쓸 지 고민한다고 하는데, 스위스 사람이라 그런지 나무를 즐겨 사용하는 것 같다. 눈에 띄는 건물 사진이 함께 실려 있어서 '정보의 바다'를 좀 항해해 봤는데 아주 흥미롭다. 예를 들어 Bonn에서 그리 멀지 않은 Mechernich (Wachendorf)라는 곳에 있는 "Bruder-Klaus-Feldkapelle". '클라우스 형제 기념 야외 예배당' 정도 되겠다. 클라우스 형제는 15세기경에 살았고 카톨릭에서 성인으로 추대된 인물인 모양인데, 왠 사연이 있어서 이런 예배당까지 짓나 궁금하긴 하지만 독일어로된 긴 설명을 구구절절이 읽진 않았다 (여기). 귀차니즘... 허나 사진 감상은 기꺼이... (좋은 그림 중 두 개만 골라 봄. 출처.)


외관은 5각형에 돌을 썼고, 내부는 원형인데 나무 기둥 112개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았는데 우선 나무기둥으로로 내부를 만든 후 돌로 덧씌웠다. 다른 '작품'을 봐도 그렇고 이 양반 딱 내 '스타일'인걸. 다른 건 몰라도 이 교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독일에 있는 동안 한 번 찾아가도 좋을 듯하다.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한결 같은 사람

동서고금, 사람의 정신세계, 의식체계를 헤아리기 어렵다는 인식은 늘 있었을 터이다. 몇 가지 경구만 기억하더라도...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인간은 소우주다”라고 했고, 우리 조상들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였다(여기서 '길'은 어른 키에 해당하는 길이라고...).오죽 설명하기가 궁색했으면 프로이트 형님이 '무의식'론을 들고 나왔으며, 바로 같은 이유로 루만 선생은 인간과 의식체계를 사회 밖으로 나가 주십시요 하고 밀어내지 않았던가. 의사소통은 그런 복잡한 의식체계 혹은 소우주가 최소 두 개 이상이 만나는 상황이다. 그러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건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터.
학술서나 매스미디어를 통한 관찰이긴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의사소통의 복잡성은 더 어려워졌다 (인류 역사는 복잡성 증가의 역사다. 열역학 제2법칙을 원용하면 사회적 엔트로피의 증가....). 신분사회에선 복잡성을 줄여주는 장치들이 좀 더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옷 - 옷감, 색깔, 장신구 - 등으로 신분이나 지위가 외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었고 [Kleidung als Medium der Kommunikation?],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곧 의사소통의 내용도 각본처럼 짜여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분제 사회의 잔재라고 강하게 얘기하긴 힘들겠으나, 의사소통에서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던 상황이 내 어릴 적 기억으로 남아았는데... 어른들이 묻는다. 네 아버지 성함/존함이 어떻게 되시는고? 내가 '네, 정 0자 0자 쓰십니다'라고 대답하면, '고놈 가정교육 잘 받았네'라고 평가를 내리시던... 오랫동안 그런 신분적, 위계적 방식을 통해서 복잡성을 줄이려 했다면, 근대는 바로 그 복잡성의 신분적 제한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의사소통의 복잡성은 이제 개인화나 정보 전달 매체의 발달 과 더불어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물론 - ethnomethodologists나 대화분석가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밝혀내었듯이 - 제한된 복잡성만을 감내할 수 있는 상호작용 체계는 후속 의사소통의 연결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을 구조화하지 않을 수 없다. 허나 그 구조란 것도 '예전'과 비교할때 훨씬 더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해서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다. 근대 이후 인간관계의 맨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개,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심리나 갓난아이를 좋아하는 심리 뒷켠엔 어쩌면 그런 경우 의사소통의 진행을 - 그렇다 의사소통 -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을 것이다. 애완동물과 아기의 공통점은? 그들이 전달하는 정보를 내가 취사선택해서 의사소통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일상적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 그러니 아이들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예전의 그 사랑스럽기만 하던 존재로 볼 수 없게 되는 것. 그러니 평생 나를 '배반'하지 않는 건 동물 밖에 없다, 愛玩동물로 분류되는... (cf. 푸코가 '말과 사물' 서문에 인용한 그 고대 중국의 동물분류법).
아기나 애완동물과의 커뮤니케이션만큼은 아니더라도 의사소통 상황을 통제하려는 건 인지상정의 영역에 속한다. 대화상대가 내가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을 때 그 통제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아니, 예측가능성이 너무 높으면 금새 지루해지는 단점도 있으니 - 곧, 권태(倦怠), 권태기로 가는 지름길 - 바람직한 경우는 어쩌면 예측가능/예측불가능 그 경계 위에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아닐지.
내가 주로 놀라는 경우는 내 예측이 배신당할 때. 예컨대 상대방이 내가 한 말이나 내가 빚어낸 상황에 대해서 '엽기적'인 해석을 내 놓거나 네기 상대의 행동의 의미와 이유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경우. 이해의 지평을 수평선으로 상정한다면 서로 다른 두 지평이 만나는 접점은 아애 없거나, 기껏해야 하나밖에 생기지 않는다. 서로 이해한다는 건 순간 순간 서로 이해의 지평을 이동해서 접점을 만들어 내는 행위다. 내가 원하지 않는 위치에서 그 접점이 만들어지는 경우를 우린 '오해'라고 표현한다.
'한결 같은 사람'은 대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측가능해서 지루한 사람'이나 '버려도 좋을 나쁜 품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진 않다는 말씀.복잡성은 높아지고 그만큼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며, 견고한 모든 것이 녹아 내리는 근대적 조건에서 '한결 같은 사람'은 참 고마운 존재다. '결'이라... 참 느낌이 좋은 우리말 아닌가? 그 결이 하나라는 것...
끝으로... 내가 한결 같을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한결같지 않은 타인의 반응에 대해서 일희일비하지 않기'다. '타인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을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기'를 포함해서... 상대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일관성있게,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편으로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반대로 내 나름의 일관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으니까.

2009년 4월 7일 화요일

그 사람, 도올...

도올 선생은 참 난해한 인물이다. '오버'/박식, 무례/겸손의 경계를 넘나 들어서 쉽게 미워할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서 가장 높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아마도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단순 명료하게 풀어내어 남녀노소를 웃고 울리게 만들고, 동서고금 철학사, 사상사를 21세기 한국인들의 일상과 연결시키는 능력일 것이다. 탁월한 '대중선동가'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부흥사 스타일 지식인이이다. 그 원형을 그가 그리도 강조하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적어도 일제시대나 군사독재시절의 '선각[구]자', 저항 지식인의 모습과는 꽤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스스로도 어릴 적 이런 저런 강연회에 열심히 다녔다고 하지 않았나. [그 탓인지 나름 최신 지식까지 섭렵하고 새로운 전달 방식을 도입하려 애를 쓰긴 하지만 좀 구식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너무 계몽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대중지성' 운운하는 21세기가 아닌가.] 아니면 실제로 그의 어릴 적 교회생활과 부흥회 참여 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의 강연 음성파일을 듣고 있노라면 청중들이 금방이라도 '아멘'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에 대한 비판은 대개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나온다. 대중이야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도올의 박식함[과 그의 학위]에 주눅들어 의심을 품기는 커녕 그저 감탄하기에 급급하다 (거기엔 나도 포함된다. 그가 다루는 분야, 인물 중에서 내가 더 잘 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쪽이 거의 없으니...). 또한 도올은 한국 '대중'의 기대를 기가 막히게 만족시켜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학력, 학위, 저술 목록, 박식 등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고선 학계, 정치권의 기득권층을 곧잘 싸잡아 비판한다. 또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주제인 민족적 자부심과 주체성에 대해서 도올 선생처럼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는 지식인을 보지 못했다 [타고난 선동가라는 내 판단은 이런 관찰에 기인한 것]. 도올 선생 강연에서 청중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자연스럽게 '줄기교' 교주인 닥터 황을 떠올렸다. 다만 황박사는 science에 '세계 최초'로 인정받는 - 적어도 그 당시엔 - 논문을 싣고서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도올 선생엔 바로 그런 게 부족하다. 뭐랄까, 자신의 권위을 확보부동하게 지켜 줄 그 '한 방'이 없는 것이다. 그가 낸 업적이란 것도 대부분 고급 교양서에 가깝지 않은가. 그것도 한국에서만 출간된... 그가 자신이 거쳐온 학교, '수집'해 온 외국 학위를 그토록 강조하는 건 어쩌면 그것 외에 딱히 보여 주거나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업적이 없다는 컴플렉스 탓이 아닐지. 물론 학계 실정에 어두운 이들은 그의 학위와 저서 목록만 보고서 절로 생기는 존경심을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불교 등 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그지만, 다른 한 편 도올 선생처럼 종교적 카리스마를 풍기는 지식인을 보지 못했다. 진화론에 대한 믿음으로 기독교 등 일신교를 비판하다 진화교 교주가된 도킨스와도 비슷한... 도올의 종교는 '儒學'이고 '한민족'이다. 학문적 의사소통을 포기하고 미디어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대중 지식인이다. 앞으로는 한국 바깥으로 '진출'하시겠다는 그에 대해 난 매우 비관적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의사소소통을 시작하실 텐가? 외국 학자들? 한국 언론이나 대중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지, 도대체 한국 바깥에서 누가 그가 그가 따온 학위에 놀라주며 그 갈라지는 목소리를 참고 들어줄까? 그것도 영어로? 아무리 한국에서 언론과 청중들의 열광적으로 반응한들, 도올 선생은 무대를 내려 오는 순간 늘 허전함을 느낄 것이다. 학계... 전문가의 인정... 그것을 얻지 못하는 한... 허나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져서 기존 학계와 도올은 그 어긋난 상황을 끝내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성취를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또 한국 지성계엔 그 같은 '엔터테이너'가 필요하다. 아니 학계에서도 그처럼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더 있어야 한다. 또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을 섭렵하고, 그것을 소화하고 번역해서 글 쓰는 학자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상은 오늘 중앙일보에 올라 온 그 양반 인터뷰를 읽고서 든 생각이다. 인터뷰 내용 일부를 옮겨 놓는다.

-‘아시아대륙학’은 어떤 시각을 제공합니까.
“이미 한나라 시대부터 아시아 대륙 끝까지 교류가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우리는 아시아 대륙을 편협하게 인식했습니다. 중동 지역이 이슬람화되면서 그 이전 이슬람과 무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묻혀져 있었습니다. 이슬람은 7세기에나 시작되는 문명입니다. 중동 지역도 아시아 대륙이라는 총체적 사상의 단위와 틀에서 봐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문명도 아시아 대륙에 속한 문명입니다. 예수 시대에 팔레스타인 문명은 헬레니즘을 배경으로 합니다. 헬레니즘은 인도 문명권과 구체적으로 소통된 상태였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동양인에게 어필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스토아 학파에 동양적 사유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유대교뿐만 아니라 이런 헬레니즘 문화의 틀 속에서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철학계는 그런 사유를 하지 못했습니다. 철학의 록스타라고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이 자기 멋대로 떠들고 있습니다만 아시아대륙학적 관점이 보다 탄탄한 관점입니다. 이제 서구 문명을 아시아 문명의 입장에서 규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까.
“공자는 호색(好色)하는 만큼 호덕(好德)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호색의 에너지를 호학의 에너지로 치환해야 합니다. 섹스 충동처럼 강렬한 것은 없지만 학문은 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모든 학문의 기초는 어학(philology)입니다. 어학은 진짜 미련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자라나는 세대에서 정신적으로 탁월한 지도자들이 각 분야에서 나오지 않으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불행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이 빈곤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2009년 4월 6일 월요일

조선왕조 오백년, 그 끈질긴 생명력의 원천은?

왕조도 왕조 나름이겠으나 조선처럼 500여년이나 지속된 왕조는 분명히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 식자들이 대개 한 두마디씩 보태는 모양인데... 언젠가 도올 선생의 강의에 강사로 초청되었던 나름 유학에 일가견이 있다던 조순 선생은 대단한 원인이 있었다기 보단 그저 나라를 무너뜨릴만한 외부 침략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요약해 놓고 보니 빈약하기 그지 없는 논리지만, 그 강연 맥락에선 이해될만한 발언이었다. 어쨌든 그보다는 한국 유교문화, 특히 유교에 기초한 정치문화에서 원인을 찾는 학자들이 많이 있는 듯하다. 촛불시위 정국에서 언젠가 이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일본 교토대학원 오구라 기조 교수의 발언을 다시 인용해 두자면...

'조선왕조에서 성균관이라는 국립중앙유교대학의 엘리트들은 왕에게 직소할 일이 있으면 광화문에 모여 데모를 해 잘못한 왕을 바로잡았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다'... '일본의 유교는 혁명사상이 없는 데 비해 한국의 유교 전통은 윗사람이 도덕성이 없을 때 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한국인의 질서적인 세계관에서는 어떤 관계이든 윗사람에게 도덕성을 요구한다. 즉, 한국 사람에게 미국의 존재는 너무 크니까, 큰 영향력을 주는 존재이니까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오늘 한겨레에서 확인한 기사에서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조선시대에는 사간원을 두어 왕의 잘못을 비판하게 했다. 꼭 사간원 소속이 아니라도 누구나 왕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었다. 혼자 짖다가는 ‘깨갱’할 수 있으니, 여럿이 짖고, 또 잘 짖는지 서로 감시하며 짖어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가기구 틀 내에서 정부에 대해 유일하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인권위원회를 마비시키려 한다. 사간원을 없애버린 연산군 죽고 처음 있는 일이다.

조선이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의 하나는 관료들이 사직소를 잘 썼던 데 있었던 것은 아닐까? 때로 그들은 지부상소라고 해서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가 상소를 올렸다. 내 말 듣지 않으려거든 이 도끼로 내 목을 치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 말이 개그콘서트의 ‘독한 놈들’보다 훨씬 더 독했다. 예컨대 남명 조식은 ‘단성소’에서 수렴청정을 하던 문정왕후를 구중궁궐 속의 한낱 과부로, 명종을 유약한 고아라 부르며 준엄하게 비판했다. 최익현의 상소는 전권을 장악한 임금의 아비 대원군을 가차 없이 때려 그를 낙마시켰다. 최익현이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을 때 스승 이항로가 준 교훈은 “임금의 신하가 되어 마땅히 상소를 해야 할 사건이 있게 마련인데, 입을 꼭 다물고 묵살하며 그냥 국록이나 타 먹는 일은 매우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었다. 군왕과 그 부모까지 정조준하던 조선시대 보수주의자들의 높은 기개는 ‘형님’이 한마디만 하면 옴짝달싹 못하는 요즘 세태와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러니 이 땅에 보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문명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도올 선생도 조선 창건 이념을 정립한 정도전 등을 언급하면서 '유교적 합리성'을 강조하고, 그것이 왕조 지속 뿐 아니라 현대 한국이 이룬 성취의 근본을 이루는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조선시대 집권세력을 당쟁이나 일삼고, 중국을 섬기던 이들로, 그리고 백성들을 저항이라고 해볼 줄 몰랐던 순한 민족으로 봐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더 많다. 역사 해석에서 엄밀한 인과적 설명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더 그럴듯한/ 덜 그럴듯한' 해석을 구분할 수는 있지 않을까? 조선시대, 특히 유교문화, 유교적 세계관 공부에 도전해 볼 이유가 가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이병우가 만든 노래로 한국 가요사 최고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들국화 1집 (1985)에 수록되었고, 1986년 발표된 '어떤 날' 1집엔 조동익 목소리로 들어가 있다. 아무래도 이병우가 직접 참여한 '어떤 날' 버전이 곡에 더 잘 어울린다. 무척이나 느리고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는 노래.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썩 잘 만든... 따뜻한 햇볕에 우울해지는 그런 情調라고 얘기할 수 있을... 별 것 없는 일상을 얘기한 가사에 참 어울리는 절제된, 그래서 심심하기까지한 멜로디. 이런 일상의 정조 노래하기는 20여년이지난 후 장기하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차이라면 21세기의 장기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고, 80년대 후반 이병우 노래를 '즐길 수' 있는 층은 그리 두텁지 않았다는... 물론, 이병우 노래가 거의 '禪'적인 수준이라면, 장기하의 경우 가사,멜로디가 훨씬 더 자극적이라는 외형적 차이도 언급해야 하겠지만.
이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서 듣고 있다. 아쉽게도 올릴 수 있는 영상은 찾지 못했다. 이런 저런 잡생각이 비쭉 비쭉 비집고 들어와서 그 생각의 뿌리를 분석하는 중인데 배경음악 삼아 틀어 놓고 있고... 그 생각의 뿌리는 한 편으로 어제 저녁 동년배들과 나눴던 대화에 닿아있고, 다른 뿌리는 오늘,그러니까 일요일 오후로 이어져 있다. 사람들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연결망이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 기대하지 않았던 쪽으로 형성되면 당혹스럽다. 워낙 변수가 많으니 내 한 몸, 생각 잘 추스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아니... 그리 유난한 일이라고 할 것도 못되는데 어쩌면 오늘 내일 마무리해야 할 과제의 무게 탓에 그런 잡생각을 처리할 용량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원인의 핵을 짚어내지 못하면 괜히 엉뚱한 데다 눈을 흘기게 된다. 그래. 그 탓이 크겠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다고 치자.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없이 걷던 길 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없이 달아났네...

2009년 4월 2일 목요일

사진: 의외성 (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OMA)에서 'It's Time We Met' 이라는 이름의 포스터에 쓸 사진 공모전을 했는데, 응모 사진 중 하나라고... 뽑혔는진 모르겠지만... 십자가 위의 예수와 (아마도) 두 제자의 그림을 바라고 보고 있는 히잡을 쓴 여인이라... 저게 정말 히잡인지, 히잡이라고 하더라도 이슬람교도인지, 앞에 있는 그림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눈을 감고 쉬고 있는 중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이 사진을 '감상'하는데 어짜피 확인할 수 없는 그런 정보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저 그림을 '착하게' 이해할 준비가 이미 된 이들에겐 말이다....
허나... 바로 그 때문에... 이 사진에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너무 직설적이고, 깔끔하잖은가. 생각할 여지를 전혀 남겨 두지않은 채 혼자서 착한 척하는 사진. 점수를 매긴다면 '의외성' 항목에선 0점, 제목을 단다면... "(너무) 착한 사진" 정도...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