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닷컴'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유길준, 박영효 등 개화파들은 개인이나 경제 등 근대 서구 개념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했으나 국내와 국제 정세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사진은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건너간 유길준(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개념사[독일어로 Begriffsgeschichte]는 - 내가 알기론 - made in Bielefeld다. 더 정확하겐 made by Koselleck in Bielefeld. 독일의 개념사 연구가 한국에도 소개가 되었고 나름 한국의 개념사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었는데, 나름 연구 성과가 쌓이고 있나 보다. 최근 '경향닷컴'에 올라온 서평을 보니... 나는 한림대 중심인 개념사 연구를 알고 있었는데, 서울대 하영선 쪽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연구를 해 오고 있었나 보다. 아마도 독일 개념사 연구 전통에 닿아있지는 않을 듯. 어찌되었건 반가운 일이다. 내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니까. 아, '개념사'와는 조금 다른, 사회학적 버전인데... '한국의 근대성(현대성)을 지식사회학적으로 탐구하기'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기사의 일부를 옮겨 놓는다.
서구에선 수십년 전부터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져온 개념사가 국내에 자리잡기 시작한 지는 10년 안팎. 지난해 9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념사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학계에선 특히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전파연구’ 모임과 ‘한국개념사총서’ 작업 등을 진행 중인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김용구)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개념들의 충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최근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담은 책 출간과 학술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창비)는 1995년 시작된 ‘전파연구’ 모임이 15년 동안 한국 사회과학 개념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문명·권력·부국강병·세력균형·평화·국민·민주주의·경제·개인 등 근대 서구의 개념들이 19세기 한국에 전파된 후 변형·수용된 과정을 밝히는 동시에 개념들을 둘러싼 치열한 담론싸움을 역사적으로 탐구했다. (...)
한림과학원이 지난해부터 내놓고 있는 ‘한국개념사총서’ 시리즈 세 번째 <헌법>(소화)도 최근 출간됐다. 김효전 동아대 교수가 19세기 중엽 ‘만국공법’과 함께 전래된 ‘헌법’ 개념이 종래의 개념과 만나 충돌·침투·갈등·저항을 거치며 선망·수용·모방·편입으로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실증적으로 추적했다. (...)
끝으로... 이 기사는 "동·서양의 ‘개념’ 소통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얼핏 보아 무리 없어보이지만 어딘가 석연찮아 보여 좀 생각해 보니... 개념사 혹은 지식사회학의 접근은 어짜피 '동서양의 소통'의 가능/ 불가능 같은 것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공허한, 그러니까 속이 빈 질문이다. 개념은 시공간을 달리하면 달리 이해된다는 것, 그건 바로 개념사 연구의 출발점 아닌가. 예를 들어 individual이 동아시아에서 '개인'으로 번역되는 순간, 더 이상 예전의 그 'individual'일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심지어 굳이 번역을 못해서 individual 이라고 쓴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터. 기자의 개념사 연구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 아니라면, 기자가 소개한 연구서들 탓일 수도 있다. 혹 이 책들이 "서구에 뿌리를 둔 개념이 한국에 '전파'되면서 어떻게 '원뜻'과 '달리' 이해되었는지,'유지'될 수는 없었는지" 류의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걸까? 그럴 때에라야 제목이 얘기하는 '동서양 소통'의 의미가 살아나는데... 여하튼 책을 읽지 않고서 '서평'을 '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