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4일 금요일

고난

다음 주가 고난주간이다. 예배에 쓸 고난 주간 동영상을 찾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영화 장면으로 짜여져 있다. 멜 깁슨이 만든 "The Passion of the Christ"(2004)가 그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 때까지 만들어진 어떤 영화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받는 장면을 잔인하게 혹은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십자가에 달려 있던 예수의 몸에선 채찍 자국 때문에 맨살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모든 살이 짓이겨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과연 그런 영화 장면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기에 적절한 재료일까? 예전에 그 영화를 보면서 불편해 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육체에 가해진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오히려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는 것은 아닌가? 그 당시 멜 깁슨이 기독교에 귀의한 이야기, 제작팀이 기도하며 제작한다느니, '성화'라고 한국에서 교인들이 단체관람한다는 이야기 등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 포르노그라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풀어가기위한 수단으로 성애 장면을 사용하지 않고, 성애장면 표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보통 포르노라고 부른다. 멜 깁슨은 어쩌면 적나라한 고통, 상처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2006년작 'Apocalypto'에도 잔인한 장면이 역시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런 혐의는 더 짙어졌다. 깁슨씨 속마음이나 신앙심을 내가 알 수는 없는 일이나 -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을 통해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음주 난동(운전?), 반유대주의 발언 등등 - 난 그리스도 고난의 진정한 뿌리는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그 현실인식, 소통의 단절이 제일 큰 아픔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절망감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크지 않았을까? (cf.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하고 섬긴 무리들이 자기를 죽이라고 소리치는 그런 광경을 봐야하는게 더 마음아픈 일 아니었을까? 고통의 무게만 가지고 비교하려 든다면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의 무게라기보다는 관계의 단절이나 미래에 대한 소망없음, 절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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