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아직 그 기제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알고 있다). 우리 프로이트 할아버지 적보다야 많이 알려졌겠지만 주로 수면 행태에 대한 연구인 것 같고 꿈의 발현, 해석에 대해서 획기적 진전을 이루었다고 들은 바 없다. 이렇게 애매모호한 영역이니 동서고금 꿈은 이용하고 가지고 장난치기 매우 좋은 소재였음에 분명하다. 특히, 일상적 경험에 의해 해석하기 어려운 상황에 '꿈'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각종 역사책, 경전에서 꿈은 단골 소재였다. 성서에서도 그 흔적을 여기 저기 찾아볼 수 있고. 많은 경우 굳이 '꿈'과 '현실'을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꿈'을 '현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그러니까 순수한 '비현실' 세계의 영역으로 몰아내는 과정이 바로 근대화였다 [근대화에서 삶의 공간 밖으로 내쫓겨났던 것들, 혹은 합리적 '터치'를 거쳐야만 다시 유입될 수 있었던 사례들은 많이 있다. 푸코 형님 저작을 참고할 것. 미침(고광기), 몸, 건강, 태어남, 죽음, 감정 등등. biopolitics라고 부르던...]. 프로이트 할아버니가 꿈을 무의식 세계의 중요한 사건으로 보고 거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때 '근대인'들이 펄쩍 뛰었던 일도 큰 무리는 아니다. '탈근대인'이 프로이트에 거부감이 없는 건 바로 그 '탈' 때문이고. 그래도 '꿈'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진 않다. 꿈이 없을수록 숙면을 취한다는 '건강상식' 정도.
꿈에 대해 권위있는 해석이 아직 없는 것 같고, 대개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꿈을 이해하는 것 같다. 요 며칠 惡夢을 꿔서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생각에 보았다.
악몽이 뭘까? 을 여러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깼을 때 '휴, 다행이다. 꿈이었구나...' 싶으면 악몽을 꿨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며칠 간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출현했고, 영화 여러 편 찍었다. 굳이 장르로 얘기하자면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시원하게 웃기지도 않고 아픈 부분을 꼭꼭 찌르는...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관계 혹은 감추고 싶은 내 안의 어떤 것들이 꼭 드러난다. 요즘 많이 생각했던 주제나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는 좀 더 이해할만하지만, 어제처럼 요새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아니 그랬다고 믿고 있는 얘기가 뜬금없이 등장할 땐 좀 황당하다. 무의식... 아, 그 부분까지 비워야 하고, 맡겨야 하는 것일까? 기도 중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이런 표현을 종종 듣게 되는데, 정말이지 무의식의 세계까지 지배하게 해달라고 분명하게 요청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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