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유럽의 자기성찰: Can Europe produce an Obama?

한국에서는 흔히 '서구'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그 당사자들은 한묶음으로 묶이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서로를 구분하여 부르는 말이 신대륙과 구대륙. 이 구분은 주로 '신대륙' 사람들이 즐겨 쓰는 것 같다. '구대륙'사람들은 다시 대륙과 앵글로색슨으로 나누어 부르는 경우가 잣은 것 같다. 허나 이는 다시 '구대륙' 안에서도 대륙 사람들의 입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본토와 '바닷것'들을 구분하고, 그리고 그 '바닷것'의 영향권 아래서 만들어진 '미국' 도 그 편으로 편입시키고. 독일인들 오랫동안 타자를 '서구' 혹은 '선진국' 으로 불렀다. 독일 왼쪽에 있는 개명한 선진국들을 한편으로 부러워하고, 또 그들의 물질문명, 실증주의적 경향을 경멸하며... 이런 자아/타자구분법을 연구해도 재미있겠다. '오리엔탈리즘'이 대표적인 연구일텐데, 그 후 관련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온 것 같지 않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어제 본 신문 기사 하나를 소개하려다 그렇게 되었다. IHT 첫면, 헤드라인뉴스로 박힌 제목: "Can Europe produce an Obama?" 유럽과 미국의 관계, 그 역사는 참 복잡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현대 문명의 - 아름다운 그리고 추하기도한 - 꽃은 비록 유럽에서 싹트긴 했지만, 미국 땅에서 비로소 만개했다. 자본주의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20세기 초반 유럽 지성인들 중 미국 정치제도를 부러워한 사람들이 많았다 (토크빌, 맑스 베버가 대표적).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강력한 패권국가로 등장했지만, 동시에 국제 깡패짓을 많이 해서, 복지국가 체계를 정비해 가던 구대륙 사람들은 미국의 현실적 힘은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경박하게 날뛰는 미국 것들 은근히 무시하였다. 인종주의에 대해서도 그 뿌리는 유럽에 있지만 많은 유럽인들은 그동안 미국의 인종주의, 흑백갈등을 언급하며 그 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며 자신들의 상황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의 미국 무시는 이번 부시 정권 시기에 그 정점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다. 서유럽 국가들의 친미성향 정도를 조사해 본다면 상위권에서 내려 오지 않을 독일에서도 공공연하게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정치인들이 많았으니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이번 미대선에서 오바마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것도, 그리고 오바마 당선을 내 일인양 기뻐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터. 허나 공교롭게도 오바마가 당선되자 유럽인들은 자기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흑인을 미국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인들, 미국사회. 누구도 이렇게 쉽게 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IHT는 그런 '유럽'이 느끼는 당혹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국회의 경우 본토 출신 의원 중 흑인은 한 명이 있을 뿐이고, 영국에서는 하원 646명중 15명이 비백인. 8천2백만명 인구의 3%에 달하는 2백9십만이 터키계인 (독일 시민권자는 8십만명) 독일에서는 연방의원 613명 중 5명이 터키계라고 한다. 언제쯤 프랑스나 영국에서 흑인 대통령 혹은 수상이, 그리고 독일 같으면 터어키계 출신 수상이 뽑힐 수 있을까?
사실 수치로 보면 미국도 그리 나은 편은 아니다. 오바마는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이고, 이번에 새로 구성된 하원의원 중 흑인은 39명으로 약 9퍼센트라고. 미국인구 중 흑인이 13퍼센트라고 하니까...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그리고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대통령으로 흑인을 선택함으로서 미국인들은 그들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부시의 실정과 미국의 쇠락을 은근히 즐기던 이들에게 보기좋게 한 방 먹였다. 지난 수년 동안 부시와 미국 때리기를 즐기던 유럽인들은 이제 당분간 역사 앞에서 또 한 번 선수를 치고 앞서가는 미국을 부러워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IHT 기사 중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영국같은 의회제 아래에선 의외의 인물이 수장으로 뽑힐 기회가 훨씬 줄어든다는 것. "영국에선 오바마처럼 뛰어나게 연설을 잘 한다고 해서 주목을 받기는 힘듭니다. 의회에서 서열을 따라 커가야 하는 거지요" 영 노동부 장관의 말씀.]
이 시점에서 우리 '조국'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당선 이후,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자와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주장했다던 2MB와 청와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코미디와 비교를 불허하는 빼어난 수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코디미계, 개그계의 쾌거!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한국 코미디계는 앞으로 2MB가 접수한다.

ps) 지난 주말 독일 녹색당 전당대회에서 터키계 2세인 Cem Ozdemir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1994년 터키계 최초로 연방의회 의원이 되었고, 2004년 대단치 않은 스캔들로 유럽의회로 물러났었는데 이번에 국내정치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 "흑인최초..."를 달고 다녔던 오바마가 미대통령이 되었으니, 어쩌면 오즈데미르도 독일 수상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42살이라니 아주 불가능해보이지도 않고. Wer we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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