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맑시즘 정치이론의 핵심 테제인 계급투쟁, 노동자 계급 혁명을 얘기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얼마나 낯설어 보였는지... 그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러서 혁명 운운하는 소리는 후일담에서나 듣게 되었고, 그 많던 좌파들, 맑시스트들은 제도정치권으로, 시민운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허나 한국의 정당의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건 누구나가 쉽게 지적하는 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하질 않나, 진정한 좌파정당이라고 자부하는 민노당에는 '민족해방'(NL) 세력의 입지가 더 커졌다. 도대체 한국에서 좌파/우파, 진보/보수가 제대로 나뉘어본 적이 없다. 보수정부라고 얘기하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추, 김영삼 정권에서도 꽤 진보적이라고 할만한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었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된다. 의료보험도입, 과외금지, 고교평준화 같은 걸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보수/진보를 얘기하며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투덜거리게 된 건 사실 매우 행복한 고민이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독재/민주로 세상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재정권과 보수정권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때로는 독재정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대중의 눈치를 살피며 좀 더 평등지향적인 정책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은 신한국당 출신이지만 여전히 민주화 세력, 상대적으로 진보적 인사들을 많이 기용했고, 스스로 매우 대중추수적 입장을 지녔다. 그렇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선명한 보수정권, 계급 혹은 지지세력의 이익에 노골적으로 복무하는 정권은 2mb정권이 최초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재정권' 혹은 '3당야합' 같은 핸디캡 없이 출발했다는 점은 이 정권이 노골적으로 수도권, 건설족, 강부자등으로 대표되는 자신들의 지지핵심집단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참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인가.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가 종부세에 대해서 쓴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일부 인용한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큰 흐름에서 볼 때 우리 현대사는 끊임없는 발전과 진보의 역사였다. (...) 지난 10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보수적 정부가 집권해 왔지만, 진보의 도도한 흐름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한 진보적 개혁이 거의 모두 보수적 정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제도 등의 사회복지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전두환 정부 때였으며, 토지공개념이란 급진적 성격의 개혁안이 나온 것은 노태우 정부때였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는 굵직한 개혁이 이루어진 바 있다. 지금 이런 개혁안이 나왔다면 보수진영은 좌파의 책동을 막아야 한다고 난리를 쳐댔을 것임에 틀림없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좌파정책의 표상처럼 되어 있는 평준화교육을 도입한 사람이 바로 보수진영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평준화의 틀은 그 뒤를 이은 보수적 정부하에서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실정중 하나로 들먹여지는 대학입시 ‘삼불정책’의 기본골격도 실제로는 보수적 정부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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