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일 월요일

소통의 기술

소통의 단절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중 하나가 '바벨'이다. 한 번 헝크러지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화되는 관계, 같은 공간에 있지만 (手話를 포함해서) 공통 언어를 소유하지 못해 넘을 수 없는 벽. 하지만 그 보다 더 안타까운 경우는 드러난 조건만으로는 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문을 닫아 걸어서 생기는 부녀 간 소통의 단절. 그러나 영화를 이루는 세 에피소드 중 그 이야기의 결말이 가장 밝고, 또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감독은 '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라는 메세지(정보)전달하고 싶었을까? 적어도 난 그렇게 이해한다. 독일에 살면서 언어, 경험, 문화가 달라서 오해하고 얼굴 붉힌 적도 적지 않지만, 그 보다 더한 아픔을 경험할 때는 같은 말을 쓰면서도 소통의 통로에 놓여있는 장벽을 확인하는 경우다. 루만은 의사소통을 '정보', '전달', '이해' 이 세 요소가 합작해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차원의 질서로 설명하며, '이해'는 발신자가 보낸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해'도 '이해'인 것이다. 루만은 '이해'는 커녕 심지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 자체가 얼마나 '신비로운'(내 표현) 현상이냐고 얘기한다. 그렇다. 어찌보면 우리는 '이해'보다는 오히려 '오해'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르고, '오해'라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 루만은 소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 온 여러 장치들, 매체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언어, 문자 같은 확산매체는 물론인고 돈, 권력, 진리 같은 상징적 매체도 포함된다. 청춘남녀가 소통할 때 사용하는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매체도 포함해서). 그런 거창한 매체들 말고 나도 내 나름 소통의 기술을 '啓發'해야 할 것 같다. 평생의 숙제로 남겠지만... (The Art of Communicating/ Die Kust des Kommunizierens adapted from 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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