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살이 짓이겨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과연 그런 영화 장면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기에 적절한 재료일까? 예전에 그 영화를 보면서 불편해 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육체에 가해진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오히려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는 것은 아닌가? 그 당시 멜 깁슨이 기독교에 귀의한 이야기, 제작팀이 기도하며 제작한다느니, '성화'라고 한국에서 교인들이 단체관람한다는 이야기 등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 포르노그라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풀어가기위한 수단으로 성애 장면을 사용하지 않고, 성애장면 표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보통 포르노라고 부른다. 멜 깁슨은 어쩌면 적나라한 고통, 상처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2006년작 'Apocalypto'에도 잔인한 장면이 역시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런 혐의는 더 짙어졌다. 깁슨씨 속마음이나 신앙심을 내가 알 수는 없는 일이나 -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을 통해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음주 난동(운전?), 반유대주의 발언 등등 - 난 그리스도 고난의 진정한 뿌리는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그 현실인식, 소통의 단절이 제일 큰 아픔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절망감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크지 않았을까? (cf.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하고 섬긴 무리들이 자기를 죽이라고 소리치는 그런 광경을 봐야하는게 더 마음아픈 일 아니었을까? 고통의 무게만 가지고 비교하려 든다면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의 무게라기보다는 관계의 단절이나 미래에 대한 소망없음, 절망이 아닐까?
2008년 3월 14일 금요일
고난
다음 주가 고난주간이다. 예배에 쓸 고난 주간 동영상을 찾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영화 장면으로 짜여져 있다. 멜 깁슨이 만든 "The Passion of the Christ"(2004)가 그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 때까지 만들어진 어떤 영화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받는 장면을 잔인하게 혹은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십자가에 달려 있던 예수의 몸에선 채찍 자국 때문에 맨살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모든 살이 짓이겨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과연 그런 영화 장면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기에 적절한 재료일까? 예전에 그 영화를 보면서 불편해 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육체에 가해진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오히려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는 것은 아닌가? 그 당시 멜 깁슨이 기독교에 귀의한 이야기, 제작팀이 기도하며 제작한다느니, '성화'라고 한국에서 교인들이 단체관람한다는 이야기 등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 포르노그라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풀어가기위한 수단으로 성애 장면을 사용하지 않고, 성애장면 표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보통 포르노라고 부른다. 멜 깁슨은 어쩌면 적나라한 고통, 상처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2006년작 'Apocalypto'에도 잔인한 장면이 역시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런 혐의는 더 짙어졌다. 깁슨씨 속마음이나 신앙심을 내가 알 수는 없는 일이나 -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을 통해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음주 난동(운전?), 반유대주의 발언 등등 - 난 그리스도 고난의 진정한 뿌리는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그 현실인식, 소통의 단절이 제일 큰 아픔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절망감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크지 않았을까? (cf.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하고 섬긴 무리들이 자기를 죽이라고 소리치는 그런 광경을 봐야하는게 더 마음아픈 일 아니었을까? 고통의 무게만 가지고 비교하려 든다면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의 무게라기보다는 관계의 단절이나 미래에 대한 소망없음, 절망이 아닐까?
(모든 살이 짓이겨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과연 그런 영화 장면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기에 적절한 재료일까? 예전에 그 영화를 보면서 불편해 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육체에 가해진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오히려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는 것은 아닌가? 그 당시 멜 깁슨이 기독교에 귀의한 이야기, 제작팀이 기도하며 제작한다느니, '성화'라고 한국에서 교인들이 단체관람한다는 이야기 등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 포르노그라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풀어가기위한 수단으로 성애 장면을 사용하지 않고, 성애장면 표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보통 포르노라고 부른다. 멜 깁슨은 어쩌면 적나라한 고통, 상처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2006년작 'Apocalypto'에도 잔인한 장면이 역시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런 혐의는 더 짙어졌다. 깁슨씨 속마음이나 신앙심을 내가 알 수는 없는 일이나 -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을 통해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음주 난동(운전?), 반유대주의 발언 등등 - 난 그리스도 고난의 진정한 뿌리는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그 현실인식, 소통의 단절이 제일 큰 아픔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절망감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크지 않았을까? (cf.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하고 섬긴 무리들이 자기를 죽이라고 소리치는 그런 광경을 봐야하는게 더 마음아픈 일 아니었을까? 고통의 무게만 가지고 비교하려 든다면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의 무게라기보다는 관계의 단절이나 미래에 대한 소망없음, 절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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