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있었더라면 당장 샀을 책. 인터넷에 내용 요약이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 일부 인용해 놓는다. 그럴듯 하게 들리고 요즘 내가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방향과도 맞아 떨어지는 그런 설명인데, 이런 테제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이승만은 독립 운동에 대한 기여로 인해, 박정희는 경제적 민족주의의 일환으로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추진한 업적으로 인해, 각각 정권의 '반민주성'에도 불구하고 '반민족적'이라는 비판을 어느 정도 비켜 가거나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에 광주 민주 항쟁을 짓밟고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그 정부가 반민주적이기 때문에 바로 '반민족적'이라는 비판을 상쇄할 수 있는 이념적 자원을 태생적으로 결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이후의 통치 과정에서도 민주주의는 물론 민족주의의 관점에서도 정당성의 결함을 메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두환 정부는 급진화된 저항 세력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연합 공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었으며, 궁극적으로 1987년의 6월 항쟁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한겨레가 이 책과 관련해서 강정인 교수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데 일부 오려 놓는다. 나로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설명이다.
“서구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가 출현하고, 이후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사회주의가 등장합니다. 반면 한국 같은 후발국가에서는 구질서의 이념이 잔존하는 가운데 온갖 근대 이념들이 동시적으로, 급작스럽게 출현합니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 안에 과거 질서인 권위주의와 미래 질서인 자유민주주의가 병존하는가 하면, 같은 시기에 등장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두고 격렬하게 충돌하게 되는 거지요.”
강 교수가 볼 때 보수주의 정권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가 붕괴한 것은 그들이 ‘세계시간의 압력’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지배이념이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와 충돌하면서 지속적인 정당성 위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서구에서와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전통이 취약한 것도 마찬가지다. 해방 직후 한국의 정치현실을 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이념적 활력과 계급 역량이 취약했던 상황에서 자유주의보다 더 광범위한 호소력을 지닌 사회주의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거에 보수·반동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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