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7일 월요일

언제부터인가 조금이라도 진지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것을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고 설명하려는 습관이 생긴 걸 알게되었다. 최근 수년간 '상태'가 심각해고 있는 걸 봐서 직업병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면 'born to be sociologist'라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Rather 'sociologist in making'?). 하지만 심리적 현상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다보면 이 오지랖 넢은 사회학의 설명틀도 한계에 부딪힌다. '심리체계'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분명히 그 나름 어떤 작동방식이 있을텐데 사회학도들에게 그건 열어볼 수 없는 블랙박스와 같은 것이다 (인간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적 시각 혹은 사회적 요인을 고려하는 접근이 중요하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기는 하다). 그런 현상 중 하나가 '꿈'이 아닌가 생각한다. '꿈'의 사회학? 음... 워낙 'xx 사회학'이란 표현에 익숙해서인지 어색하진 않으나 진지한 사회학적 성찰이 가능할까? 의심스럽다. 이런 영역 정도는 심리학자들에게 전적으로 남겨둬도 될 것 같다. 사실 '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해오고 있는 매우 친근한 현상이라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해석틀, 설명방식이 있었다. 좀 모던한 버전으로 프로이트가 있고, 사실 더 가깝기로는 우리 어머니'들'의 해몽을 꼽을 수 있다 (Alltagstheorie 혹은 ethnotheory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그러나 나는 내 나름의 꿈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 내가 특별히 집중해서 고민하고 있거나 특히 잠들기 전에 읽거나 생각한 것이 모티프가 되는 경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가끔씩 전혀 예기치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건 도대체 왜 그런지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무의식 쪽으로 밀쳐 놓은 그 어떤 생각들이 의식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서 삐져나오는 것인가? 이런 우리 프로이트 형님식 버전은 요새 심리학 본류에서는 토정비결 급으로 치부되는 모양인데 그보다 더 나은 혹은 더 '설득력있는' 설명방식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사실 지난 밤 꿈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 보려고 컴앞에 앉은 것인데 어쩌다보니 사뭇 진지한 글이 되고 있는 중... (다시 '직업병' 테제?). 세 테마가 기억에 남는다. (1) 논문 (2) Mitbewohner (3) 모모 씨. (1)은 쉽게 설명 가능. 주말에 많이 놀았다는 자책감에 체계이론에 대한 논문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내가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아이디어들만 떠올렸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경우는 '꿈'이라기 보다는 非夢似夢 상태로 보아야 할까? 원래 잠의 중요한 기능은 뇌를 쉬게하고 임시저장장치를 비우는 거라는데... 앞으로는 침대에 누워서 논문을 읽는 그런 '뇌 unfriendly'한 행동은 삼갈 필요가 있겠다). (2) Mitbewohner도 이해할 수 있다. 현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으니까. (3)이 불가사의다. 지금 한국에 있는 모모씨. 가깝다면 가까운 관계이긴 하나 최근 내 인식의 범위에 들어온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뜬금없이 그것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매우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을까? 바쁘실텐데... 혹 내가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일까? 이럴 때 이럴 때 우리가 가져다 쓰는 설명틀이 있긴하다. '개꿈'. 더 생각해본들 별 유익이 없을 경우 사건을 처리하는 '신포도 기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꿈' 자체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한다는 건 좀 우스운 일이지만 '꿈 해석'의 사회학은 가능할 뿐 아니라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시대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다를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미 나와 있을 지도...). 여하튼 잠들기 전에는 최대한 좋은 일을 떠올리거나, 예를 들어 보고 싶은 사람을 떠 올린다든지, 그게 힘들면 적어도 백지상태에 가까운 마음을 갖도록 애쓸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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