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일 토요일

축제 (1996, 임권택)

난 임권택 감독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다. 왜 너무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품'이나 '물건'들은 값어치있게 여기지 않게되는 그런 심리 있잖은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런 이유로 내게 괄시를 받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흐도 그 중 한명이어서 여기 저기 널려 있는 고흐 그림 때문에 막상 화가에 대해서, 그 그림에 담겨있을 지도 모를 '깊은 뜻'에 대해서 더 알아볼 생각을 하질 않았었다. 그런 탓에 암스테르담 고흐 박물관 방문에선 살아 생전 그림 몇 점 팔아보지 못해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았던 화가의 그림들이 그토록 '삐까뻔쩍'한 건물 속에 담겨져 있다는 어색함만 확인하고 왔고, 수 년 전 브레멘에서 열려서 성황을 이루었던 고흐 전시회에선 전독일에서 구름떼처럼 몰려든 독일의 그 중산층, 고만고한해 보이는 문화병 환자들 구경한 기억 밖에 남아있지 않다. 최근 읽은 클리프 에드워드(Cliff Edwards)의 책 '하느님의 구두. 거룩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989/2004)가 비로소 고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 비슷한 역할을 임권택 감독에 대해서는 '축제'가 했다. 꼽아보니 애써 찾아 보지 않았던 걸 고려하면 이 양반 영화를 많이 본 편이다. '씨받이'(1986), '아제아제바라아제'(1989)에 대해선 별 기억이 남아있지 않고, '장군의 아들'(1990)은 그저 그런, '태백산맥'(1994)은 내가 봤던 임권택 영화 중 최악 [10권짜리 대하소설을 2시간 남짓한 영화로 옮기면서 너무도 싱거운 얘기가 되어버렸다], '취화선'(2001)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외국 손님용' 혹은 '국제 영화제용'이란 인상을 너무 강하게 풍기는 게 거슬렸고, 역시 '서편제'(1996)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다행히도 '축제는 '서편제'에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서편제'처럼 물흐르듯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 윗길로 쳐줄 수는 없겠다.
재미있는 건 <서편제>와 <축제>가 모두 이청준 원작이라는 점. 한 때 이청준의 작품을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있었던 터라 생각해 보면 까닭있는 '우연'일수도 [이청준 원작인 '밀양'도 재미있게 봤으니...]. 이청준 원작이라고 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서편제>의 경우 소설이 완성된 이후에 영화로 각색되어 나온 것이고, <축제>는 "임권택 감독의 요청에 의해 처음 시나리오와 대본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을 새삼 소설로 도로 펼쳐낸 " 것이라고 한니... 축제는 자전적 얘기라고 한다. 주인공은 소설가고, 배경도 남도 어디이고, 좋은 학교를 나왔는데 고작 소설가나 하고 있고, 군수가 대학 친구이고... 허나 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전적 얘기임을, 안성기가 이청준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영화는 사실 그리 극적인 이야기를 갖추고 있지 않다. 주인공 노모의 장례를 치루게 위해 모여든 식구들, 친척들, 친구들,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 갈등... 죽음이 산 사람들의 관계를 새로이 배열하는 그런... 한 가지, 이오덕 선생께서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축제>(祝祭)가 일본말이라고 지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제목이 좀 찜찜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잘 어울림을 알 수 있다. 영화 포스터를 보라. 상복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이라니... 우리나라 영화에서 잘 찾아보기 힘든 '블랙코미디'풍이랄까... ["우리나라의 제사는 조용하고 엄숙하게 지낸다. 그래서 제사 제(祭)자 앞에 축(祝)자를 붙일 수가 없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의 제사는 시끄럽게 떠드는 행사로 치른다." 이오덕 지음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임권택 감독은 우리 전통을 어떻게든 영상으로 남겨놓으려 애쓰는 티를 '너무' 내는 편인데...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화면을 잡아내기도 하고, 또 영화 곳곳에 해설용 자막을 집어 넣기도 한다.  '취화선'에서 그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서편제'에서도... '축제'는 그 사용이 가장 심한 편인 것 같다. 얼핏 다큐를 보는 것 같기도... 물론 좋은 공부이긴 하지만 영화의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판단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자막은 이야기가 흘러가는 길 위 군데 군데 놓인 돌멩이들 같다.
영화'축제'의 장점도 많이 있다. 특히 조연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기자들은 하나 같이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하고 연기 또한 빼어나다. 허나 너무 빼어나서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기도 하다. 얼핏 무대 위의 연기 같은 것 (연극배우 출신들이 적지 않을 거라는데 백원 건다^^). 주연급도 다 괜찮은 편인데, 다만 갈등관계, 긴장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오정해의 연기가 좀 거슬린다. 위악적인, 좀 까칠하고 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음을 고려해도, 시종일관 크게 바뀌지 않는 오버성 평면적 연기로 일관하는 건 좀 그렇다. 임권택 감독이 특별히 사랑하는 배우인것 같은데, 더 클 수 있을지... 아니, 10년도 더 된 영화이니,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면 안성기 연기는 나무랄데 없다. 이토록 잘 맞는 '옷'을 입은 안성기를 이전에 본 적이 없었던 듯. [너무 반듯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또 영화의 내러티브를 진행시키고, 인물들 간의 관계를 파헤치는 인물로 서울말 쓰는 기자를 설정해 놓은 점도 거슬린다. 끝으로 영화는 액자소설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장례식 이야기와 나란히 동화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그 이야기는 결국 극중 작가가 쓴 동화의 내용이라는 점이 끝무렵 밝혀지면서 설득력을 얻긴 하는데, 영화의 흐름을 끊는다. 꼭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소설 '축제'의 구성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건 아닌지... ] 내 눈에 이런 점들이 보인다는 얘기일 뿐이고, 영화는 거장의 손길이 닿은 작품답게 생동감 넘치고, 좋은 영화로 볼 근거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내게 있어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 전통장례를 체험하며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 죽음을 보는 우리의 '시선', 죽음에 대한 우리 '목소리'를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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