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7일 금요일

地平融合

'지평융합'. 해석학의 용어 'Verschmelzung der Horizont'의 번역어인데 그 동네에서 어떤 뜻으로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개념이 마음에 들어서 내방식으로 이해해서 쓰기로 한다. 그래도...급하게 검색해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텍스트를 대하기 전에 일종의 편견을 갖는다. 이 편견을 선이해라 한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우리의 선이해가 만들어놓은 한계 - 지평 - 속에서 이루어진다. 각자의 선이해 와 모순되는 텍스트는 선이해 속 에서 해석되지 않는다. 이 때 각각의 선이해는 텍스트 속의 선이해와 융합하여 새로운 선이해로 변화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선이해가 만나 하나의 선이해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지평융합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선이 해는 다시 다른 텍스트들을 해석하는 데 사용되며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내가 '지평', '지평융합'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분명히 다르지만, 신경쓰지 않고 내 길을 가련다. 뭐, 글 개념들에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지평은 다분히 공간적 개념이다. 유사표현으로 '경계'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평이란 개념으로 난 심리적인 상황을 기술하고 싶으니 - 루만식으로 얘기하자면 - '심리체계의 경계' 정도로 정의해도 되겠다. '사회 세계'라 표현을 염두에 둔다면 '심리 세계'라고 해도 될것이고, 그 '심리세계'의 경계로 생각하면 되겠다 (Psychische Welt, cf. Soziale Welt). 그렇다고 가능한 모든 심리체계 작동이 가능한 범위로 이해하려는 것은 아니고 개인적 심리 체계 혹은 심리체계로 제한한다. 사회체계의 경계가 끊임없이 재설정되는 것처럼 심리체계 역시 그러하다. 공간적으로 표현을 계속 사용하자면, 내 심리체계의 중심에는 분명히 내가 있다. 그 '나'를 중심으로 이제껏 내가 경험한 온갖 사람, 사물, 사건, 지식, 정보들이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것들은 가까이, 어떤 것들은 멀리, 또 어떤 것들은 감춰진 채로... 지평, 즉 경계가 있다는 건 그것을 기준으로 그 안쪽과 바깥쪽이 구분된다는 얘기... (그러고 보니 지평과 경계에 대해서 조금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지평이 단선적이라면 경계는 원형적이란 느낌을 주는 것. 굳이 둘을 일치시키려한다면 '둥그런 지평'을 상상하면 될 듯. 어쨌든...). 모든 심리체계가 그런 지평/ 경계를 갖고 있다면, 다른 두 심리체계가 의미를 주고 받는 상황에선 어떤 방식으로는 그 두 지평이 만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을 지평융합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체계이론 개념으로는 strukturelle Kopplung이 비슷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왜 하는 것일까? 그 배경을 설명하자면...

어제 태어난지 약 30시간 정도되는 '생명체' (표현이 좀 '거석'하지만...)를 만났다. 오랫동안 좁은 동네에서 큰 변화없이 살면서 내 지평이 굳어져서인지 처음에 이 새로운 생명체, 인간 존재를 심리적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좀 난감했다. 사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구나 (다른 아이). 그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낯선 느낌... 낯선 성인을 만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성인의 경우 상대도 분명한 지평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미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 지평과 내 지평의 Kopplung은 자석이 서로 달라붙듯 쉽게 되는 편이다. 서로 공감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상점에서 생전처음보는 판매원에게서 그리 낯설다는 느낌을 받지 않지 않는가? 허나 이 아이의 경우는... 그 아이의 지평은 이제 막 형성되는 중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그 지평 안에서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낯설게 느끼는 모양이다. 익숙하지 않은 interaction 상황인 것. 갓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을 관찰해보면 대개 말을 알아듣는 큰 애들에게 하듯이 말을 건네며 그런 상황을 처리한다... 그런 상황을 자주 겪지 않는 손님들ㅇ를 배려해서라도 더 익숙한 상황의 하나로 치환하려는 노력아닐까?
그 일을 계기로 내 지평이 매우 굳어져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굳어진 지평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좀 변화를 주고 싶다면, 심리체계의 한 가운데, 그러니까 좌표로 표현한다면 (0,0) 이거나 (0,0,0)이 될 그 자리를 내주면 어떨까. 인식의 주체마저 내가 아닐 수는 없으니까, 일종의 심리 실험이 되겠지만. 즉, 타인(혹은 절대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지는 지평을 상상하고 그것을 내 지평으로 삼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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